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의 날마다 해피엔딩

이름과 모양을 빼고, 언어와 개념도 빼고, 그저 맨느낌으로

장백산-1 2024. 4. 22. 22:21

이름과 모양을 빼고, 언어와 개념도 빼고, 그저 맨느낌으로


명상을 흔히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 있음’,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알아차림’,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시비 분별 비교 판단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봄’ 등이라고 합니다. 판단, 분별,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고, 그저 지금 여기 있는 이대로를 있는 그대로 경험해 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래 익숙해진 습관은 계속해서 미세한 생각들을 표면의식으로 쏘아올립니다. 이같은 미세한 생각들을 미세망념이라고도 합니다.

고요히 좌선 자세로 앉아 있으면,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이 알아차려 집니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을 호흡관찰명상, 호흡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호흡관찰명상 여기에도 미세한 망념은 개입이 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면서, 우리는 호흡이 들어오는구나, 나가는구나, 들숨, 날숨, 공기가 들어옴, 나감, 이런 식으로 알아차립니다. 사실은 있는 그대로의 맨느낌을 보자면,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이 이런 식으로 경험되지는 않습니다. 호흡이라는 말도 말이니 분별이죠. 호흡이란 말도 빼보죠. 들어오고 나간다는 말도 '나'라는 자아상을 기준으로 코 바깥으로 나간다거나 코 안쪽으로 들어온다는 분별입니다. 그러니 이것도 빼죠.

공기가 들어오고 나간다거나,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가 따뜻한 바람이 나간다는 것도 생각이고 말입니다. 공기라는 말, 차갑다 따뜻하다는 말도 벌써 한 번 말로 해석된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도 빼 보죠. 그러면 뭐가 남을까요?

말로 표현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최대한 말로 표현해 본다면, 다만 무언가의 움직임이 그저 포착되고 있고, 알아차려지고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 말이나, 개념, 언어를 붙이면 곧장 말에 떨어지고, 분별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로 해석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지는 것을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는 것입니다.

소리가 들릴 때, 시계 초침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시계라는 것도 언어로 해석된 것이니 빼고, 초침소리도 해석입니다. 그저 재깍재깍만이 남는데, 이 재깍재깍이라는 것도 말로 해석한 것이니 빼야죠.

그저 소리라고 이름 붙인 어떤 것이 자각될 뿐입니다. 알아차려질 뿐입니다. 명상을 할 때는 이런 식으로 모양과 이름을 빼고, 언어와 개념도 빼고, 그저 맨느낌으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현실 그 자체와 마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