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 이명박정권은 물론 기성세대도 정신 차려라. |
|
글쓴이 샘물가 |
등록일 2008.06.11 07:19 |
|
김지하 시인, 이명박정권은 물론 기성세대도 정신 차려라. |
입력: 2008년 06월 10일 18:21:43 |
|
현재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행동이 갖는 의미를 알고 있다. 2002년 월드컵 붉은악마 응원 때부터 새로운 대안문화의 가능성이 현상적으로 나타나기는 했으나 아직 준비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인터넷을 통한 소통, 의견취합, 방향결정 등 여러 면에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이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동·서양의 어떤 학문을 공부한 학구적 집단도 그들의 지혜와 대결하기 힘들다. 그들의 메시지 자체는 아주 높은 도덕성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알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단순히 쇠고기 문제만이 아니라 대운하, 교육개혁 등 연쇄적으로 폭발음을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한 비판의식을 잔뜩 압축하고 있다.
요즘 전세계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다. 예전처럼 적당하게 유가를 내리고 올리고 하는 식으로는 화물연대나 자동차 운수업자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다. 원자력이나 식물에너지 같은 대체에너지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이야기가 과거에 비해 훨씬 복잡해졌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풀어갈 주체로서 이명박 정권이 가진 도덕성이나 능력은 부족해 보인다. 보수적인 데다가 철학적으로 준비가 안돼 있고, 학문적으로도 모자란 어중이 떠중이로는 해결이 안된다. 독선적 전문가들도 이 문제에 대처하지 못한다.
이명박 정권은 젊은 아이들이 뭘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네티즌과 블로거들의 판단은 전문가 이상이다. 완전히 열린 구조에서 쌍방향의 토론이 이뤄지는 이 새로운 체질을 보수세력은 감당하지 못한다. 어학에도 능해서 영어로 떠도는 정보조차 금방 해석하고 퍼뜨린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당하겠는가. 나는 싸움꾼의 한 사람으로서 싸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명박 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기성세대 전체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포털을 언론 관련법으로 규제하겠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대응각도가 한참 잘못된 일이다. 포털을 규제하면 반발이 엄청날 것이고 서버를 외국으로 옮겨버릴 수도 있다. 그러면 국내의 포털에 모여있던 자금과 동력까지 모두 날아가 버린다. 적절한 대응이란 점에서 정부뿐 아니라 여야 국회의원들도 준비가 돼 있지 않다.
대폭 인사를 통해 상황을 돌파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개각과 인적 쇄신은 쇠고기 파동에 압축된 여러 문제점들을 풀어가고 대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잠시 해결하려는 생각 정도로는 안된다. 현재 지도자와 정치인들의 문제점은 새 세대와 대화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자칭 보수세력이 촛불시위에 나선 시민들에게 사탄, 빨갱이라고 욕하는데 이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야 정치인들은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어떤 복잡한 과정을 거치든 간에 새롭게 드러난 블로거, 젊은 논객들과 이야기를 풀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전혀 없었던 경험이다. 완전히 마음을 열고 문제의 근본을 따져봐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간에 대화를 트고 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현재 정부에서 말하는 내용은 대중의 움직임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 같은 대화의 장이 마련될 때 한국문화의 새로운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 나는 이번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앞으로의 문화운동 방향을 ‘생명을 섬기는 문화혁신’으로 규정하고 싶다. 한국문화 전체가 ‘생명’과 ‘평화’라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문화적 폭발에 대해 참가자들은 잠재된 문제의식을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뭘 원하는지,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인류의 민주주의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아는 것 같다.
그래서 정부와 기성세대는 건설적 방향으로 나가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치는 국회에서 하는 것이라는 등, 아이들도 다 아는 이야기만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젊은 논객들과 여러 날에 걸쳐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내용을 추려서 정책과 제도에 반영해야 한다. 현재의 민주주의 실험은 대의민주주의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사이버민주주의, 서구제도를 넘어선 우리식 ‘화백’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김지하 시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