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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初心)이 선심(禪心)이다

장백산-1 2024. 9. 16. 23:56

초심(初心)이 선심(禪心)이다

 15. 알음알이의 분별


알고 있는 것으로 현재 보면 현재는 과거 굴레 못 벗어나
새로움과 생동감은 사라지고 오만함 ‧ 무기력에 빠지게 돼

아무런 판단 없이 새로움을 경험하는 일은 최고의 지성을 요구합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운명적인 어떤 문장을 만나게 되는데, 내 나이 17살 가슴에는 이 문장이 들어와 꽂혀 버렸다. 새로움을 만나는 일이 그렇게 어렵고도 중요한 것인지, 지두 크리슈나무르티의 말이 그땐 잘 이해 되진 않았지만, 내 평생의 화두가 되어 언젠가는 타파하리라고 여겼던 것 같다. 3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 보니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우리는 매초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경험을 할 때 있는 그대로를 온전히 경험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자기 생각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항상 과거에 발생했던 것을 기억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어디 새로운 장소에 처음 갔을 때, 그 전에 가 보았던 어떤 곳을 연상하게 한다는 말을 사람들은 한다. 처음 가 보는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전에 가 보았던 다른 비슷한 장소에 비해 음식 맛이나 가격이 어떻다고 비교하면서 눈앞에 있는 지금 현재의 경험을 평가한다.

어떤 사상이나 관념을 이야기할 때도 보면, 이와 비슷하게 종종 반응한다. 얼마 전에 서양 유수 대학교에서 온 머리 좋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원도 월정사에서 선불교를 가르치게 되었다.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내가 어떤 가르침을 주면 바로 질문이 들어 왔다. 본인들이 이미 과거 어디에서 배웠거나 경험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그것들과 어떻게 유사하거나 다른가를 끈질기게 물어봤다. 어떤 학생은 기독교 교리와 비교하기도 하고, 서양 철학 시간에 배운 내용과 맞추어 보기도 했다.

즉, 지금 여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경험을 목전에 두고도 그것에 대한 온전한 관찰과 관심보다는 이미 기존에 본인들이 이해했거나 경험했던 과거를 재경험하기 바쁜 것이다. 그러면서 생생하고 살아있는 새로움을 이미 알고 있는 과거의 죽은 이야기로 분석하고 판단하면서 ‘아, 이게 무엇인지 알겠다’ 하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알겠다’라고 말하는 순간, 지금 생생하게 살아서 변화하고 있는 현재를 더이상 깊이 관찰하지 않게 된다. 마치 살아있는 동물을 죽인 후 박제하듯, 알겠다 하는 순간 끊임없이 계속 변화하는 지금 현재를 고정된 이미지나 관념으로 만들어 박제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런 판단 없이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지성을 요구한다. 여기서 지성이란 어떤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민감하게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즉시에 알아차리는 능력을 말한다. 왜냐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버릇처럼 아주 게으르게 본인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현재를 끊임없이 관념으로 박제한다. 선가(禪家)에서는 이러한 경험을 다른 말로 “알음알이로 현재를 분별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현재를 보면 현재는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온전한 새로움과 통통 튀는 생동감은 사라지고, 이미 다 안다는 오만함이나 아니면 인생에 재미있거나 신기할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 무의미함 내지 무기력에 빠진다. 알음알이 병이 아주 심하면 세상을 아주 시니컬하게 보거나 본인 생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망상 환자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현상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새로움을 만나지 못하기에 생기는 병이다. 과거의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지금 현재를 민감하게 보고 온전히 경험하게 되면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다.

즉, 이미 안다는 생각 없이, 아니면 현재를 생각으로 분별해서 이해해 보려는 시도 없이, 생각이 쉰 조용한 마음으로 눈앞의 현재 경험과 마주 해 보자. 마음은 한없이 열려 있지만, 알 수 없는 신비한 미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라는 생각도 없고, 무엇을 성취하려는 마음도 없다. 생각으로 분별하지 않기에 눈앞 경험의 일부를 분절해서 보지 않는다. 통으로 펼쳐져 있지만 알 수는 없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지금 여기가 알고 보면 우리 본성인 것이고, 부처 성품인 것이다.

선가에서는 초심(初心)이 선심(禪心)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모른다 하고 바라보는 활짝 열린 마음, 다른 말로 하면, 알음알이가 푹 쉰 초심이야말로 부처가 연꽃을 들어 가섭에게 전해 준 바로 그 마음이다.

 

혜민 스님 godamtemple@gmail.com

[1740호 / 2024년 8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