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찾아서!!!

陰歷 칠월(七月) 칠석(七夕)

장백산-1 2011. 8. 12. 18:16

음 칠월 칠석은 사랑을 나누는 날

음(陰) 칠월(七月) 칠석(七夕)은 사랑을 나누는 날

 (먼저 한울소리 28 번에 올렸던 글을 보강하여 다시 보낸다.)

 

진짜 七月 七夕은 음력이고 양력으로는 엇그제 8월 6 일

우리 민속 칠월 칠석이 생길 무렵인 대략 5 천년 전에는 해의 변화를 일반 백성이 쉽게 알기 힘든  태양력인 양력 보다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 음력을 썼으리라 본다.

따라서 칠월 칠석도 태양력인 양력보다 음력으로 보아야 한다.

 

 최근 중국 정부가 한국 전통 민요 ‘아리랑’을 자국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유네스코에 등재하게 하고 있으니 이는 또 하나의 동북공정인데 이런 때에 우리민속 사랑의 날인 칠월 칠석도 중국 것으로 되어있으니 바로 잡지 않을 수 없다.

 

벽화그림 : 평양 덕흥리 고분(광개토대왕 8년)의 직녀 견우도. ‘牽牛之象’(견우지상), ‘織女之象’(직녀지상)-에서 현재는 직녀(織女) 글자는 떨어져나간 듯하나 나머지는 뚜렷하다.

 

다음은 공정을 기하기 위해 네이버에 올려 진 칠월 칠석에 관한 글이다.

 

[정의]음력 7월 7일로 세시 명절의 하나. 헤어져 있던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만나는 날이라고도 한다.

 

[유래]칠석(七夕)의 유래는 중국의 『제해기(薺諧記)』에 처음 나타난다. 주(周)나라에서 한대(漢代)에 걸쳐 우리나라에 유입되기까지 윤색을 거듭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설화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옥황상제가 다스리는 하늘나라 궁전의 은하수 건너에 부지런한 목동인 견우가 살고 있었다. 옥황상제는 견우가 부지런하고 착하여 손녀인 직녀와 결혼시켰다. 그런데 결혼한 견우와 직녀는 너무 사이가 좋아 견우는 농사일을 게을리 하고 직녀는 베짜는 일을 게을리 했다. 그러자 천계(天界)의 현상이 혼란에 빠져 사람들은 천재(天災)와 기근(饑饉)으로 고통받게 되었다. 이것을 본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두 사람을 은하수의 양쪽에 각각 떨어져 살게 하였다.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애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게 된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석날에 이들이 만나도록 하기 위해서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니 이것이 오작교(烏鵲橋)이다.

 

견우와 직녀는 칠석날이 되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일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져야 한다. 칠석 다음날 까마귀와 까치의 머리를 보면 모두 벗겨져 있는데 그것은 오작교를 놓기 위해 머리에 돌을 이고 다녔기 때문이라 한다. 칠석날에는 비가 내리는데 하루 전에 내리는 비는 만나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이고, 이튿날 내리는 비는 헤어지면서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또는 낮에 오는 비는 기쁨의 눈물이고 밤에 오는 비는 슬픔의 눈물이라고 한다.

 

다른 사례

우리나라도 일찍이 선녀와 나뭇군 이야기도 있고 또 삼국시대에 이 설화와 풍속이 있었던 듯하다.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에 있는 덕흥리 고분 벽화에 견우와 직녀 설화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림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고려 공민왕이 몽고의 왕후와 더불어 칠석날 궁궐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에 제사하고 백관들에게 녹을 주었다고 하였고, 조선조에 와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절일제(節日製)의 과거를 실시한 기록이 있다. 궁중 밖의 민간에서도 칠석의 풍속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모습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의 문헌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칠석날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풍속이 행해졌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옛날 서당에서는 학동들에게 견우직녀를 시제(詩題)로 시를 짓게 하였다. 또 옷과 책을 햇볕에 말리는 폭의(曝衣)와 폭서(曝書) 풍속이 있었다. 여름 장마철에 장롱속의 옷가지와 책장의 책에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끼게 되므로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한편 여인들이 직녀성에 바느질 솜씨를 비는 걸교(乞巧) 풍속이 있었는데, 걸교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한 풍속이다. 칠석날 새벽에 부녀자들이 참외, 오이 등의 과일을 상에 올려놓고 절을 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빈다. 저녁에 상 위로 거미줄이 쳐 있으면 하늘에 있는 직녀가 소원을 들어준 것이라 여기고 기뻐한다.

 

 다른 지방에서는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그 위에 재를 담은 쟁반을 올려 놓은 뒤, 별에게 바느질 솜씨가 좋게 해달라고 빌고 다음날 아침 재 위에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있어 바느질을 잘하게 된다고 믿었다.별과 조상과 자연과 부처에게 소원을 비는 풍속도 지역과 가정에 따라서 행해졌다. 지역에 따라서 칠석제, 용왕제, 밭제 같은 제사를 지내고 사당에 천신(薦新)하며 밀국수, 밀전병, 호박도래전 등 시절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칠석음식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먹고 칠석놀이라 하여 술과 안주를 갖추어 가무로 밤이 깊도록 놀기도 한다.

 

[지역사례]전북 고창과 태인, 경북 봉화·예천·안동에서는 외와 수박을 차려놓고 조상에 제사를 지낸다. 전북 익산과 군산에서는 칠석날 시암제(샘제)를 지냈다. 마을에서 우물을 깨끗이 치우고 정결하게 한 다음 각 가정마다 시루떡을 쪄서 우물 옆에 두었다. 청년들은 솔불놀이라 하여 달집짓기와 비슷하게 이웃마을과 놀이를 벌여 즐기고 진 마을은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하며, 이긴 편의 마을을 함부로 방문할 수도 없었다. 진안에서는 농현이라 하여 김매기를 끝내고 하루를 쉰다.경북 안동에서는 부인들이 밤에 까마귀밥이라 하여 담 위에 올려놓고 자손의 명(命)과 복(福)을 빌고 집안일이 잘 되기를 빌기도 했다. 상주에서는 칠성단에 참기름으로 불을 켜서 자손들의 수명장수를 빌었다. 영일에서는 이날 바닷물을 약물이라며 멱을 감는다.

 

강원도 양양에서는 으레 비가 오는 날로 되어 있어서 비가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를 살펴 농사를 점쳤다. 만약 비가 오지 않으면 그해 곡물에 해가 되는 것으로 알고, 비가 내리면 견우직녀가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알고 농사에 좋을 것이라 여겼다.한편 칠석에는 아침에 일찍 논에 나가지 않는 풍속이 있었다. 이날 신이 들에 내려와서 들마다 곡식의 생산량을 정해 주기 때문에 논밭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서 근신한다.

 

사람이 바깥에 나와서 돌아다니면 신이 수확량을 감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기도 의왕, 전북 전주, 광주광역시 등 지역에 따라 칠석날은 ‘곡식을 마련하는 날’이라고 하여 남자들은 들에 나가도 되지만, 여자들은 일찍 나가지 않고 오후가 되어서야 들에 나간다. 경북 고령에서는 목동들이 잡귀를 막는다고 복숭아 회초리로 소의 꼬리를 치며 몰고 온다.

 

이 밖에 춘향과 이도령이 만난 다리도 광한루의 오작교로 오작교는 우리 민족의 사랑의 다리이다.

이상과 같이 칠월 칠석의 유래에 관한 것이 참으로 많고 지방마다 른데 주로 남녀의 사랑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날은 진정 어디서부터 왔을까?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 ...열로 본 ‘일곱’의 의미

하느님은 새 나라를 세우려는 환숫(桓雄)께 그 새나라 백성이, 아니 전 세계인에 써야할 하나 둘 셋 ...열 이라는 교훈을 내리신다.

여기서 하나 둘 셋 ...열 의 뜻은

 

하나 : 누리에 내리는 하늘의 빛이

둘 : 물질인 몸(에너지)을 둘러싸서

셋 : 사내를 세우고

넷 : 계집을 세워서

다섯 : 땅 위에서 교합하게 했으니

여섯 : 번성 하여라

 

일곱 : 사내는 계집과 자식의 집을 일구고

여덟 : 계집은 자식을 길러서

아홉 : 씨족의 울타리가 완성되면

열 : 열고 나가 다른 씨족과 다문화 가정을 이루어라.

 

여기서 ,하나 둘은 천지간 섹스이며,셋 넷 다섯 여섯은 그 결과이고, 일곱은 사내가 일을 해서 처자식을 돌볼 의무이며, 여덟은 계집이 자식을 낳고 옷을 짤 의무이고, 아홉은 씨족의 울타리를 완성 시키는 것이며, 열(十)은 그 씨족의 울타리를 열고 나가 다른 종족과 혼혈하는 것으로 아홉 열이 바로 홍익인간이다.

 

하나는 하늘의 정기인 영혼이 물질인 몸을 둘러싸서 사내와 계집을 만들었나니 땅 위에서 번성하란 말로 자연섭리인 신의 명령이고 일곱 여덟 아홉 열은 인간의 의무인데 여기서 일곱은 신의 명령대로 사내는 소 처럼  일하여 처자식의 집부터 일구란 말이며 계집은 여덟, 열매 처럼 자식을 낳아 기르고 사내와 아이들 옷감을 짜 입히란 말이다.

 

 따라서 아홉으로 완성된 씨족의 울타리는 안전하고 좋기는 하나 근친상간이 되므로 다른 씨족의 여인을 뺐아오는 등 싸움이 되니 이 울타리를 강하게 완성한 다음 열고 다른 부족과 동화하면 어떤 고민이나 국경 등 피의 전쟁도 없이 부자 되어 잘 살다가 때가 되면, 누리에서 온 몸은 다시 누리로 돌려보내고, 하늘에서 온 영혼은 다시 하늘로 돌아가 하느님과 같이 영생 한다는 [진본 천부경] 하는님 말씀으로 환숫 무리는 이 말 씀을 아침저녁으로 외우고 자식을 낳으면 이 말부터 가르치다가 이 말이 나온 후 천년 후에나 숫자가 된다는 말이 은허갑골문 등에 나타난다.

 

 다음 환웅이 서자(庶子)라 함은 당시 결혼 풍습이 생기기 전 이니 본처나 첩의 아들이 아니고 서자부(庶子部)의 사내 들이다. 서자부란 아기를 낳아 그대로 집에 있으면 커서 자매와 근친상간이 되므로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내아이는 따로 사내 마을(庶子部)로 보내 군사훈련 이나 씨놀음(씨름) 연습을 시키는 제도로 이는 지금 중국 광동성 천산산맥 속의 로고호 모우스 부족도 같다.

 

 따라서 서자부에 있던 사내들과 집에 머물러 있던 딸 들이 사랑을 나누려면 씨놀음을 통하지 않은 개인적 사랑은 그 종족에서 추방되는 벌이 있었을 것이고 이는 바로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엄한 규율이 있었을 것이고 이는 큰 강인 은하수와 같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자 그 웅족과 곰족중에 씨놀음에 진 자와, 씨름에게 이긴자에게 선택되지 않은 처녀를 위하여 개인적 사랑을 자유롭게 하는 날도 따로 있었을 것이고 그 날은 바로 농사일을 다 끝내고 한가한 칠월 달 칠일 저녁일 것이다.

 

이 말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오작교

烏 - 까마귀, 검다 등 웅녀 곰족의 대명사

鵲 - 까치, 원래 환웅족은 해를 상징하는 힌 색 이었으나 검은 곰족에게 동화된 환족

橋 - 다리.

烏鵲橋 - 일년에 7월 7석 날만 만나니 은하수에 놓은것 같은 다리

 

* 환단고기 >태백일사 삼한관경 본기 제4의 마한세가 상을 한 번 보자

...이때부터 소도가 세워지는 곳마다 산상웅상(山像雄常)1)을 보게 되었다. 산 정상에는 사방에서 온 백성들이 동그랗게 둘러 부락을 이루었으니 네 집이 한 우물을 썼으며, 이십분의 일의 세를 내었다. 해마다 풍년이요, 언덕과 산에는 노적가리가 쌓이니 백성들은 즐거워 ‘태백환무’2)라는 노래를 지어 전했다... 

 

(...自時蘇途之立到處可見山像雄常山頂皆有四來之民環聚墟落四家同井二十稅一時和年豊露積邱山萬姓歡康之作太白環舞之歌以傳...)

 

1) 산상웅상: <환단고기>를 번역한 임승국 박사나 안호상 박사 같은 대석학들도 모르는 소리라는 것이나 山은 사내로 산상웅상은 사내의 숫컷 상.

2) 태백환무(太白環舞): 태백은 태초부터 '흰 것, 해, 환한 것'을 말하므로 환님(桓因=한한님=하느님)을 말하고, 환무는 '강강수월래' 같은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춤.

 

 그러니까 강강 수월래 같은 태백환무 춤은 이순신때가 아닌, 그때무터  추었다는 이야기인데 그 춤을 추울 때는 꼭 천산산맥속 로고호의 모우스 부족이 사랑을 나눌때 추는 춤 처럼 춘다.

어깨와 어깨를 잡고 돌며 환숫과 곰네를 상징하는 사람이 그 어깨를 밟고 지나가게 한다.

 이는 환숫과 곰네가 은하수 같이 어렵고 먼 곳에서 서로 만나 화합 하는것을 상징하는 것이며 다시 다음해 칠월 칠석을 기다려야 하므로 이는 꼭 은하수 같은 큰 강을 건느는것과 같았으리라.

따라서 웅족과 곰족 들은 그 일년에 한 번 밖에 만나지 못하는 처녀 총각을 위하여 어깨를 짜도 도는 사랑의 춤을 춘것이 칠월 칠석의 근원이 된것으로 본다.  

이 날이 사랑의 날 이라는 것은 七夕의 夕 자만 봐도 저녁에 사랑을 나눈다는 말이 성립된다. 즉 그 사라은 대낮에 하는것이 아니라 저녁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태백환무 이야기는 환웅, 곰네 때 이야기고 위 중국 『제해기(薺諧記) 등 이야기를 몇 천년 후 이야기니 이것이 전래 윤색 변질 되어 중국, 일본으로 퍼진 것으로 보는데 그 이유는 ‘일곱’이란 말은 하느님이 내리신 신지녹도문[진본 천부경] 하나 둘 셋 ...열에 있고 이 七 이 사내 사랑이란 말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많이 나온다.

 따라서 한족의 사랑을 나누는 날은 음 7.7 일로 보니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처녀 총각이라도 그날 만은 사랑을 하여 부족한 한민족 인구좀 늘리시라 ㅎㅎ

 

 아래 사진은 2006년 7 원 31일 남산.음 칠월 칠석.직녀의 베 짜기 (주체 : 서노 차배옥덕. 사진: 우리)

 

은하수 에서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 놓기.

 

* 오작교에서 만난 견우 직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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