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파업 조현오의 제물
입력 2018.09.04. 12:18
[한겨레21]
쌍용차 강제 진압 사건 경찰청 진상조사위 심사 결과서 입수…
강제 진압 주도한 조현오의 당시 행적 재구성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012년 펴낸 책 <도전과 혁신> 36쪽에서 “지금도 종종 이 시를 마음속으로 읊곤 한다”고 적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8월28일 최근 6개월간 조사한 ‘쌍용자동차 사건’ 결과를 발표했다. 2009년 쌍용차 구조조정에 반대해 전면 파업을 하고 평택공장을 점거한 노동자들을 강제 진압할 때 청와대가 경찰의 강제 진압을 최종 승인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조현오가 개척한 강제 진압의 길
이번 발표는 그동안 제기됐던 주장과 상당 부분 겹치는 내용도 있지만, 국가기관이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겨레21>은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52쪽의 쌍용자동차 사건 진상조사 심사 결과서와 5쪽의 결정서를 입수했다.
이 문건들에는 ‘경찰력 행사의 최종 승인은 누가 했나’ ‘테이저건, 다목적발사기, 최루액, 헬기 등을 이용한 시위 진압은 적법했나’ ‘인터넷 대응팀을 운영하고 여론 조성을 위한 홍보 활동이 적정했나’ 등에 대한 비교적 구체적인 사건의 진상이 담겼다.
진상조사위는 관할 경찰 지휘관으로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던 조 전 청장을 지목했다. “조 청장은 경찰이 진압 작전을 할 때도 공장 현장에서 지휘하거나 헬기를 타고 공중에서 직접 지휘”했다. 조 전 청장은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의 진입 작업 중지 지시에도 청와대에 직접 연락해 경찰 병력을 투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종 승인 뒤에는 상관인 경찰청장을 건너뛴 조 전 청장이 있었다.
<한겨레21>은 조 전 청장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그의 말은 듣지 못했다. 대신 조 전 청장의 책 <도전과 혁신>에 언급된 쌍용차 사건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조 전 청장은 책에서 18쪽에 걸쳐 ‘평택의 여름, 쌍용차 파업 77일’이라는 부제로 이 사건을 다뤘다.
경찰의 강제 진압 전날인 2009년 8월4일 당시 강희락 경찰청장은 노사 협상의 여지가 있어 시간을 더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강 청장은 “8월4일 경찰 병력이 공장에 대규모로 진입할 때 이 사실을 보고받지 못했”고 조 전 청장이 8월5일 재차 경찰 병력을 공장에 대규모로 투입하려 하자 “진압 작전을 중지하라고 지시”했다.
조 전 청장은 “강 청장으로부터 진입을 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러나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211쪽) 오히려 조 전 청장은 “강 청장은 확고하게 재차 중지 지시를 내렸다. (나는) 할 수 없이 청와대에 직접 연락해 허락”(212쪽)을 받아내기까지 했다.
조 전 청장은 강제 진입 전날까지 테이저건이나 다목적발사기 사용 여부를 고민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에서는 변수 발생이 우려되니 테이저건이나 다목적발사기를 사용치 말라”(213쪽)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도 “강행”했다. “피해를 최소화하고 시위대와 경찰을 동시에 보호하기 위해, 특히 다목적발사기의 사용이 꼭 필요하다”(213쪽)고 말한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당시 대테러 장비인 테이저건과 다목적발사기를 사용한 행위는 과도한 경찰력의 행사로 적정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특히 테이저건의 전극 침을 노조원 얼굴에 쏜 행위는 관련 규정까지 어긴 위법행위로 드러났다.
경찰은 “헬기에서 최루액이 담긴 비닐봉지를 공장 옥상에 있는 노조원들에게 게임을 하듯 던져 맞췄”다. 당시 공장 옥상에 있었던 김정욱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사무국장은 <한겨레21> 인터뷰에서 “게임의 대상자나 사냥감이 된 것 같은 모멸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위법하고 탈법적인 강제 진압
2급 발암물질인 다이클로로메탄 성분이 포함된 최루원액을 물에 섞은 최루액 약 20만ℓ를 헬기로 혼합 살수하는 방법도 “법령에도 열거되지 않은 새로운 위해성 경찰장비”였다. 경찰장비의 사용 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는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살수차를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한계가 명시돼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조 전 청장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다.
그가 2009년 7월2일 경기경찰청 전체에 쌍용차 관련 인터넷 보도가 나가면 “댓글을 달아 경찰 활동에 호의적인 여론을 형성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사이버상 대응이 매우 중요하게 부각됐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쌍용차 인터넷 대응팀 설치는 “2009년 6월3일 경기경찰청이 홍보·인터넷 대응팀 회의를 개최”하면서 본격화했다. 이어 7월2일 경기경찰청 산하 경찰관 50명으로 구성된 ‘쌍용차 인터넷 대응팀’이 꾸려졌다. 조 전 청장은 “인터넷 대응 활동을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 임기 중에도 계속해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 전 청장은 주로 “좌파단체 등에서 게재”하는 인터넷 기사, 동영상 등에 댓글을 달고 게시물을 올리게 했다. 노조 파업에 이념적 색깔을 입하는 홍보 활동도 폈다. “쌍용자동차 사건과 관련한 여론을 조성”하려 했던 것이다.
경기경찰청은 2009년 7월27일부터 8월6일까지 수원역, 안양역, 대형마트 등 26곳에서 홍보담당관실 주관으로 ‘쌍용자동차 노조의 불법 폭력 무기류 및 사진 시민 홍보 전시회’를 열었다. 이 기간에 5만3790명이 전시회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진상조상위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노조의 불법성이 언론에 비치는 것보다 심각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조 전 청장이 지시한 경찰의 인터넷 대응 내용 역시 “노조의 불법 폭력성 등을 부각하는 경찰 홍보 내용과 대동소이”했다는 것이다. 조 전 청장의 거취에 따라 경기경찰청, 서울경찰청, 경찰청으로 전개되는 인터넷 대응 활동의 흐름을 봤을 때 당시 쌍용차 인터넷 대응팀 설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 전 청장에겐 경찰 인터넷 대응전의 시작점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상조사위는 “경찰 홍보 활동은 편향적인 것으로 적정하지 않고 경찰의 정당한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사용자 쪽 경비용역들이 저지른 폭력을 알고도 묵인한 경찰 행위를 알리지 않고 노조원의 불법행위만을 편향적으로 홍보한 정황증거를 인정한 것이다.
조 전 청장은 최근 <한겨레>와 만나 “집회·시위를 비롯해 경찰 관련 쟁점에 대해 인터넷에 댓글을 쓰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정치 공작이라는 말은 터무니없고 여론 조작이라는 말에도 동의하기 어렵다”며 “경찰 관련 허위 사실이 유포되지 않게 하고 집회·시위가 과격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조 전 청장은 “경찰에서 성과주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필자”(166쪽)라고 했다. 그는 “삼성 등 일류기업에서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성과에 따른 금전적 보상과 비슷한 맥락”으로 “공조직에서 가능한 모든 인센티브를 부여”(167쪽)하려 했다. “사람들이 불렀다”던 ‘조현오식 성과주의’는 쌍용차 진압에서도 작동했다.
경찰 50여 명으로 댓글부대까지 운영
심사 결과서에도 8월4∼5일 이틀 동안 이뤄진 경찰력 행사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데 조 전 청장이 “시위 진압에 대한 성과주의를 강조”했다는 대목이 있다. 박진 진상조사위 위원은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조현오식 성과주의는 시위자를 구속, 불구속했을 경우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반영됐다”며 “전체적인 맥락은 조 전 청장이 집회와 노동쟁의를 어떻게 계획하고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실제 조 전 청장은 “성과주의를 꾸준히 경찰조직에 도입”했다. 특히 전·의경부대의 진압 성과를 높이기 위해 ‘성과주의 정착을 위한 전·의경부대 등급별 관리계획’을 각 기동대에 전달했다. “경찰관 기동대 평가표를 작성”해 실적을 높이려는 판단에서였다.
평가표의 가점 항목에는 불법 폭력시위 혐의의 현행범 등 체포 후 경찰관서 인계 요건이 포함됐다. 구체적으로 보면, 경찰은 시위자를 구속했을 경우 1명당 2점, 불구속했을 경우 1명당 1점, 훈방했을 경우 1명당 0.1점으로 가산점을 줬다. 그가 경찰조직에 침투시킨 성과주의는 쌍용차 진압 시 폭력성을 높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경찰청은 쌍용차 사건에서 검거 실적이 높은 경찰 직원에게 포상으로 특진을 시켰다. 경찰청 인사담당관의 자료인 2009년 쌍용차 상황 관련 특진자 현황을 보면 당시 경기경찰청 기동단 소속 한 경장이 쌍용차 불법시위 사범 검거 유공으로 1계급 특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테러 활동을 수행하는 경찰특공대를 투입한 것도 조 전 청장의 ‘과욕’이었다. 당시 조 전 청장은 경찰특공대를 대테러 임무가 아니어도 “노조의 파업, 집회시위 등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팀”으로 여겼다.
실제 당시 강희락 청장이 “경찰특공대 설치 목적이 대테러 활동에 있으므로 경찰특공대를 노동쟁의 현장에 투입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고, 경찰특공대가 투입될 경우 대테러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공문으로 지시했는데도, 조 전 청장은 지휘체계를 무시한 채 경찰특공대를 투입했다.
진실이 드러나는 데 햇수로 10년이 걸렸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청에 “과도하게 경찰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침해한 사실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사과하라”고 권고했다. 이어 국가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가압류 사건을 취하하라고 결정했다. 사과와 재발 방지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진상조사위는 결과서에서 “노사 자율 원칙에 의해 해결돼야 할 노동쟁의가 경찰에 의해 강제로 해결될 때 생길 부정적 결과를 보여줬다”며 “향후 경찰력이 노동쟁의 현장에 투입될 때 경계해야 할 선례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총평했다.
최악의 선례
쌍용차 노동자 가족들은 8월30일 경찰청 앞에서 열린 ‘쌍용차 가족 경찰청장 면담 기자회견’에서 “수도 없이 반복적으로 버림받은 자들이 습득할 수밖에 없는 무표정한 포기. 그게 우리의 얼굴이고, 우리의 삶이었다. …우리가 보낸 9년의 세월에 대해 이제 당신들이 대답할 차례”라며 경찰에 권고안 즉각 이행과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이날 가족들은 물을 담은 비닐봉지를 터뜨리며 당시 느꼈던 최루액의 공포 등을 재연했다. 준비한 물은 모두 50ℓ였다. 당시 경찰이 사용한 최루액 약 20만ℓ의 4천 분의 1 수준이었다. 하지만 “차마 (당시 경찰들처럼) 사람을 향해 던질 수는 없다”며 나무에 물 봉지를 던져 터뜨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도전과 혁신> 161쪽에는 “사람이 가장 우선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범죄자라도 인권은 보장해줘야 한다”(165쪽)는 그의 말을 누가 믿겠는가.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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