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과 현대물리학

우주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대칭'이 있어 모든 것은 보존된다

장백산-1 2016. 12. 31. 03:48

경향신문

[전문가의 세계 - 김상욱의 물리공부] (3) 


우주는 에너지로 가득 차 있고 '대칭'이 있어 


모든 것은 보존된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 입력 2016.11.18 20:35 수정 2016.11.21 11:05




[경향신문] ㆍ아름다움은 진리다

빅뱅 이미지 사진.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원은 태양으로부터 오며, 이 태양 에너지는 빅뱅 당시 한 점에 응축돼 있던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형성된 수소원자들의 결합 작용을 통해 생성된다.

‘우주의 기운’이란 것이 존재할까? 선사시대의 수렵채집인은 인간과 동물, 생물과 무생물을 분리하여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에는 곰이 인간으로 바뀌는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에는 나무나 바위가 영혼을 가진다는 정령신앙도 널리 유행했다. 많은 종교들이 영혼의 존재를 가정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것이 물리학에 있다면 당신은 믿겠는가? 바로 ‘에너지’다.

■에너지보존법칙

뉴턴역학에 따르면 등속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운동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 그 이유를 물을 필요 없다는 말이다. 마찰이 없다면 물체는 그냥 영원히 움직인다. 진자를 당겼다 놓으면 점차 진폭이 작아지다 결국 멈춘다. 마찰 때문이다. 마찰이 없다면 진자도 영원히 진동한다. 운동은 그 자체로 실체를 갖는 영원불멸의 어떤 ‘것’처럼 보인다.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의 운동이 그 예다. 여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망이 이는 것은 정령신앙에 들어 있는 우리의 본능일지 모른다. 물리학자는 여기에 에너지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렇다면 에너지는 영원불멸해야 한다. 에너지보존법칙이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물체는 운동에너지를 갖는다. 그래서 영원히 움직인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뉴턴역학을 정령신앙으로 표현한 거 같다. 움직이는 진자는 속도가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한다. 따라서 운동에너지도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한다. 하지만, 에너지는 보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진자의 운동에너지가 줄어드는 동안 그 에너지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위치에너지’다. 진자의 속도가 줄어드는 동안 운동에너지는 위치에너지로 전환된다. 결국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은 일정하고, 이렇게 전체 에너지는 다시 보존된다.

이런 게 과학일까? 다행히(?)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의 합이 일정하다는 것은 뉴턴의 운동방정식으로부터 수학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위치에너지가 정의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뭔가 보존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아무튼 우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이 등장한 거다. 우주에는 영원불멸하는 무언가가 있다.

움직이는 진자는 결국 멈춘다. 마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찰이 존재할 때 에너지보존법칙이 깨지는 걸까? 이처럼 쉽게 깨질 거였으면 애초에 ‘법칙’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거다. 진자의 운동을 방해하는 것은 공기의 마찰이다. 진자의 움직임이 점차 줄어드는 동안 주변 공기의 온도가 올라간다. 열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열에너지’라는 것을 도입하고 싶다면 당신은 훌륭한 독자다. 결국 진자의 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바뀐 거다! 그런데 정말 공기의 온도가 올라갈까? 추운 겨울 진자를 움직인다고 따뜻해지는 것을 본 적 없지 않은가?

영국 과학자 제임스 프레스콧 줄은 마찰에 의해 발생한 열을 측정했다. 그 열에너지와 물체가 마찰로 잃은 에너지가 같았다. 사실 줄의 실험에는 문제가 있었다. 1도 단위로 눈금이 찍힌 온도계를 가지고 1/100도 변화를 쟀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온도 조절에 능통해야 하는 양조장 사장의 아들이 아니었으면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을 거다. 오늘날 이 물리학자의 이름 ‘줄(Joule)’은 에너지의 단위가 되었다.

당신은 지금 에너지보존법칙이 확장되어 가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았다. 에너지가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면 새로운 에너지를 정의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의 목록은 자꾸 늘어간다.

■에너지로 연결된 우주

20세기 초 에너지 목록에 추가된 ‘질량’은 에너지계의 아이돌이다. E=mc² 이라는 공식은 웬만한 교양인이라면 안다. 이 식에서 좌변은 에너지, 우변의 m은 질량이다. 질량이 에너지라는 말이다. 가장 최근 에너지의 목록에 추가된 것은 ‘암흑에너지’다. 우주의 가속팽창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된 가상의 존재다. 우주 전체에 깔려 있는 어떤 기운(?)이랄까. 이쯤 되면 에너지가 아닌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게 빠를 거 같다. 존재하는 것 가운데 에너지를 갖지 않는 것이 있을까?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에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다.

옆에 있는 돌을 집어 들었다가 가만히 놓아보자. 돌이 낙하하다가 바닥에 부딪혀 퍽 소리를 내고 멈출 것이다. 돌이 가진 운동에너지가 소리에너지와 열에너지로 바뀐 것이다. 돌의 운동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당신이 돌을 집어 올리는 동안 돌의 위치에너지가 커진다. 낙하하는 동안에는 반대로 돌의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바뀐다. 그렇다면 돌의 위치에너지는 어디서 왔나? 당신의 손이 돌을 들어 올리는 동안 몸속의 에너지를 소모한다. 힘이 든다는 말이다. 정확히는 근육 내의 ATP가 분해되며 나오는 에너지다.

근육 내 ATP를 만드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는 호흡으로 얻는다. 호흡은 유기물을 산소로 태워 에너지를 얻는 과정이다. 유기물은 우리가 먹은 음식을 분해하여 얻는다. 우리가 먹고(유기물) 숨을 쉬어야(산소) 하는 이유다. 유기물을 태울 때 에너지가 나오는 것은 유기물이 높은 에너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높은 에너지 상태의 유기물을 만드는 것은 대개 식물의 몫이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유기물을 만든다. 식물도 에너지를 창조할 수는 없다. 광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는 햇빛에서 얻는다. 결국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원은 태양이다.

태양도 에너지를 창조하지는 못한다. 태양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수소원자들이 결합하여 헬륨이 되면서 에너지가 생성된다. 그렇다면 수소의 에너지는 어디서 왔을까? 수소는 우주의 탄생, 그러니까 빅뱅 때 만들어졌다. 정확히는 빅뱅이 있은 후 38만년이 지났을 즈음이다. 빅뱅 당시 우주의 모든 에너지가 한 점에 응축되어 있었다. 이 에너지가 물질로 변환된 것이다. 결국 우리 주위의 모든 에너지는 빅뱅에서 기원한다. 에너지보존법칙이 우리에게 알려준 사실이다.

■보존법칙의 기원

에너지보존법칙이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앞서 정령신앙에서 에너지라는 개념이 나온 것은 아닌지 이야기했다. 역사적으로 에너지보존법칙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독일 과학자 율리우스 로베르트 폰 마이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고, 유물론에 기반한 과학에 반감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에너지라는 비물질적 개념이었다. 물리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좋아했을 리 없다. 오늘날 우리는 에너지보존법칙이 보다 일반적인 ‘보존법칙의 법칙’의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수학자 에미 뇌터는 그의 이름을 딴 ‘뇌터 정리’를 발견했다. 그 내용은 대충 이렇다. 대칭이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보존법칙이 존재한다. 무슨 말일까? 완벽한 ‘구(球)’를 생각해보자. 구는 회전을 시켜도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이때 구는 회전대칭을 가진다고 한다. 뇌터 정리는 그렇다면 회전과 관련한 무언가가 보존된다고 말해준다. 실제 각운동량(회전운동을 하는 물체의 운동량)이라는 것이 보존된다. 이 때문에 지구는 일정한 속도로 돈다(엄밀하게는 달 때문에 속도가 조금씩 변한다).


대칭과 보존법칙의 대응을 밝힌 ‘뇌터 정리’를 증명한 독일 수학자 에미 뇌터(1882~1935).

진다. 구는 반지름이라는 단 하나의 숫자로 표현된다. 수학자 조지 데이비드 버코프는 대칭의 정도로 아름다움을 수치화하려 했을 정도다. 물리학자는 종종 어떤 물리이론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수식을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 이들은 방정식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찾는 걸까? 이론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가진 간결함, 즉 대칭에서 온다. 올바른 이론은 적합한 대칭성을 갖는다. 이런 이론은 아름답다. 결국 아름다움은 진리다.

▶필자 김상욱
등학생 때 양자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BK조교수를 거쳐 2004년부터 부산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철학하는 과학자로 과학의 대중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영화는 좋은데 과학은 싫다고?>, <과학수다1, 2>(공저), <과학하고 앉아있네 3, 4>(공저), <김상욱의 과학공부> 등의 저서가 있다.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