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늪으로 빠져드는 한국의 경제

장백산-1 2008. 5. 31. 10:12
한국일보

늪으로 빠져드는 한국경제

기사입력 2008-05-31 02:51 기사원문보기
외채 급증·고용악화도 지속 '악재첩첩'

무디스는 "한국 은행들 단기차입 과도"

한국 경제가 총체적 수렁에 빠지고 있다.. 경기 하강은 이제 확연해졌고, 경상수지는 5개월째 적자다. 고유가 폭풍에 소비자물가는 4%대 중반으로 치솟을 태세다.

‘트리플 악재’(고물가, 저성장, 경상수지 적자)의 늪이 갈수록 깊어지는 상황이다. 여기에 고용과 외채 악재도 겹치면서, 대내외 균형이 모두 무너질 위기다. 정부의 정책 방정식도 한결 더 복잡해졌다. 옴짝달싹할 여지 없는 진퇴 양난이다.

30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전달보다 0.5포인트 낮아진 100.4를 기록,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향후 경기 국면을 예고하는 선행지수 전년동월비도 0.6%포인트 추락했다. 5개월째 하락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동행지수ㆍ선행지수의 3개월 연속 동반 하락은 확실한 경기 하강 국면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공업 생산이 전년 동월비로 두자릿수(10.5%) 증가하는 등 실물 경기는 아직 괜찮았지만, 문제는 내수다. 설비투자가 감소세(전년동월비 –2.0%)로 돌아섰고, 소비재 판매도 전달에 비해 0.2% 감소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수출 호조 때문에 내수 부문의 심각성이 가려진 측면이 있다”며 “내수만 본다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하강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상수지 적자도 5개월째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4월중 국제수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경상수지 적자는 15억6,000만달러로 전달의 균형 수준(1억1,000만달러 적자)에서 다시 크게 후퇴했다. 특히 올 들어 1~4월 누적 적자는 67억8,000만달러로 환란 이후 최대 수준이다. 외국인 주식투자 배당금 등 일시적 요인이 있었지만, 고유가에 따른 상품수지 악화가 우려돼 5월에도 흑자 전환이 쉽지는 않아 보인다.

지난달 4%를 넘어선 소비자물가는 5월 4%대 중반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의 물가안정목표 상한선(3.5%)을 무려 1%포인트 가량 웃도는 수치다. 여기에 신규 일자리 창출이 3, 4월 연속 20만명에 못 미치는 등 고용 악화도 지속되고, 외채 급증으로 조만간 대외 채권보다 빚이 많은 순채무국으로 전환이 예고되는 등 온갖 악재 투성이다.

해외에서의 위기 경고도 잇따른다. 피터 레드워드 바클레이즈캐피털 환율전략부문장은 “한국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이 치솟는 국제유가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와 통화가치 하락이 이어져 외환위기 이후 가장 힘든 시간을 맞게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 톰 번 부사장도 “한국 은행들의 과도한 단기 차입 위험이 과소 평가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새 정부 출범 초기, ‘고환율-저금리’ 정책을 추구하며 성장과 경상수지에 ‘올인’했지만, 최근 폭등하는 물가 앞에 속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최중경 재정부 1차관은 이날 “외환시장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서민생활이 어려워진 것이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고 있다”며 고환율 정책에서 한발 물러 설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그는 그러나 “외채 규모나 경상수지 적자 등 다른 문제도 균형 있게 보겠다”고 말했다. 정책의 우선순위 선택이 갈수록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