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가 쌓은 외환보유액이라 탕진하는 건가
- 강만수 경제팀에 맞추려면 외환 2조 달러도 모자란다
(데일리서프 / 장경순 / 2008-09-05)
외환위기가 다시 오니 마니 말들이 많지만, 한가지 확실하게 1997년과 흡사한 것이 있다.
요즘 들어 은행 딜링룸 스케치 기사가 여기저기 뜨고 있다는 점이다.
최첨단 금융 기법을 다루는 국제 금융거래 센터라고 해서 내부 공간이 특별히 은행 내 여타 부서와 다를 건 별로 없다. 오늘 아침까지 딜링룸이었지만 책상 하나 안 옮기고 오후엔 인사부로 변모할 수도 있다.
금융업의 속성상 대부분의 일이 삽자루 하나 필요 없이 펜과 컴퓨터 단말기, 전화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사진기자들이 다급한 현장을 취재하겠다고 앞다퉈 시중은행 딜링 룸으로 달려갔지만 사실 딜러들의 근무형태가 카메라에 담길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 그나마 당시 여성 딜러 한 명이 준수한 용모와 함께 꽤나 유명했기 때문에 사진 기자들이 겨우 헛걸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원래 딜링룸이란 데는 같은 은행원이라 해도 출입이 차단되는 곳이다. 심심치 않게 "딜링룸 안에 들어가 보니 어떻더라"라는 식의 기사가 자주 나오는 것은 금융을 잘한다는 국가에서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또 한 가지 1997년과 흡사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외환 당국이 외환시장에 자주 출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연 투기꾼 농간으로 환율이 올라가나
물론,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을 공식 발표한 적이 없다. 외환시장 개입은 정부가 공식 확인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강력하게 개입을 부인할 수도 없는 일이다.
정상적인 딜러들이라면 전혀 생각도 할 수 없는 매수 매도 주문이 대량으로 나온다면 그건 정부가 외환시장에 정책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개미군단이나 불특정 다수가 존재하는 시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시장경제체제라 하나 간혹 시장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니 이를 막기 위해서 정부는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외환시장이 극소수 투기 세력의 농간에 휘둘리는 경우라면 정부가 보유한 '2,000억 대군'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해 마땅하다.
그럼 지금 달러 값이 치솟는 게 극소수 투기 세력의 농간 때문일까.
시장개입을 하고 있는 정부 자체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제일 큰 이유는 국제 금융 시장이 경색돼서 외국인 자금이 이탈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런 이유라면, 2,000억 달러 아니라 그 열배 백배 이상의 외환보유액이 있다 한들 정부가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허공에 귀한 국민의 재산을 날리는 것에 불과하다.
정부는 원화 팔고 달러 살 일만 골라 하고 있다
11년 전 외환위기를 겪고도 아직 환율에 대해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환율 또한 하나의 '가격(price)'이란 것을 자꾸 망각하는 듯하다. 사람이 공기의 소중함을 못 느끼듯, 너무나 당연한 명제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한국의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달러의 가격이다. 당연히 환율은 달러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
지금 환율에 영향을 줄 요인은 국제 금융시장의 경색뿐만이 아니다.
환율 결정에 최대 요인인 경상수지의 적자 전환,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환율 급등요인이다. 외환위기 이후 수년간 몇백억 달러씩 흑자를 누렸는데 그게 사라졌다.
이제 달러를 사겠다는 수요가 공급을 압도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환율 상승을 억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푸는 것이야말로 투기꾼들에게 자선사업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떻게 모은 외환보유액인가.
신혼부부의 금반지까지 담아가면서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모아온 것이다. 그 소중한 돈을 왜 '개죽음'으로 이끌고 가는가.
물론, 물가 안정을 위한 정부의 고충마저 이해를 못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정부가 진심으로 환율 안정을 바란다면 당분간은 더욱 철저하게 정부 정책부터 환율 급등을 초래하는 일이 없도록 손질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3공화국 회귀'라는 지적을 많이 받는다.
대기업들 북돋아서 생산 많이 하고 수출 늘리면서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이다. 부실 토목사업에 대한 정리나 구조조정 같은 '지난 10년간의 레퍼토리'는 다소 뒷전이다.
이런 정책대로 하면 한국은 다시 만성 무역적자 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수입 유발형 수출드라이브 경제로 복귀하는 것이다. 1996년 이전 경제를 책임진 바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같은 사람에겐 만성 무역적자 또한 그다지 대단한 문제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피땀 흘려 쌓은 2,400억 달러를 '개죽음'으로 내몰지 말라
외국인의 눈에 한국 경제는 이렇게 보일 수밖에 없으니 날이 갈수록 원화 팔고 달러 사겠다는 사람이 늘어날 뿐이다.
8.15를 맞아 줄줄이 사면된 재벌 총수들 문제도 외환시장과 전혀 별개의 일일 수가 없다. 이런 것들은 국제 투자 시장의 규율을 얼마나 준수할 의지가 있느냐는 문제다.
2000년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를 현대자동차의 지원으로 타개하긴 했지만 이로 인해 달러 급상승세가 촉발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만큼 한국 경제는 이제 국제 시장에 광범위하게 통합돼 있다. 그게 바로 강만수 장관이 차관하던 시절과는 너무나 다른 점이다.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10년의 좌파'들이 허리띠 졸라매는 국민들과 함께 쌓아놓은 2,400억 달러의 외환보유액이다. (연초만 해도 2,600억 달러였다.)
쌓아놓은 사람들이 못마땅하다고 외환보유액까지 탕진하겠다는 건 아닐 것으로 믿는다.
※ 출처 -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88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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