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경과 전두환, 그들이 ‘복지의 적’인 이유 |
최중경과 전두환, 그들이 ‘복지의 적’인 이유 (프레시안 / 선대인 / 2011-01-20)
현재 140억 원대의 자산가인 그는 현 정부 초기 기재부 차관으로서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을 도와 종합부동산세를 사실상 무력화한 전력도 있다. 종부세 무력화로 그는 수천만 원의 종부세를 줄일 수 있었다.
알다시피 세금은 이 땅에서 태어난 당신이 공공 서비스를 받을 이용료에 해당한다. 당신이 잘 가꿔진 공원을 거닐고, 지하철을 이용하고, 사방팔방으로 뚫린 도로를 따라 여행하고, 화재가 났을 때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고, 집에 도둑이 들었을 때 경찰이 달려오는 것도 모두 이런 공공 서비스에 대한 이용료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군대의 많은 군가들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편안하게 밤잠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이 땅의 아들들이 혹한의 겨울 새벽에도 최전방 철책선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공공서비스는 국가가 아닌 민간시장에서는 잘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아파트 경비원이나 민간 방범서비스처럼 유사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리고 일반 가계가 그런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이용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내 집 앞이 비만 오면 진흙탕 길로 변한다고 해서 그 앞에 포장도로를 까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설사 그 정도는 가능하다고 해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여행하기 위해 고속도로를 깔거나 전용 헬기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는 막대한 돈이 든다. 따라서 우리가 내는 세금은 이 같은 공공서비스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 구매하는 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돈을 잘 내도록 하기 위해 국가는 우리 모두에게 납세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벌금을 내거나 실형을 사는 등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는 나라에서 우리의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일정한 제약이 되지만, 세금을 내고 나면 우리는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획득해 보유하고 처분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세금을 내고 나면 대한민국의 떳떳한 납세자로서 상응하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아니 누려야 한다. 이것이 원리이고 당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 세금을 성실하게 내는 당신은 지금 이 땅에서 ‘봉’ 취급을 받을 뿐이다. 네이버의 지식검색에서 ‘납세의 의무를 잘 지켰을 때 이로운 점’을 묻는 질문에 “남들이 바보라고 부릅니다”라는 답이 올라오는 세태다. 하지만 그런 답을 읽는 우리는 왜 쉽게 부정하지 못하고 서글픈 웃음을 짓게 되는가.
세금을 잘 내는 사람이 왜 바보가 되는가. 그것은 누군가는 정직하고 성실히 내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요금을 내지 않고 버스를 타는 무임승차자(free-rider)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누군가가 이 나라의 사회경제적 약자라면 ‘생활이 곤궁해서 그러려니…’ 이해라도 하겠지만 그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재벌들이고 최고의 권력자들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글 머리에 소개한 최중경 후보 경우는 어찌 보면 약과다.
예를 들어, 2008년 특검 과정에서 4조 5000억 원에 이르는 차명재산 보유 사실이 드러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단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냈다면 최소 2조 원의 상속세를 내야 했지만,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돈이 넘쳐나서 주체도 못할 국내 최고 재벌이 세금 안 내려고 얼마나 파렴치한 짓을 한 것인가.
그런가 하면 이 회장이 막대한 재산을 세금 한 푼 안 내고 이리 빼돌리고 저리 빼돌릴 동안 도대체 이 땅의 국세청과 금융감독원과 검찰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이건희 회장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인식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수조 원대의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낸 세금은 달랑 증여세 16억 원이 전부다. 2010년 가을 잇따라 불거져 나오는 각종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과 탈세 의혹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런 일은 비단 삼성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다.
뇌물수수와 군형법상 반란 등의 혐의로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어떤가. 미납한 추징금 1672억 원을 안 내면 곱게 안 낼 것이지, 추징시효 만료를 몇 달 앞두고 300만 원을 납부해 지켜보는 국민들을 우롱했다. 1원이라도 납부하면 3년씩 강제집행이 면제되는 것을 노린 것이다. 전씨는 29만 원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의 3남 1녀는 수백억 원대의 자산가다. 손자, 손녀까지도 거액의 부동산 소유자다.
그런데 이렇게 추징금을 안 내고도 그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전직 대통령의 예우를 너무나도 훌륭히 받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그의 자택 주변을 가보라. 경찰 1개 중대가 주변에 좍 깔려 경호를 서고 출입을 엄중히 단속한다. 그가 일찌감치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주변 주차 구역에 대 놓은 차를 빼달라는 경찰의 재촉이 여간 성가시지 않다.
검찰은 추징금 징수가 어렵다고 우기고 있지만, 국민들은 검찰의 그런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서울방송 <그것이 알고 싶다>는 전 씨에 대한 추징시효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검찰에서 먼저 연락을 해와 전씨가 300만 원을 납부했다는 정황을 방송했다. 이쯤 되면 검찰은 강제집행에는 전혀 뜻이 없는 것은 고사하고 전 씨의 버티기를 오히려 도와주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직 대통령까지 갈 필요도 없다. 현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자신의 자녀들과 자신 및 부인인 김윤옥 씨의 운전기사까지 위장취업시켜 경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탈세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한 서울 강남권에 여러 채의 빌딩 등을 포함해 모두 수백억 원대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0∼2002년 동안 사실상 세금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강보험료를 월 1만 5000∼2만 3000원씩만 내기도 했다. 한 달 수입 100만~200만 원인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도 이 대통령보다는 더 많은 건강보험료를 낸다.
그 밖에 그는 지방세를 체납해 여섯 차례나 재산을 압류당했으며, 고용산재보험료를 미납해 강제 추징당한 전력도 있다. 미국이라면 이 가운데 단 한 가지 사실만 드러나도 대통령은커녕 정치권에서도 사실상 추방당할 텐데, 이런 사람이 대통령까지 되는 게 대한민국의 기막힌 현실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199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적절한 관계’ 의혹으로 한참 궁지에 몰려 있었지만, 결국 그 해 열린 중간선거에서 승리했다. 여러 요인이 있었지만, 그 이유 중 하나가 ‘아메리카와의 맹약’이라는 이름 아래 보수 정책 의제들을 이슈화해 당시 공화당의 스타로 떠올랐던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탈세 사실 때문이었다. 그가 국세청으로부터 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자 미국 하원 윤리위원회는 그에 대한 징계 권고안을 결의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고 사실상 정치권에서 추방됐다.
이 대통령뿐이면 다행이다. ‘대통령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인 신재민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장관 임명 인사청문회에서 10억 원대의 부동산을 3년 이내에 팔고도 등기날짜를 맞춰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가 드러나 낙마했다.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국시민권자인 딸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는데도 국내에서 건강보험 혜택을 받도록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전·현직 정부의 장관들이나 정치인들이 부동산 투기 과정에서 벌어진 탈세나 건강보험료 등을 체납, 미납한 경우는 부지기수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엄정한 처벌을 비켜갔다. 당장 진수희 장관만 해도 국민건강보험공단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일반 직장인들은 칼같이 내야 하는 세금을 이들은 어떤 신출귀몰한 재주가 있기에 내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그렇게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도 제대로 된 처벌도, 세금 추징도 당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일까.
동창회비를 제대로 내지도 않은 사람들이 동창회장이나 총무를 맡아 떵떵거리고 위세를 부리고 있는 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돈 많고 힘세다는 사람들부터 국민의 기본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무임승차를 하는데 원하든 원치 않든 꼬박꼬박 세금을 내야 하는 ‘유리알 지갑’ 인생들은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이러니 대한민국의 성실한 납세자들은 ‘봉’ 취급을 당하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뿐인가. 당장 얼마 전 나온 “쏘나타 평생 몰면 기름 값만 1억 4천만 원” 기사를 보면 일반인이 평생 내는 기름 값 가운데 세금이 절반인 7000만 원 정도에 이른다. 그것도 이 세금은 모두 삼성 이건희 회장과 우리가 똑같이 내는 간접세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평생 내는 세금은 평균 잡아 약 5억 원에 이르게 된다. 이 엄청난 돈들이 한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삶의 질 향상에 제대로 쓰이지도 못하고, 우리의 가난한 이웃들의 시름을 달래는데 제대로 쓰이지도 못한다.
더구나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정직하게 납세하는 사람만 ‘봉’이 되는 현실은 어떤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경제 규모는 7500조 원, GDP로 대표되는 생산경제 규모는 1064조 원에 이른다. 자산경제 규모가 생산경제보다 7배 크지만, 부과되는 세금은 생산경제 쪽이 5배 이상 많다. 근로소득에 불로소득보다 30배 이상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셈이다.
간이과세제를 배경으로 세금계산서 없는 거래를 통해 자영자들의 탈세도 매우 심각하다. 건강보험의 직장 가입자는 고소득자가 많지만, 지역가입자 중 고소득자는 멸종위기종으로 보일 정도로 탈세가 만연해 있다. 더구나 부패와 각종 비자금의 온상 건설업계에서는 매년 10조~20조 원씩 비자금이 조성돼 수조 원의 탈세가 횡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감세정책으로 오히려 전속력으로 역주행하고 있다. <도표 1>을 보면 국세 수입의 3대 축 가운데 법인세, 소득세수는 줄어드는데 모든 국민이 소득수준 상관없이 내는 세금인 부가가치세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또 아래 <도표 2>를 보면 ‘서민경제 지원을 위한 세제 개편안’이라고 떠벌렸던 감세정책 이후 고소득층인 5분위의 조세부담은 감소하는 반면 저소득층인 1,2분위의 조세 부담은 느는 추세가 확연하다. 도대체 저소득층 세금 부담을 늘리면서 서민경제를 지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처럼 정직하고 성실한 납세자들만 ‘봉’이 되는 현실,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왜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떠나 이 근원적인 불평등과 부조리에 대해 제대로 언급하지 않는가?
진정으로 한국사회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이제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고 개혁에 나서야 한다. 집값, 사교육비, 보육비, 고물가 등의 민생고 해결하기 위한 건전한 경제구조를 만들고 저출산고령화 충격에 따른 생산경제 위축과 복지부담 증가에 전략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식 복지론’이든 ‘보편적 복지국가론’이든 말로는 뭘 못하겠는가?
근원적인 과세구조 불평등에 대한 개혁과 토건사업 등 낭비성 예산사업에 대한 구조개혁 방안 없이 말로만 떠드는 ‘복지국가’는 가능하지 않다.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라면 여야 떠나 이 문제를 심각히 다뤄야 한다. 더구나 올해부터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결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초등학교 아이들 친환경 식단으로 밥 먹이는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티격태격하거나 감세정책의 세율 일부를 가지고 노닥거릴 만큼 한가하지 않다. 더구나 생산경제 위축과 복지부담 증가라는 ‘이중의 충격’을 불러올 저출산 고령화 충격이 본격화되는 시대를 앞두고 근본적인 조세구조개혁과 세출 구조조정은 절실히 필요하다.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하긴 어렵지만(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최근 출간한 <프리라이더: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 편>을 참고해 보기 바란다.) 개발연대 때 구축된 시대착오적인 조세구조와 재정지출구조를 개혁한다면 양쪽에서 50조 원씩, 약 100조 원의 추가 재정 여력을 중장기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이른바 50/50 전략이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은 조세 및 재정 구조개혁에 대한 근본적 논의는 도외시하고 시대착오적인 ‘부자감세’에 집착하거나 여전히 성실한 납세자들의 부담을 늘린 증세론부터 거론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유권자의 뜻을 반영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런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납세자들의 목소리를 모아 ‘납세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실제로 최근의 의무급식 지원 논란과 예산안 날치기 과정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우리의 세금이 어떻게 걷혀 어떻게 쓰이는가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평균적인 생활인이라면 평생 내는 세금은 줄잡아 5억 원에 이른다. 이 5억 원의 주인 노릇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바뀐다. 이 돈을 제대로 쓰면 이 나라 경제에 활력을 주고 국방을 튼튼히 하며 우리 이웃의 약자들과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다. 우리 부모님들을 좀 더 편안히 모시고, 우리 아이들 교육의 질도 크게 높일 수 있다.
반면 이 돈을 잘못 쓰면 기득권의 배만 더욱 불리고 금수강산의 자연을 황폐하는 엉뚱한 사업들을 잔뜩 벌여놓게 된다.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이웃들이 고통받게 되고, 많은 돈을 탕진하면서도 우리의 삶은 개선되지 않는다.
따라서 당신이 이 나라가 잘되기를, 삶의 질이 올라가기를 바란다면 이제 5억 원이 어떻게 걷히고 쓰이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식을 바탕으로 납세자 혁명에 함께 나서야 한다.
선대인 /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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