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국민을 종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인터뷰] '윤석열 퇴진' 성명 낸 함석헌사상연구회 회장 김은주 박사
[김성수 기자]
▲ 성명 |
ⓒ 함사연 |
지난 10일 함석헌기념사업회, 함석헌사상연구소, 함석헌평화연구소, 함석헌학회는 "대통령 윤석열은 퇴진하라"는 시국 성명을 공동 명의로 언론에 발표했다.
함석헌 관련 위의 4개 단체들은 이번 시국성명을 함께 내면서 성명의 내용을 서로 수정 보강하는 등 공동연대 작업을 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함석헌(1901-1989)은 실의와 절망에 빠진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희망과 비전이라는 진액을 공급해 주었다. 해방 후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함석헌은 이 땅에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를 확립하고자 온몸으로 저항했다. 그는 소외된 자, 약자의 입장에서 한국사를 보았다. 그는 기득권자나 가진 자의 통치 논리가 아닌, 서민과 소수자, 패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시선을 갖고 고난에 찬 삶을 살았다.
함석헌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는 그의 종교적 신앙심과 같은 것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민주주의를 향한 자유의 길과 궁극적 절대자를 향한 사랑의 길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종교적 양심을 상실한 사회를 이상향적 사회로 생각할 수 없듯이 사회 의식이 결여된 종교도 그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었다.
김은주 박사는 지난 1975년 10살 때 부모님 손을 잡고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1992년부터 2022년까지 그는 뉴욕시 공립학교(초·중)에서 영재반 담임과 과학교사로 일했고 지난해 정년 퇴직했다. 학사와 석사는 정치사회학을 전공했는데 그 후 전공을 바꿔 지난 1997년 교육행정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그는 뉴욕시·뉴욕주 교장 자격증을 땄는데 학생들 옆에 있고 싶어서 평생 평교사로 가르치다가 은퇴했다.
그가 회장을 맡고 있는 '함석헌사상연구회'(아래 함사연)는 지난 2007년 재미교포들이 설립했다. 함사연은 "한국 현대사에서 정의와 자유 그리고 평화운동의 지적 스승이었던 함석헌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의 가르침을 생활 가운데 실천하려는 씨알들의 모임"인 것이다.
지난 10일부터 17일까지 이번 '윤석열 퇴진'성명과 관련해 미국 뉴욕에 있는 김은주 박사와 페북 메신저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대통령이 비상식적"
-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 일본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재미교포로서 이런 윤 대통령의 국제 관계 인식을 어떻게 보나.
"지금 미국은 일본과 손잡고 어떻게 해서든지 중국을 견제하려는 입장에서 한국을 도구로 이용하고자 한다. 윤 대통령이 한국을 미국과 일본의 도구 또는 하수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미국과 일본의 이익이 곧 한국의 이익이 될 수 있지만 한국은 당당한 주권국가 아닌가.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민을 단지 하나의 종이나 머슴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오직 자신의 이익과 미국·일본의 이익만을 생각하면 이완용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 윤 대통령은 북한을 '주적'으로 되돌리고, 대북 선제타격을 공언하며 대북관계 강경책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윤석열 정권의 대북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 한반도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아직도 분단 시대를 겪고 있다. 한 얼, 한 피, 한 언어를 가진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주적이니 빨갱이니 하면서 형제·자매를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마음 자세는 아직도 윤 대통령의 머리가 냉전 시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떻게 한 피, 한 민족, 한 형제·자매가 주적이 될 수 있는가?
이 비상식적인 인식은 이 세계에서 보편적 가치로 존중받을 수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서로 평화와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주적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분노와 증오와 살생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런 단어를 쓴다는 것은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불교 신자로서 나는 지금 나라를 이끄는 모든 사람들이 깊은 명상으로 들어가 평화, 화평 그리고 서로를 감싸 안는 정책을 펴면 좋을 것 같다. 깊은 성찰과 실천이 필요한 시대다."
- 윤 대통령은 "100년 전 일로 일본이 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죄해야 하느냐.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 일제의 위안부, 노동자의 강제적 동원에 대한 해결책으로 윤 대통령은 피해자 쪽 한국 기업이 보상하는 '제3자 변제'를 제안했다. 이런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을 어떻게 보나?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들은 '절대 잊지 말자'를 강조한다. 과거의 비극이 절대로 우리 후손들에게 반복되지 않도록 또 절대 잊지 않도록 우리 기성세대들은 노력해야 한다. 100년이 되었건 1000년이 되었건 아프고 슬픈 역사일수록 절대로 우리는 우리 후손들이 그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제3자 변제'도 마찬가지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상해야지 왜 제3자가 보상하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 지난 박정희·전두환 정권기는 '육사'가 한국을 지배했는데 지금은 '검사'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다. 한국 검찰의 가장 큰 문제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박정희 정권 때 '인혁당' 사법 살인이 이루어졌다. 당시 육사 출신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모든 국가 조직이 장악되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검찰이 모든 국가조직을 장악하고 있다. '육사'나 '검사'나 그저 둘 다 독재 조직이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독재 권력은 언제나 비극으로 끝난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교훈을 윤 대통령이 깊이 명심하길 바란다."
- 현 시기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하나.
"노무현·문재인 정부 때는 일본과 대립각을 세웠지만 미국에는 자주성 없이 행동했다. 한반도 통일도 당사자인 남북이 서로 통일 문제를 직접 거론해야 하는데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4대 강국에 의지했다. 늘 우리는 약하니까 하는 핑계나 삼고. 이 점은 과거 정부도 반성해야 한다.
미국이 왜 일본과 손을 잡고 중국을 견제할까?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독일처럼 일본을 분단해야 하는데 오히려 피해국인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물론 일본의 항복으로 소련군의 평양 입성에 놀란 미국이 소련이 남한으로 진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급하게 한반도를 분단한 것은 알지만 어쨌든 한반도 분단에 미국은 결정적인 '원죄'가 있다. 그 후 한국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 윤석열 정권까지 이어지는 한반도 냉전체제. 결국 미국의 '원죄'로 오늘 한반도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윤석열 정권은 "국민에 의해 선택된 정권이니 조용히 있으며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는 의견도 있다. 이런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지난 2016년 검사 윤석열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강골 검사로 불리며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그 후 오히려 야당인 국민의힘 후보로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지금 나라를 엉망으로 이끌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해외에서 지켜보는 대한민국은 참 괴상한 나라다. 어제의 '영웅'이 오늘의 '괴물'이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고. 나는 이번 기회에 민주당이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국민의힘을 비판하되 성찰을 통해 민주당도 더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왜 국민의 30%는 '무조건 윤석열 정권을 지지한다'고 보나?
"한국의 민주당 지지자들도 무조건 민주당 정권을 지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 재미교포 카톡방, 텔레그램 방에도 그런 진영논리 때문에 늘 싸우고 난리다. 결국 성숙하지 못한 민족이라고 자책한다. 통계가 30%가 되든 70%가 되든 우리는 왔다갔다 눈치만 보는 민족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 초심을 잃지 말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민주당의 문제는 철저히 비판해 고치도록 하고 국민의힘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역시 철저히 비판하고 고쳐나가도록 해야 한다. 맹목적 지지, 무조건 지지, 묻지마 지지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 미국에 살면서 모국인 한국을 보며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울 때와 부끄러울 때는 언제인지?
"타국에서 살면서 우리 말, 글, 문화, 얼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에 감사하고 감동받고 나도 함께하고 있다(관련 기사: 뉴욕의 과학 교사가 한말글 운동에 나선 사연 https://omn.kr/24dum).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글, 문화, 유산들을 귀하게 생각하면서 후손들에게도 민족 얼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는 분들을 만날 때 제일 만족스럽고 대견한 마음이 든다.
반면에 자랑스러운 모국어로도 표현이 충분히 가능한데 줏대 없이 자꾸 '콩글리시'를 쓰는 분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또 그저 돈만 좋아하며, 내 종교만 중요하다고 목청을 높이며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참 한심하고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엄청 부끄럽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다. 함석헌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게는 이제는 기독교가 유일의 참 종교도 아니요, 성경만 완전한 진리도 아니다. 모든 종교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하나요, 역사철학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교파주의적인 것, 독단적인 것을 없애 버리고 책 이름도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고 고쳤다. '성서적 입장'이라는 대신 '뜻으로 본'이라고 붙일 때에 나는 여러 가지로 생각하였다. 많은 기독교인들을 섭섭하게 할 것과 심하면 거침돌이 될 것까지 생각하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기독교인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다. 그들이 불신자라는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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