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과 마음공부

부처란 없다 ! 부처는 진리 자리로 가는 뗏목에 불과함을 알아야 한다 !!!

장백산-1 2013. 7. 26. 21:38

 

 

 

 

 부처란 없다!-

부처는 眞理 자리로 가는 뗏목에 불과함을 알아야 !!!

  

 

 

부처란 없다!-부처는 진리 자리로 가는 뗏목에 불과함을 알아야...

 

우리가 고난을 만날 때 苦難을 벗어나는 窮極의 길은 眞理와 合一하는 것입니다.

宇宙에 넘치는 本來 자리, 本來 根源, 그 根源的 眞理와 하나가 될 때

苦難은 마침내 물러가기 시작하고 또한 완전히, 그리고 원만히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眞理와 合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무엇이 그런 眞理인지 그 自體를 잘 모르고, 따라서 그런 眞理와 하나 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경우, 眞理를 象徵하는 象徵物(?)을 하나 설정해 놓고 그것을 形像化하고 그것을 붙잡게 하면 의외로 쉬워집니다. 그래서 우선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에서는 일종의 方便法을 동원합니다.

가령 신(神)이라는 절대적 존재를 산정하고 거기에 매달리게 하는 것입니다.

 

神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無條件 絶對的 存在이며 우리의 모든 것을 管轄한다는 정도는 웬만한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신론 종교에서는 그렇게 假想의 神(유신론 믿는 분들이 들으시면 기절초풍하시겠지만)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매달리고 거기에 執着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역시 眞理로 가는 方法 중의 하나입니다. 다만 方便法으로 만들어 놓은 神에 너무 執着하고 매달리고 그것을 全部로 알게 되면 問題가 생깁니다. 오늘 날 보는 곳곳의 종교 갈등은 어찌 보면 가상의 존재를 實體로 알고 거기에 執着하므로 일어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교도 마찬가지.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이란 結局 根源的 眞理입니다.

그 眞理가 眞理 自體로 있으면 법(法, 또는 法身佛)이라 부르고

그런 眞理가 生命을 얻어 具體的으로 우리 눈앞에 나타나면 부처님(化身佛)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불교에서 부처님이라는 말은 각자(覺者, 깨달은 이)를 뜻하기도 하지만 더 本質的으로는

<眞理 生命>을 일컫는 말인 것입니다. 眞理 生命으로 나타난 存在가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께 절하고 부처님을 찾고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眞理 그 自體에 절하고 眞理와 하나 되고 眞理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가 따로 있고 부처를 特定하는 것은 모두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맙니다.

나는 眞理가 아니고 眞理라는 存在가 따로 있고 그렇게 따로 있는 眞理만이 나를 救할 수 있다고

生覺하면 그것은 方便法을 잘못 解釋한 것입니다.

 

다만 그냥 眞理 生命을 찾아가는 것보다는 부처라는 假想의 象徵을 하나 定해 놓고 거기에 歸依하는 것이 平凡한 사람들은 훨씬 쉽기에 부처라는 상징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부처란 없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중국의 어떤 선사(禪師)는 목불(木佛)에 執着하는 어리석은 분을

깨우치기 위해 사리(舍利)를 찾는다(?)며 불에 태우기도 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 부처님께 절하고 부처님을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 숱하게 나오지만, 實은 이런 내막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는 가르침은 불교밖에 없습니다. 불교는 <부처란 없다! 形像이나 모습으로

부처를 찾을 수는 없고 그렇게 찾으려 한다면 그건 전부 헛일이다! 너 自身을 떠나 어디에도 부처는 없다! 世上 곳곳에서 부처를 봐야 한다! 부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오신다! 구름 한조각, 풀 한 포기도 부처의 모습 아님이 없다...>등등의 말씀을 합니다.

 

부처가 特定 事件이 아니라 普通의 事件이기에, 眞理란 어느 곳에나 어느 때나 있기에

그 眞理을 보고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모두가 眞理 生命임을 깨닫고 眞理 生命으로 살고

그 眞理 生命을 스스로 나투어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는 불교마저 부정합니다. 眞理 자리로 이끌기 위해 처음엔 方便法으로 부처란 존재를 想定하지만, 그래서 일단 急한 불은 끄고 苦難에 對處하게 하지만, 부처에 執着하는 限  窮極的 解決은 이뤄지지 않기에 마침내는 부처마저 버리게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밝고, 참으로 드높은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도 부처님께 歸依합니다. 그 높은 眞理를 깨우치시고 그 넓은 眞理를 보여주시고도,

우리가 당신과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이르시며 부처마저 없음을 일깨워주시는 그 깊은 지혜(智慧)

그 깊은 자비(慈悲)에 感泣하지 않을 수 없고 感動하지 않을 수 없기에, 오늘도 저는 부처님을

찬탄하고 없는(?) 부처님께 歸依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