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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법 - -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장백산-1 2024. 11. 8. 14:40

일체법 - -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

 

사람들은  나와 세계를 둘로 나누고 분별하여, 여기에는 ‘나’가 존재하고 저기 바깥에는 ‘세계’가 있다고 착각한다. 그렇다면 면 사람들은 왜 있지도 않은 ‘나’와 ‘세계’를 있다고 착각하며 사는 것일까? 사람들이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그것은 정말로 있는 것일까?

 

무아(無我)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무아 (無我) 를 ‘아(我)’라고 착각하면서부터 모든 괴로움은 시작되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의 고(苦, 괴로움)의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가르침을 설하셨다. 그 대표적인 가르침이  ‘일체법(一切法)’이다.

 

일체법 (一切法)’ 은  ‘일체 모든 것’, ‘일체 모든 존재라고 착각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일체법 (一切法)’ 은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은 어떻게 구성되어져 있는지를 밝혀주는 가르침이다.

 

일체법 (一切法)’ 은 실체적인 나와 실체적인 세계가 어떻게 분류되는지를 설명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고 착각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과정으로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가르침이다. 그렇기에 일체법은 불교의 인식론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살펴 볼 대표적인 일체법에는 육근(六根), 육경(六境),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오온(五蘊) 등이 있다. 일체법의 장에서는 연기법과 삼법인, 그 중에도 무아의 가르침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의 인식에서 감지되고 있는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인연과 과정을 통해 ‘나’라는 자아로 인식되게 되었으며, 또한 외부의 대상이 어떻게 ‘세상’으로 인식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십이처와 십팔계를 통해, 자아라고 인식된 ‘나’가 사실은 오온의 쌓임에 불과할 뿐이며, 사람들이 ‘나’라고 여기던 그 오온 또한 십이처와 십팔계를 인연으로 연기한 허망한 존재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글쓴이 : 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