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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

장백산-1 2016. 11. 5. 00:51

진리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


禪 21대 祖師 바수반두 존자는 깨닫기 전, 철저한 두타행과 엄격한 계율을 지켰으며, 나아가 수행에 철저

한 수행자였습니다. 하루에 한 번만 먹는 일종식을 하였으며, 눕지 않고 정진하였고, 하루에 여섯 차례나 

때에 맞춰 예불을 올리는 등 청정한 수행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20대 조사 사야다 존자가 이런 바수반두 존자를 찾아가 바수반두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들의 스승인 바수반두 스님이 행하는 여러 두타행이 분명 훌륭하긴 하나 그렇게 

다고 깨달음을 터득할 수 있겠느냐?”


바수반두를 따르는 제자들은 말했습니다.

“우리 스승님이 이토록 훌륭한데 무슨 까닭으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그러자 사야다 존자는 말했습니다. “그대들의 스승은 道와는 거리가 멀다. 설사 고행을 수십억 년을 하더

라도 그 수행은 모두가 허망한 일일뿐이다”


바수반두를 존경하며 따르던 제자들은 사야다의 말에 발끈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사야다 존자는 무슨 덕행을 쌓았기에 이토록 철저한 우리 스승의 덕행을 비방합니까?”


사야다 존자가 말했습니다.

“나는 道를 구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잘못 살지도 않는다. 나는 부처님께 예불을 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부처님을 가볍게 여기거나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나는 장자불와 수행을 하지는 않으나 그러다고 게으르지

도 않다. 나는 일종식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먹어대지도 않는다. 나는 철저한 두타행을 하지

는 않지만 그렇다고 탐욕스럽게 살지도 않는다. 이아 같이 마음에 바라는 바가 없는 해위를 일러서 道라고 

하느니라.”


이런 가르침에 제자들은 발끈했지만, 이 가르침을 전해 들은 바수반두 존자는 이 말을 듣자마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사야다의 이런 가르침에 바수반두 존자는 깨우쳤고 참된 불법이 무엇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佛法, 즉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은 無有定法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본래부터 미리 정해진 법이 없

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는 것이 眞理다’라고 할 만한 정해진 법칙이나, 행동 규율이나 계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불교의 계율이 있지만, 그 또한 본래부터 이미 정해진 절대적인 행동 수칙이 아니라 개차법

(開遮法)이라고 해서 그 정해논 계율을 열고 닫을 줄 알아야 하는 방편의 가르침일이 계율일 뿐입니다.


그 어떤 특정한 수행이나, 특별한 계행, 혹은 특별한 두타행을 실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道를 깨달은 

사람이거나, 道 자체에 무슨 특별한 효용가치가 있다고 여기지는 않은 것입니다. 수행, 계행, 두타행, 

그것은 이 세상의 본질, 근원을 터득하기 위한 한 가지 方便으로 필요한 가치일 뿐이지, 그런 方便에 

리 정해진 眞理의 실천이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입니다.


물론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특정한 계율을 지키고, 수행자다운 검소하고 

청정한 두타행을 실천하고, 특정한 수행법을 실천해 감으로써 깨달음, 마음의 본질을 터득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것만이 절대적인 것이라고 여기거나,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을 무조건 비방하고 탓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생활양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집착해 과도하게 사로잡혀 있거나, 그것만이 절대적으로 옳다

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옳지 못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오히려 法相, 즉 이 세상 모든 것이 실제로 있다

착각하고 마는 것이지요. 振理라는 幻想, 즉 法, 가상세상(virtual reality)에 집착하고 얽매여서 그 가상세계

에 걸려 넘어지거 나가자빠지지게 되는 것, 뒤바꾸낀 생각 마음, 전도된 생각 마음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도 데바닷다가 엄격한 계율 다섯 가지, 즉 출가자는 평생 숲에서만 생활하고 탁발한 

음식만을 먹고 누더기 옷만 입고 나무 아래에서 살고 생선과 고기를 먹지 말 것 등을 제안했을 때, 이를 

반대하셨습니다.


불법, 즉 붓다의 가르침을 실천함에서 중요한 점은 中道에 있습니다. 어느 한 가지 정한 양식이나 계율이나 

수행법에도 과도하게 執着하여 그것만이 옳은 것이라고 여기는 生覺, 그 생각은 中道에서 어벗어난 것일 뿐

입니다. 붓다의 이 말은 물론 수행이나 계율을 지키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行하는 特定한 行爲만이

진리에 의거한 훌륭한 해위라거나, 자신의 특정 행위에 대해, 특정 교리나 수행에 대해 과도하게 집착함으로

써 오히려 法相, 즉 眞理라는 錯覺, 幻想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佛子들은 잘 알고 있어야 할 것 입니다.


-법상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