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4)
모든 물질의 본질은 '단진동'..
우주는 떨림과 울림이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입력 2016.12.30 20:27 수정 2016.12.30 21:49
[경향신문] ㆍ가장 중요한 운동
물리는 세상을 운동으로 이해한다. 운동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등속운동, 등가속운동, 회전운동 등등. 이런 단어를 들으면 고등학교 물리시간의 아련한 악몽이 떠오르는 사람도 있으리라. 운동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고르라면 물리학자는 무엇을 고를까? 대학 물리학 커리큘럼은 국가에 따라 큰 차이 없이 보편적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물리학자는 대학 2학년 때 ‘역학’이라는 과목을 배우며 본격적인 물리 공부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역학 교재는 한 가지 운동을 이 잡듯이 분석하며 시작한다. 바로 ‘단순조화진동’, 줄여서 ‘단진동’이다. 아마도 이 운동이 가장 중요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필자의 생각에도 단진동이 가장 중요하다.
단진동이란 용수철에 달린 물체의 운동이다. 중요한 운동이니까 분명 쉽게 그 예를 찾을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단진동을 한번 찾아보자. 시계? 옛날 진자시계의 진자는 단진동한다. 하지만 요즘에 누가 진자시계를 쓰겠나. 전자시계도 사라진 지 오래다. 심장박동? 단진동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복잡한 진동이다.
사실 원운동은 단진동이다. 원운동 하는 물체를 옆에서 보면 좌우로 움직이는데, 이것이 정확히 용수철에서 진동하는 물체의 운동과 같다. 그렇다면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와 같은 천체운동은 대부분 단진동이 된다. 原子는 原子核과 電子로 구성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하듯이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돈다. 세상을 이루는 가장 작은 원자와 거대한 천체의 운동이 모두 단진동으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정도만 이야기해도 충분할 거 같지만, 아직 중요한 것을 이야기 안 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의 물체는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다. 가장 중요한 운동은 ‘停止’인 거 같다. 하지만 정지는 사실 단진동이다. 당신 앞에 놓인 테이블을 가만히 쳐다보라. 움직이지 않을 거다. 하지만 전자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振動을 볼 수 있다. 정밀한 물리실험을 할 때 테이블 위에 실험장비들을 그냥 늘어놓는 경우는 없다. 진동을 잡아주는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지금 당신이 손을 들고 가만히 있어도 손을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미시세계에서 완벽한 정지 상태는 불가능하다. 결국 모든 정지는 단진동이다. 단진동은 중요하다.
긴 줄의 한쪽을 쥐고 흔들면 波動이라 불리는 줄의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사실 波動은 單振動의 모임이다. 줄의 어느 한 부분에 붉은 매듭 같은 것을 묶어놓고 관찰하면 매듭은 아래위로 단진동을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파동도 단진동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전파, 빛, 소리는 모두 파동이다. 우리는 촉각이나 냄새가 아니라 듣고 말하고 보는 것으로 소통한다. 듣고 말하는 것은 소리, 보는 것은 빛, 통신은 전파를 이용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리적 도구는 모두 파동이다. 파동은 단진동이다.
■진동의 물리
단진동은 물체가 평형상태에 머무르려는 속성이 있을 때 일어난다. 손가락으로 종아리를 누르면 종아리는 금방 원래 모습으로 복구된다. 아니라면 각기병을 의심해야 한다. 종아리 살을 당겨도 손을 놓으면 금방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여기에는 복원력이라는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용수철도 마찬가지다. 평형 길이보다 용수철이 늘어나면 평형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작용한다. 힘을 받은 물체는 가속된다. 이게 문제다. 물체가 평형위치에 왔지만 이제는 가속으로 얻은 속도 때문에 멈추지 못한다. 그래서 물체는 평형위치를 지나쳐 계속 진행한다. 그러면 다시 복원력이 작용하기 시작한다. 속도는 느려지고 결국 물체는 멈춘다. 하지만 용수철은 이미 늘어난 상태다. 그래서 다시 평형으로 돌아가려는 힘이 작용하고 이렇게 이야기는 영원히 계속된다.
마찰이 있다면 물체는 결국 멈춘다. 당겨진 종아리 살이 진동하지 않고 바로 서는 것은 마찰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중심에 이르고자 하지만 항상 지나쳐 다른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단번에 원하는 중심에 도달하기는 힘들다. 결국 진동이 잦아들며 조금씩 목표에 접근해가는 거다.
단진동은 진동수와 진폭이라는 두 가지 물리량으로 기술된다. 용수철에 달린 물체가 두 지점을 오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주기’, 두 지점 사이의 거리를 ‘진폭’이라 한다. 주기의 역수를 ‘진동수’라 하고, 단위로 헤르츠(㎐)를 쓴다. 컴퓨터 프로세서 펜티엄칩의 진동수가 2.3기가헤르츠(㎓)라는 것은 1초에 23억번의 단진동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단진동은 주기가 365일, 진동수로는 3억분의 1㎐ 정도 된다. 진동수는 중요하다. 용수철마다 자신의 고유한 진동수를 갖기 때문이다. 단진동의 세계에서 진동수는 주민등록번호다.
■공명
그네를 당겼다 놓으면 단진동한다. 그네가 정확히 최대의 위치에 왔을 때마다 밀어주면 그네의 진폭은 점점 커진다. 하지만 아무 때나 그네를 마구 밀면 진폭이 커지지 못한다. 그네가 최고 위치에서 시작해서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주기다. 주기의 역수(逆數)가 그네의 고유진동수다. 즉 그네의 고유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로 그네를 밀어줄 때 그네의 진폭이 커진다는 거다. 이것을 ‘공명'이라 한다.
우리 주변은 휴대폰 기지국에서 내보낸 전파로 가득하다. 나에게 전화가 왔을 때 어떻게 전파가 내 휴대폰만 골라서 울리게 할 수 있을까? 바로 공명 때문이다. 휴대폰은 자신의 고유진동수를 가진 일종의 진자다. 휴대폰 내부에 전기의 그네가 있다고 보면 된다. 외부에 고유진동수와 같은 전파가 있다면 휴대폰 내부의 진자에 공명을 일으킨다. 휴대폰 내부 전류의 진폭을 점점 크게 만든다는 말이다. 결국 휴대폰은 전파신호를 감지하게 된다. 다른 사람 휴대폰의 고유진동수에 해당하는 전파가 주변에 있어봐야 공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당신에게 전화를 걸면 전국의 모든 기지국이 당신 휴대폰의 고유진동수에 해당하는 전파를 내보낸다. 이 전파는 당신 휴대폰을 제외한 모든 휴대폰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당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기지국이 내는 전파는 당신 휴대폰에 공명을 일으켜 전화를 울리게 한다. 이처럼 자연에서 뭔가 선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공명의 결과다.
사람은 빨간색, 녹색, 파란색 세 가지 색의 混合으로 모든 색을 감지한다. 왜 세 가지 색일까? 색이 다른 빛은 진동수가 다른 파동이다. 사람의 망막에는 이 세 가지 색의 진동수를 고유진동수로 갖는 로돕신이라는 分子가 있다. 이들이 빛과 공명을 일으키면 형태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을 신경신호로 바꿔 뇌로 전달하면 우리는 봤다고 느낀다. 로돕신에는 세 종류가 있어서 우리는 세 가지 색만 볼 수 있다. 참고로 2014년 노벨 물리학상은 파란색 LED를 발명한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우주는 단진동이다
사람의 고유진동수는 24시간일까? 사실 이것은 지구의 자전이 만들어낸 진동이다. 사람이 태양을 보지 않아도 24시간 주기의 생활을 할까? 인간 내부에 자체 시계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해외여행 중 시차 때문에 고생을 해본 사람은 생체시계가 있다고 생각할 거 같다. 1972년 미셸 시프르는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다. 햇빛이 들지 않는 지하에 갇혀 인공 빛만으로 몇 달을 지내야 하는 끔찍한 실험이었다. 1962년 유사한 실험에서는 실험자가 반쯤 미친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시프르의 실험 결과는 놀랍다. 처음 5주 동안 26시간의 주기로 생활을 했다. 하지만 37일째부터 40~50시간 주기를 보이기 시작한다. 이후로 26시간과 40~50시간 주기를 들쭉날쭉 반복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것은 자발적 내부 비동기화라 불리는 현상이다. 사람은 복잡한 진동자다.
물론 사람보다 복잡한 진동도 많다. 세상의 모든 진동, 아니 모든 운동을 단진동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대학원 수준의 역학에 가면 ‘액션-앵글(action-angle) 변수’라는 것을 배운다. 이는 모든 운동을 단진동의 조합으로 바꾸는 수학의 마술이다. 이걸 처음 배울 때 느꼈던 충격이 떠오른다. 세상 모든 것은 단진동이구나! 하지만 이 이론은 불길한 멘트와 함께 끝난다. 이런 방법을 근사적으로 적용하다보면 발산(發散)하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선악과만 따먹지 않으면 행복할 거라는 말이랑 비슷하다. 누군가 곧 선악과를 따먹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발산하는 곳에 숨어 있는 것은 바로 ‘카오스’였다. 진동하지만 영원히 초기 조건으로 돌아올 수 없는 운동. 주기가 무한대인 운동이 존재했던 것이다.
이공계 수많은 학과에서 물리학을 다루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문제들은 대부분 단진동이다. 대학 수학의 대부분은 단진동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삼각함수, 선형대수학, 미분방정식, 푸리어급수 등등. 진자 하나를 당겼다 놓으면 단진동한다. 하지만 진자 두 개를 연결하여 흔들면 어떻게 될까? 조금만 당겼다 놓으면 역시 단진동한다. 하지만 높이 당겼다 놓으면? 교과서에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선악과를 따먹어보면 거기에는 카오스라는 고통이 있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물체는 정지에 가까운 작은 진동을 할 때에만 단진동한다. 진폭이 커지면 대개 카오스다. 사실 모든 과일이 선악과인데, 나는 바나나만 먹고 살았던 거다.
하지만 단진동은 여전히 중요하다.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를 생각해보자. 이 운동은 단진동이다. 하지만 지구 자체는 단진동이 아니다. 지구가 진동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일까. 20세기 들어 물리학에는 혁명이 일어난다. 혁명의 핵심은 간단하다.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는 그 자체로 파동, 즉 단진동이라는 거다. 처음에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단진동하며 동시에 파동처럼 행동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파동방정식이 만들어진다.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이다. 여기서는 공간을 가로질러 직선으로 날아간다고 믿었던 물질들이 사실은 소리처럼 스멀스멀 파동처럼 진행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파동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빛이 물질과 같이 행동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물질과 파동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파동은 물질이 운동하는 방식의 하나가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의 본질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결국 양자장론이라는 분야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서는 파동으로부터 물질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물질의 궁극을 탐구하던 현대물리학은 세상이 (상상도 할 수 없이 작은) 끈으로 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을 초끈이론이라 한다. 여기서는 작은 끈의 진동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물질들이 만들어진다. 당신이 기타로 ‘도’를 치면 코끼리가 나오고, ‘미’를 치면 호랑이가 나온다는 말이다. 결국 세상은 현(絃)의 진동이었던 거다.
우주는 초끈이라는 현의 오케스트라다. 그 진동이 물질을 만들었고, 그 물질은 다시 진동하여 소리를 만든다. 힌두교에서는 神을 부를 때, 옴(aum)이라는 단진동의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렇게 소리의 진동은 다시 신으로, 우주로 돌아간다. 결국 우주는 떨림이다. 나, 떨고 있니?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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