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정기용 선생님
노무현 대통령 사저 설계하신 분.
“건축의 핵심요소는 땅입니다. 지가의 문제죠. 정상적인 사회의 경우 토지의 가치가 집 전체 가치의 25% 정도를 차지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의 가치는 떨어지고 토지의 가치는 높아져 보통 30년 뒤 땅값이 집값을 추월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국의 단독주택은 처음부터 땅값의 비중이 50~75%에 달합니다. 5년만 지나도 땅값이 집값 전체를 웃돕니다. 건축의 가치가 아예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땅에만 투자를 하죠.”
그는 주택 문제의 불합리성은 여기서 출발한다며, “땅값이 지나치게 높고, 또 급상승 하는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어서 비정상적인 땅값의 “감춰진 역사”도 밝혀집니다.
“원인은 정경유착입니다. 7,80년대 정부는 재벌 기업들에게 수출을 강요했습니다. ‘밑지는 장사를 해도 달러만 벌어오라’는 것이었죠. 기업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수출에 나섰고, 정부는 이를 보상하기 위해 토지 개발 정보를 기업에 넘겼습니다.
당시 어느 기업이든 회장실 옆에는 기획실이 존재했습니다. 땅을 사고파는 회장 직속의 정보부서 역할을 한 곳이죠. 개발 계획을 입수한 기업들은 아주 헐값에 좋은 땅들을 독점했고, 막대한 시세 차익을 챙길 수 있었죠. 아파트 원가 공개 이전에 재벌들의 토지 소유 현황과 역사부터 공개해야 합니다.”
정경유착의 결과로 높아진 땅값은 집값의 상승을 불러옵니다. 건축회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짧은 시간에 많은 집을 지어 비싼 값에 팔아 넘깁니다. 정부는 방조했고, 국민은 집을 보며 돈 계산을 했습니다.
정기용 건축가는 30년 넘게 이어져 온 부조리의 사슬을 “정부, 재벌, 국민의 공동 모의 합작품” 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편한 세상에 우리들은 푸르지오’
“전세계에서 인민들의 집을 짓는데, 열 개 남짓한 대형 건설 회사들이 국민의 집을 모두 도맡아 짓는 나라가 대체 어디 있습니까?” 정기용 선생은 일상의 대화에서 대기업의 이름과 이미지 속에서 삶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찾아냅니다.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가 13년 만에, 86년에 돌아왔습니다.
제 환영회를 한다고 동창들 열댓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 한다는 얘기가 이런 겁니다. ‘너 어디사냐?’ ‘응, 나 한양살어’, ‘나 현대살어’ 그때 제가 경악했습니다. 그러고는 묻는 게 ‘몇 평인데?’ 이럽니다. 그 다음에는? ‘평당 얼마냐?’하고 물어봅니다.
집이 아니라 대기업의 이름 속에서, 돈다발 속에서 삽니다. 예전에는 ‘어디사냐?’고 하면 ‘이화동’, ‘쌍문동’이라고 동네 이름이 나왔고, ‘방 몇 개냐?’고 물었지 몇 평이냐고 묻지 않았습니다.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일상적 대화가 진실이 되고 삶이 되고 역사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겁니다.”
부조리의 결과는 사진 속 슬픈 풍경으로 펼쳐집니다.
“래미안, 캐슬, 푸르지오... 이제는 또 이미지 전쟁입니다. 사람들은 건설사들이 지어낸 신화에 편입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습니다. ‘아파트는 교육입니다. 최고의 것만 상상하고, 이 편한 세상에 우리들은 푸르지오.’
아파트 이름만 붙여놔도 상상도 못한 시어가 되는 거죠. 자본주의 체제는 사람들이 없어도 되는 것을 욕망하게 하는 기술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 착각 속으로 빠져듭니다.”
‘영구임대아파트’ 에 충격 받다
“한국 사람들은 판상형 혹은 타워형 아파트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평면이 있습니다. 도시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삶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아파트들은 왜 하나같이 똑같을까요. 돈이 제일 많이 남는 형태여서 그렇습니다. 천벌을 받을 일이죠. 어떻게 우리 삶의 환경을 이 지경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베트남 난민들을 위한 영구 임대아파트
그곳에는 유려한 곡선을 자랑하는 건물이 있고, 단지 곳곳에 변화가 있습니다, 사람들을 잇는 길이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수강생들은 프랑스 건축가 리카르도 보필이 설계한 공동주택의 고풍스런 외관에 감탄합니다.
그 아름다운 주택이 베트남 난민들을 비롯한 서민들을 위한 ‘영구임대아파트’라는 사실에 감탄은 충격으로 바뀝니다.
“한국에서도 대안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화동 경사지 아파트 프로젝트’입니다. 기존 업자들이 산을 모두 갈아엎고 절벽을 깎아 세우려던 것을 저희가 다시 설계했죠. 아파트 천세대든 삼천세대든 설계하는데 일주일이면 다 됩니다.
그냥 밀고 똑 같은 거 복사하면 되거든요. 하지만 여기를 설계하는 데는 6개월이 걸렸습니다. 땅의 역사를 탐구하고, 경관을 분석하는 등 사전 조사를 다 하고, 골목길을 모두 살리고 경사진 지면을 살리도록 설계했죠. 시에서도 승인이 떨어져서 설계대로 시공할 겁니다.”
정리 _ 이현구(평화나눔 아카데미 자원활동가) 글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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