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2240

부처를 구하는 일

부처를 구하는 일 『법화경』에서 말한다.“너희가 빠르게 삼계에서 나오면 마땅히 성문승(聲聞乘), 벽지불승(辟支佛乘), 불승(佛乘)의 삼승(參乘)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이 일을 책임지고 보증하노라. 결코 헛되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다만 부지런히 공부하라.” 저 불난 집에서 뛰어노는 자녀들이 바로 우리들인, 어리석은 중생이다. 그리고 바깥에서 아이들을 불난 집으로부터 대피시키려고 애쓰는 아버지가 바로 부처님이요,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과 스님, 성인들이다. 먼저 불난 집의 실상을 깨달은 이가 바깥에서 중생을 구제하려고 아무리 나오라고 해도, 중생에게는 그 말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 일인 줄 안다. 젊고 건강한 사람도 언젠가 ..

[조주의 선어록] 옷 입고 밥 먹고 잠 자는 수행

옷 입고 밥 먹고 잠 자는 수행 “할 일을 다 끝마친 깨달은 사람은 무엇을 합니까?” “바르게 수행을 한다.”“큰스님께서도 수행을 하십니까?”“옷을 입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수행을 한다.”“옷 입고 밥 먹고 잠 자는 것은 일상적인 일 아닙니까? 도대체 수행을 하시는 겁니까? 안 하시는 겁니까?”“묻는 그대가 말해 보라. 내가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 할 일을 전부 다 마친 깨달은 사람은 말 그대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그러나 아무 할 일 없으면서도 모든 일을 다 한다.할 일을 다 마친 사람도 수행을 한다. 할 일으 다 끝낸 사람은 어떤 수행을 할까? 추우면 옷을 입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목마르면 물을 마신다. 평상심으로 일상적인 일을 자연스럽게 그저 행하지만, 그 평범함 ..

[수심결]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 (1)

고통에서 벗아는 방법 삼계(三界)의 뜨거운 고통이 마치 불타는 집과 같은데, 어찌 그대로 참고 머물면서 그 기나긴 고통을 달게 받고만 있는가? 윤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부처를 구하는 것이 제일이다. 만약 부처를 구하고자 한다면, 부처는 곧 이 마음일 뿐인데, 어찌 이 마음을 먼 곳에서 찾고자 하는가? 三界熱惱 猶如火宅 其忍淹留 甘受長苦 欲免輪廻 莫若求佛 若欲求佛 佛卽是心 心何遠覓 사람들은 깨달음, 괴로움으로부터의 해탈, 속박에서 벗어남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지금 당장 가지고 놀 수 있는 재미있는 장난감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있고, 오욕락을 추구하고 성취하며 사는 삶이 나름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성과의 사랑도 달콤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일도 즐겁다. 직장에 취직해서..

현대인에게 수심결이 필요한 이유

현대인에게 수심결이 필요한 이유 한국 불교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난 스님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신라의 원효와 고려의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을 뽑을 것이라는데 이견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만큼 보조국사 지눌스님은 한국 불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불교가 시작된 이래로 부파불교와 대승불교를 거치며 불교는 일체중생의 괴로움의 소멸이라는 그 뜻을 펴기 위해 다양한 대소승의 교리와 경전 등을 통해 다양성과 심화된 가르침으로 대중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인도의 힌두교의 성립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이란, 이집트,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사상, 철학, 종교계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며 발전했다. 특히 대승불교의 성립과 함께 ..

[대승경전 유마경] 본래 죄는 없다

본래 죄는 없다 세존께서 우파리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거사에게 문병을 가거라." 그러자 우파리 존자가 세존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에게 문병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기억하건대, 과거 한 때에 두 명의 비구가 계(戒)를 어기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깊어 감히 부처님을 찾아뵙지 못하고, 저에게 찾아와 저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말했습니다. “우파리존자시여. 지금 저희들은 계율을 많이 어겨 참으로 부끄러워 부처님을 감히 찾아뵙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대 우파리님께서 저희들의 근심과 후회를 풀어 주셔서 이 허물에서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이에 저는 곧 그들에게 여법하게 설명해주어 근심과 후회를 제거하고 허물을 깨끗이 없애도록 해주었습니다.그때 유마힐이 그곳으로..

싫은 상황을 해결하는 부처의 방식

싫은 상황을 해결하는 부처의 방식 삶은 언제나 연기의 이치대로 정확히 일어나야 할 일을 일어나야 할 바로 그 때 일어나야 할 크기만큼 일어나게 만든다. 과거에 당신이 만났던 고통, 괴로움, 힘들었던 상황들 조차 나를 돕기 위한 법계의 연기 작용이었다. 현재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 또한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물론 그렇다고 힘든 상황, 괴로움이 찾아올 때 그것을 해결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힘든 상황이 오면 누구나 그것을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내적인 인연이다. 나의 내면이 문제 해결을 원한다. 이 또한 인연 따라 일어난 일이다. 그러니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본다. 온갖 노력을 다 해 보라. 다만 몇 번을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 혹은 죽도..

[조주 선어록] 법에는 거리가 없다

법에는 거리가 없다 “조주에서 진부(鎭府)까지 가는데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300리다.” “진부 (鎭府) 에서 조주까지 오는 데는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거리가 없다.” ✔선지식은 방편과 본질을 자유자재하게 쓸 줄 안다. 세속과 출세간을 자유롭게 오고간다. 법을 물으면 법으로 답하고, 일상으로 물으면 일상으로 답한다. 조주에서 진부까지 거리가 300리라는 것은 일상적인 물음이고 일상적인 답이다. 큰스님이라고 해서 늘 법만을 설하며 사는 것이 아니다. 매일 선문답만 하면서 살지 않는다. 선문답은 특별한 경우, 즉 제자가 법을 묻는 경우에만 한정하여 드러낼 뿐이다.선지식이라고 해서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묻는데, 법으로 답을 해서는 안 된다. 진부에서 조주까지 오는데 거리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

고통은 업장을 소멸할 좋은 기회

고통은 업장을 소멸할 좋은 기회분별을 일삼는 생각은 지금 당장 성공하고 싶은데, 현실은 자꾸만 고통스런 힘든 일이 연이어 일어난다면 그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그럴 때는 힘든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불교에 말하는업(業)의 가르침에서 볼 때, 이 세상 모든 것은 업이 해결되는 방향, 해소되는 방향으로 삶을 펼쳐낸다. 즉, 내 성공보다는 앞서 먼저 내 안에 가득 쌓인 업장이 녹아야 한다면, 업장을 소멸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것이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악업의 업장이 해소되기 위해서이다. 즉 나를 괴롭히기 위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나를 돕기 위해 찾아온다. 해결하려면 먼저 그 문제가 해소되어야 한다. 풀려나가야 한다. 고통이 왔다면 그것은 ..

[대승경전 유마경] 직심(直心)이 보살정토

직심(直心)이 보살정토 보적아, 마땅히 알라. 올곧은 마음(直心)이 곧 보살심의 정토이니 보살이 성불하였을 때 굽은 마음이 없는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며, 깊은 마음(深心)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이 성불하였을 때 공덕을 구족한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보리심(菩提心)이 보살정토이니 보살이 성불하였을 때 대승의 중생들이 와서 태어난다. ✔ 생각으로 헤아려서 한 번 걸러서 본별로 이해된 마음은 직심이 아니다. 직심, 즉 올곧은 마음이란 생각과 분별로 걸러지지 않은, 곧장 바로 이 마음이다. 분별하지 않을 때 곧장 바로 이 마음이다. 곧장 바로 이 마음이면 곧 보살의 마음이요, 보살의 정토요, 본래 청정한 깨달음의 자리다. 생각과 분별망상은 얕은 마음이지만, 생각과 분별의 파도가 잔잔해지면 그..

나답게 사는 삶이 진리답게 사는 삶이다

나답게 사는 삶이 진리답게 사는 삶이다 ‘나는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남을 부러워하며, 남들처럼 살려고 노심초사하고 애쓰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나다운 삶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되면, 마음껏 나다운 삶을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다운 삶은 전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주어진 삶이기에 단순하고 쉽다. 그리고 더 큰 열정과 에너지가 샘솟는다. 나다운 것이야말로 진리다운 것이기에 진리가 돕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리에 내맡긴다’는 말이다. 나답다고 할 때의 그 ‘나’는 에고, 아상으로써의 나가 아니라, 진리로써의 나를 말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내가 아니라, 법신불이며 불이법으로써의 전체로써의 나를 말하며, 이 전체인 한마음이 이러한 현실로 나타난 삶 전체를 의미한다. 자기답게 사는 것이 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