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서 벌어진 이 해괴한 장면, 우리 MBC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선배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선배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불쑥 그런 질문이 날아들 것 같아 차마 후배들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MBC에서 김장겸을 퇴출시키고 공영방송 MBC를 정상화하는 길에 기꺼이 후배들과 함께하겠습니다.”
8일 MBC 사내게시판에 24기(1987년 입사) 이상의 최고참 선배들의 성명이 올라왔다. 연일 성명이 쏟아지는 등 김장겸 사장 사퇴 여론이 거센 가운데, 김 사장의 동기 혹은 선배인 이들이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놓은 것이다. 이들은 보도 공정성 하락을 비롯해 기자들의 해고와 징계 등으로 얼룩진 MBC의 현 상황에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MBC의 대선배로서 자성의 목소리도 담았다. 19명의 최고참 선배들은 “방송민주화의 과실은 알뜰하게 누리면서, 공정방송의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틀을 견고히 구축하고 다지는 일에 소홀했다. 그 책임이 선배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했다.
이들은 입을 모아 김 사장에 즉각 사퇴할 것을 촉구했다. “김장겸은 당장 MBC를 떠나라. 우리는 권력을 등에 업은 칼춤을 추며 MBC를 만신창이로 만든 패악질의 장본인과 단 하루도 같이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전날 43명의 20~30년차 기자들도 김 사장에 대한 사퇴 여론에 힘을 보탰다. “김 사장이 걸어온 역사는 MBC 파괴의 역사만이 아니다. 공영방송과 저널리즘의 가치를 화형시킨 흑역사”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 자리는 더 이상 당신 자리가 아니다. 만약 스스로 떠나지 않으면 끌어내릴 것이다. 국민과 함께 분명하고 단호하고 철저한 방식으로 쫓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MBC 최고참 선배들의 성명 전문이다.
[MBC 24기 이상 성명] 기억하는가
"손님, 어디로 가십니까?"
"네? 아...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으로 가주세요."
시간을 30년 전으로 되돌려봅니다. <뉴스데스크>가 ‘땡전뉴스’라는 오명으로 불리던 시절, 택시를 타면 ‘MBC로 가주세요’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MBC뉴스는 국민들에게 신뢰는커녕 화를 돋우는 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집회와 시위를 취재하다 쫓겨나기 일쑤였고, 성난 시위군중에 몰매를 맞기도 하였습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조롱과 야유로 치욕적인 수모를 당했던 것처럼.
MBC뉴스는 군사독재정권을 위해 복무하던 권력의 충견이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의 MBC뉴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총칼을 앞세운 공포의 시대였다는 변명이라도 있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는 권력지향의 굴종만이 있었습니다. 사장은 감투에 대한 보답으로 스스로 권력의 품에 안겼고, MBC를 권력에 상납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청와대에 불려가 쪼인트를 맞았다는 게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분발로 화답했습니다. 노조 집행부와 기자회장을 해고하고,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들을 유배시키고, 진실을 말하는 기자 PD 아나운서들을 본연의 업무에서 배제시키고 펜과 마이크를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MBC에선 진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감시와 비판은 사라지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 불의한 권력을 옹위하는 왜곡과 편향이 난무했습니다. 30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국민은 MBC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들이며 바닥의 시청률로 경고의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30년 전, 대학가에서 발원하여 도심의 거리를 화이트칼라로 뒤덮은 6월 민주화항쟁은 우리에겐 방송민주화의 시발점이었습니다. 누구는 감시를 피해 후미진 여인숙에서 참회와 궐기의 성명서를 써내려갔고, 누구는 은밀하게 노조 설립을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방송민주화 대장정은 길고도 험난했습니다. 제작거부와 파업이 이어졌고, 해직의 아픔이 있었고, 경찰병력이 사옥에 난입하는 전무후무한 사태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공정방송을 향한 투쟁은 멈춘 적이 없었고,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MBC는 그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공정방송의 첨병이 되었습니다. MBC는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방송이 되었고,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권력이 요리조리 말을 바꿔가며 사대강 사업을 강행할 때, 자원외교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국고를 탕진할 때, 세월호 참사로 국가의 무능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비선의 국정농단으로 국민이 탄식을 토해낼 때, 감시의 눈은 애써 권력을 피해갔고 비판의 칼날은 주저없이 권력의 반대편을 향했습니다. MBC는 권력의 충견이 되어 다시 30년 전의 암흑 속으로 추락하였습니다.
단지 불의한 권력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공정방송을 지키고자 싸웠으나 힘에 부쳤고, 권력은 뻔뻔했고, 법과 제도는 무력했고, 악화는 양화를 구축했고, 시대는 암울했습니다. 불과 몇 년 만에 MBC는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그 중심에 본분을 저버리고 국민을 배신하여 스스로 권력의 개가 된 한줌의 경영진이 있습니다.
노조의 집회가 있을 때마다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주먹 불끈 쥐고 공정방송을 외치고, 육두문자 섞어가며 선배들의 맹성을 촉구하던 그때의 막내기자들이 스물 몇 해가 지나 보도책임자가 되고 경영진이 되어 공정방송을 호소하는 지금의 막내기자들에게 징계의 칼을 들이댑니다. 눈앞에서 벌어진 이 해괴한 장면, 우리 MBC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선배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선배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불쑥 그런 질문이 날아들 것 같아 차마 후배들의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습니다. 방송민주화의 과실은 알뜰하게 누리면서, 공정방송의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틀을 견고히 구축하고 다지는 일에 소홀했습니다. 그 책임이 선배인 우리에게 있습니다. 부끄럽고, 부끄럽습니다.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국민은 촛불을 들어 무능하고 불의한 권력을 퇴출시켰습니다. 역사는 잠시 후퇴하는 듯 보여도 결국 앞으로 나아갑니다. 온 국민을 공황상태에 빠뜨렸던 황우석 사태에서 증명하였듯이, MBC는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진실의 편에 선 ‘만나면 좋은 친구’였고 신뢰받는 방송이었습니다. MBC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MBC의 정상화, 그 시작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정치부장, 보도국장, 보도본부장으로 완장을 바꿔 차며 공영방송 MBC를 무너뜨리기에 앞장섰고, 국정농단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MBC 구성원들과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아랑곳 않고 사장 자리에 오른 김장겸의 퇴출입니다. 김장겸의 입사동기들과 선배들인 우리는 김장겸을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MBC에서 김장겸을 퇴출시키고 공영방송 MBC를 정상화하는 길에 기꺼이 후배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이에,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요구합니다.
김장겸은 당장 MBC를 떠나라. 우리는 권력을 등에 업은 칼춤을 추며 MBC를 만신창이로 만든 패악질의 장본인과 단 하루도 같이 있을 수 없다. 더 이상 MBC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고 당장 떠나라. MBC는 그대 따위가 알박기나 하는 더러운 땅이 아니다.
2017년 6월 9일
김동섭 김상철 김성환 김세용 김원태 김종화 김현경 박태경 송기원 송요훈 송형근 윤도한 이재훈 임대근 임정환 임태성 정형일 홍순관 홍우석 (MBC 24기 이상 19명)
[MBC 20-30년차 성명] 떠나지 않으면 끌어내릴 것이다
김장겸 사장!
당신이 걸어온 역사는 MBC 파괴의 역사만이 아니다. 공영방송과 저널리즘의 가치를 화형시켜버린 흑역사이다.
당신은 국민과 그들의 알권리를 짓밟았다. '국가가 국민을 구하지 못한' 세월호 참사 앞에서 대다수 국민이 유족과 함께 눈물 흘릴 때 당신이 주도하는 보도국은 희생자와 피해자를 비웃고 조롱했다. '비선이 대통령을 쥐고 흔든' 국정농단 사건으로 대다수 국민이 분노의 촛불을 켰지만 당신에게 충성하는 보도본부는 축소와 왜곡에 급급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는 안다. 당신에게 국민이란 '박근혜와 그를 추종하는 한줌도 안 되는 국정농단세력' 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직 '박근혜와 극우세력'만 바라보고 달릴 때 MBC는 대다수 국민의 마음에서 지워져갔다. 아니 MBC는 건전한 국민의 '공공의 적'으로 변해갔다.
정당성의 결여는 폭압을 동반한다. 피가 튀고 살이 잘려나간 지난 8년이었다. 노골적인 편파와 왜곡에 저항했던 선후배 동료들에게 당신은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선혈이 낭자한 그 자리는 당신에게 충성하는 소수 부역자들로 채워졌다. 박근혜-김장겸-부역자라는 악의 삼각축은 철저하게 MBC를 궤멸시켰고 대한민국을 농락했다.
그러나 국민은 박근혜를 쫓아냈다. 모르겠는가? 박근혜 퇴출과 동시에 당신도 끝난 것이다. 촛불의 지엄한 명령은 대한민국 재건뿐 아니라 MBC 재건도 명령하고 있다. 그 출발은 당신의 퇴진이다.
김장겸 사장! 제발 떠나라. 그 자리는 더 이상 당신 자리가 아니다. 만약 스스로 떠나지 않으면 끌어내릴 것이다. 국민과 함께 끌어내릴 것이다. 아주 분명하고 단호하고 철저한 방식으로 당신을 쫓아낼 것이다.
사내 부역자들에게도 경고한다. 김장겸에게 거짓정보를 속삭이며 허황된 생명연장의 꿈을 주입시키지 말라. 헛되고 헛되고 헛된 일일 뿐이다. 우리는 당신들이 저지른 지금까지의 만행뿐 아니라 앞으로의 만행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김장겸 사장과 부역자들이 MBC에 자행했던 불법,부당,편법,농단의 모든 실체를 낱낱이 밝힐 것이다. 하나하나 확인하고 기록하고 심판하고 후세에 남길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을 대신해 국민께 머리 숙여 사죄한 다음 MBC를 반드시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2017년 6월 7일
고현준 권순표 김연국 김종경 김효엽 나준영 도인태 문소현 민병우 박광운 박범수 박상권 박성제 박성호 박장호 박종일 박준우 성장경 송록필 안형준 양동암 양찬승 여홍규 연보흠 유상하 이성주 이세훈 이승용 이용마 이주영 이창순 이태원 이호인 임영서 전동건 정용식 조승원 조윤기 최장원 최호진 한정우 허행진 황상욱 (MBC 20~30년차 이상 4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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