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⑤명색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
다른 것들이 몸에 들어오면 면역반응 일어나는 것처럼
名色은 識의 作用 條件으로 나와 외부를 區別하는 機能
識이란 알기 쉽게 말하면 行動하는 어떤 것이 무언가와 만나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는
부정확하다. 이미 對相이 무언가를 알아보는 ‘무엇’, 혹은 감각기관 같은 걸 前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識은 아직 그런 것이 發生하기 以前의 識이고, 行을 條件으로 해서 發生하는 識이다. 對相을 區別
하는 것은 識의 內容을 分別할 때 可能하고 그걸 分別하는 器管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런 器管은 대체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동물이나 식물 같은 有機體는 여러 가지 器管을 갖는다. 動物이라면 6根의 感覺
器管을 가질 뿐 아니라 運動器管, 消化器管, 循環器管 등등을 갖는다. 이런 器管은 대체 어떻게 발생했을까?
박테리아나 아메바 같은 生物로부터 여러 기관들을 하나의 全切로 統合한 有機體가 발생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눈이란 器管이 있으려면 빛이 먼저 있어야 하고 빛을 感知하는 能力을 가진 細胞(光受容體)가 있어야 한다.
光受容體는 빛에 민감한 박테리아나 원생생물을 신체의 일부로 통합할 때 형성된다. 빛에 민감한 박테리아
는 빛이 있는 環境에서 살아가는 適應의 過程을 통해 形成된 것이다. 즉 빛과의 만남이 반복되는 환경에서
빛을 감지하는 능력--이는 生存하려는 意志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을 가진 것들이 출현했을 것이다.
이 環境은 빛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박테리아들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그 결과 빛에 민감한
박테리아들이 살아남아 進化하게 된다. 이런 박테리아가 다른 박테리아, 가령 스피로헤타처럼 運動能力을
가진 박테리아가 새로운 共生體를 形成하게 되었을 때, 빛을 感知하고 빛을 利用해서 먹이를 찾아 移動하는
새로운 能力이 발생한다. 빛에 민감한 세포나 운동능력이 있는 세포의 形成 모두 合目的的인 게 아니라, 빛
이 있는 環境 속에서 발생한 遇然的인 만남, 그리고 운동능력이 있는 것과 빛의 감지능력 있는 것의 우연적
인 만남에 의한 것이고, 그렇게 形成된 것이 빛이 있는 環境에서 生存에 有利했다는 이유로 인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만약 빛이 잘 들지 않는 땅속이나 깊은 바닷속이었다면, 빛에 민감한 것들이 出現했다 해도 살아
남는 게 전혀 유리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그것과 結合된 박테리아가 있었다고 해도 다른 박테리들보다
生存에 그다지 有利하지 않았을 것이며, 結局 그런 종류의 신체가 진화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式으로 빛과의 만남이, 그런 점에서 빛의 存在가 빛을 感知하는 能力을 進化시키고, 빛을 感知하는
器管을 發生시킨다. 原始的인 水準에서 ‘識’이란 바로 만남을 뜻한다. 빛에 反應하는 細胞와 빛의 만남은
그에 相應하는 識을 産出한다. 識이란 環境과 個體의 만남이고, 反復되는 그런 만남에 대한 知覺과 捕捉
이며, 그럼으로써 發生하고 發展해간 知覺能力, 그것에 의해 포착된 判斷들이다. 이는 識別能力이 충분히
發展하고 分化된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識이란 언제나 그런 識別能力이 自身의 環境과 만나는 事件이고,
그 事件으로 因해 身體에 發生한 變用이다.
만남으로서의 識이란 外部에서 온 자극으로 因해 身體上에 發生한 어떤 變用을 뜻한다. 그렇기에 識이란
언제나 外部에서 온 것과 身體 內部에 속한 것이 섞여 있게 마련이다. 가령 어떤 周波數의 빛과 만나 光受
容體 上에 發生한 電氣的 내지 化學的 變用이 빛에 대한 識인데, 이 전기적 및 화학적 변용에는 밖에서 온
빛과 그에 대한 광수용체의 반응이 섞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만남에서 가장 一次的인 判斷은 안과 밖을 區別하는 것이다. 識이 環境에 대한 적절한 行의 方式을
찾기 위한 것이기에, 외부에서 온 것과 내부에 속한 것을 區別하려 하게 마련이다. 안팎을 識別하려는 意
志는 識을 識別하는 것과 識別된 것, 卽 識別의 主觀과 識別의 對相으로 分離한다. 唯識學에서 말하는
見分과 相分이 그것이다.
識別作用을 수행하는 成分이 ‘나’라면 識別된 內容은 ‘對相’으로 區分이 된다. 前者가 나의 身體에 속한
것이라면 後者는 그 身體 밖에서 온 것이고, 前者가 나의 내부에 속한 것이라면, 後者는 나의 외부에 속
한 것이다. 내게 속한 것과 외부에 속한 것이 애초에 分離되어 獨立的으로 存在하며, 내가 외부에서 온
것을 보고 듣고 지각한 것으로 看做한다. 내부와 외부는 나와 대샹, 나와 ‘세계’로 분할된다.
내부와 외부를 區別하는 微視的인 認知 過程이 ‘나’와 외부세계의 對立으로 이어짐을 잘 보여주는 것은
동물들의 신체 안에서 발생하는 ‘특이적 면역반응’이다. 면역반응이란 말로 흔히 떠올리는 게 바로 이
특이적 면역반응이다. 백혈구(박테리오파지 세포)와 B-세포, T-세포 등이 외부에서 들어온 細菌을
識別하여 잡아먹거나 공격하고 파괴하는 反應. 이런 면역반응에 대한 오래된 觀念은 신체 바깥에서
침투한 ‘적’인 병균들을 내부의 면역세포들이 공격한다는, 매우 軍事主義的인 모델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槪念은 장기이식에서 발생하는 면역반응에 대해 설명할 수 없는 근본적인 난점을 갖고
있었다. 이식된 장기는 신체 안에 침투한 敵이 아니라 신체가 긴급하게 필요로 하는 기관인데, 이 기관
을 면역세포가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以後 면역반응의 槪念은 신체의 내부와 외부를 識別하여 외부적인 것을 排除하려는 反應으로
再定義되었다. 달리 말하면 나의 신체에 속하지 않은 것을 신체 안에서 識別하여 공격하고 배제하려는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역반응은 6식 ‘이전’에 작동하며 6식과 독립적인 세포적이고 분자적인 식별
능력이 존재함을 알려준다.
6識인 意識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이식한 장기들을, 면역세포들은 내부에 속하는 것인지 외부에 속하는
것인지만을 기준으로 독자적으로 식별하여 공격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이러한 면역반응은 6식 以前의
識別能力이 무엇보다 우선 내부와 외부를 區別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내부와 외부의 境界線을 관리하는
이 反應을 통해 ‘나’와 나 밖의 외부세계를 細胞的이고 分子的인 水準에서 區別하는 것이다. 나와 외부를
區別하는 이러한 分割은 이제 ‘나’ 자신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自身의 身體 또한 知覺이나 識別의 對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 신체에 대한 감각을 분할하여 거기서도 지각하는 역할을 하는 것과 지각되는
대상을 區別하는 것이다.
知覺하는 것과 知覺되는 것을 區別해주는 것은, 前者는 식별작용일 뿐이어서 빛이든 소리든 물질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특성을 갖지 않다는 점이고, 반대로 신체는 외부의 물질적 대상처럼 지각되는 物質的 性質
을 갖는다는 점이다. 마음이나 精神, 靈魂 같은 것이 감지가능한 性質이 없다는 점에서 前者에 속한다면,
우리의 육체는 보고 만지고 할 수 있는 性質을 갖는다는 점에서 後者에 속한다. 이 때문에 신체는 다른
지각대상과 마찬가지로 ‘對相’이요 ‘客體’로 간주된다.
‘名色’이란 識의 作用을 條件으로 해서 發生하는 이런 分割을 지칭한다. 알다시피 명(名, nama)과 색(色,
rupa)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色이란 物質的인 成分을 갖는 모든 것, 다시 말해 감지가능한 物質性
을 갖는 모든 것을 뜻한다면, 名이란 그런 物質性을 갖지 않는 것, 즉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만지
고 보며 作動하는 認知作用, 그런 認知作用을 하는 性分을 뜻한다. 物質性을 갖지 않는 이러한 性稟을 흔히
‘精神’, ‘靈魂’, ‘마음’ 등의 말로 명명한다. 이 셋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對相을 포착하고 명명
하는 기능이나 능력을 지칭한다.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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