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佛性)의 마음으로 자식을 낳고 생활을 하라
목마른 사람한테 물이 필요하고, 배고픈 사람한테 밥이 필요하다. 목마르고 배고픈 사람은 물과 밥을 일념으로 구하고 찾아서 헤맨다. 법화경에 나오는 일체중생희견보살은 목마를 때 물을 찾는 것보다 배고플 때 밥을 찾는 것보다 더 부처되기를 구하여 수천리길이라도 맨발에서 뼈가 드러나도 사양치 않고 기쁘게 부처님 법문을 들으러 갔다.
어째서 일체중생희견보살은 그런 마음을 냈을까?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진리에 대한 확신을 못하고 믿음이 없다. 진리에 대한 확신을 하는 사람은 진리를 알은 사람이다.
진리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 억지로 형식적으로 와서 듣는다던지, 나름대로 삿된 견해를 갖고 있으면서 와서 듣는 건 아무 소용이 없다. 배고픈 사람한테 밥을 줘야 큰 공덕이 되고 먹는 이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배부른 사람한테 자꾸 밥을 주면 밥이 천한 것이다.
여기는 중생의 유위법을 버리고 무위법을 배우는 곳이다. 이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무위법(無爲法)을 배우는 여러분이들은 마음 씀씀이나 행하는 것이 달라야 하는데, 행동은 똑같이 중생놀음하고 있는 사람이면 법문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묘관음사 향곡스님 회상에서 스님이나 신도가 한 선방에서 같이 공부했는데, 향곡스님은 거사고 보살이고 한번만 틀리면 인정사정없이 당장 쫓아버렸다. 더구나 성철스님 같은 분은 더하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보다 한두 사람이라도 쓸만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입으로는 도인 소리 누가 못하는가?
세상에서는 이 무위법(無爲法)을 듣고 배울 곳이 없다. 일반사회나 교회같은 데서 가르치는 건 유위법(有爲法)이다.
무위법(無爲法) 이 법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법문 한 글귀와 왕의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 왜 왕의 자리와 안 바꿀까?
왕의 자리가 편한 자리가 아니라는 거다. 하늘의 왕의 자리도 편한 자리가 아니다. 그럼 무슨 자리가 편안할까? 법왕(法王)의 자리가 편안한 자리이다.
왜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왕위를 버렸을까?
사바세계 최고의 낙이 애정 애욕이다. 애정 애욕이 중생의 어머니요, 무명(無明)이 중생의 아버지다. 무명과 애욕이 같이 뭉쳐져서 여러분이 창조되었다. 무명과 애욕에서 나온 것이 여러분이니 무명과 애정 애욕 그거 밖에는 생각을 안 한다. 개가 똥냄새 맡길 좋아하듯이 타고난 업이 그렇게 되어 있다. 부처님 말씀이 남녀간의 애욕과 같은 것이 하나만 더 있어도 출가할 이가 없다고 하셨다.
사바세계 애정 애욕의 맛이 영원하지 않고 이걸로 인해서 괴로움이 수백 가지가 수반해서 따라온다. 완전히 편한 게 아니라 괴롭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하늘에 올라가봐도 영원히 편하지 않고 윤회를 하는 자리이고, 삼계가 영원히 편안한 곳은 아니니, 이걸 해결할 길이 없는가 무단히 생각했다. 그래서 설산에 가서 깨달아서 상락아정(常樂我淨)을 알았다. 그 이전에 이 세상 사람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 있는 걸 전혀 몰랐다.
누에가 실로 고치를 만들어 들어가서 다시 또 누에가 되어 나오는 걸 반복하듯이, 중생들이 애욕 애정의 실을 만들어서(행동에 옮겨서) 스스로 얽어 맨다. 누에가 누에를 만들듯이 자식에게도 계속 애욕 애정의 삶 그걸 집요하게 가르친다. 왜 출세 안하느냐, 왜 돈 안버느냐, 왜 결혼 안하느냐 잔소리 하고 뭐라 한다. 중생의 업을 만들어서 이어 나가라는 거다. 자기는 결혼해서 고통스럽게 살아놓고는 ‘나는 그래도 결혼했었는데’ 하고 결혼했다는 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결혼해서 업을 많이 짓고 죄를 많이 지어서 부끄럽다’고 해야 되는데 도리어 큰소리친다. 이렇게 중생이 중생의 업을 만들어 놓고는 그걸 집요하게 자손에게 전해준다.
[보살]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럼 아기도 안 낳고 나라가 어떻게 돼요?
[스님] 여기 여러분이 사는 세계는 남녀간에 잠을 자야만 아기가 나오는 그런 업보다. 다른 세계는 그렇지 않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자식이 나온다는 거다. 과거 60년대 텔레비전이나 핸드폰이 없었을 당시에 가만히 앉아서 수천 수만리 밖의 이야기를 듣는다 하면 누가 그 말을 믿겠나. 안 믿지. 그런 거다. 이 세계 아닌 분명히 다른 고도로 발전된 세계들이 있다. 여기서도 정자은행이나 인공수정 기술로 자식을 생기게 하는데 그건 기술이 아직 먼 것이고, 다른 세계는 서로 마주 보면 생긴다. 그런 걸 모르고 막연하게 “자식 안 낳으면 대가 다 끊어지는데 어쩝니까?” 그러는데, 만약 여기서 그런 게 없어지면 다른 차원의 세계가 다시 벌어져서 대가 안 끊어진다.
그런데,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자는 사자를 낳고, 독사는 독사를 낳는다. 불성(佛性)의 마음을 가지면, 자식을 낳아도 부처의 마음을 쓰는 자손DNA를 만들어 놓는다. 술 먹고 흐린 정신으로 잠자서 낳은 자식과 맑은 정신으로 낳은 자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혜있는 남녀는 맑은 정신으로 기도를 하고 맑은 기운을 만들어 내는 것을 전해주어서 자손을 얻는다. 술 먹고 흐린 정신, 고약한 생각 자체가 DNA인데 그걸 전해주면 작품이 좋은 게 나오겠는가? 여러분이 자식을 결혼시키면 그걸 먼저 가르쳐야 한다. 깨달은 부처의 마음을 가지고서 자식을 낳고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대원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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