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한국병,아파트병,투기병

장백산-1 2008. 11. 1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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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 주택병, 투기병 - 물욕의 절제만이 해결책
번호 178397  글쓴이 영원한보헤미안 (akirareal)  조회 822  누리 201 (201/0)  등록일 2008-11-13 19:48 대문 14 추천


한국병, 주택병, 투기병
(서프라이즈 / 영원한보헤미안 / 2008-11-14)


건설사의 부실문제가 하루가 멀다 하고 경제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이슈의 한복판에 서 있는 대상자로서 감회가 새롭다고 할 밖에요.

하지만, 막상 퇴직을 하고 보니 좋은 점이 있습니다. 심적, 시간적 여유가 많이 생겨서 다시 한 번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군요. 먹고사니즘에 바빠서, 언제고 써보려고 하다가도 미뤄두곤 했던 주제들을 비로소 손에 잡습니다.

 

하지만, 건축이야기를 너무 깊이 들어가는 것은,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사항이기에 현재의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대상으로 가볍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왜 한국인들은 그렇게도 아파트에 집착하는 것일까? 제가 아파트와 관련된 업무에 다년간 종사한 결과 나름대로 내리게 된 결론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서프앙 님들과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가 '의식주'라고 하지요. 그만큼 '안정된 주거의 문제'는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가치이고, 주거는 인생을 영위하는 기반의 역할을 합니다.

그만큼, 주거 - 건축이라는 행위는 삶의 기반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이기에 명망 있는 건축가들은 항상 '철학적인 사고'에 기반하여 건축물을 설계하곤 합니다. 건축의 본질은 단순한 '기술의 집대성'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무엇을 담아야 한다는 신념이라고 할까요?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건축을 말함입니다.

삶을 담는 건축이란 어떤 것이냐…. 각자의 입장이 분분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체로 많은 건축가들이 동의하는 바는 '공간의 질'입니다. 값비싼 마감재를 처바른 천박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성찰과 사유'를 자아내게 하는, 감동을 주는 공간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우리나라 고건축을 보면, 우리네 선조들의 건축에 대한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간단하게 대청마루를 예로 들어봅시다.

 

온 가족이 '소통'하던 공간인 한옥의 대청마루는 앞으로 뒤로 '자연'을 담습니다. 자연과 겨루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포용하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철학적인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찬가지 관점으로, 한옥의 안방을 들여다봅시다. 우리네 방에는 원래 '인테리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밥상을 펼치면 식당이 되고, 책을 펼치는 서재가 되는 유식한 용어로 '유니버설' 한 공간이었죠.

 

한마디로, 전통건축에는 '비움'의 미학이 있었습니다. 공간 구석구석 어디를 뒤져봐도 '물욕'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서구화되고 물질 만능의 시대가 되어가면서, 이러한 전통건축의 풍미는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전통건축의 철학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서구식으로 축조한 관청건물에 청기와를 올리자는 헛소리를 늘어놓지만 전통건축의 정신을 현대에 되살리는 것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전통건축의 외양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건축의 '공간' 속에서 선조들은 어떤 '정신'을 구가했는가를 성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신을 담지 못하고, 사유를 담지 못하고, 성찰을 담지 못하는 공간은 '생명력이 없는 공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서구건축에도 이러한 사유하는 공간의 예는 있습니다. 유럽 여행을 해보신 분들은 고딕 성당의 드높은 천정과 화려하지 않지만 겸허하게 공간 곳곳에 스며드는 빛의 확산에서 '경건함'을 발견할 수 있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딕 건축의 축조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에 대한 사유의 과정'이기 때문이죠.

 

이야기를 돌려서,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형 아파트'라는 물건을 한번 살펴봅시다. (왜 '한국형'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가는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동 몇 호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별도의 독특한 인테리어를 하지 않는 한, 눈 가리고 어느 한 세대에 데려다 놓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알 수 없는 묘한 주거 형식이죠. 한마디로, 각각의 세대가 '정체성'이 없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놈의 공간에 '철학'이라는 것이 스며들 리가 만무합니다.

 

내포된 철학이 없으니, 아무리 새로운 인테리어를 시도하여 돈을 처바른다고 한들 근본적으로 '사유'가 끼어들 자리가 없습니다. 단지, 겉보기에만 좋을 뿐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형 아파트는 '전형적인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자, 공장제조 방식으로 생산한 '제품'이라는 겁니다.

 

요새, 많은 아파트 브랜드들이 주거문화관을 지어대고, 겉보기 그럴싸한 CF들을 만들어대며 마치 이놈의 한국형 아파트에 무슨 무슨 놈의 품격이 있고, 삶의 가치가 있고, 어쩌고저쩌고 온갖 귀에 듣기 좋은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설레발을 쳐대죠? 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작입니다.

 

근본적으로, 주거라는 것은 TV와 냉장고를 사는 것과 달라서, 이렇게 산업화시대의 공장제품처럼 찍어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결국, 이러한 주거 질의 저하가 획일적인 의식과 사유능력의 저하, 각박함을 양산하는 주범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왜 그렇게 인기를 얻어왔느냐?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 번째, 편의성 면에서 낫다는 거죠. 주차문제를 해결하기가 쉽고, 방범문제를 해결하기가 쉽고, 익명성을 보장받기가 쉽다는 것. 결국, '편의성'이라는 화두만을 지나치게 쫓다 보니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두 번째, 가치를 매기기가 편합니다. 모두가 획일화된 공간과 똑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다 보니 '30평대 아파트는 평당 얼마' 식으로 가격을 매기기가 좋다는 겁니다. 따라서, 환금성 면에서 어느 부동산 형태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이 바로 부동산 투기의 주범이 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워낙에 땅덩어리가 좁고 특정지역에 많은 기회가 몰려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수직적으로 확장된 아파트라는 형태의 주거가 적합하다는 원론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아파트도 아파트 나름이라는 거죠.

 

각 나라별 사례와 비교해서 생각해봅시다.

옆 나라 일본의 경우는, 일단 국민들의 주거에 대한 욕심이 소박합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나라에선 거의 사라진 주거형태인 편복도(창문을 복도방향으로 낼 수 없는) 형태의 공동주택도 불만 갖지 않고 잘들 살고 있죠. 주거에 대한 철학의 깊이가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건축 선진국이기에 획일적인 공장제품 같은 주거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중국의 경우는, 땅덩어리도 큰 나라가 뭐가 좋다고 '한국형 아파트'를 벤치마킹해가서 아파트를 지어대고 있긴 합니다. 단시간에 집약적인 산업성장을 거두려다 보니 한국형 무조건 때려 짓기 식 개발계획이 위정자들의 맘에 들었나 봅니다. 일단, 단기간에 주택 건설실적을 올리기가 쉬운 형태이니 매력적이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아파트처럼 모두가 같은 평면, 같은 외양을 들입다 찍어내진 않습니다. 상해만 해도 법적으로 같은 평면과 외양을 가진 아파트는 설계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처럼 '브랜드 딱지'만 떼면 도대체 어디서 지은 것인지 못 알아볼 정도로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지들이 다 나름대로 디자인과 공간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경우는, 한국과 단순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도시국가이기에 토지가 작아서 한국보다 훨씬 좁은 땅덩어리에 어마어마하게 높은 고층아파트를 짓고 살죠. 주거의 질은 한국보다 좋지 않습니다. 특히, 단위 주택의 경우에는 주방면적이 너무 작아서 주부의 생활이 상당히 열악하죠. 도시국가에 산다는 게 한편으론 측은하기도 한 부분입니다.

 

유럽 쪽을 볼까요? 독일의 경우에 한국형 아파트와 유사한 주거를 지어대다가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사회적 반성이 일어나서, 더 이상 획일적인 주거형태를 짓지 않고 있습니다. 유럽권에서 지어졌던 많은 아파트단지들이 슬럼화가 되어서 지금은 빈민층의 주거형태로 전환되어 있죠.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봤는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이 글의 호응이 좋으면 '연작' 형태로 사진자료와 함께 다시 정리해서 올릴 생각이 있습니다만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ᄒᄒ)

 

뭐, 다른 나라의 사례는 이 정도에서 각설하고, 왜 이러한 사례들을 열거했느냐 하면 한국형 아파트 주거형태는 이미 선진 각국에서 '실패한 주거형태'로 규정하여 더 이상 도입하고 있지 않거나, 도입하더라도 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 대상이라는 거죠.

 

마찬가지로, 한국형 아파트가 조장하는 '아파트 브랜드'라는 것이 전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독, 한국에서만 그놈의 브랜드 열풍이 드세죠. 다른 나라 실정을 조금만 조사해보시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남들 앞에 위세 떨기 좋아하는 한국민의 안 좋은 근성을 절묘하게 건드린, 건설사들의 대표적인 히트작이라고 할 수 있죠.

 

한국형 아파트가 다른 나라 주거보다 월등히 앞선 점이 하나 있긴 합니다.

바로, '초호화 인테리어'죠. 단위 아파트에 투입되는 인테리어 비용이 세계 어느 나라 공동주택보다도 많죠. 기실 공사비를 끊임없이 쳐올리는 주범 중 하나도 이러한 '인테리어 열풍'입니다.

 

하지만, 획일적인 인테리어가 싫어서 입주와 동시에 온 단지가 공사판이 되는 현상을 지켜보면 쓸데없는 재화를 낭비하고 있는 대표적 온상이 바로 이러한 '고급 인테리어 열풍'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그냥 콘크리트 뼈대와 공간만 제공하는 소위 '골조분양'이 일반적이죠.

 

이러한 인테리어 열풍(건설사들이 CF 등으로 열심히 띄우기하고 있는)으로 인해 건설사들이 '겉보기에 합법적인 방법'으로 분양가를 올릴 여지를 여기저기 만들고 있는 것인데 이는 건설사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건설사의 띄우기에 혹해서 브랜드 아파트에 살면 마치 삶의 가치가 올라가는 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아줌마 부대의 허영심도 큰 몫을 차지한다는 겁니다

.

삶의 가치란, 얼마나 호화로운 인테리어를 처바르고 얼마나 유명한 브랜드 아파트에 살고 있느냐가 좌우하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지은 지 10년이 넘은 아파트 가격을 올리겠다고, 새로 출시된 브랜드에 맞춰서 도장을 하고 브랜드 이름을 달아달라고 생떼를 쓰는 입주민들을 볼 때마다, 건설사가 그러한 왜곡된 인식을 조장하긴 했으나 이에 호응하는 일부 국민들의 천박한 의식에 대해서도 신물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동탄지구나 잠실지구에서 벌어진 입주민들의 기 싸움(우리 아파트를 최고로 지어야 한다)을 속속들이 아신다면 결코 건설사들만을 욕하지는 못하실 겁니다.

 

결국, 한국형 아파트가 위세를 떨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허영심, 물욕 이러한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개개인의 탐욕을 절제하는 것부터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비가 출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영원한보헤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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