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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 정연주 / 2010-09-28) 이 가운데 특히 감사원과 정치 검찰의 활약이 뛰어났으며, 나의 해임에 핵심 도구의 역할을 했다. 감사원 특별감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가는 나의 ‘증언’(13-26)을 통해 이미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이 터무니없는 표적감사 때 실무 책임자와 핵심 역할을 했던 과장 등 실무자들이 그 후 ‘고속 승진’을 했다는 이야기가 최근 언론에 보도됐다. 나의 해임에 핵심 도구 중 하나였던 ‘배임죄’를 뒤집어씌운 정치 검찰의 실무 지휘 라인도 ‘출세의 길’을 걸었다(정치 검찰의 이야기는 뒤에 모아서 증언할 예정이다). 이명박 정권의 실세들은 나의 해임을 위해 총동원됐을 뿐 아니라 해임 직후 ‘KBS 관리체제’를 위해서도 음습한 ‘비밀회동’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KBS 관리체제’를 위해 정권적 개입과 작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두 번의 ‘비밀회동’이 있었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군부 독재 시절 ‘관계기관 대책회의’ 같은 구시대적 공작 정치의 냄새까지 묻어났다. 알려진 것만 두 번일 뿐이지, 일반 국민이 모르는 ‘관계기관 대책회의’ 성격의 ‘비밀회동’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 참석한 롯데 비밀회의
첫 번째 ‘비밀회동’은 내가 해임된 8월 11일 바로 그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있었다. 이 자리에는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나경원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 김회선 국정원 제2차장(국내 담당) 등이 참석했다. 이 ‘비밀회동’은 그해 10월 23일 국회 문광위에서 있었던 국정감사에서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얼떨결에’ 확인을 해주었다. 아마도 위증죄에 걸릴까 봐 확인해 준 게 아닌가 싶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8월 11일 KBS 관련 대책 논의를 위해 롯데호텔에서 회합을 가진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최시중 위원장이 “장소는 모르겠는데 정기 국회 개회를 앞두고 관계자 몇 사람이 모여서 이런 저런 얘기는 했다”고 답했다. “그 관계자가 누구냐”고 묻자, 최 위원장은 한참 생각을 하다가 “누구누구인지 분명한 기억은 없는데, 나경원 의원이 계셨던 것 같고… 청와대 대변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국정원 2차장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몇 사람이 있었다”라고 답변했다.
그리고는 “KBS에 대해 논의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오마이뉴스> 2008년 10월 23일 “정연주 해임 직후 8월 11일에도 ‘KBS 회합’” 기사 참조).
정기 국회를 앞두고 관계자 몇 사람이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면 ‘대책회의’인데, 그런 자리에 국내 문제를 담당하는 국정원 2차장이 동석했다는 것은 국내 정치에 관여할 수 없게 한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비밀회동에 참석한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제6정조위원장)은 “당정 협의 차원에서 만났다”고 처음에는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말을 바꾸었다. ‘당정 협의 차원에서 만났다’고 하면, 당정협의에 참석한 국정원 2차장의 행위는 분명 국정원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국정원 2차장의 비밀회동 참석에 대해 나경원 의원은 당시 <한겨레>와 통화에서는 “그분이 그 자리에 왜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아마도 최시중 위원장과 일정이 겹쳤던 것 같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나경원 의원은 다시 말을 바꾸었다. 국감 때 신상발언을 통해 “그날 김 차장을 처음 봤는데, 이동관 대변인과 먼저 선약이 있어 합석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한번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을 덮으려 하면 또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나경원 의원의 말 바꾸기도 그렇고,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말 바꾸기도 그렇다. 최 위원장은 “국회 개회를 앞두고 관계자 몇 사람이 모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가 나중에는 “나경원 의원의 제6정조위원장 선임을 축하하기 위해 만났다”고 말을 또 바꾸었던 것이다.
롯데 호텔의 비밀회동은 만난 날짜와 참석자의 면면, 특히 국정원 2차장의 참석 사실 등을 미뤄 보면, KBS 사장 해임을 계기로 방송과 언론 전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큰 그림을 그리는 문제가 논의되었을 법했다. 그런데 이 비밀회동이 열린 지 불과 엿새 뒤에 롯데 호텔에서 다시 비밀회동이 있었다. 참석자 면면과 오간 대화 내용을 보면 ‘KBS 후임 사장 면접’ 성격의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다.
8월 17일 저녁, 서울 롯데 호텔 37층 중식당 ‘도원’에서 이뤄진 이 ‘비밀회동’에는 정정길 청와대 비서실장, 최시중 방통위원장,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유재천 KBS 이사장, 김은구 전 KBS 이사 겸 KBS 사우회 회장, 최동호 전 KBS 부사장, 박흥수 전 KBS 이사 등 7명이 참석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KBS 전직 이사 또는 부사장 3명에 대한 연락은 유재천 이사장이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재천 이사장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해서 약속 장소에 갔더니 최시중 위원장은 물론 정정길 비서실장과 이동관 대변인까지 나와 있어서 몹시 당황스러웠다”라고 어느 참석자가 밝혔다. 참석자들이 모두 도착하자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최시중 : KBS 후임 사장 인선이 중요해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려고 여러분들을 모시게 되었다. 정정길 비서실장 : KBS 문제가 매우 중요하니 다음 사장을 잘 정해야겠다. 이동관 대변인 : 김인규 씨를 사장으로 보내야 했는데, 낙하산 얘기가 하도 많이 나와 힘들어졌다. 유재천 이사장 : 김인규 카드가 무산돼 후임 사장 임명 문제가 시급해졌다. 사장을 공정하게 잘 뽑아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삼는 것이 좋겠다.
이러한 발언이 끝난 뒤 유재천 KBS 이사장이 사회를 보듯 대화를 이끌어 갔으며, “이 자리가 마치 면접을 보는 자리 같았다”고 한 참석자가 밝혔다.
이 ‘비밀회동’ 사실과 이 자리에서 오간 위의 대화들은 <경향신문> 김정섭 기자가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인사를 직접 취재하여 특종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 내용이 하도 생생하여 나중에 이동관 대변인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누가 도청을 했나”라고 반문했을 정도라고 한다.
당시 언론계에서는 김은구 전 KBS 이사 겸 KBS 사우회 회장이 KBS 후임 사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는 명예회장처럼 자리에 앉아 있고, 실제 ‘KBS 관리’는 부사장이 담당하는 그런 시나리오가 전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경향신문>의 특종 기사로 김은구 사장 카드가 홀연히 날아가고, 김은구 사장 체제에서 부사장으로 물망에 올라와 있던 이병순 씨가 어부지리의 득을 보아 사장이 되었다는 설이 뒤에 나돌았다.
그런데 ‘7인 비밀회동’에서 이동관 대변인과 유재천 KBS 이사장이 했다는 발언이 주목을 끌게 한다. “김인규 씨를 사장으로 보내야 했는데, 낙하산 얘기가 하도 많이 나와 힘들어졌다”(이동관 대변인) “김인규 카드가 무산돼 후임 사장 임명 문제가 시급해졌다. 사장을 공정하게 잘 뽑아 이명박 대통령의 업적으로 삼은 것이 좋겠다”(유재천 KBS 이사장)는 이 발언은 MB 정권이 이미 김인규 카드를 접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김인규 카드를 접은 결정적인 원인은 촛불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뜨거웠던 촛불의 힘이 아직도 남아 있을 때였으니,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방송전략실장을 지낸, 정치적 ‘직계 혈족’인 김인규 씨를 KBS 후임 사장으로 앉힐 ‘무리’를 할 엄두를 당시에는 낼 수 없었을 터였다.
2008년 8월 17일 ‘7인 비밀회동’ 때 이명박 대통령이 김인규 카드를 접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이틀 뒤 김인규 씨는 ‘KBS 사장 응모를 포기하며’라는 개인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개인적 결단을 내리는 그런 모양새를 취했다.
그는 “후보자 공모마감을 하루 앞두고 KBS 사내에서는 물론 정치권에서 본인을 둘러싼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번 공모에 신청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모적 논쟁’의 원인인 ‘이명박 후보 캠프’에 몸담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막바지에 이명박 후보 캠프로부터 방송전문가로서의 도움을 요청받았습니다. 당시 선거캠프에 몸담는 것 자체가 방송인으로서의 약점이 될 것을 우려해 여러 차례 고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국 개인 문제에 앞서 10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대의에 따르기로 결심하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자원봉사자로서 공정한 선거방송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비록 KBS 내부 직원은 물론 외부에서도 떳떳하게 KBS사장으로 나서라는 여론도 적지 않지만, 자칫 사장후보 응모 자체가 어려운 국내외 여건 속에 출범한 새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혼란한 KBS 사태의 장기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응모 포기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개인 문제에 앞서 10년 만의 정권 교체라는 대의에 따르기로 결심’하여 이명박 후보 캠프에 참여를 했고, KBS 사장 후보 응모가 ‘새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응모 포기를 결심했다는 게 요지였다.
어쨌거나 2008년 8월 중순, 나의 후임을 뽑는 과정에서 ‘김인규 카드’는 물이 건너간 카드였다. 그러나 1년이 조금 더 지난 2009년 11월, 이 카드는 다시 등장했다. 1년 전의 ‘정치적 부담’을 이제는 헤아릴 필요가 없었던 모양이었다. KBS를 정권을 위한 확실한 홍보 도구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정치적 무리나 부담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렇더라도 개인적으로 한 가지 궁금한 것은 KBS의 정권 홍보 도구화에 있어 결코 김인규 씨에 뒤지지 않았던 이병순 전 사장을 왜 버리고, 여러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되는 김인규 카드를 선택했을까 하는 점이다. 김인규 씨가 살아온 방식, 그리고 내가 직접 경험한 일들을 되돌아 보면, 그가 사장이 되는 과정에도 참 많은 이야기꺼리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차차 밝혀지리라.
정연주 / 전 KBS 사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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