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북미원주민 이야기
왜 인디언인가? | |
서정록님은 지금 거제도에 사시면서 韓國 古代史를 통해 우리 文化의 傳統과 精神世界를 硏究하고 계십니다. 아메리칸인디언에 대한 공부뿐 아니라 주변국들과 소수민족, 제3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하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眞情한 傳統을 되살리는데 必要한 作業이라는 겁니다. 아메리카인디언의 精神世界는 구술과 wintercount를 통해 現在까지 많은 부분이 傳해내려오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해 우리 古代文化를 이해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함께 아메리카인디언의 世界와 우리 古代文化가 어떻게 連結되는지 서정록님을 글을 通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북미원주민 이야기1]
왜 인디언인가?
검은호수 서정록
수년전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의 [오래된 未來]는 많은 이들에게 感動을 주었습니다.
티벳 라다크인들의 소박한 생활이 어느덧 도시생활에 익숙해진 우리들의 잠자는 靈魂을 일깨운 것입니다.
하지만 이 혼탁한 시대에 라다크인들의 소박한 생활이 과연 우리를 일깨워 새로운 生命世界로 나아가게 해줄 수 있을까 다시 生覺해 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資本主義 文明을 接하기 始作하자, 얼마 안 가 그들의 순수함과 소박함을 잃어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너무도 착해서, 순진무구해서 자본주의의 교활한 상술에 무너졌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이 무너진 것은 直接的으로는 자본주의의 침투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그들 內部의 欲望으로부터 무너졌다고 보는 쪽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文化에는 오체투지의 지극한 낮춤이 있는 동시에 기복(祈福)의 문화가 함께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수백 년 동안 白人들의 壓制와 밀려오는 物質文明의 洪水 속에서도 의연히 自身들의 本來의 모습을 지켜가려는 北美 인디언들의 경우와 對比됩니다. 물론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에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白人문화에 동화되어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의 의사에 의한 것보다는 백인들이 인디언 부락을 파괴하고, 그들을 거리나 보호구역으로 내몰았던 데 주로 기인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白人들의 생활방식을 따라갔던 이들과 잘 살아보기 위해서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의 경우를 같이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19세기 중반에 白人들이 중서부의 인디언 마을을 빼앗는 과정에서 生存權을 지키려는 인디언들과의
잦은 마찰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 이런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戰鬪를 하다보면 서로 포로가 있게 마련이지요. 백인 병사들 역시 인디언들에게 포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쟁을 하다 보면 자연히 결손가정들이 생깁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죽거나 자식이 죽는 거지요. 그런 경우 인디언들은 포로들 중에서 자신의 남편으로 삼고 싶거나 자식으로 삼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기꺼이 남편이나 자식으로 받아들입니다. 새로운 가족이 되는 거지요. 인디언 가정에 들어간 백인 병사들은 곧 인디언 사회에 적응해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디언 전사대의 일원으로 백인 병사들과의 전투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운이 나쁜 경우 백인들에게 포로가 되지요.
그러면 백인들은 그에게 왜 백인이 인디언 전사대가 됐느냐, 백인 사회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디언 가족이 된 백인 병사들은 하나같이 백인 사회로 복귀하기를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제 자신은 인디언이라고, 더 이상 백인이 아니라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적인 인디언이 되고자 했을까요. 도대체 인디언 사회에 무엇이 있기에?
1832년부터 8년 동안 북아메리카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며 수백 점의 인디언 그림을 남긴 '조지 캐틀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그림과 현지의 생활과 풍습을 자세히 적은 그의 편지는 인디언 예술과 문학의 고전이 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인디언들의 삶과 우호적인 태도에 크게 감동하여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극한 정성으로 늘 나를 환영해주었던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법이 없어도 정직하며, 감옥도 없고, 가난한 집도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십계명을 읽은 적도, 목사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도 없지만, 그것을 잘 지키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신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 적이 없는, 그리고 그러한 맹세가 필요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성경이 없어도 신을 공경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신 또한 그들을 사랑할 것이기에.
나는 모든 종교들이 같다고 믿으며, 종교적 적대감으로부터 자유로운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나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는 민족, 그런 것에 대해서 징벌하는 법조차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땅을 빼앗고자 그들의 영역에 침입한 자들 외에는 백인들과 싸운 적이 없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나는 신이 창조한 인류를 사랑하며, 결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 또한 신의 신성한 아이들이기에.
나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인디언 민족들을 사랑한다.
그리고 돈을 탐하지 않는 인디언 민족들을 나는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의 한 사람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뉴욕 주에 거주하는 이로쿼이 사람들이
西區의 民主主義보다 훨씬 더 수준 높은 民主主義 제도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고귀한 야만인'이라 부르며 어떻게 야만인들이 저렇게 水準 높은 民主主義 精神을 구현했는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연방 헌법의 골격이 이로쿼이 연합의 <위대한 평화의 법>에 기초했다는 것은 알만한 사람들은 모두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에 익숙해져 있는 분들 가운데는 여전히 인디언들을 야만인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 갔다가 '인디언 투어(Indian Tour)'를 하고 온 분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됩니다. 미국의 인디언 보호구역에 가 보니 빈곤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 술 먹고 마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던데, 그런 인디언에게서 무엇을 배운다고 그러냐고 말입니다.
美國의 主流文化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일수록 이런 見解를 가진 경우가 많은 것을 봅니다. 事實 인디언 문화야말로 오늘날 미국의 주류문화, 이른바 신자유주의 문화의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문화이기에 더욱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질과 자본이 최고이고, 돈만 가지면 못할 게 없는 세상에서 물질보다는 나누는 삶을 실천하고, 나 개인보다는 가족과 이웃과 부족을 먼저 생각하며, 풀 한포기, 돌멩이 하나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비현실적이고 원시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북미 서남부의 산악지역(아리조나 주)에 사는 나바호족은 부자가 되는 것을 무척 경계합니다. 이기심과 욕심 없이는 결코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자가 되었다면, 그는 틀림없이 가족과 이웃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시 말해 어려운 가족과 이웃을 챙기는 사람이라면 도저히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인디언 사회에는 독특한 문화가 있습니다. 서구와 구대륙의 문화가 물질과 축적을 숭상하는 문화라면 인디언 사회는 나눔을 숭상하는 문화라고 할 만큼, 그들은 물질을 이웃과 나누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질에 여유가 있는데도 이웃의 과부나 고아나 어려운 노인들을 돌보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것이 예사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락에 축제가 있으면 서로 자신이 준비한 것들을 가지고 나와 이웃과 나눕니다. 가난한 사람들조차 조그만 것이라도 들고 나와 자신의 마음을 나눕니다.
그래서 인디언 사회에는 기본적으로 부자와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물질을 보는 태도가 자본주의 사회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들은 동식물을 포함한 모든 존재를 자신의 형제요, 친척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지를 어머니라 부릅니다. 어머니가 우리를 낳아 기르듯, 어머니 대지가 우리를 낳고 기른다는 것이지요. 동학의 2대 교주였던 해월 최시형 선생은 이러한 사상을 '천지부모'라는 말로 풀어낸 적이 있습니다. 사실 대지가 없으면 이 세상에는 나무나 식물도 없고, 동물도 없고, 물도 없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지구생명에 의존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에게 의존하듯….
그래서 그들은 대지를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어머니라는 것은 얼마나 숭고한 것입니까? 우리는 다 커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같이 딛고 서 있는 이 땅이 바로 어머니의 살갗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걸어 다닐 때도 조심해서 걸어 다닙니다. 결코 뒤꿈치를 쿵쿵거리며 걷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인디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행동을 돌아봅니다. 혹시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다른 존재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지는 않나 하고 말입니다. 그들은 특별히 아이들을 몹시 위합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큰소리를 치는 법이 결코 없습니다. 또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는 일도 없습니다. 필요할 때는 부드럽게 알아듣도록 설명합니다. 그들의 영혼이 다치지 않도록 말이지요.
또한 그들은 여성을 매우 존중합니다. 여성을 구타하는 남자는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습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에는 그 사회의 각종 모임으로부터 쫓겨납니다. 왜냐하면 여성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신성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일상적인 삶과 영적인 생활은 언제나 하나입니다. 분리되어 있지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생활 따로, 종교생활 따로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완전하지요. 인디언들의 경우에는 양자가 언제나 일치해 있습니다. 그들의 일상적 삶이 곧 종교요, 기도인 것입니다.
철나고부터 머리 속에 사회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을 갖고 살던 저는 이런 인디언들의 삶과 그들의 정신세계를 깊이 이해하면서, 그 동안의 쓸 데 없는 고민과 번민들을 모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고(故) 무위당 선생님을 모시고 있을 때도 풀리지 않던 의문들이 인디언을 알게 되면서 눈 녹듯 녹는 것이었습니다. 제 내면의 허구의식도 바로 보게 되었고요. 물론 오랫동안 도시생활을 하며 몸에 쌓인 습이야 하루아침에 털어지지 않겠지만, 이젠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인류의 황금시대가 있었고, 그 뒤에 은의 시대가 있었고, 청동시대가 있었고, 철의 시대가 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가 아니더라도 과거에 황금시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많은 민족 신화에 등장합니다. 저는 북미 인디언들이야말로 인류의 황금시대를 산 사람들이라고 주저 없이 말합니다.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중동지방에 1만여 년 전 실제로 황금시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렵채집시대에서 농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바로 그러한 시기였다고 합니다. 유골들의 건강상태를 보더라도 그 뒤의 농경시대보다 더 건강했고요. 하지만 그 시기는 불과 500여 년으로 끝나고 맙니다. 인류가 노력해서 만들어진 황금시대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주어진 선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릅니다. 광활한 숲과 풍부한 물, 그리고 다양한 수렵 동물들과 채집식물들이 많았던 점도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룩한 문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 역사상 인간이 가장 사람답게 산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위해주고, 어려움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천지만물을 모시고 언제나 진실 되게 살고자 했습니다.
요즈음 생태공동체 비슷한 것들이 이곳저곳에 만들어지고 있는 것을 봅니다. 현재의 자본주의의 주류문화에서 벗어나 대안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도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뚜렷한 방향과 지표와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방황하거나 실패할 위험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구성원들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에도 남다른 지혜가 필요하겠지요. 저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답을 북미 인디언 속에서 어느 정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완전한 답은 아니더라도 그 정신과 방향만은 말입니다.
앞으로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조금씩 써보려고 합니다.
같이 생각하고 나누는 그런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서정록: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왔으며 한살림운동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했습니다. 고대 동북아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글쓴이는 인디언의 삶과 정신세계에 크게 감명받아 지인들과 조그만 인디언 모임을 가지며 현재 거제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를 찾아서』(학고재)가 있고, 역서로는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나무심는사람)가 있습니다.
**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3년8월호
[북미 원주민 이야기2]
인디언에 대한 오해
검은호수 서정록
일란성 쌍둥이라 해도 자란 환경이 다르면 성격과 품성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법이지요. 각자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요. 혼자서는 못 산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어떤 문화에서 성장했는가가 결국 그 사람을 결정짓는다는 뜻이 됩니다. 특히 거의 도그마화한 종교의 경우에는 더욱 그럴 소지가 높습니다.
백인들이 인디언을 탄압한 역사를 보면, 종종 서구에 의한 문화적 폭력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마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어머니 대지를 과학과 발전의 이름으로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날 유럽 사람들의 직접적인 조상은 스키타이-흉노계통의 유목민인 게르만입니다. 기원후 3세기경, 동북아에서 서쪽으로 이동을 시작한 흉노족(훈족)이 동부 유럽지역에 출현하면서 고트족, 반달족 등 게르만의 연쇄 이동을 가져왔고, 결국 유럽은 게르만족의 말발굽 아래에 짓밟히고 맙니다. 그 여파로 로마 또한 문을 닫고, 유럽은 중세로 넘어가지요.
유럽사는 이 시기를 '야만의 시대'로 규정합니다. 하지만 현 유럽인들의 조상이 게르만 유목민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유럽에 정착한 뒤 로마의 종교인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조상이 수천 년간 믿어왔던 샤머니즘 문화도 철저히 배격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유명한 중세의 마녀사냥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최소한 수십만 명 이상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들이 마녀라 규정한 사람들을 보면 하나같이 샤머니즘을 신봉하거나 무당의 소질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유럽을 정복한 유목민들은 골수 기독교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예부흥시대를 거쳐 해외로 본격적인 식민지 전쟁에 나섭니다. 콜럼버스가 바다로 나갔던 것도 사실은 식민지 확보를 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메리카의 불행은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인디언들의 문화는 샤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만, 유라시아는 중앙아시아와 중국, 페르시아 등 이웃 제국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차 국가와 계급과 신분, 빈부격차 등 전통사회에서 흔히 보는 그런 요소들을 함께 갖게 됩니다. 그러나 북아메리카에는 콜럼버스가 도착했을 당시 국가도 없었고, 계급과 신분제도도 없었습니다.(중남미의 경우는 약간 사정이 다릅니다)
따라서 북아메리카는 국가가 들어서고 계급과 착취와 축적의 문화가 들어오기 전의 샤머니즘의 원형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아마도 피상적으로 인디언을 아는 많은 분들은 인디언들의 모습에서 그저 원시인의 모습만을 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전통문화에는 적어도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국가의 지배, 자본의 횡포, 빈부의 격차와 착취 등의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그들은 친족 공동체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자연에서 수렵과 채집, 어렵 등을 통해 먹을 거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또 축적 대신 나눔의 문화를, 내 것보다는 이웃과 부족과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챙기는 아름다운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또 동식물과 바위 등 모든 존재는 생명을 갖고 있으며, 우리 인간과 형제요, 친척이라 생각했습니다. 또 모든 생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럽의 백인들이 북아메리카에 왔을 때, 그들은 욕심과 탐욕에 눈이 어두워 인디언 문화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백인들의 조상들이 믿던 것과 같은 종교를 믿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아니 그들의 조상보다도 훨씬 더 정제된 샤머니즘을 들고 있던 그들이었지만, 기독교로 개종한 백인들의 눈에는 그저 헐벗은 야만인 이교도로밖에 안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성인'이라는 오만과 착각 속에서 인디언들의 각종 의례를 미신으로 매도하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문화적 독선과 폭력이지요.
백인들이 하는 짓을 보다 못한 호피족 노인이 전도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백인들의 눈에 우리는 바보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신을 믿는 것처럼 우리 역시 우리의 신을 믿는다. 우리의 신은 우리에게 말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말해준다. 우리의 신은 우리에게 비구름과 햇빛과 옥수수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준다. 우리의 신은 우리가 당신들의 신에 대해서 듣기 훨씬 전부터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주셨다.
만일 당신들의 신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그분에게 말해서 나의 신이 내게 하는 것처럼 내게 말하게 해주기 바란다. 백인들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의 가슴을 통해서 말이다. 당신들의 신은 잔인한 신이며, 강력하지도 못하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늘 사악한 것을 입에 담고 있으며, 사람들이 죽은 후에 지옥에 간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은 아주 강력하며, 늘 좋은 일만 하신다. 삿된 점이 없을 뿐더러 우리가 죽은 뒤에 가는 지하세계에는 지옥과 같은 것이 없다. 당신들의 종교로 개종하느니 차라리 나의 신과 나의 종교를 고집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들의 종교 속에 있을 때보다 나의 종교 속에 있을 때 더 행복하기 때문이다.
('Festivals of the Hopi : Religion, the Inspiration, and Dancing, an expression of Their National Ceramonies' in The Craftsmen, No.12, 1907에서)
결국 백인들은 광활한 아메리카 땅을 빼앗기 위해 인디언들을 그들의 터전에서 내쫓기 시작합니다. 미국정부는 "신이 아메리카를 우리에게 주셨다"는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라는 종교적 슬로건까지 내세우며, 십자군 전쟁-그것이야말로 중세에 유럽이 중동에 가했던 문화적 폭력이지요.-을 하듯이 인디언들을 싹 쓸어버리기 시작합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할 당시, 북미 인디언들의 수는 최소한 6~7천만명에서 1억 내지 1억2천만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당시 중국의 인구가 1억명 정도였던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95%가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가지고 들어온 질병들-홍역, 콜레라,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이질 등-에 감염되어 죽고 맙니다. 끔찍한 이야기지요.
그리고 살아남은 수백만 명의 사람들 또한 그들이 살던 땅을 지키기 위해 백인들과 싸우다 대부분 살육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많던 인디언들이 20세기 초에는 불과 수십만 명으로 줄어듭니다.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백인들이 지정한 보호구역(Reservation)에 갇혀서 배급생화을 해야 했습니다. 말이 보호구역이지 철조망 친 포로수용소였지요. 백인들은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에게 시민권은커녕 영주권조차 주지 않은 채, 문자 그대로 포로로 가두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에게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저는 유럽인들의 운명을 생각할 때마다 묘한 생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들은 분명히 기원후 수세기까지도 샤머니즘을 신봉했던 이들입니다. 이른바 '북유럽신화'니, '오딘신화'니 하는 것들은 우리 동북아나 시베리아, 그리고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 두루 믿었던 바로 그 샤머니즘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이른바 진보의 이름으로 인류의 소중한 원주민 문화-특히 제3세계의 많은 민족문화-를 짓밟는 야만을 자행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북아메리카인들은 찬란한 '인류으 황금시대'를 살았던 이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존재를 공경하며 인간답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또한 그들은 축적이 가져오는 해악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그것을 나눔의 문화로 발전시켰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와 자연과학으로 무장한 유럽인들의 눈에는 그런 참다운 가치는 보이지 않았고, 오직 번지르한 물질문명만이 최고라는 생각에, 그런 물질문명을 갖지 못한 민족들을 원시인, 야만인으로 몰아 학살했던 것입니다.
西部映畵에 잘 표현되어 있듯이, 白人들은 서부로 진군하면서 인디언들을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전사 집단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래야만 與論을 움직여 그들을 공격할 政治的 名分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요. 美國政府의 그와 같은 악의적인 선전 탓에 많은 白人들이 실상도 모른 채 '인디언'이라면 두려움에 벌벌 떨었던 것입니다.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은 基本的으로 平和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인디언들도 부족끼리 더러 전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규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규모의 전쟁이 아닙니다. 인디언의 각 부족에는 一般 추장 外에 따로 '戰士 추장'이 있습니다. 일반 추장이 부족의 대소사와 행정적인 일을 맡는다면, 전사 추장은 일종의 군사책임자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부족이 쳐들어오거나 다른 부족을 응징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가 발의를 합니다. "이러이러한 일이 있으므로 언제 공격하려고 한다. 이에 동의하는 전사들은 모여라."하고 말이지요. 거기에 동의하는 전사들이 모이면-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당연히 모이지 않지요.-그것이 바로 '전사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수가 대개 20명 안팎이었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부족 간의 분쟁 정도가 고작이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인디언 사회는 女性中心의 社會입니다. 여성중심의 사회라는 것은 여성문화가 지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성들의 경쟁, 권위, 갈등, 대립의 요소보다는 자연히 여성들의 협동, 우애, 공존, 화해의 요소가 우세합니다. 따라서 인디언 사회를 폭력적인 전사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다 백인들이 인디언을 공격하여 그들이 살던 땅을 빼앗기 위한 마타도어(흑색선전)였던 것입니다.
白人들은 인디언들의 땅을 빼앗으면서 수많은 條約을 써주었습니다. 모두가 그들이 원해서 만들어진 조약들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땅이 탐나면 번번이 자신들이 맹세한 그 조약을 위반하고 침략을 했습니다. 그렇게 야금야금 거대한 아메리카 땅덩어리를 모두 빼앗았던 것입니다.
19세기 말, 수우족의 유명한 전사 추장이었던 '앉은 소(Siting Bull)'는
자신을 비난하고 모함하는 백인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인들이 만든 조약을 우리 붉은 사람이 깬 적이 있는가?
단 한 번도 없다!
그렇다면 백인들은 우리와 만든 조약을 지켰는가?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이 세계는 우리 수우족의 것이었다.
우리의 땅에서 태양은 뜨고 졌다. 우리는 만 명의 기병을 전쟁터로 보냈다.
전사들은 오늘 어디에 있는가? 누가 그들을 죽였는가?
우리의 땅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그들을 소유했는가?
내가 백인들의 땅을 한 조각이라도 훔친 것을 본 자가 있으면
지금 내 앞에 나서 보라.
내가 단 1페니라도 훔친 것을 본 자가 있으면 나와 보라.
그럼에도 그들은 나보고 도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백인 여자가 포로로 잡혔을 때 내게 모욕을 당한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그들은 나를 나쁜 인디언이라고 말한다.
내가 술 마시는 것을 본 백인이 있는가?
배고픈 사람이 내게 왔을 때 내가 굶긴 채로 보낸 적이 있는가?
내가 아내를 때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내가 아이를 학대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또 내가 법을 어긴 적이 있는가?
내가 나의 민족을 사랑한 것이 잘못인가?
나의 피부가 붉은 것이 죄인가?
아니면 내가 수우족이기 때문에?
내가 내 아버지가 시시던 곳에 태어났기 때문에?
내가 나의 민족과 나라를 위해 죽고자 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백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의 땅을 호시탐탐 노립니다. 보호구역에 거주하던 인디언들이
外部로 나가면서 일부 보호구역에 거주인구가 줄어들자, 그 땅마저 빼앗기 위해 온갖 시비를 거는 겁니다.
그렇게 白人 그들의 貪慾은 그칠 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비단 白人들만의 이야기일까요? 우리 사회 또한 모두들 物質을 신봉하고 있지 않나요?
西區文化를 따라간답시고 이 땅의 傳統文化를 迷信으로 모는 어리석음을 똑같이 답습하고 있지는 않던가요?
우리는 누구인가요?
흔히들 21세기는 文化의 時代라고 합니다. 地域의 文化를 保存·發展시키되, 그 精神만은 인류가 共有할 수 있는 地球的 次元으로 成熟해져야 하는 理由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입니다.
서정록/ 고대 동북아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글쓴이는 인디언의
삶과 精神世界에 크게 감명 받아 지인들과 조그만 인디언 모임을 가지며 현재 거제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 생태공동체를 일구는「이장」, 2003년9월호.
[북미 원주민 이야기3]
샤머니즘이란 무엇인가
검은호수 서정록
민속학을 하는 임재해 교수에 의하면, 안동댐이 들어선 뒤 10년쯤 지나 댐 주변의 마을들을 답사한 결과 마을에 남아 있던 당나무들이 완전히 말라죽은 것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마을사람 몇이 남아 마을을 지키며 동제를 지내는 경우에는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고 하지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댐이 들어서면서 수몰지역 주변의 마을은 예전보다 물이 더 풍부해졌으므로
나무가 번성해야 하는데 말라죽은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情에 굶주려 죽은 것입니다.
情이란 무엇입니까? 靈魂의 交感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나무도 靈魂을 갖고 있고 사람들과 交感을 합니다. 늘 당나무 주변에 모여 살던 마을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情에 굶주린 당나무들이 결국 죽고 만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샤머니즘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현재 서양 사람들의 사고의 기본이 되는 기독교에서는 나무의 靈魂을 認定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그저 나무일 뿐인 것입니다.
이런 思考의 틀 속에서 그들은 物質과 精神을 나눕니다. 兩者는 물과 기름 같아서 섞일 수 없으며, 섞여서도 안 되지요. 그것이 西洋 사람들이 몸과 靈魂, 物質과 精神, 善과 惡을 바라보는 態度입니다. 이런 思考는 우리의 몸과 自然의 存在들을 神性치 못한 것으로, 人間의 精神에 견주어 低級한 것으로 여깁니다. 自然히 우리의 일상생활과 이 세상의 삶 또한 세속적인 것으로, 신성치 못한 것으로 취급됩니다. 神性함은 오로지 人間의 精神과 靈魂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有限한 이 世上의 삶을 否定的으로 봅니다. 죽음을 惡으로 보는 視角도 여기에서 비롯합니다. 오직 靈魂이 돌아갈 天國만이, 世俗을 벗어난 神的인 價値만이 最高의 善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思考는 必然的으로 인간 以外의 自然의 存在들을 道具的 對相으로, 單純한 物質로 간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過去와 歷史 또한 否定的인 視覺으로 보게 합니다. 역사적 유물이란 영혼이 없는, 또는 영혼이 떠난 딱딱하게 굳은 골동품에 불과하니까요. 따라서 과거의 역사란 언제든 돌아가야 할 근원과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되기보다는 부정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됩니다.
그들의 발전, 진보적 사관은 바로 이런 물질과 정신의 이분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의 직선적인 시간관은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기지요.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발전이 없는 역사란 곧 정체요, 퇴보나 다름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발전된 물질문명을 갖지 못한 사회를 야만인, 원시인으로 여겼습니다. 백인들이 인디언들을 그처럼 철저히 짓밟은 배경에는 바로 이와 같은 서구의 이원론이 자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 인디언과 제3세계의 주민들뿐이겠습니까! 어머니 대지 또한 자연과학의 이름으로 얼마나 함부로 파헤쳐지고 파괴되었던가요!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인류의 생태적 위기, 전 지구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다행히 현대에 들어와 西洋人들 역시 그들의 이런 二分法적 思考의 問題点을 認識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 代表的인 것이 生態主義的 思考입니다. 그 중에서도 '심층생태주의(Deep Ecology)'는 환경문제를 기술 중심으로 접근해 오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人間과 環境을 分離해서 生覺할 수 없으며 이 世上의 모든 存在는 巨大한 生命의 그물망으로 엮어져 있다는 것을 認定하는 데까지 나아간, 가장 發達된 認識論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심층생태주의가 전통적인 서구적 사고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그들 역시 다른 서구사상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나의 에고(ego)로부터 출발하니까요. 그런데 나의 에고라는 것은 모든 것을 내 主觀, 내 觀點에서 行動합니다. 하지만 나의 주관대로, 즉 내 마음대로 행동하면 다른 존재들로부터 반발과 제재가 들어오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부득이 다른 존재 역시 '무언가(something)' 意志를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타자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지요. 모든 게 이런 식입니다.
그러다 보니, 他者의 存在를 認定하긴 하되 그 方式이 매우 觀念的이고 消極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北美 인디언들은 그렇게 生覺하지 않습니다. 샤마니즘을 신봉하는 시베리아의 소수민족들이나 호주의 원주민들, 동남아시아의 원주민들, 그리고 아프리카의 원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그런 西洋 사람들의 思考方式을 이해할 수 없어합니다. 왜? 그들이 보기에는 동식물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심지어 벌레 한 마리,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神性하고 平等하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보기에 이 世上에 存在하는 것들 가운데 生命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生命이 있다는 것은 곧 그
안에 主宰者인 靈魂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意味합니다. 때문에 그들은 동식물은 물론 바위나 해와 달, 별, 심지어 산, 강, 바람, 구름, 비 또한 모두 靈魂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存在方式이 다를 뿐 우리 人間과 다를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西洋 사람들이 정신과 같은 반열에 놓을 수 없다고 여긴 몸과 물질에도 신성함(spirituality)이 있다고 봅니다. 물질에도 신성함이 있다는 것은, 영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이 세상에 단순히 물질덩어리로 이루어진 대상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두 다 영적인 요소를 갖고 있는 생명이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공경해야 할 대상으로 여깁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느 하나도 존귀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인간이 소중하듯, 이 대지 위에 사는 다른 동식물과 바위 등도 모두 소중한 것입니다. 내 새끼들이 귀하듯, 동물이나 벌레들의 새끼들도 귀하고, 다른 존재의 새끼들도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北美 인디언들은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공경의 태도를 가르칩니다. 동식물은 물론 벌레조차 공경하도록 가르칩니다. 결코 벌레들을 징그러운 대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들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그들만의 임무와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의 몸과 자연의 존재들에 영적인 요소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일상 생활에는 신성함이 깃들게 됩니다. 북미 인디언들의 일상적 삶이 곧 그들의 종교요, 기도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일상성 속에 깃든 신성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세속적인 것이라 하여 부정적인 것으로 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일상적 삶과 종교는 분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聖)과 속(俗)이 나누어지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 삶을 신성한 것으로 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행위와 춤과 노래 또한 신성한 것이 됩니다. 그러고 보면 서양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춤과 노래를 부정시했습니다. 정신이 아닌 몸을 사용하는 행위는 세속적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종교적 의례나 축제 따위를 제외하면 평상시에는 춤추며 노는 것을 멀리했습니다.
西洋人들의 몸에 대한 이러한 觀念을 바꾼 사람이 바로 舞踊家 '이사도라 덩컨'입니다. 그녀는 몸으로도 靈魂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西洋 사람들에게 커다란 衝擊으로 다가왔고, 그녀 以後 現代舞踊은 몸으로 어떻게 靈魂의 노래를 表現할 것인가에 焦点이 맞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靈的인
요소를 중시합니다.
그러나 北美 인디언들은 물론, 샤머니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춤과 노래야말로 神性한 것임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춤과 노래야말로 다른 존재들과 함께 하고 나누는 靈的인 行爲임을, 祈禱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춤과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게 天地萬物을 기쁘게 하고, 神들을 기쁘게 하며 서로
마음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또한 人間의 몸과 自然과 다른 存在들을 構成하는 物質에도 靈的인 料素가 있다는 것을 認定하게 되면 過去와 歷史를 보는 態度가 달라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이란 기본적으로 신성할 수밖에 없기-최악의 경우에조차-때문이지요. 自然히 우리의 祖上들이 겪은 과거의 경험과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겪는 경험에는 신성함이 가득하게 됩니다. 새가 들려주는 노랫소리, 시냇물이 흐르던 모습, 태풍이 대지를 휩쓸며 정화하던 일, 봄이면 남풍이 불어오고 들판의 새싹들이 돋던 일들, 우리를 먹이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 주던 동물들, 마른 대지에 내리던 단비, 가슴이 답답할 때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던 바람소리..., 그 모든 것이 영적이고 신성한 것이 됩니다.
북미 인디언들이 늘 自身을 낮추고 주위의 動植物들로부터, 그리고 自然現狀으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여기서 삶이란, 그리고 과거의 삶이란 부정하고 극복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지혜와 신성함의 보고가 됩니다. 신성한 이야기가 되고 신화가 됩니다.
그래서 샤마니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현재 못지않게 과거와 역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 속에 미래와 지혜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과거보다는 미래를 중요시 여깁니다. 자연히 옆과 아래를 바라보기보다는 하늘을 쳐다봅니다. 땅은 신성치 못한 곳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샤마니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만물을 실어 기르는 대지를 어머니라 부릅니다. 어머니란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지극한 것입니다. 나를 낳고 길러 주신 분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대지를 어머니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대지는 한낱 물질덩어리에 불과하니까요.
북미 인디언들과 구대륙의 샤마니즘을 신봉하는 이들이 생태적인 삶의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은 이처럼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 영적인 요소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른 存在의 靈을 認定하게 되면 當然히 함부로 할 수 없겠지요.
샤마니즘을 신봉하는 이들이 사냥을 할 때 동물신령에게 먼저 許諾을 求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許諾없이 사냥하는 것은 다른 존재의 영혼을 해치고, 생명을 해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뿐인가요, 사냥을 한 뒤에는 반드시 感謝를 하고, 나에게 몸을 준 動物의 靈魂이 다시 再生, 還生하기를 빌어주는 것이 基本입니다.
작은 형제여, 너를 죽여서 미안하다
그러나 네 고기가 필요했단다
내 아이들이 배가 고파 먹을 것을 달라며 울고 있거든
작은 형제여, 나를 容恕해 다오
너의 용기와 힘, 그리고 아름다움에 경의를 표하마
자, 이 나무 위에 너의 뿔을 매달아 줄게
그리고 붉은 리본으로 장식해 주마
이곳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너를 기억하고 너의 靈魂에 경의를 표하마
너를 죽여서 미안하다
작은 형제여, 나를 容恕해 다오
아마도 샤마니즘 하면 우리는 맨 먼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무당의 푸닥거리를 떠올리겠지요. 신을 모신다고는 하지만 다분히 기복적(祈福的)인 그들의 모습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의구심을 가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가가 들어오고, 계급과 신분과 착취와 축적의 요소가 들어온 뒤에 변질된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샤마니즘은 구석기 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인류의 종교적 정신의 근원입니다. 그 당시에는 국가도 없었고, 계급과 신분과 착취와 축적의 요소도 없었습니다.
북미 인디언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저는 국가와 계급과 신분과 축적이 개입하기 전의 샤마니즘의 모습을 보려면 북미 인디언을 보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착취와 기복이 없습니다. 나보다는 늘 내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먼저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도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지식과 편견과 물질과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질 못하지요. 편견을 가지고 바라봅니다. 사람에 대한 태도가 그러할진대, 동식물이나 벌레나 바위 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자유로울 리 없겠지요. 그와 같은 편견과 망상으로부터 벗어나 나를 둘러싼 대상들을 찬찬히 살펴보세요.
산을 바라보세요. 나무와 풀들을 바라보세요. 하늘의 구름과 강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들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바람 앞에 서 보세요. 비를 맞아 보세요. 아침에 동녘에서 뜨는 해를 보세요. 그 바람을, 그 비를, 그 아침해를 그저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볼 수 있을까요?
내가 들이쉬고 내쉬는 숨결을 끊임없이 다른 사람, 다른 나무와 동물과 풀의 숨결과 섞입니다. 그리고 산과 구름과 비와 강과 바위의 숨결과도 섞입니다. 해와 달과 별의 숨결과도 섞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됩니다. 우리가 들이쉬고 내쉬는 바람에는 다른 존재들의 숨결이 들어와 있고, 나의 숨결은 다른 모든 존재들의 숨결에 갈마듭니다.
숨을 쉬는 그 自體만으로 이미 우리는 靈的인 存在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숨을 쉬는 이 몸을 한낱 物質덩어리로 여길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영혼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신성치 않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숨을 쉬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숨을 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존재들과 關係를 맺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하나로 連結되어 있지요. 그것보다 더 영적인 것이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샤마니즘입니다.
서정록 / 고대 동북아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글쓴이는 저서로 『백제금동대향로-고대 동북아의 정신세계』(학고재)가 있고, 역서로는 『지혜는 어떻게 오는가』(나무심는사람)가 있습니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3년10월호
북미 원주민 이야기4
인류의 스승들이 남긴 것
검은 호수 서정록
야스퍼스는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하여 유대교의 이사야와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중국의 공자와
노자, 배화교의 졸아스트, 인도의 석가모니와 같은 인류의 스승들이 출현하여 人類의 救援을 위한 宗敎를 創始한 이 時期를 人類의 추축시대(樞軸時代)라 말한 바 있습니다. 人類의 師標가 될 큰 가르침들이 出現한 時代라는 것입니다.
이 시기를 前後하여 조로아스터교(배화교), 불교, 기독교, 유교와 같은 큰 宗敎가 태동되었으니, 그의 말에는
분명히 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창시한 종교를 고등종교라 하여 다른 종교와 구별해서 부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커다란 誤解가 있습니다. 만일 조로아스트나 이사야, 예수, 공자와 노자, 석가모니오 같은 인류의 스승들이 태어난 時代가 살기 좋은 때였다면, 平和로운 時代였다면, 과연 그들이 그와 같은 새로운 종교를 일으켰을까를 生覺해 볼 때, 분명히 그렇지 않았으리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태어난 時代가 和平한 시대였다면, 그들은 그저 凡夫로 살았을 것입니다. 도저히 그대로 지나칠 수 없기에, 도탄에 빠진 이들을 구하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고 연마한 끝에 人類를 救援할 가르침을 創始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事實은 석가모니가 生老病死로 苦惱하는 住民들을 보면서 煩惱하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出家했던 것이나, 예수가 로마의 支配 아래 도탄에 빠진 유대민족과 다른 민족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十字架에 매달린 것을 通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또 公子가 활동하던 시기는 제후들이 득세하여 전횡하던 춘추시대였습니다. 조로아스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라시아의 초원시대에서 가축을 키우며 이동생활을 하던 아리안족이 中央아시아로 南下할 무렵, 中東의 사치스런 物質文化를 接하면서 混亂에 빠져들자 조로아스트는 그들의 삶을 일깨우기 위해 배화교를 창시했던 것입니다. 이사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유대민족이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바빌론에 유폐되어 있을 때,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며 장차 새로운 구세주가 나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렇듯 오늘날의 旣成宗敎가 太動되던 時期를 살펴보면, 極度의 混亂期로 치닫던 시기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으며, 政治는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다. 기성종교들은 당시, 이를 보다 못한 인류으 스승들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창시한 종교들인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에는 인류가 상고(上古)의 黃金時代에서 銀의 時代, 靑銅時代(또는 영웅시대), 鐵의 時代로 내려오면서 점점 더 나빠졌음을 한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銀의 時代란 지금으로부터 대략 1萬年 前, 女性들에
의해 農業이 시작된 시기와 一致합니다. 여성들이 달을 숭배했기 때문에 달빛을 따라 은의 시대라 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 시기는 그 이전의 수렵과 채집의 시대에서 초기 농경시대로 넘어온 시기를 말합니다.
청동시대는 쟁기가 발명되면서 남성들이 농업생산에 뛰어든 시기로, 대체로 남성들이 생산을 담당하기 시작한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힘센 남성들이 청동무기를 들고 다른 부족과 민족을 지배하는, 이른바 '영웅'시대이기도 합니다. 은의 시대가 이동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정착하여 농경을 시작한 평화의 시대였다면, 청동시대는 지배와 피지배가 갈리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여성보다 남성의 권위가 커지고, 힘이 법이 되고 권력이 되는 그런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뒤 철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이른바 '國家'가 태동합니다. 이 때쯤 되면 지배와 피지배는 물론 계급과 신분이 나뉘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갈립니다. 사람들의 삶이 극도로 고단해지기 시작한 시기라고 볼 수 있지요.
야스퍼스가 인류의 추축시대라고 지칭한 시대는, 신화적으로는 바로 이 鐵의 시대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 철의 시대는 근대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추축시대에 인류의 스승들이 창시한 기성종교들은 바로 이 鐵의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체제를 바탕으로 하는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産業時代에 들어오면서 기성종교들이 흔들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황금시대를 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바로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며 샤마니즙을 신봉하던 이들이 살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過去에 북미 인디언들이 살던 방식은, 그리고 세계의 많은 원주민들이 살던 방식은 아마도 생산수단으로 보면 가장 原始的인 形態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정작 重要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수렵과 채집의 시대야말로 國家와 階級과 身分, 支配와 被支配,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리고 蓄積과
搾取 등의 弊害가 아직 없던 시대라는 점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초기농경이 시작된 뒤의 유골의 건강상태보다 그 이전인 수렵과 채집 시대의 유골들의 건강상태가 더 낫다는 고고학계의 보고입니다. 농업이 시작되면서 생산수단이 안정적으로 확보되기 시작했으므로 더 건강해져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들이 아메리카에 들어오기 전의 인디언들의 건강상태가 더 나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이야길를 뒤집으면, 수렵과 채집 시대의 사람들은 수고롭게 작물을 재배하고 쌓아두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되겠지요. 그만큼 생산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생산노동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자기수련과 내면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 수렵과 채집 시대의 종교가 바로 샤마니즘입니다. 거기에 견주어 야스퍼스가 인류의 추축시대라 칭한 기원전 5세기 전후의 시기는 농업이 활성화된 이후로 잉여가 축적되면서 국가와 계급과 신분, 지배와 피지배,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그리고 착취와 축적의 폐해가 여실하게 드러난 시대입니다. 이런 이유로 석가모니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라고 불렀습니다. 조로아스트는 '혼돈의 시대'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혼돈의 시대, 고통의 바다를 헤쳐 나가도록 조로아스트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행위와 올바른 말의 가르침을 베풀었고, 석가모니는 죄업을 쌓지 말고 선행을 베풀 것을, 그리고 예수는 사랑과 믿음을, 소크라테스는 무지(無知)에 대한 깨달음을, 공자는 예악(禮樂)과 인(仁)을, 노자는 무위(無爲)의 삶을 가르쳤습니다. 모두 큰 가르침들이고, 그 가르침은 지금 이 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위의 어떤 스승도 당시의 정치적 지배양식과 생산양식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 모두가 우리의 잘못된 마음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말하면, 추축시대 인류의 스승들은 당시의 사회제도나 생산양식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회악으로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추축시대의 스승들은 그것을 변혁하기보다는 그 사회악으로부터 발생한 응어리와 고통과 아픔과 엉킨 매듭을 슬기롭게 푸는 지혜를 가르쳤다고 할 수 있지요.
그들의 가르침에는 지금 보더라도 커다란 지혜가 담겨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르침이 아무리 큰 것이라 하더라도 당시의 사람들이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의 제도와 신분, 계급이라는 것은 언제든 엄청난 사회적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 축적과 착취, 부자와 가난한 자의 나뉨은 열심히 일해도 먹을 것을 얻기 어려운 곤경으로 사람들을 내몰기 일쑤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삶이 고단할 수밖에요. 모든 것을 마음 하나로 풀기에는 세상이 너무도 각박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견주어, 초기 샤마니즘의 시대에는 국가도, 계급과 신분도, 착취와 축적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필요할 때는 채집하고 수렵해서 양식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또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들은 물질의 축적 대신 나눔의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나를 생각하기보다는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물론 추축시대의 인류의 스승들도 나눔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동정과 보시의 수준을 넘지 못합니다. 물질의 여유가 있을 때만 나누는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에는 나눔이 곧 생활이었지요.
물질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이긴 하나 지나치면 반드시 해가 되지요. 물질을 쌓아두고 축적하기 시작하면 개인의 욕망과 이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북미 인디언들은 개인의 욕망을 확대하고, 물질에 집착하고, 이기심을 키우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합니다. 그것은 나와 남을 나누고 다른 사람, 다른 존재들을 나의 형제요, 친척으로 보기보다는 물질을 얻기 위해 대상으로, 나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볼 틈을 열기 때문이지요.
돌이켜볼 때, 農業의 剩餘로부터 促發된 이러한 신분과 계급, 축적과 착취의 잘못된 문화는 초기 샤마니즘에서
가르친 "몸과 물질에도 靈적인 要素가 있다(spiritual body)"는 커다란 가르침을 經視해 왔습니다. 그 結果 우리는 自然의 神性함으로부터 멀어지고, 남들로부터 멀어지고, 自我와 에고의 섬에 갇히는 隔離되고 외로운 存在가 되고 말았습니다. 現代의 都市生活은, 그리고 商品의 匿名性(익명성)은 이러한 自我와 에고의 섬을 더욱 强固하게 부추기는 側面마저 있습니다. 實際로 自然의 生命과 物質들의 靈的인 要素를 否定하고 道具的 對相으로 간주하는 이러한 잘못된 思考는, 우리의 몸과 생명마저 그 신성함이 부정되고 商品性의 잣대로 취급되리라는 것을 豫告합니다. 이미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性을 상품화하는 데서 우리는 그 끝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이것을 '소외(疎外)'라고 했지요. 그리고 인류의 추축시대의 스승들과 달리 生産의 問題를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산이 착취와 축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社會革命을 主導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몸과 자연의 물질에 靈的인 要素가 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또 정치적 사회주의의 실험이 실패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렇기는 하나, 그가 제기했던 생산과 축적의 폐해를 나눔으로 풀어야 하며,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疎外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즉, 모든 존재는 서로 連結되어 있고 서로 依存한다는 가르침-에 함축된 지극한 뜻마저 無視되어서는 안 됩니다. 失敗했을망정, 그가 提起한 問題는 지금도 有效하기 때문입니다.
北美 인디언들은 이 문제를 아주 智慧롭게 풀었습니다.
自發的인 나눔과 自身을 낮추는 恭敬과 이 世上의 모든 存在의 平等함을 具現한 民主的인 方式으로 말이지요.
제3세계의 원주민들 또한 이 문제를 큰 어려움 없이 풀어왔던 것을 볼 때, 우리는 북미 인디언들과 제3세계의
원주민들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 아주 많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성종교에 견주어 샤마니즘을 저급한 원시적인 종교라 무시하지만,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에서 보듯이 오히려 샤마니즘의 地平이 기성종교보다 훨씬 더 넓고 自由로웠다는 것을, 오늘의 우리보다 훨씬 더 人間답고 神性하게 살았다는 事實을 우리는 外面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生態的 危機가 甚刻해지고, 地球生命의 위기가 可視化된 狀況에서는 모든 것을 마음의 問題로 푸는 데에도 限界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몸과 物質에, 自然에 靈的인 要素가 있다는 것을 認定하고, 모든 살아 있는 生命이 神性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認定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自然이 '한 몸'임을, 동식물과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하나도 함부로 할 수 없는 神性한 존재임을, 이 世上의 모든 存在가 '하나'로 連結되어 있음을 깨달아야겠지요. 나아가 기존의 지배와 축적과 착취의 문화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고, 더 늦기 전에 다음 세대를 위해서 恭敬과 나눔의 文化를 發展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북미 인디언들이 白人들의 抑壓과 蔑視와 彈壓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우리에게 傳해 주고 있는
智慧인 것입니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3년11월호.
민주화된 샤머니즘
-검은 호수 서정록
얼마 전, 박기복 감독의 《영매(靈媒)-산 자와 죽은 자의 和解》란 映畵를 보았습니다. 2002년 부산영화제에서 개봉된 것으로 무당의 세계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엮은 영화입니다. 강신무, 박미정 모녀의 한과 애환도 징했지만, 특히 진도의 무당인 채정례 할머니가 자신의 언니인 채둔굴 할머니가 죽은 뒤 씻김굿을 하며 부르던 노래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만큼 깊은 印象을 주었습니다.
여기서 靈媒란 靈的인 仲裁者란 뜻이지요. 많은 이들이 샤마니즘하면 샤만-우리는 무당이라고 하지요-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샤만은 인간 세계와 영적인 세계를 중재하는 영매로 불려집니다. 옛날에 샤마니즘을 신봉했던 집안에서는 집안에 대소사가 있으면 으레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 風習은 지금도 남아 있지요.
이런 靈媒가 하는 일은 다양합니다. 길흉을 점치는 것과, 부정을 쫓고 복을 들이는 것에서부터 죽은 자의 靈魂을 저승에 보내는 일이며, 神들린 사람으로부터 삿된 靈을 쫓아 치료해 주는 일, 그리고 天地間의 神靈들과 萬物을 기쁘게 하는 천지굿에 이르기까지 靈的인 거의 모든 것에 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靈媒로서의 샤만은 시베리아와 티베트, 호주, 아프리카, 중남미 등지에 널리 퍼져 있으며, 샤마니즘 文化가 있는 지역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영적인 행위에 대한 代價를 받습니다. 다분히 職業化되어 있고 特權化되어 있지요. 靈的인 問題를 다루는 專門家로서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샤마니즘이라고 해도 북미 인디언들의 경우에는 이런 舊大陸의 현상과는 區別되는 점이 있습니다. 물론 에스키모와 북서해안과 캘리포니아에 사는 일부 부족들처럼 영매로서의 샤만을 갖고 있는 경우들도 있습니다만, 全切적으로 보면 샤만보다는 治療師인 呪術師가 훨씬 더 普遍的인 形態입니다.
게다가 북미 주술사들은 代價를 要求하지 않습니다. 물론 주술사들이 마을의 누군가를 치료하거나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면 당사자는 음식이나 옷가지 등 성의껏 선물을 준비해서 가지고 옵니다. 그러나 基本的으로 代價란 槪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고마움을 표시하는 선물의 개념인 것이지요. 인디언 자료에 보면, 더러 주술사들이 대가를 요구하거나 받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것은 白人들이 들어온 후에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白人들이 들어오기 前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던 것이지요. 왜냐하면 物質이나 代價를 요구하는 행위는 神이
주술사에게 부여한 神性한 任務를 辱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디언들은 代價를 받고 靈的인 일을 하거나 치료행위를 하는 것은 마술사나 하는 짓으로 看做합니다.
인디언들은 마술사들이 物質에 대한 慾心과 利己心에서 그와 같은 행위를 한다고 말합니다. 나바호족에는 특별히 물질을 탐하는 마술사를 가리켜 부르는 말이 있는데, '인간늑대'란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貪慾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경우에는 인간늑대 사냥에 나서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극단적인 것이긴 하지만, 북미 인디언들이 利己心과 物質에 對한 貪慾을 얼마나 警戒하는지를 잘 보여 주는 예라 할 것입니다.
그럼 주술사들은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가 나오지요. 주술사들은 自己 먹을 것은 基本的으로 自己가 解決합니다. 자기가 직접 수렵도 하고 채집도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생계를 해결해 가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奉使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디언 사회에서 주술사가 된다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그만큼 고단하고 힘이 드는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남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누군가 아픈 사람이 찾아오면 한밤중일지라도 즉각 달려가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모호크족의 추장이었던 톰 포터는 한 연설에서 추장이나 주술사 등 지도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추장이나 지도자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謙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늘 이웃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며 살기 때문입니다. 物質的으로나 精神的으로나, 또 靈的으로나 政治的으로나 그들은 자신의 주민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들을 아낌없이 나누어 줍니다. 그들은 늘 나누어 주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여러분들은 마을에 가시면 추장들이 사는 집을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작고, 가장 볼품없는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인디언 마을에 가시거든 그 마을에서 가장 작고 초라한 집을 한번 찾아가 보십시오, 반드시 그 집에 그 마을의 指導者가 살고 있을 겁니다.
물론 자기 자신보다는 늘 이웃과 민족을 위해서 봉사하는 생활을 하는 만큼, 그들은 주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주저 없이 추장이나 주술사와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또 인디언 청소년들 역시 마찬가지로 어른이 되어서 추장이나 주술사가 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北美 인디언 사회에서 우리가 注目할 것은 呪術師만이 靈的인 對話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점입니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면 영적인 대화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神命探究(vision quest)에 나서는 것이 그것을 잘 말해 줍니다. 신명탐구라는 것은 위대한 신령이나 동식물, 또는 다른 존재들로부터 영적인 가르침을 얻기 위해 들판이나 산으로 가서 斷食하며 自身을 낮추고 祈禱하는 行爲를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女性들은 달거리를 하는 동안 마을에서 떨어진 그녀들만의 위그앰(blood lodge)에 가서 지내는데, 이 때 斷食하고 祈禱하며 必要한 靈的인 가르침을 얻습니다.
따라서 北美 인디언 사회에서는 구대륙과 달리 누구나 영적 세계와 關係를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주술사는 일반인들보다 영적으로 큰 능력을 갖고 있거나 많은 신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家族 內에서 발생한 간단한 질병이나 영적인 문제는 우선, 할머니나 집안의 어른들 손에서 치료가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치료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그때 비로소 뛰어난 영적 능력을 갖고 있는 呪術師를 모셔다 치료를 받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북미 인디언 사회에는 구대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그런 특권적 의미의 靈媒는 存在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북미 인디언 사회의 샤마니즘을 '민주화된 샤마니즘'이라고 말합니다. 구대륙의 샤마니즘이 샤만을 중심으로 독점적, 지배적 성격이 강하다면 북미 인디언 사회는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 보다 平等하고 民主的인 性格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北美 인디언의 이와 같은 民主化된 샤마니즘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요?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시베리아 동부 지역에서 거주하는 고아시아족인 축치族과 코리악族에 注目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구대륙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그런 職業化된 샤만이 없습니다. 가족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가족 중에서 제일 연장자나 또는 영적인 능력이 뛰어난 다른 사람이 의례와 굿을 진행하지요. 학자들은 이들의 이와 같은 가족적 샤마니즘으로부터 아시아나 다른 지역의 전문화된 또는 직업화된 샤마니즘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따라서 아시아나 다른 지역의 샤마니즘도 고대에는 축치족이나 코리악족에서 볼 수 있는 가족적 샤마니즘의 형태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그것이 전문화된 또는 직업화된 샤마니즘으로 변화된 것이지요.
그런데 축치족이나 코리악족의 샤마니즘에는 샤만이 복화술(複話術)을 사용하여 치료하는 독특한 의례가 있습니다.이러한 의식은 이른바 '흔들리는 천막(Shaking Tent)'이라는 이름으로, 에스키모는 물론 북아메리카의 오지브웨족과 대평원의 민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 의례가 유독 북아메리카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때, 북아메리카의 민주화된 샤마니즘 또한 축치족이나 코리악족의 가족적 샤마니즘으로부터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북아메리카의 가족 형태를 보면 축치족이나 코리악족의 전통적인 가족이 보다 확장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축치족이나 코리악족의 가족이 우리와 같은 大家族 槪念에 다시 그들과 함께 部絡을 이루는 사람 모두를 포괄하는 '확장된 가족(extended family)' 개념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북아메리카의 주술사들은 대부분 이런 확장된 가족을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歷史的으로 보면, 구대륙의 전문화된 또는 직업화된 샤마니즘은 農業革命 以後 시작된 잉여의 축적과 욕망의 확대, 신분과 계급, 국가의 등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북아메리카의 확장된 가족에 기초한 민주화된 샤마니즘은 수렵과 채집 시대의 잉여와 축적과 계급이 없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샤마니즘이 다른 지역의 샤마니즘에 견주어 보다 근원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신분과 계급이 사라진 민주화시대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샤만의 지위도 옛날과 같지 않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도처에서 관련된 모임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샤만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영적으로 큰 능력을 가진 무담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능력을 개인의 이기심이나 탐욕을 위해 사용하는 이들은 점차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고 있습니다.
비록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었다고는 하나 오늘날은 물질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그렇게 볼 때 과거의 특권화된 샤마니즘이 지배했던 토양의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의 길과 영적인 길은 다르지요. 물질의 길이 축적과 지배의 길이라면, 영적인 길은 모두가 하나 되는 길입니다. 또 물질의 길이 인간 중심의 길이라면, 영적인 길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평등해지는 길입니다. 또 전자가 불균형과 부조화의 길이라면, 후자는 균형과 조화의 길입니다.
그래서 멕시코의 영적인 교사인 리앤디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靈的인 길이고 다른 하나는 物質의 길이다.
만일 네가 物質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지금 하던 대로 계속하라. 그리고 최선을 다하라.
만일 네가 靈적인 길을 가려고 한다면, 그 때는 너 自身을 위해서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創造主를 위해서 일을 할 것인지 決定해야만 한다. 만일 네가 칭찬과 명성을 추구한다면 너는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네가 칭찬을 듣기 願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너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한다면, 너는 틀림없이 화를 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네가 너 自身을 위해 일한다면, 칭찬과 비난을 모두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네가 칭찬도 비난도 원치 않는다면, 그리고 正確히 創造主를 위해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참다운 삶을 위해 일을 하고자 한다면, 그 때는 칭찬도 비난도 마음 쓸 必要가 없다. 그것들은 너를 덫에 걸려 넘어지게 할 뿐이다.
우리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삶에 注目하는 理由는 이러한 民主化된 샤마니즘으로 物質의 길을 먼저 멀리하고 靈적인 길을 가는 그들의 態度 때문일 것입니다. 다만, 위의 글에서 리앤디스는 영적인 길을 다시 둘로 나누고 있는데, 영적인 길을 가되 "너 자신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개인의 욕망과 힘의 확대를 위해서 영적인 힘을 사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 반해 "창조주를 위해서 일한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디언들은 이 길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存在가 幸福해지고, 平等해지고, 서로 하나 되는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이 混亂한 時代가 요구하는 새로운 길이 아닐까 합니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3년12월호
영성에 대해 - 서정록
지금은 靈性의 時代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靈性이란 말이 널리, 그리고 흔하게 쓰입니다. 또 수많은 靈性
共同體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구의 생태적 위기가 가시화되고 傳統時代의 共同體文化가 점차 사라지면서
이런 현상은 加速化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靈性의 本質에 대해서 混亂을 겪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이 靈性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쓰는 사람마다 그 意味와 뜻이 다른 境遇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神, 또는 神的인 것과 關聯된 것을 靈性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커뮤니케이션과 네트워크에 基盤을 둔 社會的 靈性을 말하기도 합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나 前者의 경우는 神 中心으로 봄으로써 자칫 일상적 관계나 자연과의 관계 속에 들어 있는 영성적 의미를 忘覺하기 쉽고, 後者의 경우는 자칫 모든 것을 關係의 問題로 풂으로써 '神性함'의 問題를 소홀히 다룰 危險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生態的 均衡과 秩序를 回復하는 것을 念頭에 두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생태적 균형과 조화가 영성 문제의 核心이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는 자칫 생태적 근본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성의 문제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靈에 對해서 시베리아나 호주, 아프리카, 북미, 아시아 등지의 샤마니즘을
觀察해 보면 고대인들은 숨결(breath)이나 피를 언급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靈魂이란 抽象的인 槪念이 없던 古代人들에게 生命을 可能하게 해주는
피나 숨결이야말로 몸과 마음을 살아 있게 해 주는 그 무엇이라 여겨졌던 것이지요. 實際로 古代의 創造 神話들을 보면 하나같이 '生命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어 人間과 萬物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숨결은 바람입니다. 바람은 우리가 呼吸을 할 대 우리 몸 속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합니다. 그와 함께
다른 존재의 몸에도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서로의 숨을 섞습니다. 피도 마찬가지지요. 피는 물입니다. 물은
新陳代謝를 通해 우리 몸에 들어왔다가 나갔다 하면서 우리를 살아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을
들락날락거리는 물은 다른 존재들의 몸을 들락거리는 물과 섞입니다.
따라서 숨결이나 피는 關係性, 循環性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인들은 직접적이고
가시적인 대상들 너머에 있는 것이면서 이들 대상들을 살아 있게 하는 同時에 다른 존재들과 관계짓는 것을
靈이라 生覺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關係'란 무엇인가요?
關係란 개별적인 존재와 대상들을 連結짓고 서로 依存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다.
含縮이 많은 말이지요.
예를 들어 보지요. 인디언들의 靈性과 관련된 말 중에 가장 重要한 말로 '偉大한 神靈'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자칫 서구의 神(god)에 해당하는 말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인디언들이 理解하는 偉大한 神靈은 그런 人格的인 神이 아닙니다.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바람이나 물의 活動을 이해하면 이해하기가 쉬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람은 끊임없이 生命을 가진 모든 존재를 드나들며 모든 存在들의 숨결을 서로 섞습니다. 그렇게 모든 存在들을 連結짓지요. 물 또한 모든 존재들을 넘나들며 서로의 물을 섞습니다. 어디 숨겨과 물뿐인가요. 우리의 行爲 또한 다른 存在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들은 또 다른 存在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나의 行爲는 나를 둘러싼 關係의 關係網을 돌아 結局
내게로 돌아옵니다. 우리의 生覺도 마찬가지지요. 나의 生覺은 다른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關係의 關係網을 돌아 다시 나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게 서로 連結된 모든 存在들의 關係와 그 意味의 總合이 바로 偉大한 神靈입니다.
그러므로 偉大한 神靈은 서양이나 아시아의 神처럼 人格的인 그런 神이 아닙니다.
이 世界의 存在의 眞相이면서 各各의 存在에게 意味를 附與해 주는
인드라網과 같은 窮極的인 그 무엇인 것입니다.
인디언들은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靈(魂)을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다시말해, 生命을 가지고 있는 存在는 모두 靈을 갖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 때 靈은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몸의 主宰者를 意味합니다. 나라는 存栽에 의미를 주는 그 무엇을 그들은 靈이라 했던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존재한다는 것은,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나를 前提로 합니다. 그런데 나는 나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自足的인 存在라면, 굳이 다른 존재가 필요하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존재에게 依存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나 以外의 다른 存在들과 같은 時·空間에 있을 때에만 生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때 비로소 삶의 意味를 가질 수 있는, 그런 二重 三重으로 缺陷을 가진
存在입니다.
그래서 主宰者로서의 나의 靈을 말하려면, 나를 둘러싼 關係網을 前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關係 속에서 나의 존재의 의미와 내가 할 일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다못해 음식을 먹고 마시려고 해도 다른 존재의 도움 없이는 不可能합니다. 다른 존재의 犧牲 없이는 말이지요.
따라서 主宰者로서으 靈은 스스로는 존재할 수 없고, 오직 이 세상의 關係網의 작은 매듭으로서만이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나이되 내가 아닌 것이 나의 主宰者의 實相이며, 그것을 아는 것이 所謂 깨달음의 本質인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소중하면 다른 존재들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소중합니다. 결국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지요. 모두 다 偉大한 神靈의 한 部分이요, 關係의 그물網의 한 軸인 것입니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우리는 動植物을 取해야 합니다. 生命이 없는 것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生命만을 먹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딱한 모습입니다. 東學의 2代 敎主였던 海月 선생은
이것을 가리켜 "生命으로 生命을 먹인다(以天食天)" 했습니다.
『예언자』의 작가인 '칼릴 지브란'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풉니다.
"네가 大地의 香氣를 맡으며 살 수 있기를,
그리고 하늘을 向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 햇빛을 받고 살아가기를 빈다.
그러나 너는 먹기 위해 生命을 죽여야만 하고,
너의 渴증을 축이기 위해 새로 태어난 生命을 위해 生産해 낸 牛乳를 빼앗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너의 食事가 崇拜의 行爲가 되게 하라.
그리고 숲과 평원의 純粹하고 無垢한 存在들이 犧牲되는 식탁을 너의 제단이 되게 하라.
그들이 사람 안에서 더 순수하고 무구해질 수 있도록...
動物을 죽일 때 그에게 가슴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라-
너를 죽인 똑같은 힘에 依해서 나 역시 죽을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먹힐 것이다.
너를 나의 손에 가져오게 한 自然의 法則은 나를 보다 더 强力한 손에 넘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피와 나의 피는 그렇게 사라지지만 우리의 水液은 하늘의 나무의 목을 적실 것이다.
그리고 사과를 깨물 때 사과에게 가슴으로 말하라-
너의 씨앗들은 내 몸에서 자랄 것이다. 어느 날 네 꽃봉오리가 내 가슴에서 필 것이다.
그리고 너의 香氣는 나의 숨결이 될 것이다. 우리는 함께 四季節 내내 기뻐할 것이다. "
그의 말은 우리가 살아 있는 生命을 取하는 行위가 崇高한 祈禱의 行爲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디 먹는 것뿐입니까? 우리가 입는 것, 또 우리가 居住할 곳을 마련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곡식을 기르기 위해 땅을 파는 문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칼릴 지브란은 우리의 모든 行爲가 祈禱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인디언들 역시 똑같은 말을 합니다. 꼭 必要한 것만 取하고 不必要한 殺生을 禁하라고 말이지요. 그들은 日常의 모든 行爲에 對해서 感謝의 祈禱를 드립니다. 그들에게는 먹는 것도 기도이고, 일하는 것도 기도이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기도입니다. 내 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전사의 길을 가는 것도 기도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내 목숨을 내어놓는 것도 기도입니다. 가족이 쓸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모카신에 예쁜 꽃이나 기하학 문양을 그리는 것도 기도입니다. 아이들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기도입니다. 시냇가에 물을 뜨러 가는 것도 기도입니다.
이처럼 北美 인디언들은 그들의 일상적 행위가 殺生이 되지 않도록, 폭력이 되지 않도록, 저주가 되지 않도록,
그리하여 나와 다른 存在들이 平和롭게 共存할 수 있도록, 그렇게 언제까지나 그 平和가 계속되도록, 그렇게
이 世上에 均衡과 調和가 유지되도록 偉大한 神靈께 祈禱합니다.
그들은 24시간 내내 늘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事實입니다.
만일 이러한 至極한 기도가 없다면, 우리의 일상적인 살생과 폭력의 행위를 신성하게 만들어 주는 儀禮가 없다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아비규환의 地獄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 기자인 스티브 윌이 이로쿼이 연합의 의장이었던 레온 세난도어 추장에게 인디언들은 왜 그렇게 儀禮를 많이 하느냐고 물었을 때, 만일 인디언들이 그러한 의례를 행하지 않으면 이 世上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對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靈性이란 關係의 그물網인 同時에 그와 같은 祈禱를 可能하게 해주는 그 어떤 神性한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神만을 말하고 日常의 行爲를 소홀히 하는 宗敎는 形式과 權位에 빠진 것이라 할 수 있지요.
反對로 社會的 靈性만을 말하는 것은 자칫 우리의 일상적 행위를 살생과 폭력으로 점철되도록 방임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靈性은 우리가 關界의 그물網 속에 놓여 있는 存在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同時에 그 關係網 속에서의 우리의 行爲가 意味를 갖도록, 그리고 幸福해질 수 있도록 해 주는 根源的인 그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靈性 문제의 일차적 과제는 잃어버린 關係性을 回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關係, 自然과의 關係, 動植物과의 關係, 해와 달·별과의 關係, 空氣와의 關係, 바람과의 關係, 산과 강과의 關係 등등 이 世上의 모든 關係性을 말이지요. 그러나 그 關係性은 반드시 平等한 것이어야 합니다. 差別지어지고 階級化된
關係性은 이미 靈性을 歪曲하고 差等化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중심 내지 특정집단 중심의 關係網을 다른
존재들에게 강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平等 없이는 平和가 있을 수 없습니다. 平和와 安息이 없는 기도는 이미 기도가 아닙니다. 그러한 기도는 영적인 힘을 개인이나 특정집단의 이기심과 탐욕을 위해 사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靈性의 길에는 언제나 平和와 平等과 幸福이 있습니다. 그리고 祈禱가 있습니다. 沈默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나를 낮추고 평화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의지가 있습니다. 공경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偉大한 神靈에게 말하거나 기도할 때, 또는 그와 대화할 때, 偉大한 神靈은 단순히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神이 아닙니다. 내게 福을 주기를 기원하는 對상도 아닙니다. 오히려 지극한 마음으로 子息을 돌보는 어머니처럼 우리를 둘러싼 모든 存在들이 幸福하기를 기원하며 그 앞에 自身을 낮추고 서 있는 限없이 神性한 그 무엇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디언 靈的 敎師들은 말합니다.
그 때 비로소 偉大한 神靈은 그대 안에 있고, 그대는 偉大한 神靈 안에 있다고... 그대가 바로 神이라고...
*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4년1월호.
숲의 사람들 - 서정록
검은 호수 서정록
숲은 뿌리를 땅에 박고 하늘을 向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나무-사람들이 사는 동네입니다.
同時에 살아 있는 뭇 生命들의 쉼터입니다. 北美 인디언들은 나무를 '서 있는 사람' 또는 '키 큰 사람'으로 부르지요. 굳이 인디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人類의 燈불이 된 큰 스승들이 큰 나무 밑에서 智慧를 길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詩人 시드니 레이니어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나는 혀가 없는 나무를 위해서 말한다
봄이 가고 다시 봄이 올 때마다 나무는 더욱더 高貴해진다
그리고 말없이 깊은 生覺에 잠겨
祈禱하는 굳센 팔들을 쭉 펼치고는
커다란 祝福의 가지들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서 있다
나무는 서 있는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이 시구는 많은 여운을 줍니다. 그런 나무들이 모인 숲은 우리의 어두운
눈을 열어 靈적인 開眼을 하게 해 주고, 때로는 용기와 위로를 주고, 때로는 친구가 되어 줍니다. 그래서 숲과
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자란 사람들과 콘크리트 都市에서 자란 사람 間에는 情緖的으로 커다란 差異가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인도의 수행자들이 나이가 들면 숲으로 들어가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거라 생각됩니다.
무릇 生命을 가진 存在는 空氣나 물과 마찬가지로 숲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소위 문명이 싹튼 곳들을 보면 예외없이 이 숲을 破壞하고 있습니다.
수메르와 그 뒤의 바빌론 문명이 발생한 중동 지역이 과거에 나무들이 있는 초원 지역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聖經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란 말이지요. 적어도 구약 시대만 해도 -대략 기원전 2천 年에서 1천 년경만 해도- 틀림없이 숲과 초원이 같이 있는 그런 地域이었습니다.
그것이 過度한 羊과 염소 유목으로 인해 지금처럼 荒無地로 變했습니다.
그리스 문명의 발상지로 유명한 미케네 지역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過去에는 울창한 숲으로 뒤덮였던 곳이지만, 그래서 그리스 神話에 온통 숲의 神과 精靈들에 關한 이야기로 넘쳐나는 곳이었지만, 오늘날은 민둥山만이 남아 있는 그런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科學과 技術이 넘쳐나는 現代 文明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숲과 우리의 삶은 과연 兩立할 수 없는 것일까요?
전 그렇지 않은 證據를 北美 인디언들에게서 봅니다. 북미 인디언들은 東部와 西部의 廣大한 山林을 배경으로
人類史에 다시없는 靈적인 共同體를 이루었던 사람들입니다. 수우족, 샤이엔족 등이 東部의 白人들에게 밀려
大平園에서 버펄로 사냥을 하는 유목생활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18세기 말엽 이후의 일이라 할 수 있으며,
그들 역시 다른 인디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廣闊한 山林을 舞臺로 數千 年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 하면 몽골리안으로 알고 있고, 그래서 당연히 아시아에서 베링海를 건너 아메리카로 건너간 사람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맞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잘못된 이야기라 할 수 있지요. 무슨 이야기나 하면, 血統上 또는 遺傳的으로는 그렇게 아시아에서 건너갔을지 몰라도
文化的으로는 아메리카에서 그들 나름의 獨者的인 文明의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메리카에서 最初로 文明을 꽃피운 곳은 古代의 마야 地域입니다. 지금의 멕시코 남부에서 유카탄 반도에 이르는 지역이지요. 이들 지역에서는 기원 전후부터 본격적인 문명이 발생하고, 그 꽃은 北美와 南美 大陸으로
퍼져나가 아메리카에 찬란한 인디언 文化를 이룩하게 됩니다.
얼마 전, 人類의 紀元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한 女人의 後孫이라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따라서
굳이 아시아에서 건너갔네, 안 갔네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文化的으로 어떻게, 또 어떤 꽃을 피웠나 하는 것이
더 重要하다고 生覺합니다. 그렇게 볼 때 아메리카의 인디언 文化는 분명히 구대륙과는 다른 獨者的인 文化의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白人들이 그들의 文化를 破壞하고 歪曲하기 前까지는 말이지요.
그런데 같은 아메리카라고 해도 中南美 지역과 北美 지역 間에는 커다란 差異가 있습니다. 中南美에서는 일찍부터 잉여와 축적, 계급과 신분 구조, 국가의 지배 구조 등이 나타나면서 중동이나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숲을 破壞했습니다. 所謂 마야제국, 아즈텍제국, 잉카제국 등이 바로 그러한 文明의 産物이라 할 수 있지요.
여기에 견주어 北美 인디언의 境遇는 狀況이 다릅니다. 물론 그들의 文化에 마야 문명의 영향을 받은 흔적들이 남아 있고,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北美 인디언 문화와 中美 지역의 인디언 문화에는 유사점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北美 인디언들은 中南美 인디언과 달리 剩餘를 蓄積으로 만들지 않았고, 身分과 階級, 國家와 같은 것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先祖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숲을 破壞하지 않으면서,
卽 自然과 均衡과 調和를 이루며 幸福하게 사는 法을 發展시켜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白人들이 처음 北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끝도 없이 광활하게 펼쳐진 거대한 숲, 그것도 키가 백미터
가까이 되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들을 보고는 그 웅장함에 경탄을 연발했다고 합니다.
事實 北美 인디언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높은 水準의 靈的 삶을 살았던 데에는 바로 그와 같은
울창한 숲이 있었다는 점을 念頭에 둘 必要가 있습니다. 울창한 숲 가장자리에 살다 보면 큰 마을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自然히 작은 親族共同體 單位로 숲 가장자리에 드문드문 마을이 形成되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그들이 살던 그 숲의 마을을 生覺해 보십시오. 뒷山에 가도 앞山에 가도, 몇 사람이 팔을 잡고 둘러싸야 겨우 품에 안을 수 있는 그런 큰 나무들이 빽빽했을 것입니다. 아니, 마을 自體가 그런 큰 나무들에 둘러싸여 있었겠지요. 요즈음 우리 주변의 산들은 거의가 팔뚝 굵기보다도 작은 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북미 대륙에는 數百 年씩 묵은 큰 나무들이 즐비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큰 나무들을 堂山나무, 또는 신목(神木)이라 해서 崇拜하는 文化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큰 나무들은 人間보다도 오래 살아 大地의 神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요.
그런 큰 나무 앞에 서면 아무리 感性이 무딘 사람이라도 경건해지게 마련이니, 神靈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北美 대륙의 광활한 山林에 미쳐 一生을 산 존 뮤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白人들에 의한 西部開拓 時代가 끝났을 때 곳곳에 남아 있던 몇몇 울창한 山林 地域을 保護하기 위해 國立公園의 槪念을 創案해 이를 實現시킨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캘리포니아 일대의 울찬한 산림들을 순례하며 많은 글과 그림들을 남겼는데,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나무들이 하나같이 엄청나게 굵고 키가 百미터 이상 되는 神靈스러운 나무들입니다. 그런 나무들이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숲, 그것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地平線과 맞닿은 숲들을 想像해 보십시오. 그뿐이 아닙니다. 그가 숲에서 나무들과 숨결을 나누며 쓴 글들은 珠玉처럼 아름답게 빛납니다.
東部 地域도 마찬가지였습니다. 白人들이 이주 初期에 남긴 글과 그림들을 보면 숲이 얼마나 울창하던지,
神秘스러울 정도입니다.
北美 인디언들이 살았던 숲은 바로 그런 경이와 아름다움과 꿈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숲이 울창하면 계곡에
물고기도 많은 법. 그들은 그런 나무 -사람들이 모인 숲 가장자리나 물이 있는 골짜기에 살면서 수렵과 어렵,
그리고 채집 생활을 하며 '풍요로우면서도 소박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워낙 숲이 울창하다 보니 야생 과실과도 많았었나 봅니다. 특히 야생 딸기 등이 많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철따라 산에서 나는 이런 과실들과 인디언
상추로 알려진 왕고들빼기 등의 野菜를 거두어다 먹었습니다. 모든 게 自然 그대로의 것이었지요.
肥料 치고 農藥 쳐서 재배한 요즈음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지요.
발도르프 학교의 설립자로 유명한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어떤 사람이 "요즈음은 왜 과거의 위대한 스승과
같은 분들이 잘 안 나옵니까?" 하고 묻자, 슈타이너가 먹는 것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맞을 겁니다. 요즈음처럼 化學肥料로 키운 作物과 自然에서 제 스스로의 힘으로 宇宙의 氣運을 받아 成長한 作物은 그 靈적인 힘이나 氣運이 다를 테니 말입니다. 인디언들이 그처럼 높은 靈性을 가지고 있었던 데는 이처럼 山林을 잘 保存하고, 自然에서 나는 튼실한 것들을 取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늘 感謝하면서 말이지요.
게다가 그들은 아시아처럼 통나무집을 짓지도 않았습니다. 땔감 또한 반드시 죽은 나무만을 모아다 썼습니다.
그러므로 숲이 破壞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인디언 사회에서 땔감을 담당한 것이 女性이었다는 점과
그들에게 나무를 찍어 넘어뜨릴 도끼가 없었다는 것이 이것을 象徵的으로 말해줍니다.
그래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熱心히 努力하면 숲과 강에서 먹을 것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그들은 人類史에서 찬란히 빛나는 '나눔의 문화'를 發展시켰는데, 이러한 나눔의 文化야말로 어려운 시절에 굶주림과 기아를 피하게 해 주었습니다. 내가 사냥에 失敗해도 다른 사람이 成功하면 같이 먹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캘리포니아의 해안 지대에 사는 오론네족의 경우, 사냥해 오면 4분의 1가량만 自己가 取하고, 나머지는 이웃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지극한 나눔의 實踐은 북미 인디언들에게 거의 共通的으로 나타납니다.
또한 그들은 나 個人보다는 家族과 이웃과 部族을 먼저 生覺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本이 되고, 서로를 챙겨주는 家族共同體가 形成됩니다. 인디언들은 혈연가족뿐 아니라 같이 마을을 이루며 사는 이들을 모두 가족으로 여겼습니다. 이른바 '擴張된 家族'이지요. 이런 擴張된 家族은 社會經濟的인 共同體이기도 하면서 靈的인 共同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擴張된 共同體의 배경에는 울창한 숲과 自然이 있고, 동식물이 있습니다. 산과 강이 있고, 하늘과 구름과 바람이 있고, 냇물이 있고, 해와 달과 별이 있습니다.
인디언들이 큰 나무를 '서 있는 사람', '키 큰 사람'이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숲의 文化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무를 그저 불쏘시개나 건축물의 재료로만 생각하는 그런 문화에서는 그런 感性이 나올 수 없지요.
숲은 결코 文明의 걸림돌이 아닙니다. 除去해야 할 對相이 아니란 말이지요. 우리는 길을 낸다며 산들을 깎고
동강내고 허리를 뚝뚝 잘라 버립니다. 그리고 함부로 나무를 잘라내고 파헤칩니다. 심지어 지구의 허파라는 熱帶 雨林마저 無差別로 베어 냅니다. 인디언 식으로 말하면 숲은 어머니 大地의 皮膚이지요. 인디언의 어법이 아니더라도 山이나 구릉은 살아 있는 生命입니다. 우리의 祖上들이 山神靈을 말하고, 山에 들어갈 때나 무덤을 쓸 때
먼저 山神께 祭를 지내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산과 숲을 함부로 파헤치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함부로 파헤쳐진 山을 지날 때면 山이 우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파서 지르는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동물들이 아파하는 신음소리가 들립니다. 그 비명이 귓전을 때립니다.
인디언들은 말합니다. 大地 위에 팔을 벌리고 서면 우리 또한 나무라고...., 그렇게 움직이는 나무일 뿐이라고..., 나무가 우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만 한 곳에 뿌리를 박고 서 있을 뿐이라고..., 우리는 나무로부터
大地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法을 배워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나무의 生命이 곧 사람의 生命이라고 가르쳤다.
사람들이 나무의 그늘을 떠나 멀리 방황한다면,
나무의 果實의 자양분을 찾는 것을 잊어버린다면,
또는 사람들이 나무에 등을 돌리거나 그들을 破壞하려고 한다면,
큰 슬픔과 災殃이 내릴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파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힘을 잃을 것이다.
꿈을 꾸고 神命 보기를 그칠 것이다.
사소한 일을 가지고 말다툼을 벌일 것이다.
眞實을 말할 수 없을 것이며
서로 正直하게 對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는 自身들의 땅에서 살아가는 法마저 잊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삶은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들은 自身들의 몸을 서서히 毒으로 채울 것이며,
그들이 손대는 것마다 毒으로 變할 것이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이장』, 2004년1월호.
인디언 걸음걸이의 비밀- 서정록
숲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걸었을까요? 나무들이 울창한 野生의 自然에서 생활했던 그들이니만큼,
아무래도 요즈음 아스팔트 위를 걷는 사람들 하고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입니다
몇 년 전, 인디언들의 Foz-walk를 사람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여우걸음이 되는데, 여우가 걷는 方式으로 들판이나 山길을 걷는 것입니다. 무게 中心을 뒷발에 두고 앞발을 발바닥 앞쪽과 바깥쪽이 먼저 땅에 닿게 해서 완전히 땅에 착지했을 때, 무게 중심을 앞발로 옮기고 뒷발을 앞으로 내서 똑같은 방식으로 걷는 걸음걸이였습니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눈의 시야를 넓게 열고서 천천히 한발 한발 옮기다 보면 모든 것이 달라 보였습니다. 새벽에 해맞이 하러 뒷산에 갈 때와 내려올 때면 늘 그렇게 해 보았습니다. 그 느낌이 너무도 신선했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좋아서 맨발로 걷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여우걸음을 걸으며 인디언들의 걸음걸이를 공부했지만, 정작 인디언 걸음걸이의 깊은 의미를 안 것은
最近의 일입니다. 인디언들의 일상적인 걸음걸이는 무릎을 살짝 구부린 다음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視野를 넓게 멀리 두고 걷는 것이지요.
그런데 얼핏 평범해 보이는 이러한 걸음 속에 바로 인디언 걸음걸이의 秘密이 있었습니다.
"무릎을 살짝 구부린다!"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인디언들은 왜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걸었을까요?
단순히 動物들의 걸음걸이를 흉내내서일까요?
現代人들은 콘크리트나 아스팔트와 같이 평탄한 길을 걷는 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발 밑을 쳐다볼 필요도 없습니다. 돌부리에 걸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現代人들의 허리가 非定常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事實입니다. 척추가 역S자로 완곡히 돼야 하는데, 무릎을 쭉 펴고 걷다 보니 꼿꼿하게 선다는 것입니다. 척추가 긴장하다 보니, 자연히 의식이 깨이게 됩니다. 그리고 배의 근육(복근)도 당겨지게 되지요. 때문에 오랫동안 서 있으면 몸이 硬直되고 情緖的으로도 不安定해집니다.
그런데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걷는 인디언들의 걸음은 이와 달리,허리가 便安해지고 몸이 이완되며 情緖的으로도 安定됩니다. 복근도 당기지 않고요. 현대인들의 걸음걸이와 인디언들의 걸음걸이의 差異点이라고 해 봐야 무릎을 살짝 구부리는 것 정도인데, 왜 이렇게 다른 걸까요? 인디언들의 걸음걸이에는 분명히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인류학자 펠리타스 굿맨에 의하면,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걷는 인디언들의 걸음법은 인디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古代 수렵시대의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모두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實際로 舊石器時代의 알타미라 동굴壁畵의 人物들이나 이집트의 象形文字에 그려진 人物들, 그리고 고대 중국의 화상석에 그려진 동양의 武士들의 姿勢를 보면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사냥꾼이나 제3세계의 원주민들의 수렵인들 역시, 자세히 보면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 펠리타스 굿맨은 무릎을 살짝 구부린 자세가 古代 獸獵時代의 普遍的인 姿勢라는 結論을 내립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런 姿勢는 心理的으로도 매우 重要한 意味를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興味롭게도 原住民들이 신성한 의례나 치료할 때의 자세를 보면 무릎을 살짝 굽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런 姿勢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펠리타스 굿맨은 古代人들의 이런 姿勢를 靈的으로 "無我境에 빠지는 姿勢(trance posture)'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현대인들도 직접 그런 자세를 취해 보면 누구나 곧 그 의미를 알 수 있다고 말합니다.
中國 氣工의 專門家이며 인디언 文化에 正通한 케네스 코헨은 古代人들의 자세와 현대인들의 자세의 差異를 느끼기 위해 다음과 같은 實驗을 해 볼 것을 권합니다.
먼저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허리를 편 뒤, 한쪽 손을 등으로 가져가 손가락을 척추 끝에 갖다 댑니다. 이 때, 발은 어깨 넓이로 자연스럽게 벌립니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척추 끝부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느껴 봅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렇게 무게 中心이 한 쪽 발에서 다른 발로 옮겨질 때마다 척추 끝이 그에 相應하여 부드럽게 열리고 닫히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번에는 무릎을 쭉 펴고 서서 마찬가지로 한 쪽 손을 등으로 가져가 손가락을 척추 끝에 갖다 댄 다음, 천천히 걸어봅니다. 놀랍게도 아까와 달리 척추 끝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느낄 수 없습니다. 척추가 뻣뻣하게 硬直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릎을 쭉 펴고 걷는 現代人들의 걸음걸이에
무언가 不自然스럽고 人爲的인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인디언처럼 무릎을 구부리고 걷다가 무릎을 쭉 펴고 걸어보십시오. 척추 끝의 變化말고도 무언가 또 다른 變化가 느껴질 것입니다. 갑자기 呼吸이 不便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릎을 쭉 펴는 瞬間, 왜 呼吸이
不便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릎을 쭉 펴는 瞬間, 복근이 당겨지면서 횡경막이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횡경막이 올라가니 자연히 폐활량이 줄어들게 되고, 호흡이 불편해지게 되는 거지요.
그러면 이번에는 다시 무릎을 살짝 굽혀 보십시오. 다시 호흡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올라갔던
횡경막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폐활량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呼吸의 中心이 腹部의 丹田으로 내려오면서 自身도 모르는 사이에 丹田呼吸을 하고 있는 自身을 發見하게 됩니다. 아울러 心身이 便安해지고 긴장이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 자세로 이리저리 걸어 보십시오.
이때, 결코 숨을 깊이 들이쉬려고 애쓰거나 내뱉으려고 힘쓰지 말라고 합니다. 그냥 自然스럽게 숨이 들고 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가장 健康하고 自然스러운 呼吸法은 腹部 丹田에 제 스스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라고 합니다. 깊은 복식호흡은 우리의 몸 구석구석에까지 충분한 酸素를 공급해 주지요.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면 호흡횟수는 서서히 떨어집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미국 성인들의 호흡횟수가 1분에 평균 17회인데, 이렇게 무릎을 구부리고 걷는 演習을 계속하면 호흡횟수가 1분에 5회 정도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자세로 걸으면 自然스럽게 우리들 內面에 있는 治療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心身이 便安해지면서 따뜻한 氣運이 온 몸에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變化는 特히 손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손바닥이 홍조를 띤 붉은색으로 變하면서 손가락 끝에 彈力이 붙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생리적으로 몸이 이완되고 모세혈관이 열리면서, 全切的으로 血液循環이 增加할 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좀 더 時間이 지나면 손에 점점 生命의 에너지가 充滿해지면서 强한 電氣가 흐르는 電線처럼 에너지場이 形成된다고 합니다. 영적인 치료사들의 손이 바로 이와 같은 상태에 있다고 하지요. 이러한 손은 마치 수맥을 찾는 막대기와 같아서 보이지 않는 에너지에 민감하게 反應한다고 합니다.
아파치족의 呪術師인 로젠은 걷다가 손바닥이 붉은 홍조를 띠고 손가락에 彈力이 붙은 것이 느껴질 때, 그 자리에 멈춰 선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마다 눈 앞에 뭔가 自身을 끌어당기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건 動物일 수도 있고, 때로는 自身을 害치려는 것일 수도 있는데, 이 姿勢를 유지하고 걷다 보면 그처럼 주변의 環境 變化에 敏感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에서 예기치 않은 變化가 일어났을 때, 自身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알아채게 된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이것을 '豫知(awaredness)'의 能力이라고 하지요.
古代의 사냥꾼들은 주위의 變化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결코 긴장해서는 안 되지요. 가장 便安한 狀態에서, 그리고 언제든지 몸을 날릴 수 있는 柔軟한 狀態에서 動物을 추적합니다. 그것이 바로 무릎을 살짝 굽힌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스포츠 선수들 또한 경기 중에는 언제나 무릎을 살짝 굽히고 있지요. 그래야 몸이 유연해지고 상황의 변화에 민첩하게 對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디언들과 고대인들의 자세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케네스 코헨은
이런 고대인의 자세를 세 가지 형태로 나눕니다.
첫번째는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허리를 세운 뒤 고개를 들고 視野를 넓게 보고 걷는 것입니다. 이때, 양 손은 아래로 내려서 大地의 生命의 氣運에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自然스럽게 손을 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손바닥의 색깔이 붉은 홍조를 띠게 되고 손가락에 탄력이 붙습니다.
두번째는 이른바 '곰의 걸음'이라는 것입니다. 첫번째의 자세에서 양 손을 복부의 단전에 가볍게 갖다 대고 걷는 것입니다. 이 자세는 복부의 단전호흡을 자극하고, 精神的 便安함을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자세를 해 보면, 아래 복부가 달아오르면서 차츰 온몸이 덥혀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곰은 인디언은 물론 원주민들 사회에서도 代表的인 治療動物(healing animal)로 알려져 있습니다. 北美 인디언들이 神命探究 때, 곰神靈으로부터 治療에 대한 가르침을 얻는 것은 유명합니다. 또 인디언들이 향초(香草)로 사용하는 쑥은 라틴어로 Artemisia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어근 'art-' 또한 곰을 의미합니다.
그러고 보면, 檀君實話에서 곰이 동굴 속에 들어가 三七日 동안 쑥을 먹고 사람으로 還生했다는 이야기는 그냥 나온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또한 인디언들이 神性한 儀禮 때 피우는 쑥의 香氣는 우리의 內面 깊숙이 沈澱되어 있는 過去의 靈的인 記憶들을 깨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번째는 샤만의 자세입니다. 역시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한 손은 머리 위로 올리고 다른 한 손은 大地를 向해
아래로 내리고 걷는 것입니다. 샤만이나 呪術家가 儀禮를 行하거나 治療를 할 때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姿勢는 偉大한 神靈에 대한 恭敬을 나타내는 同時에, 위의 하늘과 아래의 大地의 氣運과
疎通하는 자세라고 합니다. 儀禮와 治療를 위한 姿勢라고 해야겠지요.
인디언이나 고대인들처럼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걷게 되면, 언제나 발바닥 앞쪽이 먼저 땅에 닿게 됩니다.
발꿈치가 먼저 땅을 디디는 일은 거의 없지요.
東學의 2代 敎主였던 海月 선생이 낮잠을 주무시고 계실 때였습니다. 어떤 아이가 옆으로 쿵쿵거리며 뛰어가자, 잠에서 깨어나신 해월 선생이 어머니 大地가 깜짝 놀라셨다는 말씀을 하시며 가슴을 쓸어내리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발뒤꿈치로 쿵쿵거리며 걷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셨지요.
인디언들은 大地에 씨앗을 심듯, 발을 大地에 심으며 걸으라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大地에서 다음
世代가 자라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무릎을 살짝 구부린 均衡 잡힌 자세로 걸으면, 스프링처럼
大地가 밀어올려 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同時에 몸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때, 발이 나무처럼 땅 속에 박힌다고 想像해 보십시오. 마치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서 있는 나무처럼 말입니다.
인디언들은 말합니다. 健康하게 살아 있다는 것은 머리는 하늘에 두고 발은 大地에 심는 것이라고...
발을 大地에 심는 제일 좋은 方法은 맨발로 걷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옛날의 인디언들이 사슴가죽으로 밑창을 댄 얇은 모카신을 신은 데는 깊은 뜻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카신은 맨발로 걷는 거나 다름이 없으면서도 大地의 氣運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풀이나 벌레를 밟아도 그들을 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디언들은 달리기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들의 달리기 實力은 오늘날의 마라톤 선수들을 능가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서도 포카혼타스를 호위하는 전사 우타마토마킨은 차를 타지 않고 언제나 달립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이지요. 19세기 중엽, 라코타족의 대추장이었던 외뿔 또한 달리기 선수로 유명합니다. 그리스 조각보다도 얼굴의 윤곽이 더 뚜렷한 그는 달리기에 관한 한,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었다고 하지요.
나바호족의 사냥꾼 검은말은 말합니다. "사냥꾼은 발걸음이 매우 가볍다. 그래서 그는 빨리 달릴 수 있다. 우리는 걸을 때나 앉을 때,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무릎을 살짝 구부린다. 그런 자세를 유지하면 사냥꾼은 결코 지치지 않는다."
인디언 전사들은 마치 관목 위를 밟고 달리듯이 가볍게, 그리고 먼 거리를 지치는 법 없이 달렸다고 합니다.
그 달리기의 秘密은 바로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걷는 걸음법에 있었던 것입니다.
*생태공동체를 일구는 「이장」, 2004년3월호.
여성적 가치가 中心을 이루는 사회- 서정록
인디언 사회는 傳統的으로 女性 中心의 사회입니다. 서부영화에 나오는 인디언 전사들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