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만한 새끼!” KBS 기자는 왜 욕설을 날렸나
[정연주의 증언 43] KBS 하나회 ‘수요회’ 기자들의 ‘활약’
(오마이뉴스 / 정연주 / 2010-10-28)
“X 만한 새끼!”
이 욕설에 등장하는 X는 무슨 단어를 감춘 것일까. ‘개’는 아닌 것 같다. ‘개새끼’ 또는 ‘개 같은…’이라 그러지, ‘개 만한 새끼’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남성의 성기와 관련된 표현이 틀림없겠다.
그런데 이 말을 현역 국회의원을 향해 했다면 그는 보통 사람은 아니다. 스스로 아주 대단하다고 느끼거나, 아니면 ‘조폭’처럼 엄청 힘이 센 집단에 소속되어 있어 ‘절대 보호’를 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한, 이런 안하무인의 행태는 잘 나오지 않는다. 아니면 도저히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정서가 불안하거나, 그렇게 될 정도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거나.
이 발언은 실제 있었다. 현역 국회의원을 향해 이 욕설을 던진 인물은 뜻밖에도 KBS 기자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어느 KBS 기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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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규 KBS 사장이 지난 18일 국회 문방위 국정감사에서 질의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있다. ⓒ남소연 |
지난 9월 10일 낮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 국회 문방위원장 실에서는 국회를 출입하는 KBS 기자 몇 명과 민주당 의원 보좌관 등이 바로 옆방인 문방위 회의실에서 진행 중인 문방위 전체회의를 지켜보고 있었다. KBS 기자 중에는 KBS 국회출입 야당 반장인 전종철 기자도 있었다. 이날 문방위는 ‘KBS 결산’을 심의하고 있었다.
문방위 회의에서 최문순 민주당 의원은 ‘KBS 결산’을 위해 나온 김인규 KBS 사장을 상대로 ‘KBS 사장실 내 수천만 원대 호화 집기 구입’, ‘안전관리팀 인사청탁·상납 비리 감사 결과’ 등에 대한 질의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날따라 회의장은 KBS 기자들로 북적였다. KBS 카메라 두 대, 펜 기자만 7~8명 등 KBS 소속 기자들이 ‘대거 출동’했다. 최문순 의원은 먼저 이를 문제 삼았다.
“여기 KBS 기자들이 왜 이렇게 많이 들어와 있느냐. 사장이 국회에 왔다고 기자들을 부른 것 아니냐… (김인규 사장이) 기자들을 사병처럼 부렸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이건 군사정권 때나 하던 짓이다….”
이때 회의장 바로 옆방인 문방위 위원장실에서 국회 텔레비전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던 전종철 기자가 최 의원을 향해 “X 만한 새끼!”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바로 이 자리에는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도 있었다. 이 보좌관이 “의원에 대해 그렇게 욕을 하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라고 따져 물었고, 전종철 기자는 “당신이 누군데 그러느냐”고 되물으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문방위 회의가 끝나자 문방위 소속 의원과 보좌진이 회의장 밖으로 나왔다. 이때 전종철 기자가 복도로 나가 “도저히 못 참아, 최문순 나오라 그래!”라고 소리를 질렀다. 최문순 의원 보좌관들이 이에 거세게 항의하자, KBS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최문순 의원실 보좌관을 비롯해 민주당 보좌진과 KBS 기자들 사이에 ‘사병 발언’, ‘의원 모독’ 등을 가지고 고함을 지르며 부딪쳤다.
이상의 상황은 당시 이 사건을 전한 최문순 의원 홈페이지 글과 내가 몇 군데 확인해 본 결과를 모아본 것이다. 이날 난장판에서 단연 눈에 띈 활동을 한 인물로 언론에 조명을 받은 사람이 전종철 기자였다. “X 만한 새끼” “도저히 못 참아, 최문순 나오라 그래!” 그렇게 욕설을 해대고 고함을 질렀던 탓이었을 게다.
김인규 사장의 ‘사병’이라는 발언에 화가 났다는 그는 결과적으로 충실한 ‘사병’ 노릇을 한 셈이었다(전종철 기자는 당시 욕설과 폭언에 대해 언론에서 이렇게 해명했다. 자신이 민주당의 최문순 의원을 지칭해 “X 만한 새끼”라는 욕설도 하지 않았고, 회의가 끝난 뒤 “최문순 나오라 그래”라는 폭언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문순 어디 갔어, 이리 와”라고 말했다는 부분도, 최 의원이 “‘사병’이란 표현을 썼기에 진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어보려고 기다리다가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환상의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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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규 KBS사장(사진 왼쪽 편)이 지난해 11월 24일 오후 취임식이 열리는 여의도 KBS 본관에 진입하는 가운데 김 사장을 보호하는 청원경찰, 간부들과 저지하는 노조원 및 사원행동 직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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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철 기자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12일, KBS 국정감사장 앞에서 <한국일보> 오대근 사진기자와도 충돌했다. 당시 이병순 KBS 사장이 국정감사장 앞에 도착하자 KBS 비정규직 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이 ‘KBS 비정규직 해고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을 들고 시위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를 취재하던 사진기자와 KBS 전종철 기자 사이에 충돌이 있었다. 다음은 당시 상황을 전한 <미디어오늘>의 기사 중 일부다.
특히 <한국일보> 사진 기자는 KBS 기자와 국정감사장 앞에서 만나 “KBS 기자가 내 카메라를 막으며 취재를 방해했다”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또 ‘KBS 기자인지 직원인지’ 물었고, KBS 기자는 “KBS 기자이자 직원이다. 내가 (이병순 사장을) 모시고 올라왔다, 들어가면서 좀 밀었을 뿐이다, 들어갈 수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이 기사와 함께 전종철 기자의 사진도 크게 나왔다. 참 안쓰럽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기자가 이 지경까지 되어버렸을까.
‘X 만한 새끼!’ 욕설이 터진 이날 사건을 담은 사진 가운데는 KBS 국회 여당 반장을 하는 김성진 기자의 얼굴도 흐릿하게 보였다. 그는 극렬하게 나의 퇴진운동을 벌였던 KBS 노조 11대 집행부(위원장 박승규)의 총무국장으로 박승규 위원장(현 KBS 사회1부장)의 오른팔 노릇을 했다. 국회 여당 반장에 김성진 기자, 야당 반장에 전종철 기자. 어쩌면 ‘환상의 짝꿍’일 수도 있겠다.
‘수요회’의 핵심, 그들의 모습
전종철 기자. 그도 지난번 ‘증언’에서 이야기한 ‘수요회’ 모임에 참석한 인물이다. 전종철 기자뿐 아니라, KBS 정치 외교 관련 기사를 요리하는 정지환 현 정치외교부장도 ‘수요회’ 모임에 참석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정지환 정치외교부장은 내가 KBS에 있을 때 보도본부 정치외교팀의 국회 반장을 했고, 탐사보도팀장, 대외협력팀장까지 지냈다. 내가 해임된 뒤 이병순 사장이 취임하자 그는 사장 비서실장을 지냈다. 그러다 지금은 KBS 보도본부 정치부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KBS 메인뉴스인 <뉴스9>를 비롯한 1TV 뉴스 편집을 총괄하는 1TV 뉴스편집팀장(지금은 뉴스제작 1부장)을 맡았던 박인섭 기자(현 KBS 광주 총국장)와 그의 후임인 장한식 기자(현 뉴스제작 1부장. 나의 재임 시 베이징 특파원)도 모두 ‘수요회’ 모임에 참가한 인물들이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텔레비전 뉴스 보도에서 뉴스 편집부서는 기사의 취사선택과 배열에 핵심 권한을 가지고 있다. 저녁 메인뉴스에 기사가 나가느냐 못 나가느냐, 어느 정도 위치에서 어떤 비중으로 나가느냐는, 기사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부서다. 그런 핵심 부서이기에 ‘핵심 인물들’이 발탁되기 마련이다.
올해 2월 초, KBS ‘새 노조’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는 KBS 뉴스에 대한 비판적 보고서를 냈다. 그 보고서에 이런 구절도 있다.
“MB와 관련해 티끌만큼의 불편함도 끼치지 않으려는 보도본부 높은 분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누가 알아주기나 할까 안쓰러울 정도다. 톱뉴스를 통해 ‘MB어천가’를 부르는 것도 문제지만 현 정권에 불리한 뉴스는 내보내지 않거나 단신으로 축소 보도하는 일이 잦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이렇게 기사를 요리하는 곳이 바로 뉴스편집팀, 뉴스제작부의 일이다. 이렇게 중요한 부서이니, 그 책임자는 핵심 인사가 될 수밖에 없다. 사장 비서실장, 보도본부장, 보도국장, 해설위원장, 정치부장, 1TV 뉴스제작 부장… 모두가 ‘수요회’ 모임 참가자들이다. ‘수요회’가 KBS의 ‘하나회’로 불리는 이유다.
‘수요회’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이고, 김인규 씨가 KBS 사장이 되도록 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해 온, 그래서 이런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으면 매우 서운해 할 정도로 오랫동안 ‘김인규의 심부름꾼’ 노릇을 잘해 온 인물이 한 명 있다. 지금 KBS 제주 총국장을 하는 김동주 기자다.
그는 내가 KBS 재임 때 지역기사를 총괄하는 부서인 보도본부 네트워크 팀장을 했는데, 후배 기자가 발로 뛰어 취재한 기사를 관련 회사로부터 청탁을 받고 깔아뭉갠 사건이 터져, 인사 조치된 일이 있다. 후배 기자가 그의 행태를 보도본부 게시판에 폭로함으로써 사건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
김동주 기자는 김인규 씨가 사장이 되었을 당시 수원 센터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김인규 사장이 첫 출근하던 날, 수원 근무지를 떠나 서울 여의도 현장으로 달려왔다고 당시 인터넷 언론이 보도할 정도였다. 그는 김인규 사장 취임 첫 인사에서 시청자 센터장(임원급)으로 승진 발령을 받았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이를 가리켜 ‘보은 인사’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 제주 총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음지’에서 나와 당당하게 얼굴 드러낸 ‘수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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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1월 24일 오전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노조원과 사원행동 직원들이 청원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출근하는 김인규 신임사장의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출근길이 가로막힌 김인규 사장이 저지하는 노조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권우성 |
음지에만 있던 ‘수요회’가 자신만만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자신들의 ‘존재와 위상’을 드러낸 일이 있었다. 지난해 KBS 경영협회장 이·취임식장에 당당하게 ‘수요회’ 이름으로 화환을 보낸 것이다. 이제는 음지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었을 터였다. 자기들 세상이 오고 있었으니까.
내가 아직도 KBS에 재임하고 있던 2008년 봄, 수요회’가 처음 회사 안팎에서 거론되었을 때, 당시 ‘수요회’ 좌장으로 지목된 이정봉 기자(현 보도본부장)는 “그런 모임 자체가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인터넷 언론이 보도했다. 내가 사장 재임 때는 그렇게 부인해 놓고, 내가 떠난 후 자기들 세상이 오자 이제는 공식 자리에 ‘수요회’ 이름으로 화환을 보냈다.
‘수요회’ 문제가 처음 보도본부 게시판에 등장하여 뜨거운 논쟁이 시작되었을 때, ‘수요회’ 모임에 참석한 어느 기자가 ‘수요회라?’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는 이 글에서 “특정인(김인규)을 새로운 사장으로 옹립하자는 얘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KBS 사장은 누가 돼야 한다는 발언은 전혀 없었고, KBS 사장의 조건에 대해서도 의견 개진이 없었다, ‘수요회’가 마치 조직화된 모임이고, 지속적으로 활동해 온 것처럼 비화 회자되고 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글의 끝 부분에 이렇게 썼다.
“각설하고요. 문제는 그동안 4, 5년 사이에 누적 적자가 2천억 원가량에 이르고, 오는 6,7월이면 회사 운영 자금도 바닥이 난다는데 사실인가. 기자들이 일만 열심히 한다고 월급은 받아먹고 살 수 있을런가….”
살아오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권력과 자리를 탐하면서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늘 그랬다. 사실은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전혀 사실이 아닌 얼토당토않은 것을, 정말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사실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누적 적자가 2천억 원이라느니, 6~7월이면 운영자금이 바닥난다느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거짓을 사실인 양 버젓이 보도본부 게시판에 올릴 정도로 도덕적으로 망가져 있었다.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수요회’는 보도본부를 주 무대로 활약한 ‘하나회’ 성격의 모임이었다. 그런데 보도본부의 범위를 넘어서는 ‘범 수요회’라 불러도 좋을 또 다른 세력이 KBS 안에서 김인규 체제를 떠받들어 왔다. 바로 ‘반 정연주’의 깃발을 내걸고 치열하게 ‘정연주 퇴진’을 외쳤던 KBS ‘옛 노조’의 집행부 세력들이었다. 그들도 정연주 강제 해임 뒤 지금까지 승승장구해왔다.
정연주 / 전 KBS 사장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68290&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