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은 왜 멸종했을까요? 여러 학설이 있지만, 더 강한 포식자가 나타나 멸종한 건 아닙니다.
최근 중앙종편과 조선종편, 동아종편에 이어 매경종편까지 모두 채널사용사업을 승인받음으로써, 올 하반기부터 종편이 출범할 예정입니다.
또 종편 경력사원 공개채용엔 수 천 명의 응시자가 몰렸다고 합니다. 스타급 지상파 PD들의 스카우트전도 방송가의 화제입니다. 이제 ‘조중동 방송’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은 걱정합니다. 그들이 만드는 방송이 어떨지에 대해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걱정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궁금해 할 건 없습니다. ‘조중동 방송’은 ‘조중동’이 만듭니다. ‘조중동’이 그동안 어찌 해 왔는지를 보면 압니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막연한 기억입니다. 애매모호한 느낌입니다.
사람들의 망각은 무섭습니다. 추상과 단편의 조각이 빚어낸 두루뭉수리. 민주정부의 발목을 잡았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늘 싸웠다, 왜곡보도가 많았다…. 아마 이 정도가 아닐까요. 그러나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결코 망각해선 안 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 역사의 오점 한 가운데 놓여있는 조중동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중동은 그 뿌리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자체가 현대사의 오욕입니다. 수치입니다. 그 방대한 역사를 한 번에 말하기엔 숨이 찹니다. 민주정부 10년의 세월, 특히 참여정부 5년만 갖고 돌아봐도 그들의 본질은 드러납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잘못 가운데 열 가지의 죄상만 나열해 보고자 합니다. 그 죄상 속에서, 앞으로 선보일 조중동 방송의 미래를 한번 예측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려 했습니다.
언론인 개인이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거나 성원할 순 있습니다. 또 언론사가 논설을 통해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사가 특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노골적으로 나서는 일은 우리가 국명(國名)을 아는 나라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그 목적을 위해, 논설이 아닌 보도에서 팔을 걷어붙이는 일은 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들은 그랬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그들은 노골적으로 한나라당 후보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미는 후보의 당선에 도움이 될 만한 보도라면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공정성이라곤 찾기 힘들었습니다. 언론계 내부에서조차 수치스러워 할 만한 일들이 버젓이 자행됐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한나라당 후보 ‘대통령 만들기’가 시작됐습니다. 중립성은 팽개쳤습니다. 심판이 링으로 뛰어 들어가, 자신이 혐오하는 선수에게 뭇매를 가하는 일에 비유될 만큼,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엔 염치조차 없었습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이 유착하는 것만도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하물며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을 스스로 창출해, 그 대가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이익을 키워나가겠다는 야심은 역사에 죄악이고 국민에게 해악입니다. 두 번 모두 실패했지만, 시도 자체가 죄악입니다. 실패한 죄악은 더 큰 죄악을 잉태합니다. 지금의 야합과 부산물은 그 죄악에서 잉태됐습니다.
2.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언론자유를 보장했습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언론자유는 건국 이래 가장 화려하게 만개했습니다. 비판에 어떤 성역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에 실패한 그들은, 언론의 자유를 흉기로 휘둘렀습니다.
이성적 비판이 아니라 증오로 가득 찬 능멸과 조롱과 멸시의 언어가 지면에서 활개를 쳤습니다. 보도의 언어라기보다는 시정잡배들의 만취 욕설에 가까운 표현이 버젓이 사용됐습니다. 군인들에게 대통령의 군 통수권을 거부하라고 선동하는 광고, 인신모욕에 가까운 정치공세도 아무 여과 없이 오르내렸습니다. 대통령은 평범한 시민이 보장받는 인권조차도 그들로부터는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대통령을 끌어내리자는 주장(“할 수만 있다면 대통령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국민의 고민은 대통령이 이렇게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에 대해 의도적으로 무력화 공세를 벌이는데도 탄핵 이외의 자위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을 기정사실화 합니다. 그런 주장은 결국 선동(“대통령은 이렇듯 스스로 아노미(anomie.무법상태)로 달려가고 있다.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그런 그를 주저앉혀야 한다”)으로 치닫습니다.
그들에게 대통령의 또 다른 이름은 ‘막가파’였습니다. “막가는 대통령은 국가의 불안이고 국민에겐 고통일 뿐” “세상에 다루기 힘든 것이 막가자는 사람이다. 예의염치를 버리고 나면 대화가 어려워진다.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이 그렇게 나가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등의 조롱은 그나마 절제된 표현이었습니다. 어떨 땐 “개구리”에서부터 “도자기 가게에 뛰어든 황소” 등 동물에 비유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한 외신(인터내셔널 해럴드트리뷴, IHT)은 서울발 기사에서 “한국은 이제 어떠한 제약도 없는,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국가들 가운데 하나로, 한국 신문의 사설들은 일상적으로 대통령을 ‘정신병자’로 칭한다”고 보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3. 대한민국 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증오는 정부로까지 이어졌습니다. 자국 정부 전체를 맹목적 증오와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겁니다. 사안마다 ‘약탈정부’ ‘파장정권’ ‘막나가는 정권’ ‘막가파 정권’ ‘도둑정치’ 등의 욕설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정부를 ‘건달’로 명명(“건달 정부, 무사고 기도하는 수밖에…. 건달정부와 함께 살아야 하는 국민도 참으로 피곤하다”)한 것도 건국 이래 처음일 겁니다.
급기야 정부 공직자들을 북한 간첩으로까지 몰고 갑니다. “공산화통일에 이바지하려는 오열(五列·적에 동조하는 세력) 또는 세작(細作·간첩)이 정부 고위직에 앉아 반(反)안보정책을 주무르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주장은 지금 돌아봐도 섬뜩하기만 합니다.
4. 법률에 의해 추진되는 정책을 저지하려 했습니다.
주요 정책추진을 정략적으로 가로막았습니다. 잘못이 있어 가하는 비판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공약으로 내세워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책을 저지한 경우도 있습니다. 여야가 합의해 추진하기로 한 정책을 저지한 경우도 있습니다. 과거 정부부터 추진해 오던 정책을 저지한 경우도 있습니다. 우방과의 원만한 합의에 의해 추진되는 정책도 저지하려 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이 과거 주장했던 정책마저 태도를 바꿔 저지한 경우도 비일비재했습니다. 행정수도 이전, 군 작전통제권 환수, 주한미군기지 이전 등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무조건 흔들고 보자는 정략, 그걸 언론이 한 것입니다. 그로 인한 손실은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갔습니다.
5. 국익이 걸린 외교관계에서도 등 뒤에서 돌을 던졌습니다.
한-미, 한-일, 한-중, 한-소 등 전통적 우방과의 외교관계는 한반도 평화는 물론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언론도 국익 우선의 관점을 견지해 줘야 합니다. 선진국 언론도 예외가 없습니다. 자국의 이익에 관련되는 사안은 자국 정부의 입장을 존중해 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대통령, 반대하는 정부에 대한 악의 때문에 이조차 흔들어 댔습니다. 독도문제로 한일 간의 갈등이 생겨도 “한국외교는 고립무원”이라며 되레 자국 정부를 조롱했습니다. 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해도 “대통령이 민감한 외교 현안에 대해 번번이 직접 나서 단정적 표현으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못 박는 것은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며 일본 정부 역성을 들었습니다.
한미관계에선 양국 대통령이 전화통화 안 한지가 몇 달째라며 없는 갈등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등신외교” “한국은 외딴 섬” “고립무원” “한국은 백척간두” “좌파 무능외교”라는 표현이 일상이었습니다.
외교기밀을 무분별하게 악용해 보도하거나, 국가 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줄다리기조차 부풀려 자국 여론을 악화시켜, 정부 입장을 궁지로 몰았습니다. 외교적 갈등을 고의로 부추겼고, 첨예한 사안에 대해 상대국 입장을 편들어 협상을 어렵게도 했습니다. 그들의 국적을 의심케 한 일이 횡행했습니다.
6. 남북 대결구도를 부추겨 평화를 위협했습니다.
민주정부 10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일관된 대북포용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에 반대하는 그들은 대화와 타협, 평화와 공존의 정책을 격렬하게 흔들었습니다. 남북 간 대결구도를 부추겼고, 한반도의 평화적 상황을 위협했습니다.
남북 간 평화정책을 추구하던 대통령에게 그들이 뱉은 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의 망동(妄動)이 드디어 국기(國基)를 위협하는 수준”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상 대통령의 책무를 몰각(沒覺)”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북한 대변인 같은 말을 하고 있으니 정말 곤혹” “탄핵 사유까지도 될 수 있는 엄중한 문제” “대통령의 무차별 공격을 유일하게 비켜갈 수 있었던 행운아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뿐이었다. 국민들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다가오는 듯하다”
이를 위해 군 안보기밀은 물론 군 내부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항명을 선동하는 일조차 서슴지 않았습니다. “벌벌 떨면서 정신을 잃고 있다. 나라는 철부지들의 권력 놀이터가 되어 버렸다” “항명의 각오로 NLL을 지키라는 것이다. 국법 질서상 도저히 못하겠다면 차라리 옷을 벗는 편이 낫다고 본다”
7. 이념적 갈등을 부추겨 사회를 양분시키려 했습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해결하고 가야 할 일, 청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 그리고 응당 겪어야 할 과정을 모두 이념적 문제로 몰아갔습니다. 민주정부의 그런 역사적인 노력을 오히려 ‘편가르기’로 매도했습니다.
매사를 모두 좌와 우의 대결문제로 구도화 시켰습니다. 수구세력을 선동하고, 과거사의 피해자들은 좌파로 낙인찍어 사회적 갈등을 첨예화 하고 증폭시켰습니다. 대립과 갈등, 증오와 분열의 한 가운데 그들이 서 있었습니다.
8. 경제파탄 등의 선동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국민의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참여정부는 OECD 평균을 훨씬 상회하는 경제운용 성적표를 냈습니다. 참여정부 5년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4.4%였습니다. 선진국(IMF기준 29개국 평균 2.6%), OECD(2.7%), 유로지역(1.7%)을 크게 넘어서도 경제는 늘 “파탄”이었습니다. 수출이 매해 두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하며 3000억 달러를 돌파하고, 750억 달러가 넘는 흑자를 기록해도, 국민소득 2만 달러와 코스피지수 2000포인트를 향해 가도 경제는 “파탄”이었습니다. 그들은 내내 ‘경제 파탄’ ‘민생을 도탄에 빠뜨렸다’ ‘경제를 살려내야 한다’며 국민들에게 경제파탄 착시를 선동했습니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도 있지만, 그들은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심리전을 전개하는 작전세력과도 같이 민주정부 경제를 흔들었습니다. 그런 작전은 이명박정부 집권에 1등 공신이었습니다.
9.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서민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왜곡된 경제논리를 앞세워 부자들의 이익, 수구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대변하고 수호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자유경제’ ‘시장경제’ ‘시장경쟁원리’는 눈속임 포장이었습니다. 서민, 약자, 빈자를 외면하는 것이었습니다. 철저히 부자, 강자, 기득권 계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더 정확히는 사주와 언론사 이익을 지키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상위 2%를 대상으로 한 종부세를 ‘세금폭탄’이라고 날조했습니다. GDP 대비 8%대로 OECD 평균의 1/3 수준이고,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인 복지지출 확충조차 내내 “좌파 분배위주 정책”이라고 매도했습니다.
그 반작용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절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수익 상위 1%에 드는 기업들에게 전체 법인세 감세 혜택의 80%가 돌아갔습니다. 소득 상위 10% 계층에 소득세 감세액의 78%가 돌아갔습니다.
10.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그들의 탐욕과 증오와 복수심은, 자신들이 밀었던 정권의 탄생 이후 더 노골적이었습니다. 가혹한 정치보복의 첨병을 그들이 자임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언론이 아니었습니다. 벼랑 끝으로, 벼랑 끝으로 전직 대통령을 내몰았습니다. 민주정부를 향해 휘둘렀던 흉기는 종국에 비수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상 초유의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범행수법은 되풀이 됩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조중동 종편이 궁금하다’ 묻거든, “고개를 들어 그들의 죄상을 돌아보라” 말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죄상은 끝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10가지 죄상은 생생히 기억돼야 합니다. 그들은 지난 기간 내내 집요했습니다. 한나라당보다 집요했습니다. 매 앞에 장사 없고, 가랑비에 옷 젖는 법입니다.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조중동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한 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입니다. 특히 소수정권일 수밖에 없는 민주정부일수록 그렇습니다.
국민들이 선택해 정권을 맡겼으니 그 다음부턴 알아서 잘 해보라는 것만으론 안 된다는 것이, 민주정부 경험에서 뼈아프게 느낀,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는 고백입니다. 국민들의 참여와 깨어있는 여론만이 민주정부의 힘입니다. 조중동 종편을 보며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