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그네정권의 방송통신 장악음모

선글라스 끼고 김인규 엄호한 백운기,---KBS판 '사장님 힘 내세요'

장백산-1 2010. 8. 27. 00:32

선글라스 끼고 김인규 엄호… KBS판 ‘사장님 힘내세요’
번호 195288 글쓴이 정연주 조회 3379 등록일 2010-8-26 14:23 누리863 톡톡0


선글라스 끼고 김인규 엄호… KBS판 ‘사장님 힘내세요’
[정연주의 증언 39] 특급 경호원이 된 백운기 비서실장 이야기

(오마이뉴스 / 정연주 / 2010-08-26)


▲ 김인규 씨의 첫 출근 때 선글라스와 검은 양복차림으로 맹활약하는 백운기 기자(오른쪽 두 번째)의 모습. 그는 다음 날, 사장 비서실장이 되었다. 김인규 씨의 오른팔을 꼭 붙잡고 있는 여인은… 다음 호에 나옵니다. ⓒ 미디어오늘 이치열

 

 

지난해 11월 24일,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방송전략실장을 지냈던 ‘특보 출신’ 김인규 씨가 KBS 사장이 되어 첫 출근을 했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김인규 씨의 출근 때 ‘특보 사장 반대’를 외치는 KBS 일부 사원들과의 몸싸움 과정을 전하면서 한 장의 사진을 실었다.


백운기 “누구보다 KBS 사랑한 김인규 선배”

이 사진의 하이라이트는 선글라스를 낀 채 짙은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전문 경호요원처럼 김인규 씨 앞에서 길을 트는 백운기 기자의 모습과 김인규 씨의 오른팔을 꼭 낀 채 그를 보호하고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다.

 

이날 백운기 기자의 활약상에 대해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KBS 구 노조의 행태에 실망하여 2008년 8월에 결성된 젊은 기자, 피디 중심의 사원 단체. 훗날 KBS 새 노조의 초석이 됨)은 이렇게 비판했다.

 

“지난해 김인규 전 특보를 공개적으로 찬양하더니 이번에는 특급 경호원을 능가하는 솜씨로 김인규 특보의 KBS 입성을 온몸으로 이끌어냈다. 기자 정신을 망각한 KBS판 ‘사장님 힘내세요’가 아닐 수 없다.”

 

KBS 사원행동이 이야기한 “지난해 김인규 전 특보를 공개적으로 찬양하더니…”라는 부분은 2008년 8월 11일 내가 강제 해임된 뒤 불과 1주일 뒤인 8월 18일, 백운기 기자가 KBS 사내 게시판에 올린 ‘내가 본 김인규 선배’라는 글을 두고 한 이야기다. 나의 후임에 대한 논의가 막 달아오르기 시작할 무렵, 그는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김인규 씨를 “누구보다 KBS를 사랑하는 사람, 김인규 선배 외에 다른 분이 저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김인규 사장 강력 추천’과 다름없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해서는 ‘KBS에 대한 애정이 없는 인물’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면서 ‘다른 점은 몰라도 저 양반은 분명히 KBS에 대한 애정은 없구나’ 확신하게 됐다.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구도에서 정 사장이 KBS 사장으로 버티고 있는 한 수신료 인상은 절대 불가하다는 것이다… 정 사장에게는 우리 삶의 터전인 KBS가 단지 자신의 ‘숭고한 이념’을 실현할 수단에 지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 KBS 사내 게시판 ‘내가 본 김인규’ 중에서


시청자들에 ‘편향됐다’ 지적받았던 백운기 기자

박승규 전 노조위원장, 박선규 전 청와대 언론비서관으로부터 “정 사장은 KBS를 사랑하지 않는군요”라는 말을 들었는데, 백운기 기자로부터 다시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KBS가 사회적 공공재로서의 ‘공영방송’이라는 인식보다는 백운기 기자 말처럼 ‘우리 삶의 터전’, 그러니까 생활수단으로의 직장으로 인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인식 아래서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나 존재 이유보다는 삶의 터전, 생활 수단으로서의 안정감, 그런 게 더 중요했을 터다. 이런 관점에서는 수신료 인상도 공영방송 본래의 목적과 존재 이유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삶의 터전 KBS’의 재원을 안정적으로 하려는 조직 이기주의에서 비롯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겨레> 논설주간 출신인 아웃사이더, 비주류가 KBS 사장이 된 것 자체가 용납이 안 되었을 테고, 오랫동안 ‘우리 삶의 터전인 KBS’에서 군부 독재에 함께 봉사하면서 맺어진 ‘동지애’ 같은 것도 있을 터였다.

 

▲ 2007년 KBS 제1 라디오 아침 프로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를 진행할 때의 모습. ⓒ KBS

 

1985년 KBS에 입사한 백운기 기자는 나의 사장 재임 시 방콕 특파원을 지냈고, 방콕 특파원을 마친 뒤 귀국하여 2007년 8월부터 KBS 제1 라디오 아침 프로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의 앵커를 한 인물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한나라당에 편향되었다’는 비판을 시청자들로부터 받기도 했다. 당시 ‘안녕하십니까, 백운기입니다’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이런 글들이 올라오기도 했다.

 

“한나라당의 일이나 의견에는 별다른 말이 없다가 신당(여당인 민주당)이나 정부의 일에 대해서는 ‘부적절하다, 무책임하다, 변명으로 들린다’ 등등 편향적인 멘트가 끊이질 않는다.”

“한나라당과의 이야기에는 긍정적 표현을 많이 쓴다.”

이런 비판에 대해 당시 백운기 기자는 “방송 전체를 들어 보면 전혀 편파방송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내가 친한나라당 성향이라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사장 취임 다음날 비서실장에 임명된 백운기

백운기 기자가 이 프로그램을 맡기 바로 전에는 이몽룡 해설위원이 ‘안녕하십니까, 이몽룡입니다’를 진행했다. 1975년 KBS에 입사한 이몽룡 기자는 내가 KBS 사장이 된 이후 보도본부 보도국장, 부산총국장 등 주요 자리를 맡았고, 부산총국장 뒤 2006년 보도본부 해설위원이 되면서 정년 얼마 전인 2007년 7월까지 KBS 제1라디오 아침 프로를 맡았다.

 

그가 정년퇴직을 한 것은 2007년 9월 말이다. 당시는 대통령 선거전이 뜨거워지고 있을 때였는데, 그는 정년퇴직을 하자마자, 바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방송특보단 특보로 갔다. 그러니까 방송특보로 가기 얼마 전까지 KBS 제1라디오의 주요 아침 시사프로의 앵커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바로 뒤인 2008년 3월, 스카이라이프 사장으로 선임되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몽룡 기자뿐 아니다. 당시 이명박 캠프를 비롯한 정치권으로 간 KBS 출신들이 참 많았다.

 

(독자들 가운데는 이몽룡 기자든, 백운기 기자든, 그런 ‘수상한 인물들’을 왜 KBS 제1라디오의 주요 아침 시사프로의 앵커 등 주요 자리에 뒀느냐, 왜 자르지 않았느냐고 나의 무능을 탓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시대정신인 ‘자율의 확대’와 의지를 가지고 ‘개혁’하는 것과의 관계, 그런 속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실패와 좌절, 한계는 무엇이었으며, 성과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KBS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세하게 전하도록 하겠다.)

 

백운기 기자는 ‘특보 출신 사장’ 김인규 씨의 KBS 입성을 전후하여 여러모로 눈에 띄는 활약을 했다. 김인규 씨는 취임 바로 다음 날, 백운기 기자를 사장 비서실장으로, 그리고 ‘민정당 출신 국회의원 비서관 출신으로 5공 때 KBS에 특채된 인물’인 박갑진 씨를 인력관리실장으로 임명했다. 백운기 신임 비서실장은 당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애초 부사장-본부장 순의 인사를 하는 게 순서이지만 당장 업무지시 등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하니 비서실장 등의 인사를 먼저 한 것 같다. 김 사장은 내가 지금까지 25년 기자생활을 해 오면서 ‘열정’ ‘결단력’ ‘추진력’ ‘공정보도 의지’ 면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며, 내 인생의 멘토라고 생각하는데, 나에 대해 나름대로 일을 잘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이해한다.” - <미디어 오늘> 2009년 11월 25일


KBS 기자협회가 공개한 ‘기자 김인규’의 생얼굴

 

▲ 김인규 KBS 사장. ⓒ 남소연

백운기 기자가 ‘공정보도 의지’ 면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김인규 씨가 5공 등 과거 군부독재 시절에 어떤 ‘공정한 보도’를 했는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KBS 기자협회가 김인규 사장 취임 후 그의 자질을 검증한다는 차원에서 그가 정치부 기자 시절 어떤 리포트를 했는지 분석하고, 그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 있는 김인규 기자의 리포트 동영상을 공개하였기 때문이다.

 

KBS 기자협회는 “분석 결과 김인규 사장은 5공과 6공 군사정권하에서 적극적인 부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이에 따라 김인규 사장이 당시 군사정권을 찬양하고 비호한 대표적인 리포트를 분석해 기자협회 블로그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공개된 ‘기자 김인규를 말한다’는 당시 동영상 조회수만 10만여 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1편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진 다음날인 1987년 1월 15일 민정당 창당 기념식 리포트, 그리고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호헌선언’ 리포트에 대한 분석과 리포트 내용이다.

 

 

2편은 1987년 6월 3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제청 관련 리포트와 1987년 6월 10일 노태우 대통령 후보 지명 대회 리포트이고, 3편은 87년 6·29 선언 이후 사태에 대한 김인규 기자의 리포트 분석과 그 내용이다. 4편은 1982년 전두환 정권 1년을 맞았을 때 김인규 기자가 제작 리포트한 <특별 입체 기획, 제5공화국 1년-1부 ‘새 시대 달라진 세계의 눈’>이라는 30분짜리 특집 리포트다. 5편은 ‘기자 김인규를 말한다’의 결론과 같은 것이다.

 

KBS 기자협회는 이렇게 다섯 차례에 걸쳐

분석, 공개하면서 매 편을 내놓을 때마다 기자협회의 분석과 평가를 먼저 하고, 그다음 리포트 내용을 동영상으로 공개했다. 그런데 그 분석과 평가가 매우 신랄하며, 때로는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가령 1편을 내놓으면서 “(공개되는 내용이) 약간의 구토 증상을 유발할 수 있으니, 비위가 약한 분들은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워밍업으로 2개만 보여드립니다”라고 운을 띄웠다.


‘호헌선언’이 백년대계 위한 최선의 길?

1편 분석은 이렇게 시작된다.

 

“87년 1월 14일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새해 벽두부터 수많은 양심인사들이 각종 이적단체 혐의로 구속되고 시국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었다.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은 정권 연장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이 와중에 1월 15일 민정당은 창당 기념식을 열었고, 당시 민정당 출입기자였던 김인규 씨는 이를 보도했다.”

 

그런 다음 김인규 기자의 리포트 내용을 동영상으로 그대로 전했다. 그 내용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있다.

“민정당은 창당 때부터 희생과 봉사의 정신으로 당원들의 당비에 의해 당을 운영해 나가는 자립정당 상을 우리나라 정당사상 처음으로 확립하고 구시대적 정치 병폐의 재현을 막기 위한 청렴정치에 앞장서 왔습니다. … 그동안 세 차례 선거를 통해 집권당의 위치를 다져 온 민정당은 이제 88년에 평화적 정부 이양과 서울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업을 차질없이 수행하기 위해 합의 개헌을 통한 의원내각제 관철과 제13대 총선에서의 압승을 통한 정권 재창출이라는 시대적 사명에 직면한 것입니다.”

 

 

1편의 두 번째 아이템은 87년 4·13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선언’ 리포트다. 그 리포트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다.

 

“… 오늘의 난국을 타개하고 내년의 양대 국가 대사를 차질없이 치르기 위해서 현실적으로 헌법문제와 관련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명백히 제시한 것입니다. … 국력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서 안정 속에 국가 대사를 실천해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는 통치적 차원의 결단이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현행 헌법’은 대통령 간선제였다. 유신 이후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내려온 간선제는 결과를 보나 마나 한 것이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직선제를 원했고,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 선언’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적 저항의 촉발제가 되었다. 그 ‘호헌 선언’에 대해 김인규 기자는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 최선의 길이라는 통치적 차원의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정연주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35933&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