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기원과 진화 |
지난호에 불교의 ‘이제(二諦)의 원리’에 관하여 설명한 바 있다. 이제의 원리란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으로 되어 있어, 물질의 앞면은 사람의 눈에 보이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속제(俗諦) 혹은 유위법(有爲法)이라고 부르고, 물질의 뒷면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아 불교에서는 제일의제(第一義諦) 혹은 무위법(無爲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이 무위법이 마치 ‘초의식’과 같은 성질이 있어 스스로 창조하고 조직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면 이 불교의 이제(二諦)의 원리를 이용하여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설명해 보기로 하겠다. 현대의학에서는 생물의 기원과 사람의 진화에 관하여는 주로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인정하여 왔다. 다윈은 <종의 기원>과 <인간의 기원>이라는 저서를 통하여 지구가 우주로부터 탄생하고 지구 위에 탄소, 산소, 수소, 질소 등과 같은 화학물질이 수프를 형성하고 있을 때 우연적이고도 극적인 섬광에 의하여 이들 화학물질로부터 단세포가 기원하였다고 하였으며, 그것이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해서 최종적으로 가장 복잡한 인간이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생명체의 기원은 ‘우연의 일회적인 사건’에 의해서 무기질에서 유기질로 전환되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우연히 창조된 생명체는 “자연의 선택과 우연한 돌연변이”에 의하여 진화를 거듭하였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렇다. 어떤 동물이 추운 기후에 이겨내기 위하여 두터운 모피가 필요하게 되었을 때 다윈의 해석에 의하면 동물은 자연의 압박에 이겨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DNA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모피를 생산하는 DNA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순전히 ‘우연’에 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윈은 자연의 변화에 따라서 생물은 ‘우연’에 의해서만 항상 살아남을 수 있는 돌연변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다윈의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관한 설명은 옳게 말한 부분도 있고 틀리게 말한 부분도 있다. 옳게 말한 부분은 사람은 단세포에서 진화하였다는 부분이다. 즉 불교에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처음부터 창조되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윈의 틀린 부분은 ‘우연한 돌연변이’에 관한 주장이다. 불교에서는 ‘이제의 원리’에 의하여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뒷면에는 ‘초의식’이 있어 자기조직하는 능력이 있다고 보며, 따라서 무기질도 자기조직하는 능력에 의해서 합목적으로 세포를 만들 수 있으며, 일단 세포가 되면 세포 자체도 ‘초의식’이 있고, 세포가 수없이 모인 식물이나 동물도 ‘초의식’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런 ‘초의식’이 있기 때문에 생물은 필요에 따라서 목적의식을 갖고 스스로 환경에 적응해 가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진화의 논리이다. ■충남大 의대 산부인과학 |
출처 : 석가모니불
글쓴이 : 영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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