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한다
< 질문 > 시절(時節)과 인연(因緣)을 살핀다는 말은 어떻게 하라는 말씀입니까?
< 답변 > 질문하는 사람은 지금 시절과 인연을 따르지 않고 있소? 이 세상 모든 게 전부 다
시절과 인연 따라 굴러가는 거요. 그런데 그 시절과 인연이 다 텅~비었으면 굴러간다고 말을 하긴
해도 실상은 굴러가는 시절과 인연은 없는 거요.
그러니 시절과 인연을 살핀다는 말은 지금처럼 모든 걸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한다 해도 실제로는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이오. 이와 같이 시절도
인연도 다 텅~비어서 텅~빈 시절과 인연을 따를 일도 없고 좇을 일도 없음을 알아야 그때서야 비로소
시절과 인연을 따른다고 말할 수 있소.
실제로 따라야 할 시절과 인연이 따로 있고, 그 시절과 인연을 따라야 할 ‘나’가 따로 있는 한 절대로 그
자리에 계합하긴 글렀소. 계속 이 마음공부를 세간에서 학습하는 자세로 대하는 게 참 문제요. 밖으로
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글을 읽고 하면서 얻어진 지견(知見)을 차곡차곡 쌓아 모으는 그 버릇을
버리지 않는 이상 계속 헛수고만 하는 거요.
그렇게 헛수고만 하는 동안은 마음공부, 즉 수행의 주체가 계속 ‘나’요. 수행의 주체가 ‘나’인 한 천년
만년 가도 마음공부엔 전혀 가망이 없소. 이 세상 모든 게 인연으로 말미암을 뿐 주재자(主宰者)가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체달하지 못한다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소.
이 세상 모든 게 인연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바닥까지 사무쳐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깨치게 되면,
인연이 본래 인연이 아닌 거요. 그렇다면 눈앞에 펼쳐진 이 세상은 전부 다 환상이오 철저히 환상이오.
모든 객관적인 대상인 경계와 그 경계들를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맛보고, 촉감을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관찰하는 주체 둘 다가 상상(想像)만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오.
생주이멸(生住異滅)하고, 생로병사(生老病死)하고, 성주괴공(成住壞空)하는 듯 보이는 모든 세상사가
그것들 자체로는 성품이 없기 때문에 모든 세상만사의 생주이멸 생노병사 성주괴공이 생주이멸 생노병사
성주괴공인 채로 생주이멸 생노병사 성주괴공이 아닌 거요. 그럴싸한 말만 있을 뿐 아무 일도 없는 거요.
그래서 세간상(世間相)이 상주(常住)한다, 즉 세상 모든 것들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항상하는 것이다라고
그러는 거요.
- 현정선원 대우거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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