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김정을 느낄지는 내개 결정한디
힘든 상황에 처했다고 해서 그 상황이 꼭 나쁜 느낌인 것은 아니다. 쉬운 비유를 들어보자. 밥과 김치를 먹고 있다. 그건 나쁜 느낌일까? 좋은 느낌일까? 사실 김치를 반찬으로 밥을 먹고 있다는 그 상황 속에는 좋거나 나쁜 그 무엇도 없다. 그저 중립일 뿐이다. 그러나 상황 따라 그것은 괴로운 느낌을 가져오기도 하고, 즐거운 느낌을 가져오기도 한다. 몇일을 굶은 사람은 김치와 밥만으로도 도 꿀맛 같다고 느낄 수 있다. 반면, 갑자기 사업 부도로 몰락한 가정에서는 그 상황을 비참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덥다는 상황은 중립이다. 그것 자체에는 좋거나 나쁜 느낌이 있지 않다. 한여름에 땀 흘려 일하는 사람에게 더위는 싫고 나쁘며 찝찝한 느낌일 수도 있지만, 사우나에 있는 사람은 그보다 더한 더위 속에서도 ‘시원~하다’라고 말한다. 살을 빼려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 많은 땀은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 즉 덥다는 그 상황이 느낌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덥다는 상황에 대한 나의 해석, 판단, 생각이 그것에 대한 느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떤 상황 자체가 그 상황에 대한 느낌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느낄 것이냐에 대한 결정권은 언제나 내게 있다. 이 말은 곧 내 삶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이냐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설악산에 단풍을 구경하러 갔었다. 어찌나 차가 많이 막히는지 입구에서부터 도통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차가 막히는 것은 좀 불편했지만, 단풍은 참 아름다웠다. 꽉 막힌 도로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그것보다는 놀라운 설악의 단풍을 감상하는 것이 더없는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꽉 막힌 도로와 아름다운 단풍처럼 우리 주변에는 항상 나쁜 일과 좋은 일이 동시에 있다. 거기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느 쪽에 마음을 기울여 어떤 감정을 선택할 것인지는 언제나 나의 선택일 뿐이다.
뒷산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고 가을의 절정으로 치닫고 있더라도 컴퓨터 모니터 속에서 일과 지지고 볶으면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 그런 바쁜 일과 중에서도 잠깐이나마 틈나는 대로 단풍을 바라보면서 감탄을 할 줄 아는 사람도 있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