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이 돼버린 김건희 여사의 ‘국빈 방문’ [박찬수 칼럼]
[박찬수 칼럼]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11일(현지시각)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 도착,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서 내린 뒤 차량에 탑승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대를 받는 ‘국빈 방문’이란 유혹의 결과는 엄중한 성적표로 돌아온다. 윤 대통령에겐 내년 4월 총선이 시금석이다. 그 전에, 국회에서 날아오는 ‘김건희 특검’의 칼날부터 먼저 받아야 할지 모른다. 대통령 부인이 자랑하고픈 멋진 해외 활동 사진과 기사는 이제 거꾸로 여론을 악화시키며 제 가슴을 파고드는 비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찬수│대기자
지난 11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위해 공군 1호기에 오르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모습은 왠지 착잡해 보였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와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 당정 고위 인사들과 악수하는 윤 대통령 표정은 굳어 있었고, 회색 재킷의 김건희 여사는 미소를 짓지 않았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경제는 바닥이고 부산엑스포 유치는 참담하게 실패했다. 얼마 전엔 김 여사가 개인 사무실에서 재미동포 목사로부터 명품백을 받는 장면이 공개됐다. ‘함정 취재’라고 말하지만, 대통령 부인이 수백만 원짜리 선물을 스스럼없이 받는 청렴성의 결여를 덮을 수는 없다. 여기에 서울의 여당 우세지역이 6곳에 불과하다는 내부 자료가 공개되면서 총선 참패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국민의힘에서 끓어오른다. ‘이런 판국에 또 부부 동반 외유냐’라는 비판이 야당뿐 아니라 여당과 보수 언론에서도 나온다. 윤 대통령으로선 당장에라도 방문을 취소하고 전용기에서 내리고 싶었을런지 모른다.
길게는 1년, 짧게는 몇달 전에 확정한 외국 방문을 취소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지만 올해만 13차례 해외 순방에 나서고 그중 다섯 차례가 의전과 수행원이 늘어난 국빈 방문이며, 8월의 워싱턴 한·미·일 정상회의만 빼고 부인 김건희 여사가 모두 동행했던 점은 어떤 이유로도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다. 물론, 순방 계획은 대개 연초에 짠다. 그때만 해도 대통령 지지율은 차츰 오를 거라고, 부산엑스포 유치는 성공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김 여사의 명품백 논란은 더더욱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터다. 그래도 11월에 영국과 프랑스를 다녀왔는데 12월에 네덜란드 한 나라만 국빈 방문하겠다고 다시 유럽 일정을 잡은 건 예전 정권에선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대통령실 외교·안보 참모는 “우리나라 위상이 높아져 많은 나라에서 초청을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무에 집중하는 실무 방문보다 폼 나는 국빈 방문을 선호하고, 외국 나갈 때마다 부인을 동행하는 건 이젠 후진국 모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남편의 재임 8년간 모두 22차례 해외에 나갔다. 오바마 대통령의 해외순방 횟수 52회의 절반도 채 되질 않는다. 빌 클린턴 대통령 부인 힐러리(8년간 47차례), 조지 부시 대통령 부인 로라(8년간 46차례)에 비해 해외 방문이 현저히 줄었다. 미셸은 남편의 국제회의 참석엔 거의 따라가지 않고 어린이나 군인 가족을 돕는 국내 행사 참석에 힘을 쏟았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했다. 바이든 현 대통령의 부인 질도 비슷하다. 바이든 재임 첫 2년간 퍼스트레이디의 해외 방문국은 10개국이라고 백악관은 밝혔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부인은 동행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김건희 여사가 올해에만 12차례 15개국을 남편 따라 외국에 나간 건 너무 지나치다. 순방 예산을 초과하면서까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나 나토 정상회의, 지난해 영국 여왕 장례식에 대통령 부인이 굳이 참석해야 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용산 대통령실이 공개하는 순방 사진 중 상당수는 대통령보다 부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전직 고위급 외교관은 “대통령이 되면 외국 방문에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에서 환대를 받으니까, 그런 환대를 국내에선 받기 어려우니까, 대통령이나 부인이나 자꾸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외교 참모들도 여기 맞춰 순방 일정을 짜서 대통령과 부인의 눈에 들려고 한다. 뜬금없는 네덜란드 한 나라 국빈 방문은 그래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정부도 다 그랬는데 왜 인제 와서 트집이냐고 항변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윤 대통령은 그런 정치 관행을 깨겠다고 검찰총장에서 곧바로 대선에 출마해 당선된 사람 아닌가. 바꿔야 할 건 바꾸지 않고, 바꾸지 말아야 할 국정운영 노하우는 뒤엎어버리는 게 지금의 모습이다. 더구나 김건희 여사는 대선 기간에 여러 논란이 불거지자 “과거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조심, 또 조심하겠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면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런데 막상 남편이 대통령이 되자, 명품 선물을 손쉽게 받고 “남북문제에 나설 생각”이라는 말까지 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 유혹의 결과는 엄중한 성적표로 돌아온다. 윤 대통령에겐 내년 4월 총선이 시금석이다. 그 전에, 국회에서 날아오는 ‘김건희 특검’의 칼날부터 먼저 받아야 할지 모른다. 대통령 부인이 자랑하고픈 멋진 해외 활동 사진과 기사는 거꾸로 여론을 악화시키며 제 가슴을 파고드는 비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오랫동안 꾼 꿈이 악몽으로 변하는 건 한순간이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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