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법문 듣기 (06:34) ☞ 제4절 심성(心性)과 법계(法界) 1. 유식삼성(唯識三性) 우리 인간성을 풀이할 때 해심밀경(解深密經)이나 유식론(唯識論), 이른바 법상종(法相宗) 계통에서는 유식삼성(唯識三性)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유식삼성을 살펴보고 공부를 하면은 우리 인간성과 만유의 실상에 대하여 가장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체계를 확립하게 됩니다. 唯識三性(유식삼성) 1. 遍計所執性(변계소집성) : 情有理無(정유리무) 2. 依他起性(의타기성) : 如幻假有(여환가유) 3. 圓成實性(원성실성) : 情無理有(정무리유), 眞如(진여 眞空妙有) ※ 上(상)의 三性(삼성)으로써 非空非有(비공비유)한 中道實相(중도실상)을 表現(표현)함. 맨 처음에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라, 이것은 우리 중생차원의 마음가짐입니다. 모든 것을 두루 집착해서 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성품이라는 말입니다. 우리 중생은 이것이나 저것이나 모두를 삼독심(三毒心)에 가리워진 눈으로 보는 것이라서 바로 못 봅니다. 그래서 만 가지 것을 다 집착하고 헤아려서 바로 못 보는 것이 변계소집성 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정유리무(情有理無)라, 범부의 망정(妄情)에만 있고 원래 본바탕 법성(法性) 자리인 리(理)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아직 범부지에서 옳지 않다고 해서 옳지 않은 것도 아니고 범부지에서 옳다고 해서 옳은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영원적인 차원, 불성(佛性) 차원에서 본 것이라야 비로소 바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범부가 두루 헤아리고 집착하는 이것은 바른 것이 못됩니다. 그 다음에는 의타기성(依他起性)이라, 이것은 인연(因緣) 따라서 이루어진 성질입니다. 자기란 존재는 인연 따라 이루어지고 한 포기 풀도 인연 따라서 이루어졌습니다. 사바세계에 있는 두두물물, 산하대지, 삼라만상 모두가 다 인연 따라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잠시 허망한 가상(假相)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환가유(如幻假有)라, 허깨비같이, 물 위에 뜬 거품과 같이, 안개같이, 허환상인 것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행이 무상이라, 우리에게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지 실제로는 있지가 않은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인가? 인연생(因緣生)이기 때문에 순간 찰나도 같은 모습, 고유한 존재가 없습니다. 다만 중생이 안목이 짧아서 그냥 오늘 젊다가 내일 늙어 버려서 수염이 나면 알겠지만 서서히 바꾸어지니까 모를 뿐인 것이지 정밀하게 관찰한다면 일초(一秒)의 일만분의 일 동안도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자기 얼굴 주름살도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차츰 깊이 패어져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산하대지 삼라만상 모두가 다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수유(須臾) 찰나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입니다. 공간적으로 보더라도 어느 공간에도 머물러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무상(無常)이요 공(空)이요, 무상이요 공이기 때문에 나(我)라고 할 아무 건덕지가 없습니다. 그 다음 원성실성(圓成實性) 이라, 이것은 본래적인, 중생의 망상분별을 떠나버린 참다운 성품자체를 말합니다. 이른바, 불성(佛性), 법성(法性), 실상(實相) 경계가 원성실성입니다. 원만성취 된 무한 공덕을 갖춘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정무리유(情無理有)라, 범부의 망정(妄情)에는 있지 않고 우주의 참다운 도리(理)에는 있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진여(眞如), 진공묘유(眞空妙有), 이 자리가 원성실성인데 이것이 우리의 본 성품입니다. 우리가 인연 따라서 이루어진 물건이나 또는 유정이나 어느 존재를 볼 때에 바로 보면은 원성실성이고 잘못 보면은 변계소집성입니다. 오직 견해에 따른 것이지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한 송이 꽃을 본다하더라도 꽃은 꽃대로 자연 그대로 피어 나온 것인데 우리 중생이 곱다 안 곱다 예쁘다 밉다 하는 것입니다. 본래에서는 그런 것이 없지 않습니까, 따라서 본래대로 본다면 진여불성이 그때그때 인연 따라서 꽃같이 꽃의 가상(假相)을 내고, 진여불성이 인연 따라서 사람 같은 가상을 내고, 뜬 구름 같고 또는 안개 같은 모양을 가상으로 내는 것인데 우리가 거기에다 이것저것 나요 너라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삼성(三性)으로서 비공비유(非空非有)한, 공도 아니고 또는 유도 아닌 중도실상(中道實相)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