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성주괴공(成住壞空)

장백산-1 2020. 6. 13. 16:49

우주의 질서는 성주괴공(成住壞空) … 예외는 없다

공평한 무(無)의 활용

 

일전에 한 거사 불자의 병실을 찾았다. 수년 전에 부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서 남편의 극진한 간호를 받고, 이제 반신불수 상태에서나마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남편 본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이다. 평소에 건강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쓰러진 직후에 병원에 가는 것조차 마다했다. 가족들이 억지로 입원시키고 뇌수술을 받게 했다. 다행히 의식을 회복하고 전신마비 상태는 면했지만, ‘분’이랄까 ‘억울함’을 삭이지 못해서 힘들어 한단다. 자신과 가족들이 특별히 나쁜 짓을 하지도 않았고,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지도 않았는데, 왜 자기 집안에만 큰 병이 찾아 드느냐는 것이다. 병마의 불공평하고 무원칙한 횡포에 화가 난다는 것이다.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엄마가 있다. 그 아들은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젊은이들의 선호대상 1위로 꼽히는 직장에 취직해서 돈도 많이 벌고, 부모에 대한 효심도 지극하다. 멀리 출장가면 반드시 하루에 한 번 이상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고 이동상황을 알려 준다. 밤 9시에 직장동료들끼리 회식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2시간 후인 11시에 32세 미혼의 그 아들이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는 주변을 의식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는 중이지만,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주 통곡한다. “전생에 무슨 죄가 얼마나 커서 이와 같은 고통을 받는가?” 주변에서는 심한 우울증으로 발전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지난 번 화재로 아름드리 낙산사 소나무가 새까만 밑둥만 남긴 채 사라졌다. '성주괴공'의 진리를 보는 것 같다.> 

 

세상 모든 것은 모양 지은 다음 항상 그대로 있지 않고 부서져서 공(空)으로 돌아간다

 

병은 저 거사의 집안에만 있는가? 젊은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저 엄마에게만 있는가? 아니다. 나에게 우리 모두의 앞에 있다. 유정(有情)의 생물만 나고(生) 늙고(老) 병들고(病) 죽는(死) 것이 아니다. 우주(宇宙)도 끊임없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에 있다. 즉 어떤 모양을 지은(成) 다음에는 항상 그대로 멈춰있는(住) 것이 아니라 부서지고(壞) 흩어진다(空).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지은 모든 유위법(有爲法 : 이세상 모든 것, 존재, 현상)도 쉼 없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과정에 있다. 즉 생겨나서 조금 머무는 것 같지만 바로 달라지고 소멸된다. 뜻밖의 변고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들이 닥치는 재앙은 있어서는 안 될 자리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秩序)가 부여한 본래의 자기 자리에 당당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는 모든 사물의 공(空)한 모습을 설명하는데 많은 ‘무(無)’자가 쓰여 진다. 이것저것을 다 부정하고 깨달음의 소득까지 부정한 후에, 무애의 경지에서 공포심이 없어진다고 한다. 저 거사의 분노와 저 엄마의 슬픔, 그리고 우리 모두의 잃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는 하나의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공기는 모든 빈 공간에 꽉 차 있다. 전체에 꽉 차 있으므로, 우리는 공기가 특별히 있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병과 죽음, 그리고 많은 종류의 장애나 재앙은 온 세계에 꽉 차 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여기서 병과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병과 죽음들의 공평무사한 나타남을 보고,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닥치는 것”으로 위안을 받으라는 말이다.

 

과거의 영웅호걸들 모두 사라졌다. 설치던 사람들, 잘난 체하던 사람들, 남을 부리던 사람들을 산 능선이라고 치고, 침묵을 지키던 대중, 수줍어하며 자신을 감추던 대중, 이끄는 대로 순종하던 대중을 산의 계곡이라고 쳐 보자. 산은 능선과 계곡으로 이루어진다. 그림이나 사진으로 봤을 때, 능선이나 계곡이나 똑같이 중요하다. 능선의 나뭇잎이나 계속의 나뭇잎, 과거나 현재나 미래를 가릴 것이 없이 모든 나뭇잎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공평하다. 나의 병,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 병들고 죽게 되어 있다면, 나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저 평등법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을 것 같다.

 

 

                                     <낙산사 의상대 일출. 오면 가는 것을, 또한 가면 오는 것을...>

 

그대 억울한가? 속상한가? 화나는가? 절망하는가? 불안한가? 두려운가? 그렇다면, 누구나 때와 모양은 다르지만 반드시 그대가 느끼는 것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라. 너도 가고 나도 간다는 것을 생각하라. 우주의 질서는 정말로 예외 없이 공평(公平)하다는 것을 명심하라.

 

지명스님 / 괴산 각연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