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한 만큼만 거둬들이는 인생 - 서암 스님 -
중생의 분별 망상 번뇌는 허공에 구름이 일듯이 무한하게 일어납니다. 중생에게서 일어나는 팔만사천
번뇌(분별 망상)이라는 말은 팔만사천이란 숫자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끝이 없이 많고 많은
번뇌가 무한하게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중생들에게서 일어나는 팔만사천가지 번뇌가 있으니, 그 많은 번뇌를 모두 없애 버리기 위해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그렇게 많은 팔만사천가지의 법문을 설한 것이지, 석가모니 부처님은 한 법도
설하신 적이 없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으신 법(法)이 '무유정법(無有定法)'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입니다.
'무유정법(無有定法)' 이란 꼭 '이것이다' 라고 정해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알고 보면 전부가 다 '하나'로 통합니다. 팔만대장경을 모르고 보면 각 경전마다 말이 다르지만
알고 보면 팔만대장경이 전부 다 똑같은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온갖 번뇌를 소멸하는 석가모니 부처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근본(根本)은 모든 것은
누가 내게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짓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지은 번뇌를 없애려면 자기
스스로 노력해서 없애야 하는 것이지 어느 부처나 어느 신이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래야 평등(平等)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 배급을 주듯이, 주는 사람이 마음대로 번뇌를
없애주거나 보내준다면 얼마나 불평등하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되겠습니까?
내가 무엇을 한 주먹 쥐고 있으면, 누군가에게 받은 것이 있으니까 한 주먹 생긴 것입니다. 또 내가
받은 것에 내가 보태서 누군가에게 주면 저쪽에서도 또 다시 나에게 무엇인가 보태줍니다. 산다는
것이 다 이런 상호반응작용으로 서로서로 의지하는 것이지, 결코 어느 신이 만들어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상의상존(相依相存)하는 인연법(因緣法)이고 또한 윤회법(輪廻法) 입니다.
어느 신이 '너는 미우니까 지옥에 가거라' 해서 지옥으로 가고 '너는 예쁘니까 천당으로 가거라' 해서
천당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출가하기 전에는 머리도 기르고 구두도 신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중이 되어서 수행(修行)을 하다보니까 꿈을 꾸어도 머리 깎은 중의 모습이지, 머리 기르고
구두 신은 모습은 꿈에도 보이지 않아요. 그러니까 어느 창조주나 어떤 조물주가 내 모습을 그렇게
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출가하고 나서 보니 나 스스로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술을 좋아해서 술 마시는 것이 습관이 되면 어떤가요? 그런 사람은 돈이 없으면 논밭을 팔아서라도
술을 사 마시겠지만, 본래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술이 한강이 되어 흘러가도 그까짓 것은
본체만체 합니다. 그 사람에게는 술의 세계가 없는 것이지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의 세계를
지어서 술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전부 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이것이
윤회법(輪廻法)이고 인과법(因果法)입니다.
콩을 심어야 콩이 나지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나는 법은 없습니다. 권력있는 사람이 심으나, 다리 밑에
사는 거지가 심으나, 남자가 심으나, 여자가 심으나, 잘난이가 심으나, 못난이가 심으나, 어느 누가
심든지 콩을 심으면 그 자리에 콩이 납니다. 이 이치는 아무리 속이려 해도 속일 수 없는 이치입니다.
그런데도 중생들은 모두 서로가 서로를 속이며 살아갑니다. 내가 불행해지면 부모를 원망하고 국가를
원망하고 친구를 원망합니다. 자신의 불행에 대해 자신이 책임지려고 하지 않고 타인을 원망합니다.
내 불행(不幸)은 내가 스스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내가 반성하고 정진하고 노력해서 내가 불행해진
원인(原因)을 찾아내 개선해야 하는데 남을 원망하게 되니까 점점 더 불행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습니다.
불가의 가르침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이 어두워집니다. 불가의 가르침을 알면 길에 수 많은 재물이
흩어져 있어도 그 재물을 줍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 길에
떨어져있는 그 재물이 어떻게 나에게 이익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절대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만 거둬들이는 것이 불법(佛法)이자, 인과법(因果法)입니다.
출처: 가장 행복한 공부 원문보기 글쓴이: 청정월(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