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의 주례사 [금고옥조]입니

[스크랩] [양형진 교수의 과학과 불교사상] 41. 아뢰야식

장백산-1 2010. 12. 16. 20:30

좋은 인연들이 함께하는 정념수행 기도도량 옥련암입니다 [양형진 교수의 과학과 불교사상] 41. 아뢰야식


- 무량겁동안 축적된 경험 마음깊이 저장 -
- 모든 존재는 무한한 과거의 끝없는 인연-



우리는 눈과 귀, 코, 혀, 피부로 객관세계를 감지하며 살아간다.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흔히 오관이라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를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이라 한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이 객관 대상을 인식하는 마음 작용을 각각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라 하며 이를 총칭하여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한다.

이 전오식은 모두 사물을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전오식에 의식을 더하여 육식이라 하는 데, 여기서의 의식은 전오식의 지각을 통일적으로 받아들이는 지각 작용은 물론 추상적인 사유나 지성, 감정, 의지, 상상력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의미를 지닌다.

유식불교에서는 이 육식만으로 인간을 파악할 수 없다고 믿어 마음의 심층을 탐구해 나간다. 제6식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잠재적인 자아의식과 비슷한 마음을 제7 말라식이라고 한다. 이는 자기애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기성이나 나에 대한 집착과 같은 마음이다.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절벽에 서 있는 사람이 등 뒤에서 떨어지는 바위를 피하는 것과 같은 것은 이 말라식의 발동이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애는 생명체가 자신을 보존하고 종족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본능적이고 선천적인 장치로서, 진화의 과정에서 유전자와 같은 생명체의 내부에 각인된 맹목적인 생의 본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전오식과 의식, 말라식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 마음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봄이 오면 산과 들에 푸르게 돋아나는 풀을 보고 느끼는 환희, 밤하늘의 별을 보며 느끼는 동경, 타오르는 불을 보고 느끼는 감정, 파충류를 보았을 때의 몸서리쳐짐등은 그 근원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한 감정은 지금까지의 나의 인생에서의 경험이나 그로 인한 잠재 의식 등 어떠한 의식의 편린으로도 포착되지 않으며 또한 제7식과 연관되는 자기애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불교심리학에서의 독특하고 또한 탁월한 부분은 말라식보다 더 깊은 심층부에 자리잡고 있는 매우 깊고 미세한 인간의 마음인 제8 아뢰야식을 상정함으로써 이상의 예를 설명하는 데에 있다. 여기서 아뢰야식이란 무시 이래 우리 인간에게 축적된 경험의 전체이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35억년전 이 지구 상에 생명체가 태어난 이후, 무수한 생명체가 겪었던 일체의 경험이 마음 깊숙이 감추어져 저장되어 있는 것이 바로 아뢰야식이다. 그래서 장식(藏識)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경험이 축적되어 가는 것을 훈습(熏習)이라고 하며, 훈습되는 경험을 종자라 하기 때문에 또한 종자식(種子識)이라고도 한다.

종자식은 의식의 전면에 부상하지는 않지만, 단순히 과거의 경험으로서 저장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나 미래를 있게 하는 힘이 된다. 그러므로 위에서 예로 든 의식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감정은 과거의 경험이 원인이 되는 아뢰야식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며, 현재의 경험은 또한 아뢰야식에 저장되어 미래에 나타나게 된다. 여기서 나타난다는 말을 쓴 것은 아뢰야식에 의하여 말라식이 지탱되고, 말라식에 의하여 의식이 지탱되며, 의식에 의하여 지각 작용이 지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책상을 보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이 순간에서의 사건이 아니다. 그저 눈으로 봄으로써 안식이 생긴다는 이 사건은 언뜻 보기에 대단히 단순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35억년 생명체의 전역사가 우리가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안에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책상이라는 대상은 그 자체로 책상인 것이 아니라 나에게 와서 책상이라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며, 나라는 존재는 무한한 과거와의 끝없는 인연으로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는 실로 무량원겁의 전역사가 안식이라는 한 생각에 녹아드는 사건이라 하겠다. (無量遠劫卽一念)여기서 우리는 다시 무아, 무상의 실상을 보게 된다. 내가 여기 지금 이렇게 존재하는 것 같지만 무량겁 동안 쌓인 여러 가지 인연의 맺어짐인 8식으로 살 뿐이니 인무아(人無我)요, 또한 식에 바탕하여 사물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이 역시 인연의 맺어짐일 뿐이니 법무아(法無我)이다. 옥련암



글: 양형진<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출처 : 옥련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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