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覺 (念)에도 級數가 있다. 凡俗한 欲望의 포로가 되어 그 衝動에 支配당하는 惡念이 있다. 生覺에도 高周波數가 있고 低周波數가 있다. 一切唯心造에서 처럼 인간을 포함한 萬物은 모두 Energy로 만들어졌다. 우리 모두는 磁石이고 一定한 磁氣場을 띄고 있다. 우선 무엇을 願하는가? 이렇게 될 것이다. 우리의 祈禱도 똑같다. 宇宙는 부처님의 加被가 充滿한 世界다. 戒를 따르면 살고 戒를 어기면 죽는다. 違法과 不法 破戒가 괴로움의 根本이다. 戒는 眞情한 修行人의 길이며 戒를 받으면 부처의 眞理에 나아간다. 智慧와 眞理의 世界로의 前進이 戒의 길이다. 凡俗한 情慾이 녹아질수록 高次元의 存在가 되듯 戒의 人間은 本能 欲望을 이기고 高次元적인 부처님의 化身이 된다.
戒의 人間은 무서운 磁力을 띤다
[480호 Date:2008-11-24/read:447]
■ 生覺은 磁石이다 周波數가 있다 級數가 있다
高級한 生覺이 있는가 하면 低級한 生覺이 있다.
부처님을 生覺하고(念佛)하고 戒를 生覺하는 修行者다운 想念이 있는가 하면
戒行 바른 生覺은 高次元과 通해 있고 低級한 生覺은 低次元과 通해 있다.
高次元的인 目的을 지닌 高周波의 想念은 宇宙로 放出돼 高次元의 波長을 끌어들인다.
低周波도 마찬가지다.
生覺은 强한 磁氣力을 띤다.
生覺은 하나의 磁石이다.
生覺은 磁氣力를 宇宙로 傳送하여 같은 波長을 끌어들인다.
모든 energy는 特定 周波數에 振動한다(共鳴作用).
마음의 周波數를 決定하는 것은 그의 生覺과 感情이다.
願하는 것들을 生覺할 경우 그 卽時 그 生覺의 周波數帶로 移動한다.
願하는 것들의 energy가 振動하여 願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오게 돼 있고 그들의 삶에 나타난다.
우리는 스스로의 磁氣場을 變調시키면서 願하는 것을 끌어들인다.
人間은 自身의 磁氣 energy를 스스로 管理하는 存在인 것이다.
그래서 Einstein은 「想像力이 그 人間의 核心이며 다가올 未來의 自畵像」이라 얘기했다.
아인슈타인다운 通察力이다.
마음으로 想像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成就할 수 있다는 뜻이다.
願하는 것을 分明히 決定하라!
그리고 이루어질 수 있음을 分明히 確信하라!
■ 宇宙는 加被가 充滿한 世界다 願力따라 이루어진다
그대가 그것을 얻을 資格이 있고 얻을 수 있다고 믿어라!
願力이 이루어졌을 때를 想像하라!
그 다음은 부처님께 맡겨라!
그런데 하나의 條件이 붙는다.
예를 들어 이런 狀況을 生覺해보라!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빠 나 스키 사줘!」 조른다.
그러면 아버지는 뭐라 하실까?
「짜식, 공부도 못하는 게 무슨 스키야!」이렇게 答하실 것이다.
그러나 사랑스런 아들이 부탁하는 것을 모른 체 하실 리가 있는가?
아버지는 아들에게 「너 요번 학기말 시험에 3등 안에 들어 봐, 그러면 아빠가 스키 사 줄께.」
아버지의 이 말을 信賴한 아들은 熱心히 工夫해서 기말시험에 3등을 못하고 5등, 10등을 했다.
아버지는 「너, 3등은 못했지만 熱心히 工夫하는 姿勢가 기특해 아빠가 스키 사 준다」
아버지는 아들이 스키 사 달라 할 때 이미 사주고 싶은 마음이 生겼던 것이다.
다만 쉽게 모든 것이 된다는 生覺을 拂拭(불식)시키기 위해 條件을 걸었던 것이다.
아들이 마음먹는 瞬間 이미 스키가 생기게 되어져 있다.
일단 마음을 發하기만 하면 發하는 瞬間 부처님께서는 分明히 이루어주시려는 마음을 내신다.
다만 그가 그와 같은 願力을 이룰 수 있는 戒行 바른 材木인가를 지켜보시는 것이다.
願力을 發하고 이루어진다고 確信하고 이미 그대의 것이 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모든 日常은 願力따라 이루어진다.
풀(草木)은 애를 써가면서 자라지 않는다.
自然의 法則 따라 自然스럽게 자란다.
■ 戒의 人間은 무서운 磁力을 띤다 모두를 끌어들인다
다만 重要한 것은 戒行이 바른 人間이어야 한다는 점을 注目할 필요가 있다.
戒行이 透徹한 人間은 무서운 磁力을 띤다.
그의 信念은 무서운 磁力이 되어 無量한 것들을 끌어들인다.
恒常 强하고 當當한 人間이 되려면 眞理에 立脚하고 戒에 透徹해야만 한다.
戒를 破하면 自身에게 當當하지 못하고 不幸이 온다.
끝없는 推進力을 培養하려면 우선 自己와의 싸움에서 이겨야하고 그 길이 바로 戒의 길인 것이다.
戒律의 發이 弱하면 부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戒를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理由, 法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理由는 무엇인가?
宇宙가 戒로 되어 있고 모두가 法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힘은 法의 힘이요, 大宇宙가 法界이기 때문이다.
法을 따르면 살고 法을 어기면 죽는다.
戒는 아름다운 法界 속에서 사는 길이요, 부처님과 恒常 함께 사는 길이다.
부처님의 無量加被와 함께하는 길이다.
戒를 지키면 法身이 되고 無量한 成就와 加被의 化身이 된다.
戒의 길을 가라!
그 길이 無量加被의 길이다.
그대가 法이면 모두가 法이요, 그대가 不法이면 모두가 不法이다.
法을 지키지 않으면, 戒를 지키지 않으면 모두가 崩壞된다.
戒를 따르고 法을 따르는 곳에 無量한 成就가 있다.
戒 따라 살라 法 따라 살라하는 것은 그 길이 偉大한 戰士의 길이고 偉大한 成就의 길이기 때문이다.
眞情 法은 힘이다.
眞情 戒는 힘이다.
■ 戒의 길은 偉大한 戰士의 宿命이다
戒를 實現하는 사람 法을 實現하는 사람은 强力하다.
戒를 따르는 사람 法을 實踐하는 사람은 無敵이요 無限이요 사랑이요 永遠이다.
그는 등불이 되고 平和와 安樂의 化身이 된다.
그는 秩序와 調和 속에 살며 不生不滅의 境地를 증득한다.
眞情 戒는 束縛으로부터의 解脫이며 그만큼 戒行淸淨해져야 한다.
自由롭기 위해 苦行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逆說的인 얘기 같지만 참 眞理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虛空 가운데 自由를 얻기 위해 나는 法을 배운다.
어떤 境遇든 自由를 얻으려면 無量한 修行을 해야만 한다.
涅槃을 守護하려는 者는 戒를 守護한다.
戒에 依해 智慧가 淸淨해지며 戒 亦是 智慧에 依해 淸淨해진다.
부처님의 表象으로서의 길이 戒의 길이고 法의 길이다.
非凡한 사람만이 戒를 지킨다.
眞實로 戒의 實踐이 부처되는 바로미터라 할 것이다.
智慧를 行(實踐)으로 나타낸 것, 부처를 行(實踐)으로 나타낸 것이 戒다.
偉大한 人物은 하나같이 戒의 偉大한 實踐家다.
보다 높은 水準으로 나아가려면 戒는 必須다.
戒는 이 世上에 이바지 할 수 있는 人間, 永遠性의 存在 養成에 그 큰 뜻이 있다.
戒의 사람이 要請하는 그 어느 것도 부처님께서는 去否하실 수 없다.
恒常 戒의 길을 가라. 그 길이 偉大한 戰士의 宿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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