"철모 쓴 군인들이 총검술하듯 찌르고 쐈다"
함양군 마천면 가흥리 가채마을 김기태(76) 할아버지는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한달 후인 7월 25일께 인근 군자리 솔봉에서 벌어진 민간인 집단학살 현장을 직접 지켜본 목격자였다.
"그날 면사무소에 볼일이 있어서 갔다가 군인들이 트럭에 한복과 양복을 입은 52명을 싣고 와 솔봉에서 학살하는 걸 봤어. 면사무소 옆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트럭을 세워놓고 사람들을 끌고 가는 모습이 뻔히 보이거든? 그렇게 한 사람씩 포승줄로 묶인 사람들을 일렬로 솔봉에 끌고 올라가 죽였는데, 내가 세어봤더니 52명이었어."
그는 "군인들이 끌려온 사람들을 한 사람씩 불러낸 후 총부리에 착검한 상태로 총검술하듯 찔러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밀어넣은 후 총으로 쏘아 죽였다"고 생생하게 증언했다.
마천면 추성리 추성마을 문창권(77) 할아버지는 학살이 있던 날 아침, 학살 암매장터가 된 군자리 솔봉에 마을 청년들과 함께 불려가 구덩이를 팠다. 당시 그는 한청(이승만 대통령이 1949년 12월 자신의 취약한 정치적 기반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직접 총재직을 맡아 결성한 대한청년단의 약칭) 단원이었다. 그는 "한청 단장이 청년들을 소집했는데, 삽과 괭이를 들고 나오라고 하데? 그래서 솔봉에서 방 두 개 넓이로 가슴까지 들어가는 깊이의 구덩이를 파놓고 돌아왔는데, 저녁 여덟 시쯤 총소리가 났어. 그 일이 있고 나서 사흘만에 인민군이 들어왔지." 당시 함양군에 인민군이 들어온 것은 7월 27~29일쯤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군자리 솔봉 학살사건은 7월 25일쯤으로 추정된다. 이 분들 외에도 목격자는 많다. 마천면 덕전리 내마마을 윤갑수(83) 할아버지와 그의 형 윤정수(85) 할아버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대한청년단원들이 미리 파놓은 구덩이속에 암매장
그들은 "전쟁이 난 그해 여름 남원·구례쪽에서 온 GMC 트럭에 실려온 남자와 여자 수십 명이 솔봉에서 총살됐다"고 말했다. 윤갑수 할아버지는 당시 의용경찰 특공대원으로 근무 중 이 사건을 목격했다. 그는 "한복 입은 사람과 양복입은 사람이 섞여 있었는데, 이미 고문을 당했는지 옷이 피투성이였다"고 기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