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내부제보자' 색출 지시한 김관진..'정치개입' 수사 임박
정대연 기자 입력 2017.10.07. 16:03 수정 2017.10.07. 16:27
[경향신문]
황 모 중령(52·육사 45기)은 지난달 2017년 9월 진급 심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2011년부터 일곱번째다. 계급 정년으로 인해 내년 전역을 앞둔 그는 이제 30년 가까이 몸과 마음을 바친 군에서 머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가 처음부터 군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1989년 소위로 임관해 위관급 장교 때는 초등군사반, 고등군사반을 전 병과 통틀어 수석으로 마쳤다. 소령 때 등록하는 육군대학은 전체 차석으로 졸업했다. 요직도 두루 거쳤다. 그의 결혼식 때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주례를 섰다.
그런 황 중령에게 시련이 닥친 건 역설적이게도 그의 ‘군인다움’ 때문이었다.
2008년 말 당시 박 모 소령은 수도방위사령부 헌병단장으로 재직했던 이 모 전 준장(육사 38기)의 부당한 지시를 거스르지 못하고 범죄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평소 친하던 황 중령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이 전 준장이 자신을 비롯한 3명의 장교에게 예산 관련 문서를 허위로 작성하게 해 현금을 확보했고 이를 이 전 준장에게 건넸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 준장은 “무조건 현금으로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병사 부식용 빵 구입비, 사무기기 유지비, 주방용품비, 방탄 헬멧 도색비 등에서 빼돌릴 돈의 액수와 수법까지 알려줬다.
황 중령도 처음엔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2010년 군 인사철을 앞두고 이 전 준장이 헌병 병과에서 2인자 자리인 육군 중앙수사단장(헌병 병과장)으로 갈 거라는 소문이 돌자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그해 11월 익명으로 당시 육군 중앙수사단장(헌병 병과장)이던 승 모 전 소장(육사 37기)에게 A4용지 5장 분량의 제보편지를 써 보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한 것도 죄였을까. 황 중령이 제보편지에서 “청렴결백함의 표상이신, 믿을 수 있는, 존경하는 병과장님”이라 칭했던 승 전 소장은 비위를 저지른 이 전 준장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투서자 색출을 지시했다. 고민 끝에 작성한 제보편지는 ‘음해성 투서’가 됐고, 영관급 장교들에게 “군 기강 문란 및 이적 행위를 한 제보자를 추적해 잡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결국 이 전 준장은 소장 진급과 동시에 육군 중수단장에 올랐고, 승 전 소장은 헌병 병과 1인자인 국방부 조사본부장에 올랐다.
그래도 황 중령은 군 조직과 군 선배들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 2011년 1월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두번째 제보편지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김관진 전 국방장관은 어이없게도 제보를 이미 한 차례 묵살한 승 전 소장(당시 국방부 조사본부장)에게 투서자 색출과 처벌, 투서 내용 조사를 지시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끝내 황 중령이 제보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황 중령은 이때부터 ‘선배를 배신한 놈’이란 비난과 전역 압박에 시달렸다. 하지만 군은 이 전 준장에 대해서는 징계도 하지 않고 전역 신청을 받는 것으로 사건을 끝맺으려 했다.
그 해 4월 이 전 준장의 비리가 잇따라 언론에 보도되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뒤늦게 재조사를 지시했다. 군 검찰은 황 중령이 제기한 의혹 대부분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며 전역한 이 전 준장은 민간 검찰에 이첩하고, 이 전 준장의 범죄 혐의를 인지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승 전 소장도 징계 의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잠깐 시끄러울 때뿐이었다. 군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이 전 준장 사건은 민간 검찰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내사 종결됐다. 민간 검찰과 군 검찰로 이원화된 탓에 군이 민간 검찰에 제대로 협조할 리 없었다. 승 전 소장도 2012년 말 아무런 징계 없이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전역했다.
비리를 저지르고 묵살한 상급자들과 달리 황 중령은 ‘군 기강을 문란하게 한 죄’로 징계를 받았다. 지휘 계통에 따라 정상적으로 제보하지 않았고(군인복무규율 위반), 개인 노트북으로 투서를 작성했고(보안규정 위반), 다른 이의 이름으로 투서를 보냈다(품위유지 위반)는 이유로 감봉 3개월 처분이 내려졌다. 황 중령의 항고로 견책으로 낮춰지긴 했지만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해 보였다. 황 중령은 징계권자인 육군참모총장을 상대로 징계처분취소소송을 냈고 2012년 10월 1심에서 패소했지만 2013년 5월 항소심과 2013년 9월 상고심에서 승소하며 징계 취소가 확정됐다. 하지만 재판에서 이긴 황 중령은 이미 유일한 목표였던 군인으로서의 삶을 모두 잃은 뒤였다.
불의를 고발한 자는 수년째 좌절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불의를 저지른 자들은 오히려 떳떳하게 살고 있다. 황 중령 사건의 총책임자인 김관진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연이어 국방부 장관을 지낸 뒤 올해 5월까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내는 등 계속 ‘잘나갔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군사이버사령부와 국군기무사령부를 동원한 정치개입의 정점에도 서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달리 2013년 1차 수사 때 이미 한 차례 처벌을 피해간 그도 이제 임박한 검찰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군 내부에서는 황 중령 사건에 대해 내부 비리를 고발한 데 의미를 두기보다 ‘내부 기강을 무너뜨리고 조직을 흔든 사례’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많다”며 “이 같은 문화가 계속된다면 (상급자의 부당한 지시임에도 거부하지 못한) 군 정치개입과 같은 사건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고 군이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고도 했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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