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역사신보(www.hinews.asia)에서 펌.
우리 민족의 백두산과 천지는 원래 어디일까? |
한인/한웅께서 내려오신 백산과 흑수가 있는 곳은? |
성훈 컬럼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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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백두산을 민족의 성산(聖山)이라 부르며 우리 민족의 출발지로 알고 있다. 그리고 백두산을 시원지(始原地)로 해서 만주가 고조선과 고구려와 발해의 핵심강역이었다고 알고 있다. 과연 그런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본 자주역사신보에서는 우리 민족의 시원지로부터 대조영의 대진국(발해)에 이르는 우리 민족의 강역이 어디까지였는지 기획연재 시리즈로 자세히 추적해 보기로 하겠다. 그 첫 번째 연재로 우리 민족의 시원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민족의 대성서인 <한단고기 삼성기전 상>에는 우리 민족의 시원지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로 삼성기전 상(三聖記全 上>이란 신라의 승려 안함로가 지은 역사서이고, <삼성기전 하>는 원동중이 지은 역사서이다.
“어느 날인가 동녀동남 800이 흑수(黑水) 백산(白山)의 땅에 내려왔는데 이에 한님(桓因)은 또한 감군(監群)으로서 천계에 계시면서 돌을 쳐 불을 일으켜서 날음식을 익혀먹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쳤다. 이를 한국(桓國)이라 하고 그를 가르켜 천제한님(天帝桓因)이라고 불렀다. 또는 안파견(安巴堅 아버지의 뜻)이라고도 했다.
한님은 일곱 대를 전했는데 그 연대는 알 수가 없다.뒤에 한웅(桓雄)씨가 계속하여 일어나 천신의 뜻을 받들어 백산(白山)과 흑수(黑水) 사이에 내려왔다. 사람 모이는 곳을 천평(天坪)에 마련하고 그곳을 청구(靑邱)로 정했다.....신시(神市)에 도읍을 세우시고 나라를 배달(倍達)이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 <삼성기전 상>의 기록에서 우리 민족의 시원지로 언급된 흑수(黑水)와 백산(白山)은 과연 어디일까? 거의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조상 대대로 우리 민족의 강역이 만주였으므로 흑수는 지금의 만주 동북쪽을 흐르는 흑룡강(黑龍江)이고, 백산은 바로 지금의 백두산(白頭山)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으려 한다. 과연 그럴까?
▲ 우리가 한웅이 내려오신 민족의 성산으로 알고 있는 백두산과 천지 | |
그런데 <삼성기전 하>에는 약간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처음 한임(桓因)께서 천산(天山)에 올라 도를 얻으시사....” “이에 한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밑에 내려오시니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분을 한웅천왕(桓雄天王)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서 한인이 오른 천산을 지금의 천산산맥이 있는 천산(天山)으로 보는 사람도 있고, 한웅이 내려온 태백산(太白山)을 지금의 백두산으로 보고 있으며, 심지어는 강원도 태백산을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한웅이 내려온 태백산으로 보는 억지 주장가들도 있다. 과연 그럴까?
우선 똑같은 인물이 위 두 기록처럼 각각 다른 지역에 내려 왔을 리는 없을 테니, 한인께서 내려오신 백산(白山)=천산(天山)으로 보아야 하며, 한웅께서 내려오신 백산(白山)=태백산(太白山)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백산=천산=태백산인지는 모르겠으나 백산 근처에는 흑수(黑水)라는 강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우선 백산(白山)이 현재 중국 땅에 있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지명대사전>으로 검색을 하니 아래와 같은 결과가 나오는데, 현 백두산이 백산이라는 설명이고 다른 지역의 백산은 동명이산(同名異山)으로 보아야 한다.
白山 : 1) 即吉林长白山,《金史世纪》“女真地有混同江、长白山。”混同江亦曰黑龙江,所谓白山黑水是也,(현 백두산) 2) 在江苏江宁县东三十里,南朝宋升明中,刘述与从北秉同谋诛萧道成,事败走白山,陈韦开车去官,有田十余顷在江乘之白山,皆即此,《建康志》南连蒋山,北连摄山,西有水下注平陆,阶础石,悉出此山。(강소성 강령현 동 삼십리) 3) 在浙江于沅县南五十八里,上有浮古纯白,故名,《水经注》白山峻极,北临紫溪。(절강성 우원현 남 오십팔리) 4) 在浙江临海县东北二百五十里,远望如雪,其上有湖。(절강성 임해현 동북 250리)
이번엔 태백산(太白山)을 <중국지명대사전>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太白山 : 1) 即吉林之长白山,《魏书勿吉国传》:“国南有徙太山,魏言太皇。”北史作从太山,华言太皇。(지금의 백두산) 2) 在河南淅川县东南八十里,峰峦高峻,下临丹水,县境群山回环,连接绵远,与关中之南山秦岭参差映带,此山亦以似关中之太白而名。(하남 석천현) 3) 在浙江嵊县西七十里,为县治西障,连跨三邑,在嵊曰西白,在诸暨曰东白,在东阳曰北白,《高似孙剡录》峻极崔巍,吐云纳景,赵广信升仙处也,一名太平山,又名岑山,上有瀑布,即水经注之白石山也。(절강성 승현 서 70리) 4) 在陕西眉县南,接洋县界,亦曰太一、太壹。《水经注》太白山,去长安三百里,不知其高几何,俗云武功太白,去天三百,山下军行不得鼓角,鼓角则疾风雨至,条夏积雪,望之皓然,洞天记以此为第十一洞天,山有大太白、二太白、三太白三池,每天旱,秦人多祷雨于此,太白者西方神名也,参看太一山条。(섬서성 미현 남) 5) 在甘肃庆阳县北一百五十里,黑水河发源于此。(감숙성 경양현)
현재 <중국지명대사전>으로 본 백산=태백산=백두산으로 명기가 되어있다. 여하튼 이 중에서 우리 상고사와 관련이 있을만한 ‘2) 하남성 석천현’과 ‘4)섬서성 미현’을 후보지로 골라 놓기로 하겠다.
이번에는 <중국지명대사전>으로 백산 근처에 흑수(黑水)가 있는지 검색해 보기로 하겠다. 黑水: 1) 即今黑龙江,详黑龙江条。(지금의 흑룡강) 2) 源出山西寿阳县之黑水村,合寿水至县南五十里,入洞涡水 (산서성 수양현) 3) 在山西异城县北,源出乌岭山,西流入浍水,至县南五十里,入洞涡水。(산서성 익성현) 4) 亦名库利川,今名麻洞川,又名云岩河,源出陕西甘泉县东,东南流迳宜川县入河,《水经注》黑水出定阳县西山,二源奇发,固县北,《水经注》水出北山,南流入汉,庾仲雍曰,黑水去高桥三十里,诸葛亮笺云,朝发素郑,宿黑水,指是水也。(섬서성 감천현 동 ~ 의천현) 5) 有大小二黑水,并出甘肃海原县南,东流合须灭都河、硝河、海子河,至固原县北入于清水河,《水经注》高平川迳太娄城合一水,水有五源,总为一川,即此也。(감숙성 해원현 ~ 고원현 북) 6) 在甘肃文县西北徼外、四川松潘县境,宋元嘉二年,西秦乞伏炽盘遣将吉昆南,击黑水羌酋丘担,大破之,《水经注》黑水出羌中,西南经黑水城西,又西南入白水,《元和志》黑水在尚安县,源出素岭。(감숙성 문현 서북) 7) 即今南广水,汉时名符黑水,《汉书地理志》“符黑水至僰道入江,”符黑水者,符县之黑水也 四川重庆市西北有黑水,入江,《元一统志》源出常乐山,汉石皆黑。(사천성 중경시) 8) 源出内蒙古境鄂尔多斯右翼前旗西南,蒙古名库葛尔黑河,一曰哈柳图河,亦曰吃那河,东入边墙,至陕西横山县北,东流为无定河,《晋书载记》“赫连勃勃于黑水之南营都城,”即在此水之南。在内蒙古归绥县,即黑河,亦名金河,详金河条。(내몽고성 귀수현)
위의 여러 자료를 검토해 우리 상고사와 관련될 수 있는 백산(白山)과 흑수(黑水)를 골라 지도에 표시하면 아래와 같이 6군데로 좁힐 수 있다. 이 6군데 중에서 과연 어디일까? 백산과 흑수가 가까이 있어야 하므로 강력한 후보지를 3군데 꼽자면
▲ 우리 민족과 관련될 수 있는 흑수와 백산 후보지 | |
흑수 1) 현재의 흑룡강과 백두산 흑수 2) 산서성 수양현과 백산 (중국지명대사전에 없는 백산) 흑수 4) 섬서성 미현과 태백산
이 중에서 필자는 ‘흑수 2)의 산서성 수양현과 백산’을 우리 민족의 시원지로 꼽고 싶다. 그 이유는 한웅의 배달국 때 중국의 삼황인 태호복희,염제신농,황제헌원이 모두 동이족이므로 그들의 활동구역과 너무 멀면 우선 자격조건이 안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삼황) * 태호복희(太皞伏犧)는 5대 태우의한웅의 막내 12번째 아들 * 염제신농(炎帝神農)은 웅씨가 갈라져 나간 少典의 아들. 소전은 소호(少皞)와 함께 고시(高矢)씨의 방계로 안부련의 말기에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서 병사들을 감독했다. 이때 따라간 소전의 아들 신농(神農)이 주변의 온갖 약초를 맛보고 동양의학의 시조가 된다. 태호의 여동생 여와(女媧)의 뒤를 이어 신농이 제후가 됨. * 황제헌원(黃帝軒轅) : 소전의 별고(別孤)에 공손(公孫)이라고 있었는데 짐승을 잘 기르지 못해 헌구로 유배시켰다. 헌원의 무리는 모두 그의 후손이다. 13대 사와라한웅 초기의 일이다.
그래서 현재의 만주에 있는 ‘1)의 흑룡강과 백두산’은 중국의 삼황과 우리 치우천왕의 활동구역과 너무 멀기 때문에 분명 한인/한웅이 내려온 백산과 흑수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4)의 섬서성 미현과 태백산’은 중국 삼황의 활동구역의 중심이기 때문에 역시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삼황의 활동구역은 주로 섬서성과 때로는 황하 북쪽 하남성 일대까지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황제헌원의 무덤이 섬서성에 있으며, 염제신농이 살았다는 강수(姜水)가 섬서성 서안 서쪽에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강수에는 우리 치우천왕이 헌원을 밀어내고 살기도 했다.
▲ 섬서성 서안 서쪽의 태백산과 강수와 황제헌원의 무덤이 있어 섬서성은 배달국 14대 치우천왕 이전에는 중국삼황의 활동무대로 보여 환국과 배달국의 도읍지는 아닌 것 같아 보인다. 그리고 현 백두산은 상고사 무대와 너무 멀다. | |
따라서 섬서성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산서성 수양현이 우리 민족의 시원지로 판단된다. 그리고 그 근거로는 위 <중국지명대사전>의 흑수 자료에서 보듯이 흑수가 흐르며 그 근처에 <중국지명대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서 기록으로 분명 백산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백산이라는 기록이 들어있는 사서가 어떤 것인지 보기로 하자.
신당서 열전 145-동이전에 나타난 고구려의 기록 高丽,本扶馀别种也。地东跨海距新罗,南亦跨海距百济,西北度辽水与营州接,北靺鞨。其君居平壤城,亦谓长安城,汉乐浪郡也,去京师五千里 而赢随山屈缭为郛, 南涯浿水,王筑宫其左。又有国内城、汉城,号别都。水有大辽、少辽:大辽出靺鞨西南山,南历安市城;少辽出辽山西,亦南流,有梁水出塞外,西行与之合。
고려는 본 부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땅 동으로 바다를 건너면 신라가 있고 남으로 바다를 건너면 백제가 있다. 서북에서 요수를 건너면 영주와 접하고 북쪽은 말갈이 있다. 그 나라 임금은 평양성 또는 장안성이라 일컫는 곳에 기거하며 한나라 낙랑군 땅이었다. 경사(장안)로 부터 오천리(? 과장)를 가면 산을 따라 굴곡지게 휘감으며 성곽을 이루고 남쪽 끝에는 패수가 있다.
왕은 북쪽(좌)에 궁궐을 축성하였다. 또한 국내성,한성이 있는데 또 다른 도읍이라고도 한다. 대요수와 소요수가 있는데 대요수는 말갈의 서쪽 남산에서 시작되고 남으로 안시성으로 흐른다; 소요수는 요산 서쪽에서 시작되는데 역시 남쪽으로 흐른다, 량수는 요새 밖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흐르다 합쳐진다.
有马訾水出靺鞨之白山,色若鸭头,号鸭渌水,历国内城西,与盐难水合,又西南至安市,入于海。而平壤在鸭渌东南,以巨舻济人,因恃以为堑。
마자수는 말갈의 백산에서 시작되고 색이 오리의 머리 색깔과 흡사하여 압록수라 부른다. 국내성 서쪽으로 흘러 염난수와 합해지고, 서남쪽으로 안시에 이르러 바다(황하)로 흘러 들어간다. 평양성은 압록의 동남쪽에 있어 커다란 배로 사람을 건네고 믿음직한 참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상 인용 끝)
▲ 신당서 기록을 현 산서성 분하에 대입하면 조건이 기가 막히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맞는다. | | 게다가 그곳은 옛날에는 압록수라 불렸던 분하의 출발지이며, 그리고 그 백산 꼭대기에는 천지(天池)라는 신성한 호수가 있다, 따라서 현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 북쪽이 우리 민족의 시원지로 보이며, 이곳에 배달국/북부여의 도읍과 고구려의 초기 수도인 졸본성(卒本城)이 있지 않았나 싶다. 단군조선의 도읍은 산서성 임분(고구려 평양성)으로 보고 싶다.
특히 산서성 태원을 고구려의 최초 도성인 졸본성으로 보는 이유는 압록수(현 분하) 변에 고구려의 도읍인 국내성과 평양성이 있다는 위 <신당서 열전>의 기록과, 대청광여도에 추모대제 고주몽이 묻혔다는 용산(龍山)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현 산서성 태원이 고구려 졸본성이 틀림없다고 보는 것이다.
▲ 백산과 흑수 사이는 현 산서성 성도인 태원으로 보이며, 이곳이 고주몽의 졸본성일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추모대제(고주몽)이 묻힌 용산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 천지라는 산중 호수도 있어 마치 현 백두산의 사양과 아주 비슷하다. |
▲ 신당서 열전동이에 기록된 말갈의 백산에는 분원천지(汾源天池)가 있다. 현 백두산 천지와 아주 비슷하다. 이곳이 압록수의 발원지란 점도 같다. | | | 그리고 이곳에 배달국/북부여/고구려 졸본성을 놓고 역사 해석을 하면 희한하게도 역사 스토리가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 들어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소개하는 것이 본 시리즈의 목적이다. 배달국과 단군조선과 고구려가 얼마나 위대했고 장엄했고 엄청난 국가였는지 앞으로 본 시리즈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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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12/23 [16:06] 최종편집: ⓒ hinews.asia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