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지도자는 역량과 운, 그 시대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 진다고 했다. 유시민, 김두관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사는 같은 세대이지만, 그 삶의 경로와 경험이 매우 상이하다. 두 사람이 가진 성품과 성향이 다르다. 가진 역량도 다르다. 누구에게 행운의 여신은 미소를 지을까?
ㅇ유시민은 논리적이고 김두관은 직관적이다.
유시민의 강연은 매우 논리정연하다. 논리적인 허점이나 비약은 거의 없다. 어떤 주장을 해도 남들이 반박하기 어렵고 얄미울 정도로 완벽한 논리와 근거가 제시된다. 설령 과거와 모순되는 주장을 한다하더라도 그의 말을 들으면 반박하기 어렵다. 말이 많고 길어도 지루하지 않다. 영락없이 그는 글쓰는 사람이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매우 똑똑하고 영리해 보인다. 믿음직한 면은 다소 모자란다.
김두관은 직관적이고 단정적이다.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체로 결론을 먼저 말한다. 자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설명을 길게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정교한 논리로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풍부한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펴는 화법을 구사하지 않는다. 논리적인 화법보다 사례를 들며 설명하는 화법을 주로 구사한다. 투박해 보이고 우직해 보인다. 똑똑해 보이지는 않는다.
ㅇ유시민은 계산으로 하고 김두관은 뚝심으로 한다.
2007년 연말부터 시작된 우리당 사수투쟁에 사실상 유시민이 이끌고 있었던 참정연 소속 국회의원들과 김두관이 함께 했다. 통합파들의 탈당위협이 고조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회의원들을 설득하자 참정연은 회원투표라는 형식절차를 통해 통합파의 주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김두관은 청와대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도 않으며 끝까지 사수투쟁에 나아갔다. 결국 그도 대세를 꺽을 수 없었다.
김두관은 오래전부터 차기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공공연하게 도전하겠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했다. 출판기념회와 공식출마선언은 사실상 요식에 불과했다. 숨기지도 않고 둘러대지도 않는다. 되든 안되든 출마를 하겠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유시민은 장관직을 그만 둘 때부터 교묘한 화법으로 출마하지 않을 듯한 뉘앙스도 풍기고 출마할 듯한 뉘앙스도 풍기면서 출마여부 자체를 흥밋거리로 만들고 있다. 치밀하게 계산을 하면서 상황과 정세에 맞추어 적당한 시점과 적절한 표현을 고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ㅇ유시민은 중심에서 자랐고 김두관은 변방에서 왔다.
유시민은 경주, 대구,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했고 서울에서 터를 잡고 살았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 하였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였고 시사평론가, 방송진행자로 정치판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글도 잘 쓰고 말도 잘 한다. 형제들도 모두 유명한 사람들이다.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일을 해도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 그는 확실히 화려한 스타다.
김두관은 남해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했다. 경북 영주시에서 전문대학을 다녔다. 편입하여 부산에서 대학을 다녔다. 길지 않은 시간동안 서울의 재야단체에서 일했다. 다시 남해로 왔다. 농사를 짓고 농민운동을 했다. 마을 이장을 했다. 남해신문을 창간해서 경영하였다. 남해군수를 두 번 하였다. 어느 날 행자부장관이 되었다. 변방에서 온 행자부장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 최고위원을 하였다. 그렇지만 아직 그는 여의도 중심의 한국정치에서 변방에서 온 촌놈취급을 받는다. 자극적으로 발언하지 않으면 언론에서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 이방인 이다. 경남 액센트가 짙게 묻어 있는 그의 말투는 세련미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변방에서 온 촌놈이 분명하다.
ㅇ유시민은 네티즌이 지지하고 김두관은 촌놈들이 지지한다.
유시민은 첨부터 인터넷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개혁국민정당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을 지향했다. 그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는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그의 지지자들도 인터넷을 통해 소통한다. 그의 지지자들은 개별화되어 고립되어 있지만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이제 하나의 세력이 되었다. 그가 발언하면 수백, 수천의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반면 그는 뚜렷한 지역기반은 없다. 경북 출신이지만 경북에서 안티가 가장 많다.
김두관은 종이신문을 창간했다. 종이신문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역에서 활용했다. 종이신문을 직접 들고 돌리며 정보를 나누었다. 직접 얼굴을 맞대며 소통하는 인간관계를 주로 하였다. 자치연대, 자치분권연대 등의 활동을 통해 형성된 전국적인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구성원들도 대부분 자기 지역에서 대면적인 인간관계를 주로 하는 사람들이다. 어려운 일을 찾아서 도와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과정을 통해 끈끈한 관계가 형성된다. 아날로그식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수도권보다는 지방의 촌놈들 중에 호감을 가지고 지지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ㅇ유시민은 국민을 말하고 김두관은 서민을 말한다.
유시민은 FTA의 불가피성과 통상국가를 말하면서도 그로인해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나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제기하는 의제는 대부분 서민들의 생생한 삶 속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논리적 추론에 의해 도출된다. 그가 장관을 하면서 마련해 놓은 의료보험, 국민연금 개혁도 가난한 서민들의 요구가 반영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김두관은 스스로 서민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수구 기득권과 민주화 기득권까지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편리와 안일을 유지하고자 할뿐 서민의 삶에 무관심 한 세력이 바로 기득권 세력이라고 한다. 마을 이장, 지역신문 창간, 군수시절의 성과는 모두 그가 서민의 삶에 철저히 뿌리내리고 있고 그의 관심이 서민의 삶에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ㅇ유시민은 배타적이고 김두관은 통합적이다.
유시민은 끊임없이 피아를 선명하게 구분하여 상대를 날카롭게 공격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정치적 성장을 하였다.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모습보다 냉소하고 비꼬는 말투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한다. 상대에 대한 가차없는 공격과 명확한 배척은 그의 강점이자 약점이 되고 있다.
김두관은 서민의 입장에 서면서도 꾸준히 상대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동조자로 만드는 방식으로 지지자를 확보해 왔다. 동네 이장의 일이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시골 군수의 위치라는 것이 나를 배척하는 사람마저 포용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지지자마저 돌아선다.
ㅇ유시민은 게릴라전을 하고 김두관을 정규전을 한다.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는 그가 이십대 일 때 이미 베스트셀러였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도 치밀하게 기획된 일이 아니고 우연히 일어난 불상사였다. 이해찬 의원 보좌관 생활, 유학, 시사평론가, 시사토론 진행자...... 2002년 대선에서 그가 보여준 상황포착 능력과 임기응변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탁월한 것이었다. 노무현 후보 구하기에 뛰어 들 때 그는 마치 마른 들판에 불을 지피는 것 같은 역할을 하였다. 일시에 그는 젊은 개혁파의 구심에 서 버렸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아무나 할 수 없는 순간포착 능력이다. 젊은 네티즌의 개혁욕구를 정확하게 읽고 이를 바탕으로 개혁당 창당까지 끌고 나가 버리는 그의 역량은 과거 3김의 정치적 역량에 비추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김두관은 인구 6만밖에 되지 않는 남해군에서 나고 자랐다. 남해에서 신문 만들고 선거에 출마했다. 군민 대부분이 김두관에 대해 전모를 안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도 없다. 감추고 싶은 면을 감출 수도 없다. 이장, 농민운동, 신문사 경영...... 지역에서 확실한 활동을 기반으로 선거에 나와 어려운 환경을 이기고 당선될 수 있었다. 김두관은 열린우리당 최고위원선거에 세 번이나 출마하였다. 처음에는 예비경선 탈락, 두 번째는 5위 탈락, 세 번째 도전에서 3위 당선할 수 있었다. 한두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한 준비와 노력 끝에 목표를 달성하였다. 그의 성취과정은 화려하지 않다.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런 맛이 없다. 뚜렷한 목표의식과 일관되고 성실한 과정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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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삼아 써 보았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