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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어렸을 때부터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으며 크셨나요?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척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절대 거스르지 않고, 어려운 일이 좀 있어도 불평 없이 잘 참으셨는지요. 성인이 된 지금도 맡은
일은 책임감 있게 최선을 다하며 남에게 조금이라도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고 계시나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나도,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나만 좀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그냥 아무 말
없이 넘어가고, 또 남에게 상처 될 만한 말이나 관계가 불편해질 수 있는 말은 잘 할 줄도 모르고요.
가끔씩 저에게 상담을 청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정말로 착한 분들이 심리적 우울증이라든가
공황장애, 시댁이나 직장 관계에서 오는 화병 같은 마음의 병을 앓고 계신 분이 많습니다. 그분들은 말씀
도 차분하고 성품 자체가 순해 남들에게 배려도 잘하지요.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있
어도 다른 사람들이 다른 것을 더 원하면 나 하나 희생하는 것쯤이야 몸에 배인 분들이지요. 이렇게 착한
분들에게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이런 마음의 시련을 주시나 안타까웠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착하다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우리가 보통 어떤 사람을 착하다고 말할 때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타인의 요구를 잘 따라 주는 사람을 착하다고 칭하는 것 같아요. 즉 본인도 분명 하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방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잘 표현하지 않고 남의 의견에 순종하는 것이지요. 내 말을 잘 들어주니
까 당연히 그 사람을 편한 사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 칭찬하게 되고요.
꼭 다 그렇다고 단정해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의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착한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렸을 때 부모님 등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패턴이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가부장적인 아
버지나 성격이 강한 어머니 아래서 자란 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형제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부모님으
로부터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고 자라 부모님께 원하는 것을 해 드림으로써 인정받으려고 하는 욕구가 컸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부모님 서로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경우, 나라도 말을 잘 들어 힘
들어하시는 부모님을 편하게 해 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쓰신 분들이거나요.
그런데 문제는 너무 타인의 요구에 맞춰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안의 욕망이나 감정들에 소홀해진다는
점입니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소외시키고 무시하니 어른이 돼서도 내가 정말
로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대체 누구인지 잘 몰라요. 더불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자신이 느끼는 분노와 억울한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니 상대를 향했어야 할 정당한 분노
가 내면에 갇혀 본인 스스로를 공격하게 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화도 제대로 못 내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멍청이일까?’ 하고 말이지요.
우선 이 점을 꼭 기억해 주세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무시당해도 되는 하찮은 것들이 아니라 나로부터
관심받을 만한 아주 소중한 것들이라는 사실을요. 나는 남들이 원하는 일을 잘했을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
니고 이미 존재 자체가 사랑받을 만하다는 사실을요. 또한 내 안의 감정을 내가 억압하고 무시한다고 해서 그
것들이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많은 마음의 문제가 억압이 습관화되면서 그 억압된
감정의 에너지가 건강하게 흐를 수 있는 길을 찾지 못해서 생겨요. 물도 흘러야 좋은데 한곳에 고이면 썩는
것처럼 감정도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남들이 나에게 하는 기대를 따르기 이전에 내 안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그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사람들로부터 이거 해 달라, 저거 해 달라는 요구가 있어도 내가
정말로 하기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해 주며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나를 소진시키지 마세요.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해 보는 노력을 해 보세요. 혹시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관계가 이상해지지 않을까 미리 걱정하지 마세요. 상대는 내가
그런 느낌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요구했을 수 있어요. 미안해하지 말고 간결하고 상냥하게 내
느낌을 말하시면 됩니다. 쌓였던 감정을 표현하기가 어려우면 쉬운 것부터 하세요. 예를 들어 남들이 다
짜장면을 먹겠다고 해도 내가 볶음밥을 먹고 싶으면 ‘나는 볶음밥 먹을래요’라고 표현해도 괜찮습니다.
혜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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