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祭祀)와 재(齋) / 법정(法頂)스님
평소부터 그의 덕을 우러러 섬기던 노스님에게 어떤 信徒가 재(齋)를 지내달라고 돈 백만 원을 갖다드렸다.
노스님은 시자를 데리고 齋를 지내기 위해 미리 場을 보러가는데 아랫마을 사는 한 여인이 길가에 나와 앉
아 두 다리를 뻗고 통곡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노스님은 무슨 사연으로 통곡을 하는지 물어 보았
다. 그러자 여인은 자기 남편이 오랜 병고로 인해 빚진 돈 때문에 살던 집을 그날로 비워주지 않을 수 없게
되어 그런다는 것이었다.
노스님은 그 여인의 딱한 사정을 듣고 나서는 齋를 올리기 위한 場을 보기 위해 가지고 가던 돈을 여인에게
빚을 갚으라고 몽땅 건네주고는 발길을 돌려 절로 되돌아왔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原主는 무엇으로 齋를
지낼 것이냐고 펄펄 뛰었다. 노스님은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은 채 말이 없으셨다.
그 이튿날 齋를 지내기 위해 절에 올라온 재자(齋者)들은 노스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노스님은 그들을 반가이 맞으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재는 하루 앞당겨 어제 아주 잘 지냈다.”
뜻밖의 말을 들은 齋者들은 무슨 영문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노스님으로부터 자세한 사정을 들은
재주(齋主)는 속이 트인 사람이었던지 노스님께 감사하면서 供養費로 적잖은 돈을 내놓고 내려갔다.
전설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그리 오래된 옛일이 아닌 혜월(慧月)스님 회상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眞正한 齋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齋는 罪를 懺悔하는 일이
고 몸 말 생각으로 짓는 삼업(三業)의 行爲를 조심하고 삼가해서 맑게 밝히는 일이다. 대중이 정오에 한
자리에 함께 모여 會食하는 일을 재식(齋食)이라고 한다.
흔히 우리들은 49齋나 百齋를 이야기할 때 불전(佛殿)에 齋壇을 마련해서 음식을 가득히 차려놓고 목탁
과 요령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일반인들로서는 알아들을 수도 없는 呪文이나 法飾을 장황하게 늘어놓
는 儀式을 연상한다. 이런 儀式만을 齋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승속(僧俗)을 가릴 것 없이 그 노스님이 불
행한 여인에게 베푼 齋를 이해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어느 절이라고 지목할 것도 없이 좀 큰 齋의 부탁이
들어오면 (물론 돈을 많이 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온 절 안이 소란을 떨면서 장시간을 똑딱거리고 흔
들어대는 바람에 번번이 정해진 공양 시간을 어기는 수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런 齋를 가리켜 法답게
지낸 齋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런 齋는 齋者에 대한 과잉 서비스가 아니면 돈의 무게만큼 公演하는 푸닥거리와 다를 게 뭐란 말인가.
모두 함께 다 같이 反省해볼 일이다. 그리고 흔히 절에서는 제사(祭祀)와 재(齋)를 混同하고 있는 것 같다.
祭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儒敎에서 행하는 祖上의 神靈에게 음식을 바쳐 精誠을 드리는 禮節이다.
그러나 齋는 앞에서도 말했듯이 몸과 말과 생각으로 짓는 三業의 行爲를 맑히는 일이고, 定해진 時刻에
大衆이 함께 한자리에 모여 供養하는 일이다. 이 齋는 석가모니부처님 生存時부터 傳해 내려오는 교단의
중요한 행사이기도 하다.
淸淨한 修行者들이 모여 사는 精進 道場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너절하게 지내는 청체 불명의
사이비 절에서는 齋를 지낸답시고 밤새도록 야단법석을 떨면서, 심지어는 춤(소위 승무라는 것)까지
추어 가면서 지루하고 장황한 푸닥거리를 하고 있는 걸 보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불교라는 이름 아래 저질러지는 이런 비법(非法)에 뜻있는 사람들은 속지 말아야 한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베푸는 천도재일수록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으로써 법답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재자들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행해져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려고 할 때 시자인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후 유해에 대해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이때 부처님의 대답은 이렇다.
“너희들 출가 수행승은 여래의 장례 같은 일에는 상관하지 마라.
너희들은 해탈을 위해 정진하고 실천하고 게으르지 말고 전념하라.
여래의 장례는 독실한 在家信徒들이 알아서 치러줄 것이다.”
이 말씀은 출가 수행자는 비록 부처님의 장례 경우라 할지라도 그런 장례 같은 일에는 상관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오늘 날 출가승인 우리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1983년 법정스님께서 지으시고 ‘샘터’에서 출판한 ‘물소리 바람소리’에 실린 내용입니다)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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