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폰은 한 번 울렸다
실로폰 채가 한 차례 음반 위를 훑듯이 지나갔다. 교향악 삼악장이 다 끝날 때까지 트라이앵글이나 탬버린, 캐스터네츠나 실로폰을 맡은 사람들은 거의 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뒷줄에 서 있었다. 그러나 단지 소리만 내지 않을 뿐 그들의 몰두와 긴장은 쉬지 않고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더할는지 모른다.
단 한 번의 절정을 위하여 이른 봄부터 흙속에서 견디는 씨앗처럼, 전천후의 하늘빛을 사랑하는 사계절의 나무처럼, 시종여일 정연한 자세로 음악을 관류하며 통합하고 있는 그들은 적막도 분망도 아닌 절대음악의 삼매경에 있을 것이다.
- 이향아, '실로폰은 한 번 울렸다' 중에서 -
장미와 안개꽃이 있습니다. 어느 꽃이 눈에 먼저 들어오는지요. 꽃은 나름대로 다 예쁘다고 하면서도 우선은 화사하고 향기 짙은 장미에 더 끌리지 않으십니까. 그게 우리들의 눈입니다. 그러나 장미도 홀로 놓고 보면 조금 허전합니다. 은은한 안개꽃으로 눈이 옮겨갑니다. 곰곰 생각하다가 장미에 안개꽃을 더하면 더욱 빛나는 꽃다발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세상은 이렇게 어울려가는 것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