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허공을 조각해서 부처의 형상을 만들 수 있겠는가? 어떻게 허공에 대해 푸르다거나 누렇다거나 붉다거나 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법에는 비교할 것이 없다. 설명할 수도 없다. 법신(法身)은 무위(無爲)일 뿐이니, 어떤 헤아림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한다.
“성스러운 본체는 이름이 없고, 참된 이치는 말로 설할 수 없다.”
선지식을 찾아가 하나의 지식과 하나의 이해를 구한다면, 이것은 선지식이라는 마귀에 떨어진 것이니, 말로써 견해를 지었기 때문이다.
사홍서원(四弘誓願)에 발심하여 일체중생을 다함없이 제도한 연후에 내가 성불하리라고 한다면 이는 보살의 법과 지혜라는 마귀에 떨어진 것이니 서원이라는 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유(有)에도 집착하지 않고 무(無)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선지식은 수많은 마귀의 말에서 벗어나 있으니, 말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이다. 말로써 설명하려 한다면, 스스로를 종사(宗師)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다만 말하는 것이 계곡을 울리는 메아리와 같다면, 말이 천하에 가득 차 있더라도 그 말에는 허물이 없으니 의지해도 좋다. 그러나 만약 ‘나는 잘 설법하고, 나는 잘 이해한다’고 말하거나, ‘나는 스승이고 너는 제자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마귀의 말이다.
일체의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분별법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또 의지하지 않음에 머물지도 않고, 또 의지하지 않음에 머물지 않는다는 생각도 내지 않는다면, 그를 대선지식이라 할 만 하다.
✔ 이 법은 어떻게도 설명할 수 없다. 모습을 떠올릴 수도 없고, 크기도 모양도 냄새도 맛도 없다. 비교할 그 어떤 것도 없다. 둘로 나뉘어져 있으면 이것과 저것을 비교하여 ‘이렇다’거나, ‘저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법은 불이법(不二法)이기에 둘이 아니니 그 어떤 비교도 있을 수 없고, 그 어떤 규정도 할 수 없다.
이 법은 무위이기 때문에, 그 어떤 헤아림, 이치, 지식, 분별로써는 다다를 수 없다. 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를 말하라면 바로 이것이다. 헤아려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니 바른 법을 드러내는 선지식은 그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둘로 나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과 저것이 있어야 뭔가를 집착하고 버리고 할 텐데, 오로지 이 하나의 진실 밖에 없다면, 그저 ‘하나’ 밖에 없다면 집착할 것도 없다.
선지식은 말로써 말 너머의 법을 끊임없이 설법하지만, 그렇게 수없이 많은 말을 하면서도 전혀 그 말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 모든 말은 말을 해도 한 바가 없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당신의 전체 인생을 바쳐 끊임없이 중생들을 위해 설법하셨지만, 열반하실 때 단 한 법도 설한 바가 없다고 하셨던 것이 이 때문이다.
말로써 설명할 것이 아니라, 말 너머의 ‘이 자리’를 곧장 지시해 줄 수 있어야 모름지기 종사라고 할 만하다. 말로 설명하면서도 말로 설명하지 않을 수 있어야 종사다. 말하는 것이 계곡을 울리는 메아리와 같아, 그 말에 전혀 흔적이 남지 않고, 공하여 텅 비었음을 안다면, 천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말을 하더라도 아무런 허물이 없다.
혹시 스스로 ‘나는 설법을 잘한다’거나, ‘내 설법이야말로 참된 진리’라거나, ‘나는 불법을 잘 이해한다’라고 말하거나, ‘이 법만 믿으면 된다’거나, ‘이 법만이 유일한 최고의 진리’라거나, ‘나만이 최고의 스승’이라고 하며 제자 되기를 강요한다면, 그는 마귀의 말을 하는 자다. 분명히 다시 읽어 보라. 그는 마귀의 말을 하는 자다.
그런 스승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스승들로 인해 상처받고, 오랜 세월 고생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 법에는 무어라고 내세울 그 어떤 것도 없거늘, ‘내 법이 최고’, ‘내 가르침이 최고’라고 자신의 법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가? 불법의 기본조차도 모르는 어리석은 삿된 스승인 줄 알아야 한다.
참된 대선지식이라면, 일체의 있다거나 없다고 하는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못하도록 이끈다. ‘이것이 진리’라고 말하며, 그 진리를 있는 것처럼 꾸며낸다면 그는 있고 없음을 분별하는 자다. 그 어디에도 의지하지 못하도록, 제자를 무주(無住)로 이끌어 주는 이야말로 참된 선지식이다.
그러면서도 의지하지 않고 머물지도 않는다는 거기에도 머물지 않고, 그런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를 대선지식이라 할 만하다. 선지식의 손 안에는 어떤 것도 들어 있지 않다.
글쓴이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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