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 스님
타성일편(打成一片)
경(經)에 보면 의심(疑心)이라 하는 것은 疑心을 잘하면 좋은데
疑心을 잘 못하면 그것이 괜히 큰 망상(妄想)이 됩니다.
의시해본(疑是解本)이요 의시혹본(疑是惑本)이라.
의심(疑心) 이것이
우리 마음을 풀어가는, 마음을 여는 근본(根本)이 될 수도 있지만
미혹(迷惑)을 더하는 根本도 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이 참선(參禪) 공부하시는 분들은
역시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꼭 타성일편이라는
술어(述語)와 개념(槪念)을 외워두시기 바랍니다. -
때릴 타(打)자, 이룰 성(成)자, 한 일(一)자, 조각 편(片)자.
이것은 모든 그런 천만(千萬) 갈래의 마음을 하나에 다 모아 버린다는 말입니다.
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안되면 事實은 參禪이 안됩니다.
따라서 우리 참선할 때는 打成一片을 前提로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은 이것은 우리 마음이 무엇인가?
물질(物質)이 무엇인가? 그 유주무주(有住無住),
유상무상(有相無相), 모든 그런 존재(存在)가 많은 것인데,
그런 存在가 대체로 어떤 것인가? 적어도 철학적(哲學的)으로
解決이 안되면 우리가 工夫를 바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참선도 이제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
교(敎)를 다 보고서 다시 思想이 딱 統一 되어 가지고서
들어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따라서 꼭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自己가 이래저래 生覺하는 물질(物質)인가, 정신(精神)인가,
또는 무슨 주의(主義)인가, 자연(自然)인가, 모두 그런 것을
하나의 도리(道理)로 해결을 시켜버려야 합니다.
무문관(無門關)은 무문혜개 선사(無門慧開 禪師)가
工夫하는 화두(話頭)법을 48칙으로 꾸민 책입니다.
無門關의 大義는 우리 衆生들이 보고, 듣고 아는 모든 것이 다
'무(無)'라 하는 없을 무(無)자, 모든것이 다 허망(虛妄)하다 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제법무아(諸法無我)라 하는
그 관문(關門)을 지금 우리가 넘어야 합니다.
우리 중생(衆生)들은 그런 무(無)의 관문(關門)을
뚫고 못 넘어가므로 자꾸 問題가 생깁니다.
모두가 없다는 無의 關門은 어째서 있는 것인가?
工夫를 시키기 위해서 그냥 억지로 시설해서 만든 것이 아닙니다.
事實은 부처님 법문(法門)이나 도인(道人)들 法門은 모두가
다 事實 그대로 말한 法門입니다. 진실법문(眞實 法門)입니다.
이른바 우주(宇宙)의 실상(實相)그대로 말씀하신 법문(法門)입니다.
따라서 무문관(無門關)도 없지 않은 것을
어거지로 방편(方便)으로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事實이 없는 것이기에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들이 번뇌(煩惱)의 經驗으로 해서는
무(無)를 못 느낍니다.
삼독심(三毒心)에 가린 흐리멍텅한 우리 중생의 안목(眼目)으로 해서는
무(無)를 못 느낍니다.
현상(現象)만 보고 現象만 실재(實在)로 있다고 生覺합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가 모두가 다 마음 뿐이요,
만법유식(萬法有識)이라! 모든 존재(存在)가
- 만법(萬法)이라는 것은 바로 存在를 意味하는 것인데
불법(佛法)의 법(法)보다도 일반 만유(一般 萬有)를 말하는 것입니다. -
일체존재(一切存在)가 바로 식(識)입니다.
이런 법문(法門)도 깨달은 분상에서 볼 때는 欲界, 色界, 無色界
모두가 다 마음(心)뿐인 것이다. 또는 '일체 존재가 다 식(識)뿐이다.'
그런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우리 중생들의 눈에는 그렇게 안보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萬法이 그때는 유색(有色)이라.
오직 다 물질(物質)로 보입니다. 萬法이 다 物質로 보이기 때문에
이제 유물론(唯物論)이 생기고 따라서
공산주의(共産主義)가 생기고 모두다 그렇지 않습니까.
존재(存在)가 모두가 다 부처니
사상(思想)대로 마음뿐이고 식(識)뿐이다. 이렇게 할 때는
唯物論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고, 따라서 唯物 변증법(辨證法)에
依한 共産主義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우리 중생(衆生)이 보는 것은 그와 같이 있다고만 봅니다.
그러기에 지금 사회(社會) 形態를 본다 하더라도 대체로
유물주의(唯物主義)가 판치고 있습니다.
唯物主義라는 것은 모두가 다 物質 뿐이라는 主義입니다.
내 몸뚱아리도 이대로 存在한다.
그러니까 自己 몸뚱아리를 위해서 그때는 최선(最善)을 다해서
봉사(奉仕)를 해야 쓰겠지요. 自己 몸뚱아리 重要하다고
生覺할 때는 自己 권속(眷屬)도 重要하겠지요. 따라서
自己 권속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 희생(犧牲)같은 것은
별로 안중(眼中)에 없습니다. 자기가 소속한 단체(團體)를
위해서는 다른 團體는 排隔해야 하는 것이고,
自己 나라를 위해서는-국수주의(國粹主義)라-. 자기 나라만
제일 지상적(至上的)이라고 하는 그러한 主義를
信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도 모두가 다 우리 중생이 보는
이 모든 환경(環境)과 물질(物質)이 '實在로 있다'
이렇게 生覺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나
성자(聖者)가 보는 것은 그렇지 않게 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에 우리 수행(修行)이나 工夫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이 지금 바로 보고 있지가 않습니다.
- 청화 큰스님 법문 打成一片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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