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 증진… 기본으로 돌아가라 -- 신현종 박사
보이지 않는 무기에 멸망한 잉카
1531년 스페인의 피사로 탐험대장은 불과 30필의 말과 168명의 원정대를 이끌고 남미의 잉카제국에 도달한다. 당시 잉카제국의 인구는 600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원정대 도착 후 불과 수십 년 사이에 그렇게 큰 제국은 멸망하고 말았다. 인구도 10%만 남고 전멸했다고 한다. 미스터리로 내려오던 멸망의 가장 큰 요인은 천연두와 홍역 같은 전염병 감염으로 밝혀졌다. 스페인 원정대는 본국에서 유행한 천연두나 홍역을 이미 앓은 적이 있어 면역력이 있었지만 남미의 잉카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과거 이런 전염병에 전혀 노출된 적이 없었다는 점이 제국의 멸망을 가져온 것이다.
한편 이즈음 유럽에서 명의로 소문난 이탈리아 의사 카르다노가 스코틀랜드로 왕진을 가게 된다. 세인트앤드루스 사원의 대주교인 존 해밀턴이 천식이 심해 치료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카르다노는 며칠 동안 대주교를 주의 깊게 검진한 후 대주교의 침실에서 백조 깃털을 넣은 베개를 치워버렸다. 대주교는 몹시 불만이었지만 다음날부터 천식발작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알레르기라는 말조차 존재하지 않던 16세기에 명의 카르다노는 대주교의 천식이 다름 아닌 최고급 백조 깃털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면역이란 무엇인가?
고등생물일수록 정교한 면역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면역은 ‘자기(自己)’와 ‘비자기(非自己)’를 구분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면역의 기본 메커니즘이다. 외계의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이물질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인체의 생명활동이 안전하게 유지되도록 보호하는 시스템으로 마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정부의 국방부와 경찰청 조직과 유사한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이 개인별로 여권과 주민등록증이 있듯이, 인체도 적혈구를 제외한 60조의 세포가 자기만의 인식표(MHC)를 가지고 있다. 타인의 장기를 이식했을 때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이유가 바로 인식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몸안의 면역시스템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실제 상황을 살펴보자.
청년과 노인의 면역력 차이
독감이 기승을 부리는 어느 겨울날 청년과 노인이 영화관에서 함께 인플루엔자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고 하자. 평소 건강한 청년은 독감에 걸릴 확률이 노인보다 훨씬 낮으며 설령 걸렸다 해도 전형적인 1차 면역반응을 거쳐 며칠 내에 치유된다. 바이러스가 청년의 호흡기관을 통해 침입하여 복제를 시작하면,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면역세포인 마크로파지(대식세포)가 이물질인 바이러스를 삼키고 죽인 후 신호물질을 분비하여 면역사령관인 헬퍼 T세포에게 외부침입자의 얼굴을 알려준다.
이때 분비하는 신호전달물질이 발열성이라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받은 헬퍼 T세포는 비상령을 내리고 방어군인 킬러 T세포와 B세포를 동원한다. 한편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들은 피해 입은 흔적을 세포 표면에 나타낸다. 바이러스를 발견한 B세포는 적을 공격할 무기인 IgM 항체를 생산하지만 파괴력이 약해 아직까지 바이러스의 세력에 밀리고 있다. 이렇게 해서 면역계의 대소동이 일어나고 독감의 증상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그러나 B세포는 곧 강력한 무기인 IgG 항체를 다량으로 분비하여 바이러스에 직접 달라붙어 중화시킨다. 킬러 T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찾아 처리해간다. 그동안 침입하여 번식하던 바이러스의 존재가 거의 사라지면 몸에 염증이 멎고 열은 내려간다. 이윽고 서프레서 T세포는 전장을 일일이 돌아본 후 적이 섬멸되었다는 사실을 사령관인 헬퍼 T세포에게 보고하면 사령관은 전투 중지를 명령하고 복구작업과 함께 전투를 마무리한다. 청년은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일어나 친구들과 축구공을 찬다.
같이 감염된 노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초기 반응인 신호전달 물질의 분비가 적어 그다지 열이 높지 않은 대신 온몸이 나른하다. 침입한 바이러스의 복제가 순조롭고 널리 퍼지게 된다. 사령관인 T세포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 면역시스템 운영이 효율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기관지나 폐에 염증이 나타나고 보통은 문제가 되지 않는 세균이 그곳에서 증식하여 폐렴을 일으키기도 한다. B세포는 항체를 충분히 만들지 못해 질병상태가 오래간다. 이때 합병증을 일으키면 종종 생명을 위협받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노인들은 독감 시즌이 오기 전에 예방백신을 접종받는것이 안전하다.
면역시스템의 주인공들은 마크로파지, T세포(헬퍼, 킬러, 서프레서), B세포, NK세포, NKT세포 등 다양한 림프구로 구성되어 있다. 수많은 종류의 침입자들을 상대할 각기 다른 항체를 수천억 종류나 생산해 낼 능력은 B세포가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인체의 방어시스템은 융통성 있고 정교하게 운용되고 있지만, 일부 바이러스의 변이가 빨라 인체가 방어하지 못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인류가 천연두의 박멸을 선언한 바로 다음 해에 일명 ‘신종 페스트’라는 에이즈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은 아이러니다.
면역력을 증강시키는 핵심 요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면역은 단순히 전염병으로부터 몸을 지키는 ‘장치’와 ‘구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면역계는 체내의 호르몬계와 신경계 등과 상호 연동하여 작용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어 인체 건강 유지에서 면역메커니즘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의 활동이 복잡해졌고 면역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수없이 많지만 그럴수록 면역력 유지에 필요한 기본요소를 점검해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1. 영양 항체는 단백질인데 아미노산이 부족하면 형성되지 않는다. 또 아연이나 비타민이 부족하면 T세포나 B세포가 증식하지 못한다
2. 장내 미생물, 장내 미생물의 생태계가 안정되어 있어야 면역세포가 제 기능을 한다. 충분한 섬유질과 유산균 제제 그리고 버섯류를 꾸준히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3. 운동 주기적인 운동으로 코어근육을 단련하면 면역기능이 향상된다.
4. 정신신경 분야, 평소 긍정적 마인드로 많이 웃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NK세포 활성도가 높아진다는 연구가 다수 발표되고 있다.
5. 생활습관, 태양 주기에 거스르는 생활을 하면 면역세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낮 동안의 활발한 활동과 운동, 밤 동안의 충분한 수면이 면역의 기초가 된다.
6. 적정 체온 유지, 기초 체온이 낮으면 면역기능이 떨어진다.
7. 자연 환경, 어린이를 위생적으로 과잉보호하면 오히려 면역력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8. 화학약물 남용 주의, 항생제, 소염진통제, 신경안정제, 스테로이드 등의 남용은 인체의 방어 능력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이 이미 밝혀져 있다.
9. 남녀의 성차,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은 마크로파지의 활성을 촉진하고 남성호르몬인 안드로젠은 오히려 면역 기능을 억제한다. 따라서 남성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하는 과도한 운동이나 활동은 절제하는 것이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10. 노인의 체력, 흉선이 완전히 퇴화한 노인도 기초 체력만 보강한다면 면역력을 유지할 수 있다. 다른 기관에서도 T세포가 생성된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진 바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면역력 유지는 올바른 생활습관, 규칙적인 운동, 균형잡힌 음식 섭취, 긍정적 사고를 기초한 대인 관계의 만족감, 가족 간의 유대감 등 오케스트라가 서로 어우러져 멋진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치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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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종 : 제네신의학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제약회사 한국 대표를 역임했다. 의과대학원에서 예방의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현재 암(癌)환자를 위한 해연면역학교를 운영하면서 약물유전체학을 응용한 통합기능의학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출처/월간 헬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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