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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중심이 잡힌 삶

장백산-1 2014. 11. 27. 11:38

 

 

 

남들이 나를 비난할 때  |불교방송 다시듣기

 

 남들이 나를 비난할 때

 [마음의 중심이 잡힌 삶]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듣기 싫은 말을 하거나, 동의하기 힘든 평가를 내린다면, 바로 그 瞬間, 당신은

아주 중요한 選擇을 내려야 한다. 즉, 그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 否定的인 그 말의 위력에 굴복당한 채

그런 존재가 되기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精神을 똑바로 차려 깨어있는 意識으로써 그 말이 그저 아무 힘도

얻지 못한 채 그저 나라는 존재위를 흘러가도록 지켜볼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瞬間이다.


사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평가는 어디까지나 그의 단편적인 관점일 뿐이며, 그 말은 진실도 거짓도 없는 中立的인

에너지일 뿐이다. 그 말이 힘을 가질지 말지는,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언제나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별 의미 없이 쉽게 내뱉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우리는 언제나 過度하게 意味를 賦與함로써

자기자신 스스로를 상대의 그 말에  拘束시키기를 서슴지 않는다.


사실 알고 보면 남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그 말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심각하게 하는 말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냥

내뱉는 것이다. 그리고 심각하게 이야기 해 줄 정도로 그렇게 他人들이 내게 깊은 關心을 가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우리는 그렇게 生覺하지 않는다. 그 말을 너무 크게 生覺하고, 너무 무겁고 심각하게 生覺하는 것이다.


아침에 화장이 왜 그 모양이냐는 남편의 말 한마디는 아내의 하루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라. 남편의 그 말 한마디가 나의 하루를 종일 우울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남편이니 망정이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때 그 말에 구속되고 휘둘려 하루 종일 우울하다면,

그건 더없이 어이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내 삶의 主導權을 넘긴 채,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내 삶이 휘둘리는 이런 내 人生의 主人자리를 왜 그 사람에게 넘겨주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살아간다. 意識이 깨어있지 못하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우리의

하루 삶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이다.


화가 나서 홧김에 내뱉은 "재수없게 생겼어"라는 학창시절 친구의 말 한마디를 40이 넘어서까지

붙잡고 실체화하며 그 말 한 마디에 구속당한 채 정말 자신을 재수없는 사람으로 믿어 왔던 분을 보고

口業이라는 業力이 얼마나 强할 수 있는지를 새삼 느낀 적이 있다.


말의 힘이란 이와 같다. 자신이 그 말에 힘과 의미를 불어 넣는 瞬間, 그 말은 살아 움직이며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實體的 에너지로 바뀐다. 그러나 자신이 그 어떤 말에도 實體性의 에너지를 賦與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最惡의

험담이라 할지라도 내 인생에 아무런 影響을 미치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 것이다.

 

사실 상대방이 나에게 그 어떤 험담을 해 올 때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내리는 험담 만큼만 험담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즉 상대의 험담이지만, 사실은 내 스스로 자신에게 내리는 자기 험담이며 자기 비난일 뿐인 것이다.


왜 상대방의 험담과 비난을 스스로 나서서 동의하고 동조하며 '맞아! 나는 저 정도의 험담을 받을 만 해' 라고

맞장구침으로써 상대방이 하는 그 험담에 힘을 부여하는가?


나라는 존재는 그 어떤 외부의 판단이나 평가를 받지 않고도 자기답게 자신의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존재다.

좋거나 싫은, 옳거나 그른 그 어떤 평가 없이도 충분히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실 삶에서 일어나는 이런 휘둘림은 내 스스로 자신을 옳은 사람으로, 좋은 사람으로 상대에게 보여지고 싶은

觀念에서부터 始作된다. 자기 스스로 상대의 평가나 판단의 희생양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좋게 평가받고 싶고,

좋은 대접을 받고 싶으며,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를 바라는 것 自體가 이미 자기 스스로 상대가 내리는 '좋고 나쁜' 相對的 分別心의 犧牲羊이 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評價 받지 않는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좋게 보이려고 애쓰지 않으며 살 수는 없을까?

험담 뿐 아니라 칭찬에 대해서도 기대하지 않을 수는 없을까? 칭찬 받고 싶고, 인정 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으며,

좋게 평가 받고 싶은 그 마음에서 놓여날 때 비로소 비난, 험담, 비판의 말에서도 自由로와 질 수 있는 中心 잡힌

內面의 힘을 發見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비로소 모든 삶의 主導權이 내 안에 들어온다. 상대방의 그 어떤 말이나 평가에도 전혀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自己 中心이 잡힌다. 나와 상대를 評價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의 좋은 評價를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방의 나쁜 評價를 받아들이길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언제나 말과 삶의 主導權을 굳건히 自己 안으로 가져 오는 삶을 살라.

 

BBS 불교방송 라디오 ‘법상스님의 목탁소리’(월~금, 07:50~08:00)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