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시간을 벗어난 영원성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다.

장백산-1 2020. 12. 15. 16:39

시간 공간을 벗어난 영원성이 지금 이 순간 여기 이 자리에 있다.  - - 몽지와 릴라


우리들 모두는 늘 언제나 마음으로 살아간다. 마음은 어떤 모양도 어떤 대상도 아니지만 모든 경험이 
마음일 뿐이다. 마음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덕에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이 작용을 하는 덕에 
온갖 세상과 온갖 사물들이 드러나는 것이다. 마음이 제 역할을 다하기 때문에 의지를 가지고 온갖 
행동을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깨어있음,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조금도 부족함 없이 누리는 이 마음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모두의 삶에서 좌표가 되는 것이 시간과 공간이다. 우리들 모두의 생각에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흘러와 현재를 지나쳐서 미래로 나아간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것을 잘 살펴보면 그런 시간 
이전에 그런 고정된 시간관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라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시간이 
이 세상에 나타날 수가 없다. 만약 우리가 어떤 생각도 없을 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와서 미래로 
흘러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삶 바깥에서 고정되어 작동되고 있는 객관적인 시간이 아니라
지금 이렇게 마음에서 일어난 환상과 같은 생각이다.

우리들 모두는 영원성(永遠性)을 갈망한다. 이 영원성은 몸이 죽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기면 
몸이 죽고 나서 영혼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쪽으로 생각이 변형되기도 한다. 자기가 죽는다는 것, 이 
세계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믿을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이 영생, 영원에 대한 추구 이면에는 내가 육체로든, 영혼으로든 존재한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우리는 내가 영원하기를 바라지 다른 존재가 영원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을 횡으로 가로
지르는 영원한 나에 대한 환상이 죽음, 노화, 질병, 사고에 대한 두려움의 형태로 현재의 삶을 지배한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 시간이라는 어떤 것은 모두 생각이라는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성장과정에서 받아
들인 고정관념이다. 분별의 세계를 살면서 학습된 뿌리 깊은 분별심이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철저히 
돌아보지 않고 나와 시간을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한다. 그리고 시간 속 나를 설정하고 이 한계를 넘어선 
나, 즉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영원한 나를 염원하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라는 개념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없다면 굳이 영원히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다. 또한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실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삶을 구속하는 두려움을 회피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나라는 존재, 시간이라는 존재는 지금 이렇게 일어나는 한 생각의 내용에 불과하다.
두려움의 전제가 되는 나와 시간이 한 생각일 뿐이어서 실체가 사라지면 그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무의미해진다.

깨어남이란 이와같은  것이다. 나와 시간의 실체를 인정한 뒤에 일어나는 두려움을 없애는 일이 마음
공부가 아니다. 두려움의 원천을 돌아보고 두려움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밝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공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두렵지 않는 세상으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라는 조건, 
시간의 한계에 붙잡힌 나라는 존재가 본래 한낮에 꾸는 꿈과 같은 허망한 분별의식 분별심이라는 사실을 
사무치게 깨닫는 일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면 그 다음의 장애는 저절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