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시민민주주의

이제 성장만능주의 청산… 공생하는 경제 · 사회 만들어야

장백산-1 2017. 4. 1. 18:25

"이제 성장만능주의 청산…

공생하는 경제 · 사회 만들어야"


정리=송윤경·고희진 기자 kyung@kyunghyang.com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과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인근 정동길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경향신문에서 가진 대담을 통해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할 민주주의 길을 모색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과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인근 정동길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경향신문에서 가진 대담을 통해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할 민주주의 길을 모색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촛불 시민들은 말한다. 민주주의는 사회 구성원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라고. 그러나 가정·직장·학교 그리고 사회 곳곳 일상에서 시민들은 자유를, 행복을, 민주주의를 느낄 수 없다고 했다. 민주화 이후 30년,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시민들 삶에 온전히 파고들지 못했다.

한국 사회가 서야할 출발선은 다시 ‘민주주의’다. 지난 26년간 인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의제를 던져온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과 20여년간 시민단체·풀뿌리 자치 등 사회운동에 헌신해 온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가 지난 24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정치·생태·교육·지역사회 등 다양한 의제를 넘나들며 한국사회 ‘재건’을 고민해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1987년 민주화를 성취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시민 일상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김종철=근본적으로 오랜 군사주의 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를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생각과 명령은 최상층에서만 하고, 현장책임자나 실무자들에게는 재량권이라는 게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통치가 딱 그런 식이었다. 세월호 문제도 아직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위급상황에서 생각을 해야 할 사람이 아무것도 안하니까 아래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일어난 비극이 아닌가. 청와대의 국무회의라는 것도 늘 장관들이 초등학생들처럼 받아쓰기만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는 국정이든 생활 속에서든 민주주의가 뿌리박을 수 없다. 개인들은 그저 ‘힘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는 ‘화물 과적’과 같은 돈 말고는 아무것도 중시하지 않는 부도덕성까지 보태졌다. 그야말로 적폐가 쌓여 터진 참사였다. 

하=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보며 놀랐던 것이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양쪽 엔진이 상실돼 추락하는데 관제탑에서는 기장에게 주변 공항으로 회항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런데 기장 판단에는 회항하려고 했다가는 중간에 추락할 것 같았다. 그래서 허드슨강에 착륙을 시켜 승객을 구조한다. 국가나 사회라는 것은 위에 있는 사람들의 지시나 명령만 따라서는 잘 기능하지 않는다. 각자의 권한과 책임이 잘 분배돼 있어야 하고 주체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새 시스템이다. 87년 헌법의 여러 문제 중 하나는 청원 외에는 국민이 목소리를 낼 권리가 보장이 안돼 있다는 점이다. 여전히 국민을 국가의 ‘부속물’로만 본 거다. 사람을 ‘부속물’로 취급하며 목소리를 내기 힘들게 하는 건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김 = 제헌헌법 초안을 작성했던 유진오 선생의 회고록을 보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의 ‘국민’이라는 말은 원래 초안에서는 ‘인민’이었다고 한다. 유진오 선생의 성향은 보수적이었지만,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주의헌법이라면 ‘국민’보다 ‘인민’이 더 적절한 말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당시 국회에서 인민은 북한에서 사용한다는 이유로 국민으로 수정됐다. 유진오 선생은 그걸 못내 아쉬워했다. 인민은 자율적 주체라는 의미가 있지만, 국민은 국가에 대해서 종속적인 의미를 띠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을 영어로 변역하면, 국민은 ‘피플’이 된다. 그런데 ‘피플’은 원래 국민이 아니라 인민을 뜻한다는 게 국제적인 상식이다. 언젠가는 우리도 ‘인민’이라는 말을 되찾아 쓸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 = 국가의 ‘부속품’으로서 국민의 문제도 있지만 직장·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조 조직률은 10%, 비정규직은 (노조 조직률이) 2% 정도다. 기업가의 독재적 행위에 대한 견제가 안된다. 교사와 공무원은 정당가입을 못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은 의견을 내도 ‘경청’되지 않는다. 특히 촛불집회 얘기나 정치적 얘기는 아예 하지 말라고 한다. 

김=‘교육의 중립성’이 한국인들을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바보로 만들고 있다. 중립성을 내세워서 국가나 사회의 주요 쟁점을 토론조차 못하게 막는데, 이렇게 되면 아이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할 수 없다. 

하=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게 ‘특정한 정파의 이념만 얘기해선 안된다’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정치를 가까이 하면 안된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국정교과서, 사드문제 등 사회현안에 대해 아이들도 궁금하게 생각하잖나. 논쟁적 사회현안을 교실로 끌고 들어와 자유롭게 토론하는 습성을 길러야 민주적 시민으로, 진정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다. 우리 교육에서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늘 ‘선생님, 답만 가르쳐 주세요’ 식이다. 독일에서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기 동네에 관한 일에 대해 서로 토론하고 머리가 커지면 국가적 문제에 대해서 자기들끼리 의제를 만들어 토론한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서 ‘학급평의회’라는 제도도 마련돼 있다. 독일은 나치 경험 때문에 다시는 독재체제를 용납해서는 안된다는 거의 절대적인 합의가 있다. 그래서 정치선동가에 속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각자의 비판력, 판단력을 기르는 교육을 철저히 한다. 이런 교육을 하면 지금 한국의 소위 친박계 의원 같은 몰상식한 자들은 정치판에 아예 등장할 수가 없다. 요즘 친박계 의원들의 발언을 보라. 정치적 보수파의 언어가 아니라 그냥 상식 이하의 파렴치한 말이다. 보수든 진보든 상식적인 언어로 인간답게 말하면, 얼마든지 이성적인 타협에 이를 수 있고 지혜를 모을 수 있다. 그런데 끊임없이 몰상식한 억지논리를 펴는 사람들과 어떻게 타협하고 ‘대연정’을 한다는 말인가. 30년 전에 ‘민주화’를 이뤘을 때 우리가 본격적인 ‘시민민주교육’에 신경을 썼어야 했다. 

하= 민주화 이후 우리가 교육(학교), 노동(직장) 등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느냐에 대한 공론의 장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그나마 의미있다고 보는 것은 87년 이후 지역사회에서 생활협동조합과 같은 풀뿌리 단체가 만들어지고 시민단체가 많아진 점이다. 자기 생활공간에서 자발적인 결사체를 만들어 활동하는 경험이 쌓여왔다. 

김 =그 기반이 이번 촛불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87년 이후 시민운동이 활발해진 것은 그야말로 큰 성과로 볼 수 있다. 민주주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오늘의 탄핵을 성사시키는 동력이 됐다. 다만 노동운동은 87년 이후 한동안 활발했지만 IMF 철퇴를 맞으면서 크게 위축됐다. 사실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인 문제다. 신자유주의 격랑이 덮치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금융자본들이 경제주도권을 쥐면서 노동자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니 자기 권리를 주장할 공간이 축소되었다. 덴마크, 독일 같은 곳이 지금 세계에서 가장 인간적인 나라로 평가되는 것은 노동조합을 비롯해서 다양한 중간조직들이 아직은 살아있고, 무엇보다 민주교육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이다. 

하=독일은 선생님들은 물론 학생들도 초·중·고교 때부터 정당가입이 된다. 정당가입엔 연령제한이 없다. 각자 자기 의견 있는 정치의 주체로 자라난다. 자기 의견이 없으면 토론이 안 되잖나. 교육이라는 공간에서야말로 사람이 성장하는 민주주의를 경험해야 한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br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김=최근 자료를 찾다가 우리나라에 ‘인성교육진흥법’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만들어진 법이라고 한다. 개인의 인성을 국가에서 관리하겠다고 하는, 이런 전근대적인 법률이 21세기의 대한민국 국회에서 만들어졌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정희 시대의 국민교육헌장과 조금도 다른 게 아니다. 사람들이 예의 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과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지 예의를 법으로 강요한다? 대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국회의원들한테 묻고 싶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시민이 아니라 ‘부속품’을 만드는 교육부터가 문제라는 말씀이신 것 같다.

김=지배층 입장에서는 국민이 바보일수록 좋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우리교육에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다. 가령 창원에 태봉고등학교라고 공립대안학교가 있다. 학교에서 도난사건이 일어났는데, 범인이 밝혀지자 교장이나 교사들이 처리하지 않고, 그 문제를 학생들이 논의해서 결정하도록 맡겼다. 학생들끼리 몇날 며칠을 토론했다. 처음에는 ‘쫓아내자’는 발언, 벌을 주자는 발언도 나왔지만, 결론은 ‘우리 친구다, 우리가 보듬어야 한다, 물건을 훔친 것도 뭔가 소외감을 느낀 탓일 거다, 앞으로 더 잘 지내자’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결론인가.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좋은 나라가 될 수 있다.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조금만 겸손하면 정치도, 교육도 순조롭게 돌아갈 것이다. 원래 ‘프레지던트’란 ‘사회자’라는 뜻이다. 대통령도 회의의 한 멤버로서 사회를 보는 사람일 뿐이다. 근데 흔히 자기가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자라고 착각을 한다.

-구체제를 허물고 새로운 체제를 짜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우리가 정말 좋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저 혼자만 잘산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웃들도 행복하게 잘 살아야 내가 행복한 거다. 그런데 그것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사회분위기를 만들려면 무엇보다 국가의 공공성이 발휘돼야 한다. 그래서 국민 다수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서 봉사하는 국가 시스템의 확립이 긴급하다. 그 점에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가를 합리적으로 선출하는 방법이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br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하=결국 정치개혁이 첫번째 단추일 수밖에 없다. 교육이 안바뀌는 이유도 사실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폭넓은 토론이 안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같은 이슈 하나만 가지고 싸울 뿐 교과서 자체가 필요한지 아닌지, 왜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등 교육 등에 대한 깊이있는 토론이 거의 없다. 

덴마크 교육이 훌륭하다고 하는데 덴마크의 정치시스템이 덴마크 교육을 만든 거다. 덴마크의 정치를 먼저 배워야 한다. 덴마크는 우리와 다르게 정당이 얻은 지지율대로 의석을 배분한다. 의원 각자는 의정활동을 하는 데 집중한다. 우리는 국회의원 300명 중 253명이 지역구에서 당선된다. 재선하려면 지역구에 인사하고 다니는 게 일이다. 지역구에서 1등하면 당선되는 선거제도,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지는 거대정당 기득권 구조를 깨지 않으면 우리 삶의 문제들이 정치를 통해 제대로 토론되는 게 불가능하다. 

-지역구 의원을 줄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하=그래서 의원 숫자를 늘리자는 것이다. 독일처럼 지역구 선거를 하되 비례대표 숫자를 충분히 두자. 독일은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이 1대1인데. 우리는 2대1로라도 만들자. 그리고 전체 의석을 정당득표율대로 나누고, 각 정당이 할당받은 의석내에서 지역구당선자부터 인정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비례대표로 채우면 된다. 바로 독일 방식이 이렇다. 

국민들이 의원 숫자 늘리는 것을 싫어하는 건 제대로 일 안하는 의원들 꼴보기 싫어서다. 그런데 의원 숫자를 줄이면 특권은 더 세진다. 주권자 입장에서 보면 특권을 없애고 의원 숫자는 늘리는 게 의원들로 하여금 제대로 일하게 하는 길이다. 독일 인구가 8000만명 정도인데 의원은 630명이다. 스웨덴은 인구가 1000만명이 안되는데 국회의원은 349명이다. 우리는 최소한 지금보다 20% 늘려 360명까지 가고, 대신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 비례대표의 비민주적 공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무원들이 그런 의문에 이렇게 답하더라. ‘독일 연방선거법은 당원들이 비밀선거로 뽑은 사람 아니면 (후보등록을) 거부하게 돼 있다’고.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된다. 

김=결국 모든 개혁은 국회가 동의를 해줘야 하는데 그게 딜레마다. 지금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촛불의 힘 때문이지, 평소에는 들으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결국 개혁의 성공은 시민들에게 달려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하 대표 말대로 지금은 선거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가장 급하다고 보지만, 나는 이 기회에 ‘시민의회’를 구상해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평범한 일반시민들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대표자들을 뽑아 기왕의 국회와는 별도로 정말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의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추첨으로 뽑으면 돈도 들지 않고, 명망가나 재산가, 기득권층이 아닌 그야말로 보통사람들의 의회가 구성될 수 있다. 

시민의회는 어떠한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에 국가적 현안에 대해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경우는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조언을 충분히 듣고 자유 토론과 숙의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리면 된다. 사드, 개헌, 선거법, 4대강, 빈부격차, 검찰과 언론 개혁 등등, 어려운 현안을 이런 식으로 처리한다면 민주주의도 질적으로 향상되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물론 비례대표 강화가 긴급하다고 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완전 비례대표제로 국회를 구성하면서도 부패 정치가 그치지 않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도 있으니까. 

하=시민의회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한 혁신적인 제도 도입을 위해서라도 비례제 중심 선거제도가 필요하다. 지금은 지역구에서 1등한 국회의원들이 특권의식이 강해서 무엇이든 자기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유럽의 경우 비례대표제 국가에서 의제별로 시민의회를 구성한 사례가 있다. 

김=시민의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덴마크의 시민합의회의 같은 것은 당장이라도 도입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덴마크는 80년대 초 원자력 문제로 전국민적인 논쟁이 벌어졌는데 결국은 원자력 발전을 안하기로 했다. 그런데 사회적 소모가 너무 컸다. 그래서 만든 게 ‘시민합의회의’다. 이 회의에서는 GMO 도입여부, 줄기세포 연구 등, 현안을 전국에서 추첨으로 뽑힌 시민대표들이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데, 지금까지 20회 넘게 했는데 거의 전원합의에 의한 결정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는 정부당국자나 전문가들이 밀실에서 결정하지 않는가. 전문가 중에서도 권력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이기고, 진 사람은 억울해 한다. 진 사람이 억울하지 않아야 올바른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아니라 가급적 합의에 의해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이다. 자기는 끝내 동의를 안했어도 결과가 도출된 경위를 수긍할 수 있어야 그게 민주주의이다.

-앞으로의 한국사회는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둬야 할까. 

김=박근혜 전 대통령이 터무니없는 정치를 하기도 했지만, 박근혜 정권이 망한 이면에는 ‘저성장’ 혹은 ‘성장의 멈춤’이라는 상황이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성장시대가 끝난 이후부터는 진짜 민주주의를 하지 않으면 사회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동안 하던 대로 ‘각자도생하라’고 한다면 모든 게 망가질 것이다. 국가의 공유재산을 공평하게 배분하고, 예를 들어 기본소득제를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정치가들은 자신을 ‘사회자’라고 여기고 최선의 지혜를 모으는 방법을 고민만 하면 된다. 자기가 무슨 선지자인양 행세하는 바보짓을 해서는 안된다.

해답은 민주주의적인 방법 속에 있고, 민주주의를 통해서 국민들 속에 있는 역량과 지혜를 잘 결집시키기만 하면 된다. 이번에 대선에 나온 사람들은 그런 자세만이라도 보여줬으면 좋겠다. 어려운 상황을 자신이 감당할 자신은 없지만, 최선의 지혜를 모우기 위해서 ‘사회’는 잘 보겠다는 겸손한 자세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사람의 삶은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생각을 보다 철저히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면 좋겠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있어야 부자도 있다는 것, 원래 세상은 풍요로웠는데 누군가가 독과점하기 때문에 궁핍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늘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물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인정을 해줘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독점을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는 성장사회였다면 이제부터 우리는 성숙사회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하=저는 ‘공생’을 꼽고 싶다. 함께 살자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IMF 이후 경제성장을 내세워 지대를 추구하는 경제를 만들었다. 재벌이 중소기업 착취하고 지대라고 볼 수 있는 특권적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가 돼 버렸다. 명분이 ‘성장’이었다. 주거난이 심각한데 부동산 과다보유자들은 지대로 먹고 산다. 정보 접근이 쉬운 소수의 사람들, 약싹바른 사람들, 힘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이 특권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대표적인 예가 최순실 아닌가. 이 구조에서 대다수는 살기가 힘들어져 버렸다. 이제는 공생경제, 공생사회가 돼야 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아마 ‘같이 살자’고 하면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할 것이다. 공생으로 가려면 결국 민주주의가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