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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미화 씨 관련 뉴스를 잘 안 보려 합니다. 마음이 아파서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그녀에게 면목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녀가 진행하던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에서 잘리고 난 뒤엔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그녀의 일에 마음 아파하고 면목없어한다고 해서, 저와 김미화 씨 사이에 특별한 친분이 있거나 사연이 있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일. 그 일로 나는 그녀에게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 일로 나는 그녀의 고난에 마음 아파하고 면목없어해야 합니다.
그녀가 우리 사회 일부 극우 보수집단에 공격받는 몇 가지 단골소재가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의원 시절 함께 방송을 했다” “2002년 ‘노사모’ 회원들과 함께 촛불시위에 참여했다.” “2007년 초 노 대통령과 인터넷매체와의 대화에서 사회를 봤다”는 내용입니다.
그녀는 노사모가 아닙니다. 노사모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노 대통령의 의원 시절 방송은 그녀의 결정이 아니라 방송사가 결정해 된 것일 뿐입니다. 2002년 촛불시위도 노사모의 촛불시위가 아니었습니다. 주한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효순·미선양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행사일 뿐이었습니다. 그녀 스스로 밝힌 “어머니의 마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할 겁니다.
제가 그녀에게 미안한 일은 2007년 2월 대통령 토론행사입니다. 사회를 의뢰했습니다. 당시 저는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었습니다. 그 행사의 기획과 준비, 진행 전 과정을 책임진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인터뷰나 토론 행사는 대개 언론사의 요청으로 이뤄집니다. 신문은 편집국장이 질의를 하니, 진행자가 필요 없습니다. 방송은 해당 방송사 앵커나 아나운서가 맡는 게 일반적입니다. 여러 방송이 합동으로 하는 행사는 지상파 방송 3사가 돌아가며 자사 앵커나 아나운서를 진행자로 씁니다.
김미화 씨가 진행했던 행사는 인터넷 매체들과의 합동 토론이어서 프리랜서 사회자를 구해야 했습니다. 프리랜서 진행자라고 해야 많지 않습니다. 방송사에 근무하다 독립한 유명한 진행자는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김미화 씨였습니다. 그녀에게 진행을 부탁하기로 한 데에 다른 이유는 없었습니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어서 그랬습니다. 그녀의 또 다른 장점은, 어려운 주제도 아주 쉽게 풀어서 끌어가는 능력이었습니다. 자칫 토론 내용이 딱딱하더라도 그녀가 진행하면 편하고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저희들만 그리 생각한 게 아니고 인터넷 언론사들도 그녀가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하게 됐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극소수이긴 했지만, 청와대 일부에선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소신이 강해서 특정 사안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곧잘 견지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나 참여정부 청와대는 입맛에 맞는 진행자를 골라 대통령 행사를 치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분들이 더 공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처음에 난색을 표했습니다. 토론행사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방송시간 전이어서 부담을 느꼈을 겁니다. 토론이 길어지면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생방송에 못 맞출 수도 있었습니다. 노 대통령 스타일은 누구처럼 ‘짜고 치는 고스톱’ 형식으로 시간과 대본과 내용을 미리 정해서 가지 않습니다. 당연히 길어질 수 있습니다. 그걸 전제로 어렵게 설득하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수락을 받았습니다.
결국, 사고가 생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토론이 열기를 띠면서 예정시간보다 길어진 겁니다. 그녀는 매우 미안해하면서, 솔직하게 저희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비록 인터넷 생방송 중인 대통령 행사였지만, 그녀가 진행하는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생방송도 존중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마무리를 못한 상태였지만 먼저 자리를 뜨도록 양해를 했습니다. 현장을 책임진 제가 그리 결정했습니다. 대통령께는 메모로 양해를 구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그런 위험성을 안고 섭외한 저희 책임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서운해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녀는 성실했고,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을 사랑했습니다.
그 토론행사 진행이 훗날 그녀에게 곤란을 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방송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자기 나라 대통령의 공식 토론행사 진행을 했다고 피해나 보복을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송지헌 씨 등 많은 방송인이 그런 진행을 맡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정치적 시각으로 선정한 적이 없고, 그 누구도 정치적으로 진행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행사 진행을 했다고 해서 덕을 본 일도 없고, 피해를 본 일도 없습니다.
김미화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노 대통령이나 참여정부와 특별한 인연도 없고, 정치적 이유로 행사진행을 한 게 아닙니다. 그 때문에 덕 본 일도 없고, 덕을 보도록 어떤 부탁을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대통령 행사 진행과 굳이 연결하지 않더라도, 한나라당과 깊은 인연이 있는 연예인들이라고 하여 피해보게 한 일도 없고, 압력을 행사해 본 일도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는 있습니다. 문성근, 명계남 씨 등 누가 봐도 대통령과 특수한 친분이 있는 분들은 큰 피해를 봤습니다. 특히 명계남 씨는 참여정부 기간에 거의 방송과 영화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했습니다. 심각한 역차별을 받은 겁니다.
제가 청와대에서 5년 내내 언론, 특히 방송을 담당했지만 그분을 위해 방송사나 영화판에 어떤 부탁을 해 본 일이 없습니다. 하물며 김미화 씨에게 무슨 덕을 보게 할까요. 그녀는 원래 잘 나갔고, 원래 인기 있었으며, PD들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그녀를 중용했을 뿐입니다. 오죽하면 PD들이 최근 회사의 압력 속에서도 그녀를 지키기 위해 애썼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일국의 대통령 행사 진행이 특정인에게 그처럼 가혹한 보복의 핑계가 될 줄 모르고, 부탁해서 미안합니다. 일국의 대통령 행사 딱 한 번 진행한 것이 특정인에게 불명예스러운 ‘주홍글씨’로 악용될 줄 모르고, 부탁해서 미안합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전임 대통령 행사 진행한 일조차 ‘좌파’의 전력으로 덧칠될 줄 모르고, 부탁해서 미안합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이렇게 해명하는 것이 도리어 부담을 드리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이 듭니다. 하지만, 4일 MBC노조가 “김재철 MBC 사장이 김미화 씨에게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떠날 것을 직접 말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걸 보고, 더욱 면목이 없었습니다.
회사 차원에서 4월 초부터 김미화 씨에게 1주일 단위로 프로그램을 떠나도록 매주 압력을 가했다면 그건 정치적 이유입니다. 정치적 이유면 또 ‘친노’ 혹은 ‘이념’ 타령이 깔려 있을 겁니다. 제가 무슨 힘이 있어 그녀를 돕겠습니까. 다만, 노무현 대통령을 잘 알고 청와대와 방송 사이에 있던 일들을 제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제가 아는 일을 해명하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그녀는 친노가 아닙니다. 그녀는 노 대통령이나 참여정부와 별 인연이 없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전문 방송인으로서 인터넷언론사들과 청와대 부탁을 받고 행사를 진행했을 뿐입니다. 제발 그녀를 놓아주십시오. 터무니없는 오해와 속박에서 그녀를 놓아주십시오.
양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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