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칼럼] 윤석열의 만용, 역사까지 날조
[미디어오늘 손석춘 철학자·「우주철학서설」 저자]
저들에게 역사 앞에 겸손하길 촉구한 것은 과연 과대평가였다. 윤석열 정권은 역사 날조까지 서슴지 않는다. 대통령과 국가보훈부장관 손발이 척척 맞는다.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한 자리에서 대통령은 “우리의 독립운동은 단순히 일제로부터 빼앗긴 주권을 찾는 것만이 아니었다”면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독립운동은 “빼앗긴 주권을 회복한 이후에도 공산 침략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내는 것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월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독립운동을 '반공'과 연계하려는 깜냥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은 장관 박민식이다. “독립운동을 하는 분들이 목적”이 있다고 주장한 그는 “우리 국민한테 자유를 주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다고 해야 이야기가 되는 것”이라 언구럭부리며 “자유도 없는 전체주의 국가를 위해 독립운동”은 인정할 수 없단다. 한시적인 장관 자리에 덥석 앉으니 무슨 역사의 심판관이라도 된 양 착각하는 오만이다.
대체 어떤 독립운동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려하지 않았단 말인가. 더 큰 문제는 독립운동을 자유민주주의로 치환하는 윤석열의 역사 날조다. 31혁명으로 왕정에 마침표를 찍은 대한민국임시헌장(1919.4.11)을 보자.
임시정부법령 제1호인 헌장은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에 이어 제3조에서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급 빈부의 계급이 무하고 일체 평등임”을 밝힌다. 헌장 1조에서 3조까지 강조되는 것은 공화제와 평등이다. 그해 9월에 다듬어진 대한민국임시헌법도 “대한민국의 인민은 일체 평등함”을 강조한다.
1948년 7월17일 제정된 대한민국헌법은 어떤가. 전문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한다. 자유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균등을 중시한다.
제5조에서도 “각인의 자유, 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하며 공공복리의 향상을 위하여 이를 보호하고 조정하는 의무를 진다”고 했듯이 자유와 함께 평등, 공공복리를 부각했다. 경제를 담은 제6장의 첫 조문인 제84조는 더 분명하다.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이다.
자, 어떤가. 독립운동의 정통이라 할 임시정부 헌장이든, 저들이 강조하는 대한민국의 제헌헌법이든 결코 자유만 다짐하지 않았다. 자유민주주의를 결의하지도 않았다.
오해 없도록 명토박아두자. 21세기 들어 학계에선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딱히 구분하여 따따부따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특수하다. 그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내걸 때마다 노동운동을 탄압하거나 마녀사냥을 벌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나 민주주의는 얼마든지 혼용해서 쓸 수 있지만, 전자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평등을 경시하거나 외면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은지 살필 필요가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8월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무릇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은 자유와 평등이다. 캠브리지 사전을 보더라도 민주주의를 “사람들 사이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믿음에 기반 한 정부”로 풀이한다.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은 더욱 그렇다. 공화국은 '공공선과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공화국 영어 '리퍼블릭'은 '공공의 것'을 뜻하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에서 왔다.
민주주의 개념으로 보든 공화국 개념으로 보든 자유만 부르대는 것은 불순한 권력논리다. 저들이 부르짖는 우리 독립운동사든 정부수립 과정으로 보든 자유만 내세우는 것은 역사 날조다. 그 불순한 언행에 민중운동을 배제하거나 탄압하려는 기득권세력의 의도가 깔려 있다면 역사 날조는 더욱 용납할 수 없는 만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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