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바달다품 용녀의 깨달음
법화경 가르침에 즉시 용녀가 성불한 이유?
법화경경 속 부처는 단순 깨달음 넘어 중생을 위해 부처의 정토까지 완성
용녀의 즉시 성불이 보여준 건 실상은 처음이나 ‧결말이나 동시 존재함 주장
‘법화경’의 내용 가운데 오묘한 이야기 하나를 꼽으라면 ‘제바달다품’에 나오는 용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법화경에 따르면 사가라 왕국의 용왕은 여덟 살이 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용궁에서 문수보살님이 용왕의 딸에게 ‘법화경’을 가르치셨을 때 그 딸이 듣자마자 깨달아 정각(성불)을 이루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법화경’을 공부하는 많은 분들은 이 이야기를 여성의 몸을 가지고 있어도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예라고 해석을 한 경우가 대부분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성차별이 심해 여성은 다섯 가지 깨달음의 장애가 있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용녀의 예는 인간이 아닌 짐승의 몸을 가진 나이 어린 용녀 조차도 금방 깨달음(성불)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말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용녀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가장 놀라웠던 부분은 바로 용녀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바로 깨달았다는 점이다. 보통 정각(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생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과는 대비되는 내용이라, 즉시성불이라는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 숙제로 남아 있었다. 물론 선불교에서 보면 우리의 본성을 깨닫는 데는 여러 조건들이 화합하여 연기의 결과로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온전하게 구족해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어, 본성 입장에서 보면 문득 깨닫는 일이지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법화경’에서 말하는 부처는 단순히 깨달음의 지혜가 열린 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온갖 방편과 무량한 공덕을 갖추셔서 중생을 위해 중생의 극락 정토까지 완성한 분이다. 즉 ‘법화경’에서는 법신의 완성뿐만이 아니라 보신의 완성까지 한 분을 성불했다고 보는 것이다.
법신의 완성은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보신의 완성은 공덕을 쌓는데 무한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물론 티베트 불교에서는 무량한 공덕의 완성조차도 한 생이면 가능한 비법이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 한 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바라본 것에 반해 8살 된 용녀는 문수보살로 부터 가르침을 받자마자 순식간에 성불해서 무구(無垢) 정토 연화대에 앉아 중생들을 위해 설법을 하고 있다고 묘사되어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은 의상 스님의 ‘법성게’ 가운데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이란 부분과도 연결된다. 초발심, 즉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순간 이미 깨달음이 성취되어 있다는 뜻이다. 혹자는 초발심 때 깨달음의 종자를 심어 결국 언젠가 정각을 이룬다고 해석하지만, 글자 그대로 보면 초발심을 내는 시간이 바로(便) 정각을 이룬 시점이라고 했지, 그 둘 사이에 어떤 짧은 시간이라도 필요하다고는 하지 않았다.
이 숙제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경험을 하고 나서야 마침내 알게 되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서 시작된다. 즉, 생각이라는 마음의 도구가 작동을 하게 되면 시간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실제 생각이 멈추면 영원한 현재일 뿐이다. 이 영원한 현재는 어떤 시작점이 따로 있거나 소멸점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떠한 제한이 없이 무량하며, 그 안에는 생각으로 개념화해서 붙잡을 수 있는 어떠한 대상이 없기 때문에 “생생한 모름” 그 자체이다. 어떠한 설명을 할 수가 없지만, 죽은 것이 아니기에 그냥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굳이 표현하자면 영원한 현재는 부수어지거나 사라질 염려가 없어 안심이 되고, 따로 무언가를 구하려는 생각이 없어 안락하다고 할 수 있겠다.
더불어 생각이란 도구를 통하지 않고도 실상을 아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만약 우리에게 기존의 오감이나 생각이 아닌 천안이나 혜안, 법안이나 불안의 눈이 열린다면 또 다른 차원으로 실상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영원한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구족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책 자체는 처음 장부터 마지막 결말 부분까지 한권의 통으로 존재하지만, 생각이라는 도구를 사용해 책 내용을 인지해야하므로 처음부터 마지막 결말까지 아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하게 된다. 하지만 이건 생각이란 도구의 문제이지 실상의 상황은 아닌 것이다. 실상은 처음과 결말이 하나로 동시에 이미 존재하고 있고 이 점을 용녀가 즉시성불로 보여준 것이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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